1000
KOTT
01.
사라져 가는 생명들과 검게 물든 대지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로 기억 되기 충분했다. 파괴된 식생과 밀려오는 재해에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신중히 결정을 내렸다. 지구를 복구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지.
이들은 후자를 택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인 푸른 지구를 버리고 거의 개척되지 않은 드넓은 우주를 새 고향으로 택한 것이다. 지구와 달 사이에는 중력과 원심력이 상쇄되어 물체가 거의 정지한 것처럼 머무를 수 있는 다섯 개의 라그랑주 포인트가 있다. 인류는 그중 가장 안정적인 지점인 L5에 소도시를 세웠다. 연구 기지가 아닌, 규칙과 문화가 형성된 실제 생활 공간. 넓은 광야 같은 우주 한가운데, 인류는 의도적으로 씨앗을 심어 흔적을 남겼다.
나는 선조들이 만들어낸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매일 같이 손을 대는 사람이다. 공식 직함은 스페이스 엔지니어. 거창한 이름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건물 외곽을 수리하고, 인공 중력기의 수치가 기준치를 벗어나지 않았는지, 이 도시가 여전히 도시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LED 조명이 지구의 아침 빛을 흉내 내자 서서히 조도가 높아졌다. 조명은 창밖의 얼어붙은 칠흑과 못 박힌 듯 정지된 별들을 강제로 지워내려는 듯, 유난히 공격적인 광량을 쏟아낸다. 이 눈부신 광명 덕분에 나는 내가 지금 수만 킬로미터의 공허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저 투명한 강화 유리 너머에는 숨 쉴 공기조차 없는 죽음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벽을 짚으며 일어났다. 늘 그렇듯 차갑고 매끈한 금속의 감촉이 손에 남았다. 뒤이어 간헐적이지만 규칙적인 인공 중력기가 낮게 울리고, 공기 정화 장치가 웅웅거렸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새하얀 거울 앞에 섰다. 형광등 아래 노출된 내 얼굴은 생기 없이 창백했다. 기계적인 손길로 양치와 세수를 끝내고, 작업복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방을 나서기 전,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벽면 한구석에 붙은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정수가 떠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02.
정수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이 기지의 모든 것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지던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텅 빈 2인용 기숙사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없는 상태가 내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이곳에서 내 곁을 거쳐 간 이들은 하나같이 불협화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경악할 새도 없이 새로운 얼굴이 그 자리를 채웠고, 나는 매번 바뀌는 타인의 습관에 억지로 나를 맞춰야 했다. 그러나 그 노력조차 무색하게 그들은 친해질 틈도 주지 않은 채 다른 구역으로 재배치되거나, 규정 위반으로 소리 소문 없이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그런 허망한 교체가 몇 번이고 반복되자, 나는 어느덧 타인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곧 다가올 결핍을 예약하는 일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제이든이라는 이름의 금발 엔지니어가 금지된 약물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새벽녘 보안팀에 의해 급히 끌려 나갔다.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정적을 깼고, 텅 빈 방에 남겨진 것은 주인을 잃고 흐트러진 침대 시트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지독하게 익숙한 감각뿐이었다. 한바탕 휩쓸고 간 소동 탓에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나는 다시는 감기지 않을 것 같은 눈을 깜빡이며, 기지의 낮은 웅웅거림 속에 섞여 흐릿하게 죽어가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은 평소보다 유난히 무거웠다. 나는 짓눌린 피로를 이끌고 뻣뻣한 작업복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무작위로 날아오는 우주 쓰레기들을 피해 건물 외곽을 수리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궤도를 이탈한 금속 파편과 오래된 위성 조각들이 예고 없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헬멧 속에서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고막을 찔렀다. 그럴 때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춘 채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거나, 생명줄과 다름없는 고정 장치를 강박적으로 점검해야 했다. 가까이서 마주한 외벽의 균열은 언제나 예상보다 깊고 처참했다. 방호 패널은 미세한 충돌 흔적으로 짓이겨져 있었고, 하나를 메우면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쪽에서 새로운 상처가 터져 나왔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수선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이 거대한 인공 도시의 수명과 그 안에 위태롭게 매달린 인류의 존속에 대한 염려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곤 했다.
