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ALISM : 운명론

시간, 공간, 차원, 문화, 종족, 기술을 뛰어넘어

서로의 [ ] 맞닿는 교집합

" 어떤 존재냐고요? "

" 저에게 있어서 달의 뒷면 같은 느낌 "

      FICTION

       

       

      엘리제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일

       



      ◆ ◇ ◇






      사람의 쓸모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쓸모 있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더러는 어딘가에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주체이지 객체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먹고, 달리고, 꿈꾸고, 사랑하고, 일을 한다. 그러한 행위에는 스스로의 욕구 외에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다. 반면 나의 경우 명백한 쓸모가 있기에 태어났으며, 철저히 쓸모에 의해 살아간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동일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렇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정의한 바에 의하면 말이다.




      -




      수요일 오전 열한 시 삼십 분. 팔꿈치 안쪽 주사 자국을 꾹 눌러 지혈한다. 잠도 덜 깨어 몽롱한 정신으로 하얀 대리석 바닥을 멍하니 바라본다. 대기실 소파는 푹신하고, 주변은 온통 새하얀 벽과 천장이라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정말 하늘을 날아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면 차가운 안개가 잔뜩 낀 허공뿐이겠지만. 정수가 들었다면 굳이 그렇게 감수성 다 깨뜨리는 말을 덧붙여야겠냐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실인데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정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도 피식 웃겠지.

       

      매월 셋째 주 수요일에는 기초적인 검진 후에 처치를 받는다. 주로 감각수용과 운동기능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대사 및 장기 기능을 점검한 뒤 각종 약물이나 병원체에 대한 신체 반응성을 테스트한다. 백신 접종도 주로 이날에 이루어지는데, 접종 후에는 무리하지 않도록 하루 혹은 반나절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각종 검진과 처치가 귀찮기는 하지만, 평소와 비교하면 널널한 편이기에 가끔 있는 접종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보통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나오면 준비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은 가벼운 재활과 운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점심을 먹은 후엔 인지기능과 뇌의 가소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한다. 기본적인 지식이 주입되기는 했어도 뇌의 발달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주로 지루한 퍼즐 게임이나 신경과학적으로 설계된 과제들을 수행한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이 육체로 살아갈 이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그게 내가 될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나를 인식하는 한 ‘그릇’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수명이 다해가거나,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몸을 대체할 용도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일컬어 ‘그릇’이라 한다. 극히 사용 목적에 집중한 명칭이다. 단순히 클론이나 레플리카와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데에도 그러한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본인들이 정해둔 그릇으로서의 용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너는 그릇 치고 생각이 너무 많아.”

       

      … 정수는 매번 그렇게 말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는 것을 가만히 들어주다가도, 내가 그들이 그어놓은 선을 조금만 넘으려 하면 단호해졌다. 그러는 자신도 늘 생각 속에 파묻혀 살면서 그랬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종류로.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까지 그릇이 되려는 건데?”

       

      벌써 몇 번이고 했던 질문이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폐기되는 게 무서워서? 그릇으로 쓰이고 지금의 내가 사라지는 건 안 무서워? 정수는 이번에도 못 들은 척 몸을 둥글려 이불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내 침대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는 대신 옆에 몸을 뉘었다. 정수는 꾸물거리며 공간을 내어주었다.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이렇게 살아있는데, 숨 쉬고, 생각하고, 말을 하는데. 왜 누군가의 기억을 주입 당해 그의 삶을 살아내어야 하는지 영영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삶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김정수는 더더욱 그렇다. 고개를 돌리니 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다. 나를 잃고 그릇이 된다는 건 이 눈동자를 잊어버린다는 뜻일 테다. 정수가 그릇이 된다면, 이 눈동자가 더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절대로 전해지지 못할 눈빛을 보낸다. 너는 정말, 그렇게 되어도 좋은 거냐고.