내부 시스템을 점검하는 일은 그나마 육체적인 위협은 덜했지만, 신경을 갉아먹는 건 마찬가지였다. 복잡하게 얽힌 에너지 흐름을 추적하고, 낡은 코드 사이에 박힌 오류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는 동안 통신망에는 기분 나쁜 잡음이 섞여 들렸다. 겉보기엔 매끄럽게 돌아가는 자동화 장치들도 그 이면에는 수만 개의 작은 어긋남을 품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 위로 쏟아지는 수치들을 확인하며 수동 조정값을 입력했고, 냉각 시스템이 정상 온도를 회복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도구를 챙길 수 있었다.
작업이 모두 끝났을 때, 태양은 이미 도시의 반대편으로 기울어 있었다. 헬멧을 벗자 뒤늦게 피로가 밀려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녹초가 된 몸을 간신히 움직이며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험난하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지쳐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와 수없이 늘어선 방들을 지나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생각하면 과장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땅에 코를 박을 듯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만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1004호의 문 앞이었다. 주섬주섬 카드키를 꺼내 문에 갖다 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시야 한쪽에 낯선 형체가 불쑥 들어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적뿐이어야 할 문 앞에 소리도 없이 서 있던 그림자와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요동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귓가에는 몸이 내뱉는 날것의 심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흐릿했던 시야가 한 박자 늦게 초점을 맞추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그제야 멎었던 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나와 똑같은 짙은 회색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팍에 달린 작은 명찰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놀란 기색을 수습하려 헛기침을 내뱉으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 죄송합니다.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해서….”
내 군색한 사과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지만, 키는 나보다 족히 십 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정지된 별들만 가득한 이 무채색의 복도에서 그의 존재감은 이질적일 만큼 거대했다.
“곽지석 씨 맞죠?”
그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카드키를 쥔 손을 내려다봤다. 왜 내 이름을 묻는지 의문이 들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내 방어적인 태도에 그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더니, 습관적으로 가슴의 명찰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오늘 낮에 본부에서 보낸 연락 못 받으셨나요?”
그제야 우주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느라 무시했던 단말기의 알림들이 뇌리를 스쳤다. 아, 탄식과도 같은 짧은 깨달음이 터져 나왔다.
“아…. 죄송합니다. 외부 작업 중이라 확인을 못 했습니다.”
말끝을 흐리며 미안함을 표하자, 남자의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한색의 조명 아래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괜찮아요. 저도 자주 그러는 걸요.”
“새로 오게 된 룸메이트에요. 오늘 새벽에 나간 엔지니어 빈자리에 제가 배정됐어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빨리 충원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본 적이 없는 얼굴 같아서요. 원래 이 구역이셨나요?”
“저는 B동에 있었어요. 이번 분기가 끝나면 A동으로 넘어올 예정이었는데, 아시다시피 갑자기 결원이 생기는 바람에 일정이 조금 앞당겨졌네요.”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뒤늦게 내 쪽으로 커다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었네요. 김정수라고 합니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낯선 온기에 주춤거리다, 나는 마지못해 그 손을 맞잡았다.
“…곽지석입니다.”
정수는 이전의 룸메이트들과는 명확히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그가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던 그 짧은 찰나부터 나는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채색의 조명 아래서도 환하게 빛나던 미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소중히 말하며 내미는 크고 온기 어린 손, 그리고 능숙한 엔지니어답지 않게 살짝 상기된 채 내 표정을 살피던 그 선한 눈망울까지. 정수가 가진 모든 기질은 이 딱딱한 기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순수했다.
그 생경한 온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평소보다 수월하게 새로운 동거인을 방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수가 다르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나는 그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않았다. 정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선 이들처럼 개인적인 문제로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비관적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수는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단 하나의 불협화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제이든처럼 금지된 약물로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았고, 드미트리처럼 거친 폭력으로 울분을 토해내지도 않았다. 밤마다 벽을 울리던 블라디미르의 코골이나, 타인의 사소한 권리를 침해하던 하루토의 비겁함도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정수에게는 쫓겨날 이유도, 도태될 결격 사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지가 요구하는 규칙들을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성실히 수행했다.
모든 것이 뒤틀린 이곳에서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상식이 위법이 되고 광기가 일상이 되는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정수의 바른 태도는 경이로운 이질감에 가까웠다. 기상천외한 룸메이트들의 만행에 지쳐 있던 나에게 그런 정수의 존재는 구원과도 같았다.
정수의 배려는 소리 없이 내 일상의 틈새를 메워왔다. 고된 작업 탓에 식사를 거른 날이면 내 책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이 놓여 있었고, 건조한 공기에 내가 헛기침이라도 하는 밤이면 어느샌가 가습기가 기분 좋은 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자주 찾는 물건들은 늘 제자리를 지켰고, 방전된 채 방치되던 나의 기기들은 정수의 손길을 거쳐 늘 완전한 충전 상태를 유지했다. 그는 자신의 선의를 생색내지 않았다. 그 모든 세심한 행위들이 마치 행성이 자전하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듯 행동했다. 타인의 불편함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소리 없이 보살피는 그 체질적인 다정함 앞에, 나는 결국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향한 호감은 중력처럼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후로 몇 주간, 나는 정수라는 궤도를 도는 관찰자가 되었다. 딱히 의도를 가진 행위는 아니었다. 그저 폐쇄된 적막 속에 던져진 이 기묘하고 다정한 생명체에 대해, 본능적인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다. 나의 시선은 정수의 사소한 움직임을 좇아 은밀하게 움직였다. 누군가를 훔쳐본다는 사실에 가끔은 마음이 쿡쿡 찔리기도 했지만, 그 관찰의 시간은 나에게 유일한 유희가 되어주었다.
사실 정수의 일상은 관찰 대상으로서 그리 흥미로운 편은 아니었다. 정수의 하루는 톱니바퀴처럼 정해진 패턴을 따라 흘렀고, 감정의 높낮이도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았던 것은, 내가 관찰에 소질이 있어서라기보다 그가 내비치는 이면의 무언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가 나보다 몇 살이 더 많은 지, 웃을 때 눈을 몇 번 깜빡이는지와 같은 표면적인 데이터 너머의 것들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가는지, 무엇에 마음의 닻을 내리는지, 그리고 무미건조한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어느 순간 가장 뜨겁게 일렁이는지 등등, 그런 것들을 살폈다.
내가 발견한 정수의 가장 깊은 심연에는 지구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미지의 성운이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에 매혹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정수는 단순히 본적도 없는 자연과 환경을 그리워하는 수준을 넘어, 지구라는 별 자체를 사랑했다. 그는 인류의 발자국이 끊겨버린 선조들의 땅과 바다를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단 한 번도 직접 밟아보지 못한 그 축축하고 생명력 넘치는 대지를, 그는 마음의 지도를 그려가며 매일같이 탐험하고 있었다. 그 열망의 상징처럼 그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낡은 지구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륙의 경계마다 색이 바랜 땅덩어리와 그 사이를 메운 푸른 바다를 머금은 기울어진 구체. 우주 시대의 생존자들에게 그것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골동품에 불과했지만, 정수의 손 위에서 그 의미만은 퇴색되지 않은 채 영롱하게 빛났다. 정수가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닦고 기름을 친 덕분인지, 먼지 하나 앉지 않은 지구본은 손가락 끝만 닿아도 빙글빙글 매끄럽게 회전하며 잊힌 나라들의 이름을 내보였다.
내가 정수를 형이라 부르는 것에 제법 익숙해질 무렵, 그는 어느 날 나를 자신의 비밀스러운 정원으로 이끌었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간이 배양실이었지만, 그곳은 기지의 메마른 금속 벽면 사이에서 유일하게 숨을 쉬는 장소였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네모난 화분들 속에는 정수가 온 마음을 다해 길러낸 생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민들레, 은방울꽃, 제비꽃…. 지구라는 머나먼 기억에서 길어 올린 조그만 유산들. 손바닥 위에 올리면 비명도 없이 사라질 듯 연약한 존재들을 바라볼 때면, 정수의 눈동자에는 묘한 설렘과 경외감이 일렁였다. 정수는 꽃들이 대지를 뒤덮었을 지구의 옛 들판을 자주 상상한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세밀화를 그리듯 그 아름다움을 확신하며 되뇌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말을 잃었다. 바람에 허리가 꺾이는 민들레와, 은빛 광채를 머금은 은방울꽃, 그리고 낮은 군락을 이룬 보랏빛 제비꽃…. 정수의 목소리를 타고 내 머릿속에도 낯선 계절의 풍경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은 그 연약한 꽃들과는 대조적이게 거친 작업의 연속이었다. 교대 사이렌이 기지의 정적을 가르면 우리는 중력 보정 장치를 점검하러 외벽으로 나갔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우주 쓰레기들의 위협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명줄을 의지한 채 파손된 패널을 교체해 나갔다. 외벽 작업이 끝나면 다시 숨 가쁜 내부 점검이 이어졌다. 정수는 배선을 살폈고, 나는 중앙 제어 시스템의 오류 로그를 지워 나갔다. 기계들이 안정을 되찾고 가느다란 숨을 내뱉을 때쯤에야, 우리는 비로소 짧은 휴식을 허락받았다.