      -




      1년 전 겨울, 백신을 맞고 나서 고열에 시달린 어느 새벽이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라는 말에 물을 계속 마셨더니 요의가 밀려와 잠에서 깨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머리는 어지럽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백신이 아니라 그냥 생바이러스를 접종한 게 아닌가 싶었다. 비척비척 방 밖에 나와 보니 난방이 닿지 않는 복도 바닥은 냉골이었고, 눈보라가 친다더니 창밖으로 휘이, 바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누군가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았다. 마침 다리에 힘이 풀리려던 차라 그에게 안기다시피 기대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방에서 고작 열 발자국 떨어진 화장실을 간신히 다녀오고서야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를 방에 데려다 놓고는 체온계를 가져왔다. 38.4도. 곧 물수건이 이마 위에 얹어졌다. 시원한 기운에 핑 돌던 눈앞이 조금 맑아지면서, 그제야 고마운 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데, 대체 누구일까.

       

      “아침에도 열이 안 떨어지면, 선생님께 해열제를 달라고 해볼게요.”

       

      그는 이불을 목 아래까지 덮어주고는 아이 재우듯 내 가슴께를 도닥였다. 스르륵 감기려는 눈꺼풀을 겨우 붙잡고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요, 잠이 안 와요?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어지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누구세요…?”

       

      갈라지는 목을 짜내어 물었다. 옆 동의 연구원? 다음 달에 새로 오실 예정이라던 간호사 선생님?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저는, 음, 59번 방에 있어요.”

       

      59번은 복도 끝에 위치한 그릇의 방이다. 아무도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빈 방으로 알고 있었는데. 현재 그릇 실험을 진행 중인 개체는 114번, 125번, 128번 세 채였다. 59번이면 못해도 3년도 전에 기억이전수술이 끝나고 밖에 나갔어야 하는 순번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릇이라면 모두 필수로 나와야 하는 일과시간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 실험을 시작하는 개체일까. 이곳의 규칙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우선 틀린 부분부터 짚었다.

       

      “해열제라면 간호사 선생님 마음대로 받을 수 없을 거예요. 닥터의 처방이 있어야…”

       

      “제가 말한 선생님은 닥터 노아예요. 간호사 선생님은 저를 모르실 거예요. 음, 그리고 당신도 모른 척해줘야 하는데. 선생님 외에 제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는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당신도 그릇이 맞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과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그릇이 모두 잠든 이 시간에 복도에 있었던 거나, 개인적인 처방 부탁이나, 어느 것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그릇 간 사적 대화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는 주요 원칙을 어기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은데, 그 산이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바람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침대 옆은 당연하게도 비어 있었다. 다만 베개 옆에 떨어져 있는 축축한 물수건에 간밤의 만남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뜬 지 몇 분 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을 확인하고 가져온 해열제를 놓아주며 물었다.

       

      “혹시 닥터가 왔다 가셨나요?”

       

      “아뇨?”

       

      “근데 어떻게 아셨지. 아침부터 스테이션 찾아오셔서 114번 방에 해열제 놔 달라고 하셨거든요.”

       

      “하하, 글쎄요…”

       

      찔리는 구석이 있어 웃어넘기는데, 밤새 가라앉지 않은 열 때문인지 땀이 비죽비죽 흘렀다. 간호사 선생님은 연신 이상하네,를 내뱉으며 해열제가 잘 들어가는지 링거액을 확인하고 방을 나갔다. 확실히 이상하다. 이상하고, 궁금하다. 곧장 일정 관리용 태블릿을 확인했다. 내 상태를 보고 연구원들이 이미 조정해 두었는지 오늘은 휴식과 식사 외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곧장 방을 나가려다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이 툭 걸렸다. 이십여 분 후면 바늘을 제거하러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오실 테니, 그때까지만 호기심을 잠깐 미루기로 한다.

       

      가만히 누워 그의 얼굴을 흰 천장 위에 그렸다. 눈매는 조금 뾰족했지만 매섭지는 않았고, 볼은 동그랬다. 인상만큼이나 순한 성품으로 보였다. 침대에 발이 묶인 채 정신은 온통 복도 끝 59번 방에 가 있었다. 완성 기간이 한참 지나도록 아직 그릇이 되지 않은 그라면, 나의 짧은 생에 가장 깊이 품은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링거 바늘을 제거하고 나간 간호사 선생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 59번 방 앞에 섰다. 똑똑. 노크 소리가 작게 울렸다. 방 안쪽은 여전히 조용했다. 너무 작아 못 들었나 싶어 이번엔 조금 더 크게 두드리려는 순간, 달칵 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살짝 열렸다. 문틈 안으로 보이는 방은 환한 복도와 달리 대낮에도 어둑해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엉거주춤 서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내게 간이의자 하나를 꺼내어 주고 자신은 맨바닥에 앉았다. 침대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앉아서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몸은 좀 괜찮은가요?”

       

      “네, 덕분에요.”

       

      “누가 방에 오는 건 처음이라, 드릴 물 한 잔도 없네요.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멋대로 왔는걸요.”

       

      그의 방은 내 방의 구조와 크게 다를 것 없었으나, 침대 위에 인형이나 선반에 놓인 작은 모형들이 시선을 끌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무엇부터 물어야 할까. 당신에 대해, 닥터에 대해, 나에 대해. 머릿속에서 여러 질문이 뒤섞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얘기해도 된다며 차분히 기다렸다.

       

      “그냥, 왠지… 궁금해서요. 다른 그릇들이랑, 좀 달라 보이셔서.”

       

      “저는 엄청 평범한데.”

       

      “연구원들도, 간호사 선생님도 아무도 모르는 그릇이 평범한가요?”

       

      “하하…”

       

      “해열제 부탁은 어떻게 한 거예요? 닥터가 왔었나요?”

       

      “아뇨,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이 닥터가 비밀리에 단독으로 관리하는 그릇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실험이 무기한 중단된 상태였는데, 비교적 실험 초기였던 50번 대까지는 그러한 경우가 많아 큰 이슈가 될 사건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 내내 그는 닥터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눈빛과 목소리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묘하게 신경이 쓰여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닥터를... 좋아하세요?”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한다는 건 연애 감정을 말하는 거겠죠? 전혀요.”

       

      뭘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네. 노아는…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그는 무릎을 당겨 안아 웅크리고, 한쪽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았다.

       

      “의외긴 하네요. 감정을 질문하는 그릇이라니. 선생님이랑 면담 때에도 그런 적 있나요?”

       

      “음… 아뇨.”

       

      “… 앞으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곧바로 되물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조금 슬픈 눈빛을 하고서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정수라고 불러. 내 이름이야. 다른 그릇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갑자기 짧아진 말끝에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으나 그는 생긋 웃기만 했다.




      그 후로도 정수를 종종 마주쳤다. 그는 귀신같이 아무도 없는 순간에만 나타났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거실과 스테이션이 텅 비어 있는 새벽 시간이 아니면 그의 방이나 내 방에서만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의 방에는 여전히 잡동사니가 많았다. 그 중 선반 위에 못 보던 것이 생겨 구경하고 있으니 정수가 옆으로 다가와 설명해 주었다.

       

      “그건 톰과 제리라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야. 회색 고양이가 톰, 갈색 쥐가 제리. 주로 제리가 톰을 약 올리고 도망치고, 톰은 제리를 뒤쫓다가 골탕먹는 내용이야.”

       

      “이런 건 어디에 써?”

       

      “그냥 장식인데. 귀엽지 않아?”

       

      …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이런 걸 침대 머리맡에 두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톰과 제리 중 제리가 나랑 비슷하다며 손에 쥐여주기에 내 방에 가져와 머리맡에 두었다. 이런 건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을 때 정수는 우물쭈물 말을 흘렸는데, 그는 가끔 연구소 밖으로도 나가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정수에게서 창문을 열었을 때 나는 겨울의 냄새가 나서 알았다. 당연히, 다른 그릇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정수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왜 실험과제에 참여하지 않는지, 왜 여기 있는 모두가 그를 모르는지, 연구시설 밖엔 무엇이 있는지, 왜 내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건지. 궁금증이 일 때마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언뜻 차가워 보였던 그 얼굴에 질문을 삼켜낼 때마다 목에 알약이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닥터 노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현 기억이전연구소장이다. 언제나 부스스한 중단발 머리를 아래로 질끈 묶고, 눈 밑은 시커멓게 죽은 채 힘없이 터벅거리며 연구소 건물을 돌아다닌다. 연구소 내 다른 박사들도 있으나, 그 중 오로지 노아만이 그릇들을 직접 마주하기에 이 건물에서 닥터라고 하면 곧 노아를 가리킨다. 이곳에서의 모든 처치나 검사는 닥터 노아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며, 그릇이 될 실험체들은 닥터와 달에 한 번씩 일대일 면담을 한다. 59번, 김정수만 빼고. 정수는 닥터와 정해진 시간 없이 만나는 것 같았다.