휴식 시간에 창가에 나란히 서서 바라보는 우주는 언제나 똑같은 얼굴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과 박제된 별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채 희미하게 명멸하는 푸른 점 하나. 지구였다. 정수는 그 작은 점을 유독 오래도록, 마치 놓치면 사라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바라보곤 했다.
“형은 왜 지구가 좋아?”
내 질문에 정수는 즉답 대신 창밖의 어둠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글쎄…. 아마, 돌아갈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이곳의 공기를 마시며 자랐잖아. 지구는 우리에게 전설이나 이야기 속 장소에 가깝지.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끌리는 걸지도 몰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기에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조차 가질 수 없는 결핍의 근원 같은 곳이라서.”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대화는 광막한 우주의 허공과 정수의 작은 화분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나는 주로 아무런 빛도 감지되지 않는 칠흑의 좌표에 망원경을 고정하고,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얻어낸 심우주 사진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빈 공간을 집요하게 응시한 끝에 간신히 건져 올린 희미한 빛의 타래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 채 각자의 시공간에서 태어나고 스러졌을 별들이, 우연히 나의 프레임 안에 나란히 갇혀 있는 모습은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소용돌이치는 나선형의 팔, 찢긴 듯 흩어진 성운의 파편들, 그리고 이미 사멸한 별들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잔광들. 그 찬란한 유령들을 무심히 관통해 온 수십억 년의 시간이 나를 압도했다. 정작 나를 전율케 한 것은 그 거대한 규모가 아니라, 사진 속의 별들 중 그 어느 것도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의 긴 꼬리일 뿐이라는 자각이 뇌리에 박혔다.
정수는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깊은 침묵 속에 잠기곤 했다. 마치 별들 사이의 아득한 시간적 간극을 제 몸으로 직접 감당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다 그는 문득,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것 중 진짜 지금인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망원경 너머의 우주는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 과거의 소식이었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조차 마음속에서 수천 번 되뇌어진 뒤에야 뒤늦게 터져 나오는 메아리에 불과했으니까. 정수는 침묵으로 돌아온 대답에 대해 응하는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지구의 찰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단단한 흙의 질감, 공기 속을 유영하는 계절의 냄새, 그리고 매해 같은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철새들의 날갯짓에 대해. 우주의 영겁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순간들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 짧음이 존재를 선명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내가 찍은 죽은 별의 사진과 정수가 갈망하는 지구가 실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둘 다 사라짐을 전제로 해서야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의미를 얻는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지독히도 닮아 있었다.
03.
그날은 유난히도 공기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인류는 또다시 탐욕스러운 확장을 꿈꾸고 있었다. L5의 안정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그에 필적하는 중력 평형점인 L4에 제2의 인공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정수와 나는 그 거대한 건설 현장에 투입될 정밀 물자와 기술을 조달하기 위해 L4 지점으로 향하는 임무를 맡았다. 두 포인트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가로지르기 위해, 우리는 익숙했던 기지를 등지고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격납고의 육중한 문이 닫히자 발끝에서부터 낮은 진동이 전해졌다. 수없이 반복해 온 출항이었으나, 그날만큼은 폐부로 스며드는 산소의 농도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정수는 조종석에 앉아 수십 번의 계산 끝에 도출된 최적의 궤적을 여러 번 확인했고, 나는 창 너머로 점차 작아지는 L5의 모습을 응시했다.
“출력은 안정적이야.”
정수의 짧은 보고와 함께 우주선은 매끄럽게 가속하기 시작했다. 자동 항법 시스템이 정해진 항로를 따라 순항하는 동안, 우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교대로 짧은 휴식을 취했다. 항해 이틀째가 되자 창밖의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었다. 지구와 달이 만들어내는 중력의 균형점 위로, 건설 중인 L4의 뼈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개척지의 황량함과 인류의 오만한 의지가 뒤섞인 그 거대한 금속의 골격은, 차가운 심연 속에 던져진 불완전한 온기처럼 보였다.
“거의 다 왔어. 이 속도라면 이틀 뒤엔 저기 발을 딛겠는데.”
정수가 계기판을 톡톡 두드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을 풀고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댔다. 기계는 완벽했고, 항로상에는 어떤 장애물도 포착되지 않았다. 자동 항법 장치의 낮은 기계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우주는 지나치게 고요했고, 그 비현실적인 정적은 마치 우리가 이 광활한 공허의 주인이라도 된 것 같은 위험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언제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였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날아온, 레이더망조차 비웃듯 비껴간 아주 작은 파편 하나가 선체를 스치듯 지나간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안온함은 산산조각 났다.
사건은 예고 없이 일어났다.
콰광!!
둔탁한 충격이 귓구멍을 강타했다. 뒤이어 비명에 가까운 충돌음이 선체를 흔들었다. 우주선 전체가 옆으로 떠밀리듯 요동치고, 패널 위에 놓여 있던 도구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정수!"
나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경고음이 난폭하게 울려 퍼졌다. 붉은 경고등들이 연쇄적으로 점등되며 조종석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계기판의 수치들이 빠른 속도로 튀어 오르다 급격히 떨어졌다.
“형! 선체 외벽 손상됐어!”
나는 소리치며 조종석 쪽으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우주선이 중심을 잃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던 L4의 실루엣이 화면을 가로질러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별들이 원이 되어 흐트러졌다. 정수는 이미 조종간을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엔진 2번 라인이 터졌어! 연료가 새고 있어!"
정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제어 분사기를 작동시키려 연속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짧은 분사음이 몇 번 들렸지만, 우주선의 회전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선체 어딘가에서 그저 진동만이 전해질 뿐이었다. 뒤이어 귀 안쪽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내부 압력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파편은 그저 외벽만 긁고 지나간 게 아니었다. 메인 전력 계통과 보조 산소 탱크가 동시에 손상된 것이었다.
“비상 격벽 내려!”
정수의 비명에 나는 벽을 짚고 수동 레버로 달려갔다. 하지만 뒤틀린 프레임에 걸린 레버는 요지부동이었다. 젖 먹던 힘을 쥐어짜 힘을 주었으나, 레버는 쇳소리를 내며 겨우 몇 센티미터 움직였다. 그 틈새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우리를 위협했다.
“제발… 제발 좀!”
정수가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자 연료 경고등이 마지막 단명을 예고하듯 깜빡였다. 몇 초 뒤, 모든 화면이 일시에 암전되었다. 조종실을 채우던 기계들이 하나둘씩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삐이이—
가늘게 이어지던 경고음마저 힘없이 늘어지다 툭, 하고 끊겼다. 지독한 정적이 찾아왔다.
엔진의 포효도, 냉각 팬의 웅웅거림도 사라진 공간에는 오직 비상등의 희미한 잔광과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이 떠돌았다. 우주선은 이제 인류의 어떤 의지도 담지 못한 채, 차가운 진공의 관성에 몸을 맡기고 심연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정수… 연료가 문제가 아니야.”
내 떨리는 목소리에 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종간을 부서져라 붙들고 있던 그의 손이 서서히 힘을 잃고 풀려났다. 그는 넋을 잃은 채, 전면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무심한 어둠을 응시했다.
“……알아.”
낮고 짧은 대답 속에 모든 절망이 응축되어 있었다. 산소 공급기는 내부에서 갈리는 듯한 쇳소리를 내다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수리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넘어섰다. 기계는 죽었고, 우리는 산 채로 관 속에 갇힌 꼴이었다.
우주선은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빛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정수가 열망하던 지구가, 내가 매일 기록하던 별들이 아득한 어둠 속으로 침잠해 갔다. 정수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주복의 잔여 산소량은 길어야 서너 시간. 광활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그것은 찰나보다 짧은 찰나였다. 구조 신호를 보낼 전력도, 항로를 틀 연료도, 고장 난 선체를 고칠 도구도 이제는 무의미한 쇳덩이에 불과했다. 이제 그저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내의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서로의 곁에 붙어 앉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빛들을 말없이 응시했다. 우주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와는 상관없이, 소름 끼칠 정도로 평온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정지해 있는 그 광활한 허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 심연의 밑바닥에서부터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정말로, 이렇게?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형태를 바꿔가며 회전했다. 아직 내 폐는 산소를 갈구하고 있고, 몸의 감각은 이토록 생생한데, 세상의 모든 물리적 가능성은 이미 마침표를 찍어버린 듯했다. 끝이라는 게 성립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죽는다는 개념이 이렇게 무감각하게 다가올 수 있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숨이 막힐 만큼 선명했다. 두려웠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존재가 우주의 거대한 무심함에 쓸려 나가 한 줌의 우주먼지로 돌아가는 그 당연한 섭리가, 지금 이 순간에는 견딜 수 없는 폭력처럼 다가왔다.