       

      닥터 노아를 두고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그릇이라면 모두 닥터가 아버지인 셈이긴 하지만, 그런 맥락으로 한 말 같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정수와 많은 이야기를 했으나 그는 닥터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정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다. 당장 실험 대상인 내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어도 되냐고 물으니 이미 노아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내 방에 와서 문도 꼭 걸어 잠그고,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보아 거짓말일 가능성이 컸다.

       

      그가 해준 이야기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릇은 주로 의뢰한 사람의 유전자나 기증된 유전자를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매번 쓰이는 재료가 다르니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지 않고, 사용된 유전자에 따라 외형도 내면도 다르게 형성된다. 특히 다른 장기에 비해 뇌의 발달은 편차가 크다. 어떤 실험체는 모든 실험이 끝나고 준비 과정을 거친 후에도 정체성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반면, 또 다른 실험체는 너무도 명확한 자아를 가지고 그릇이 되기를 거부한다. 후자의 경우 새로운 기억으로 형성되어야 할 자아와 충돌하여 해리장애를 발생시키거나, 기억을 온전히 이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기억이전수술을 진행할 수 없다. 이에 수술을 확정하기 전에 자아 형성도 테스트를 거쳐 부적격 개체를 걸러낸다. 통과한 개체는 곧바로 그릇이 될 준비에 들어가고, 걸러진 개체는 담당 연구원과 관계자들의 심의로 앞으로의 처분이 결정된다. 수술을 보류하고 실험을 재개하거나, 혹은…

       

      “또 무슨 생각해?”

       

      눈앞에 불퉁한 얼굴이 불쑥 들이밀어진다. 딴 생각을 하다가 그의 말을 놓쳤나 보다. 대답 대신 말랑한 뺨을 잡아당기자 입술이 댓 발 나와서는 구시렁댄다. 자아 형성도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이 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하면 또 잔소리가 날아들 테다. 괜히 얘기해줬어. 어쩌려고 그래? 상상 속의 정수가 미간을 찌푸린다. 아니, 찌푸린 건 눈앞의 정수인가? 이 둥글둥글한 얼굴이 더 구겨지기 전에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정수 생각.”

       

      “… 퍽이나 그랬겠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그는 답지 않게 빈정대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었다. 세모난 눈빛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다. 그에 무슨 말이라도 덧붙여야 할 것 같지만, 쓸만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정수의 걱정이 기우는 아니다. 재작년 봄부터 시작한 실험은 벌써 2년이 다 되어갔고, 그의 말대로라면 만 2년이 되는 날 자아 형성도 테스트를 받게 된다. 부적합이 나오면 운이 좋아야 보류, 어쩌면 그대로 폐기처분될지도 모른다.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미 그릇으로서 결격이다. 내 자신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고, 그릇의 역할을 수행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릇이 될 개체 하나를 만드는 데에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가 든다고 했다. 게다가 그 비싼 육체를 완성한 뒤에는 각종 면역체계와 중추신경 발달을 쓸만한 수준으로 닦아놓는 데에 최소한 2년, 평균적으로 3년이 걸린다. 웬만해서 완전 폐기를 결정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리다.

       

      정수는 작년과 재작년 모두 보류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자아 형성 수준이 임계치 이상이나, 그 방향이 본 목적에서 벗어나 있지 않아 몸의 주인이 될 다른 기억을 주입하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렇게 보류한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릇을 기다리는 유전자 주인이 기약 없이 기다렸을 리는 없으니 길어야 5년 정도일 거라 추측한다. 기억 이전 수술에 들어간 실험체 중 연구소에 가장 길게 머무른 개체가 햇수로 6년 정도 있었다고 했는데, 정수는 얼마나 더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유전자 주인이 위험을 감내하고 수술을 원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는 바람대로 그릇이 될 운명이었다.