언젠가 이 여정의 끝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이 이토록 무례하고도 성급하게 찾아와 내 앞길을 가로막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아직 이 차가운 진공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 똑바로 서서 그 눈을 마주하기엔, 내 안의 살아있는 마음은 여전히 너무도 뜨겁고 미련했다.
얼어붙은 공기 사이로 지독한 정적이 흘렀다. 내 거친 숨소리만이 헬멧 내부를 울리며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을 때, 옆좌석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지석아.”
정수였다. 그는 여전히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떨림조차 거세된 그의 목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차분해서, 오히려 내 안의 두려움을 건드렸다.
“저기 봐.”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희미한 푸른 점, 지구가 있었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명멸하는 그 빛을 보며, 정수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전에 했던 말 기억나? 내가 지구에 관해 해줬던 말. 생각을 해봤는데, 네 별의 사진도, 내가 사랑한 지구도, 사라지는 것이니까 가치가 있는 것 같아.”
“형, 제발…. 지금 그런 소리가 무슨 소용이야. 우린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준비해 온 사람 같은 깊은 체념과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
“아니, 지석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빛들도 사실은 수만 년 전에 이미 사라진 것들이잖아. 하지만 그 빛이 지금 우리 눈에 닿아서 우리를 비추고 있어. 존재했던 시간은 찰나였을지 몰라도,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이렇게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도착한 거야.”
그는 내 손을 가만히 맞잡았다. 두꺼운 우주복 장갑 너머로 그의 체온이 전해질 리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손길이 닿은 곳부터 딱딱하게 굳어 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도 그럴 거야. 우리의 지금은 여기서 멈추겠지만,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 네가 찍은 사진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저 별빛처럼 누군가에게 계속 흘러갈 거야.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 우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는 과정일 뿐이니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마주 쥐었다. 정수의 손은 따뜻했으며, 그의 눈동자 속에 담긴 푸른 지구만큼은 마지막까지 타오르듯 선명했다.
정수의 말은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허 앞에 선 인간이 낼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정수가 왜 그토록 사라진 지구의 사소한 것들에 집착했는지를. 그는 상실을 슬퍼하기보다, 상실된 뒤에도 남겨질 무언가를 믿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평온함이 전염된 것일까. 요란하게 요동치던 내 심박수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런 나의 모습을 파악했는지 정수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지석아.”
“응.”
“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정수는 조종석 옆 보관함을 열었다. 그가 꺼내 놓은 것은 은색 팩에 담긴 인공 합성 술 두 개였다. 기지에서 아주 특별한 날에나 배급되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헬멧을 벗어 던졌다. 선실 내의 산소가 희박해지고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숨을 나누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자, 건배하자.”
팩이 맞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입안으로 흘러든 합성 액체는 지독하게 달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뜨거운 열기를 남겼다.
우리는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방어적인 태도로 형을 대했는지, 정수가 몰래 키우던 제비꽃이 처음 싹을 틔웠을 때 우리가 얼마나 바보처럼 좋아했는지. 죽음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처럼, 어쩌면 오히려 그 사실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서로의 추억을 나누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희박해진 산소 때문에 의식이 조금씩 몽롱해졌지만, 정수의 나직한 웃음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선명하게 고막을 울렸다. 우리는 오지도 않을 미래를 마치 내일의 일상처럼 떠들며 웃었다. 팩 안의 술이 줄어들수록, 창밖의 어둠은 더 이상 두려운 심연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채워 넣은 이야기들이 부유하는 바다처럼 보였다.
정수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의 체온을 느끼며, 우리가 찍은 별의 사진처럼 이 순간 또한 수천 년을 돌아 누군가에게 도착할 빛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어둠 속의 지구를 바라보았다. 희박해진 산소 때문인지, 아니면 달콤한 술기운 때문인지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이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있던 정수의 몸에 미세한 힘이 들어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정수의 눈동자에는 좀전의 장난기 어린 웃음 대신, 서늘할 정도로 맑고 투명한 이성이 돌아와 있었다.
“지석아.”