      -




      언어는 사고를 증폭시킨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나 자신, 타인, 우리 혹은 그들,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 스스로 사고하는 모든 존재는 자아를 필연적으로 가진다. 그러나 그릇에게는 자아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릇에게 일찌감치 지식과 언어를 주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후 누군가의 기억을 주입했을 때 뇌 활동이 이전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위함이라는 말은, 그릇으로서의 시간이 철저히 쓰임을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소모품의 삶. 그것이 그릇의 본질이다.

       

      자아를 가진 그릇이 타인의 삶을 주입 당하기를 거부한 사례는 앞서 단 세 차례뿐이었다. 수십차례의 실험에도 단 세 개체만이 특별히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은,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에 세뇌를 통하여 그릇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때문이었다. 세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자아를 가진 첫 번째 그릇은 아무도 모르게 폐기되어 사라졌다. 두 번째는 똑같이 폐기되었으나 그 사실이 알려져 윤리위원회의 고발과 세상의 질타를 받았고, 세 번째는 자유를 얻었으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겨우 얻어낸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자아를 가진 그릇이 마주 앉았다. 우리 사이에는 카드 덱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각자의 손에는 세 장의 카드가 들려있었다. 어느 날 심심하다며 정수가 서랍에서 카드 덱을 꺼낸 후로 종종 함께 게임을 했다. 처음 그에게서 카드게임을 배울 때엔 줄곧 졌으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이기는 빈도가 늘었다. 도톰한 아랫입술이 삐죽였다. 속상해 보이는 눈빛에 다시 할까? 물으면 금세 표정을 지우고 괜찮다며 트럼프 카드를 정리했다. 정수가 가르쳐준 게임 중 하나인 도둑잡기는 가장 이기기 쉬운 게임이었다. 단 한 장 뿐인 조커를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떨어내지 못한 정수는 늘 표정이 같았다. 그에 웃음을 참지 못하면 더 울상이 되는 통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열심히 붙잡아야 했다. 정수가 카드 덱을 정리하는 사이 그의 침대에 모로 누워 구경했다. 카드끼리 사락거리며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수의 이불에서는 포근한 향이 느껴졌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때.

       

      ... 문득 나는 행복을 느꼈다.

       

      “정수.”

       

      “왜.”

       

      “나는 살고 싶어.”

       

      “...”

       

      “나는 너랑 이렇게 살고 싶어. 다른 누가 되는 것도, 폐기되는 것도 싫어.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기분이야.”

       

      “...”

       

      정수는 말 없이 카드 케이스만 만지작거렸다. 그날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무언가 알 듯 말 듯한 것이 마음속에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




      나는 그때까지 이름이 없었다. 자아가 생겨서는 안 되는 그릇들에게 이름을 붙일 리가 없었거니와, 누군가 우리를 부를 일도 많지 않았기에 만들어질 때 시험관에 붙어 있던 라벨지의 숫자가 우리를 가리키는 전부였다. 나는 114번이었다. 정수는 59번, 내 옆방은 128번, 그 앞방은 125번이었다. 문패에 쓰여 있는 그 숫자를 다들 이름처럼 여기고 살았다. 때로 가져보지 않으면 응당 가져야 했던 것임에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내게는 이름이 그러했다. 정수, 하고 그를 부를 때마다 그의 입에서도 내 이름이란 것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닥터 노아와의 면담 날이었다. 닥터는 상투적인 질문들을 건넸다. 요즘 컨디션은 어떤지, 신경발달과제의 난이도는 어떠한지, 휴식시간엔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아 형성을 제한하고 있으면서 여가 활동과 생각을 묻는 속셈이 뻔해 솔직하게 답한 적은 없었다. 닥터와의 면담 후 추가 처치를 받고 멍청한 눈빛으로 돌아온 개체들로 보아 쓸데없는 말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닥터가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나, 면담은 아무런 측정 없이 구두로만 이루어지기에 확신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날은 위험한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닥터. 그릇에게도 이름이 있나요?”