정수의 부드러운 부름에 나는 멍하니 그를 마주 보았다. 그는 내 흐트러진 작업복을 매만져 주며, 마치 아주 사소한 비밀을 털어놓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뭐?”
“이 우주선에 비상탈출정이 있다는 거.”
순간, 달콤했던 술기운이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차갑게 식어 내렸다. 나는 굳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얘긴 왜 해?”
“지석아.”
“…형.”
“잘 들어.”
정수의 목소리가 낮았다.
“탈출정에 타면 빨간 버튼이 하나 있을 거야.”
“정수.”
“망설이지 말고 바로 눌러.”
“형, 무슨 소리야.”
나는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설마 내가 탈출정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그거 하나밖에 없잖아.”
정수가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알고 있구나.”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도 바뀌는 건 없어.”
“뭐가 안 바뀌어? 난 안 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 있을 거야.”
“안 돼.”
정수의 말은 단호했다.
“넌 돌아가야 해.”
“나 혼자 어딜 가.”
내 목소리가 떨렸다.
“왜 내가 형을 두고 가야 해!”
목소리가 선내의 공기를 날카롭게 긁었다. 화기애애했던 술기운은 순식간에 휘발되었고, 그 자리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다시금 내려앉았다. 정수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아까보다 훨씬 깊고 단단해져 있었다.
“지석아, 너는 살아야 해. 네 망원경 속에만 가둬두기엔 그 별들이 너무 아깝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형 없이 나만 가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정수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두꺼운 작업복 너머로 그의 가슴팍이 거칠게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내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석아, 제발 내 말 들어.”
“싫어! 그딴 합리적인 척하는 소리 듣기 싫다고!”
나는 정수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분노가 슬픔을 앞질러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선실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형이 뭔데 내 삶을 결정해? 나를 살려 보내고 혼자 영웅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정수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다시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어도 그는 인형처럼 흔들릴 뿐 저항하지 않았다. 그 무력한 순응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정수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며 악을 썼다.
"죽으려면 같이 죽어! 혼자 잘난 척하지 마! 나를 이런 식으로 버리는 게 어딨어?"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었다. 제발, 제발 같이 가자고, 아니면 그냥 여기서 끝내자고.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손은 그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놓지 못했다. 감각이 다 사라질 정도로 세게 움켜쥐었다. 이렇게라도 붙잡지 않으면 정수가 정말로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쏟아부었을까. 내 주먹에 힘이 빠지고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한 공기를 메울 때쯤, 정수가 천천히 손을 들어, 내 떨리는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는 내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정수는 내게 부서질 듯 연약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마지막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다정했다.
“지석아 너는 내 증거야.”
“…뭐?”
“내가 이 우주에 존재했다는 증거. 내가 사랑했던 지구의 꽃들과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가짜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 줄 유일한 사람이야.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내가 가꾸던 정원도, 우리가 찍은 별들도 진짜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정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품고 있었다.
“싫어…. 나 싫어, 형. 난 안 가. 제발 같이 있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정수는 미소 지으며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역시 무섭지 않을 리 없었다. 단지 나를 살려야 한다는 그 오만한 다정함이 그의 공포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지석아, 내가 여기 남는 게, 네가 살아가는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해줘.”
말을 마치자마자 정수는 나를 강제로 일으켜 탈출정 입구로 밀어 넣었다. 나는 고함을 질러대며 저항하려 했지만, 술기운에 풀려버린 다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탈출정의 프레임을 손톱이 뒤집어질 정도로 긁어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 대신 팔에 온 힘을 집중해 정수의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정수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내 가슴팍을 사정없이 밀쳐내며 해치 안으로 나를 처박았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시야가 번지는 사이, 해치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정수! 제발! 안 돼!”
해치가 완전히 닫히기 직전, 그 좁은 틈 사이로 정수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비명과 소음으로 가득했던 내 세상이 순식간에 정적에 잠기는 듯한 목소리였다.
“지석아. 그동안 즐거웠어.”
“우린 또 만날 거야.”
쿵, 하는 소음과 함께 육중한 해치가 닫혔다. 유리창 너머로 멀어지는 정수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그 어떤 별보다도 선명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주선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멀어져 갔고, 나는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그 마지막 별빛을 차마 눈도 감지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4.
탈출정이 L4 포인트의 도킹 데크에 격하게 충돌하듯 멈춰 섰다. 해치가 열리자마자 나는 밖으로 튕겨 나가듯 몸을 던졌다.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나는 위장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낼 듯 구역질을 해댔다.
주변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오다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시선은 구토하는 나를 지나, 내 뒤에 덩그러니 놓인 1인용 비상 탈출정에 머물렀다. 함께 왔어야 할 본선은 보이지 않고, 오직 탈출정 하나만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현장의 공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그 손길을 거칠게 뿌리치고선 주먹을 바닥에 내려쳤다. 손등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쳤다. 입술 사이로 꺽꺽거리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나는 정수를 그 칠흑 같은 심연에 버렸다. 정말로 유기하고 왔다. 나 혼자 살겠다고. 나 혼자 숨을 좀 쉬어보겠다고.
가슴이 너무 뜨겁다. 이 숨 쉬는 공기 속에 던져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찢길 것 같다. 지금도 살겠다고 산소를 빨아들이는 내 폐가 끔찍하다. 정말이지 증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차가운 바닥 위에서 짐승처럼 웅크렸다. 그리고 내가 버리고 온 별의 이름을 소리 없이 되뇌었다. 정수. 정수야. 멈추지 않는 숨결마다 그 이름이 걸려 나왔다.
05.
기지로 돌아온 후, 내가 마주한 것은 정수가 남긴 지독한 흔적들이었다. 방 안은 여전히 정수가 자주 쓰는 탈취제 향기가 남아 있었다. 책상 위 낡은 지구본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무심하게 멈춰 있었다.
나는 정수가 남긴 그 지구본을 부서질 때까지 거칠게 내팽개치고 싶다가도, 차마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형이 뭔데.”
어둠 속에서 나는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허공에 대고 따져 물었다.
“형이 뭔데 날 살려. 김정수 네가 뭔데 그걸 결정해?”
그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은 원망으로 변해 나를 찔러댔다. 눈을 감으면 끝까지 미소 짓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때 그 좁은 선실에서 함께 차갑게 식어갔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산소를 마실 때마다 죄책감에 폐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낄 일은 없었을 텐데. 가끔은 기지 복도를 걷다 큰 키의 작업복 차림만 보아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헛것인 줄 알면서도 형을 부르려던 목소리가 목구멍 안쪽에서 굳어버릴 때면, 나는 벽을 짚고 한참이나 서 있어야 했다.
시간은 멈춘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흘렀다. 어느새 정수의 손때가 묻은 낡은 지구본을 닦는 것은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정수가 가꾸던 작은 간이 배양실은 내 방에 뒀다. 기지 관리팀은 규정 위반이라며 폐기를 명령했지만, 나는 내 배급 식량의 절반을 포기하고 산소 발생 장치의 일부를 전용하는 조건으로 이 연약한 생명들을 지켜냈다. 유리 벽 너머, 인공광을 머금은 노란 민들레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척박한 금속 행성에서 기적처럼 피어난 그 꽃은, 정수가 내게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정수는 지독히도 다정하고 오만한 사람이다. 타인에게 마음을 닫았던 나의 세계에 억지로 꽃을 피워놓고는, 그 꽃을 지키라는 숙제를 남기고 홀로 별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죽지 않고 살기로 했다. 그가 오만하게 내팽개치고 간 그 숙제가 아직 내 손등 위에 낙인처럼 남아 있었기에. 죽지 말고 살아서, 내가 보여준 세상을 끝까지 지켜보라던 그 무책임한 유언이 매일 아침 나를 강제로 눈뜨게 했다.
내가 스스로 숨을 끊는 순간, 정수가 나를 밀어 넣으며 포기했던 그 가치 있는 생명 또한 영원히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붙들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살았다. 맛도 모르는 배급 식량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형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날에는 오히려 더 열심히 기지의 기계들을 정비했다. 형이 나를 대신해 버린 그 시간들을 내가 대신 살아내야 했다. 일분일초를 낭비하는 것조차 그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기에, 나의 생존은 구원이 아니라 처절한 수행에 가까웠다.
나는 이제 정수를 떠올려도 비명을 지르거나 바닥을 내리치지 않는다. 그저 그가 남긴 생명들에 물을 주고, 기계의 나사를 조이며,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내일들을 차곡차곡 쌓아갈 뿐이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떠난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가 했던 말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그렇게 하루를 더 버티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지구의 아침 빛을 흉내 내는 LED 조명 아래서 눈을 뜬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몸에 익은 작업복을 입는다. 그리고 습관처럼 달력 앞에 멈춰 선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000일. 내가 지켜낸 그의 내일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