       

      “이름?”

       

      닥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장이 덜컹였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내 호기심에 변명을 시작했다.

       

      “음, 닥터 노아, 솔 간호사 선생님, 지나 연구원, 다 이름이 있길래요. 그릇들은 어차피 수술 전까지 시설에만 있으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이랑 달리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긴장을 하니 말이 길어진다. 한마디 내뱉을수록 심장 소리가 더 커지는 듯했다. 하는 말마다 오답이었다. 수술을 의식하는 것도, 그릇이 아닌 사람들과 나를 구분해 말하는 것도, 애초에...

       

      “흐음, 갑자기 누가 네게 이름 얘기를 해줬을까.”

       

      ...이름은 존재를 의식하는 첫 단계다. 그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부터가 나는 깨어질 그릇이라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닥터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내 대답을 기다리듯 턱을 괴고 빤히 바라보던 그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물었다.

       

      “정수니?”

       

      “…”

       

      “놀란 표정이구나. 뻔하지, 그 애만이 자기 이름을 알고 있거든. 너도 이름을 갖고 싶니?”

       

      여기서 끄덕이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아니라는 말이 목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닥터는 몸을 뒤로 기대어 앉았다. 편히 말해도 좋다며 웃는 저 얼굴을 믿어도 될까, 고민하는 사이 닥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네게도 이름이 있는데.”

       

      궁금하면 알려주마.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절벽 끝에서 뛰어내리라는 말을 이보다 달콤하게 속삭일 수 있을까. 일부러 함정으로 유도하는 것을 알고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등은 벌써 긴장으로 푹 젖어 있었다. 영원 같은 삼초가 지나고, 닥터에게 회피성 질문 한 마디를 겨우 던졌다.

       

      “그건 누가 지었나요?”

       

      예상하지 못한 반문이었는지 닥터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곧 무릎까지 쳐가며 박장대소를 했다. 아, 내가 정말 그릇 하나는 잘 빚었다니까. 용케 빠져나가는구나. 이름도 기가 막히게 어울리게 지었지. 언제까지 쓸 이름인지는 모르겠다만. 닥터는 메모지와 펜을 가져와 이름 석 자를 적어 건네었다.

       

      [곽지석]

       

      “네 이름이란다. 내가 지었지. 네가 말을 막 배울 때쯤이었나.”

       

      닥터는 꽤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그를 보니 정수가 왜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그 작은 종이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곽지석. 입을 달싹여 발음해 본다.

       

      “아. 다른 그릇들에겐 이름 이야기는 말거라.”

       

      “… 제게는 왜 알려주시죠? 알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넌 어차피 …니까,”

       

      “…?”

       

      닥터는 내 동공 안쪽의 무언갈 파내기라도 할 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소름이 돋아 눈을 피하자 닥터는 그제야 내게서 눈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그만 가도 좋다.”

       

      마지막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뜬 마음이 감추어지지 않았다. 닥터가 내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신호가 아닐까. 나를 인정해 준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그릇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삶을 얻어낸 두 번째 그릇, 아니, 곽지석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정수였다. 나는 곧장 59번 방으로 달려가려다, 복도에서 면담을 대기 중이던 125번을 보고 우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정수를 만나고부터는 아무도 없는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면 나는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그는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번갈아 서로의 방에 발을 들여놓다가 한 번씩은 복도에서 마주치고서 소리죽여 웃었다. 조금 피곤한 날은 미처 깜깜해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잠에 들기도 했다. 닥터와의 면담이 생각보다 긴장됐었는지, 그날은 누워 있자니 눈이 스르륵 감겼다. 자연스레 잠들려던 순간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지 물을 것도 없었다. 곧장 이불을 걷어차고 방문을 열었다. 정수가 웃었다. 나 왔어.

       

      면담 이야기를 들을수록 정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름을 얘기해주셨다고? 선생님이 먼저? 평소 그릇에서 벗어나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가 보인 반응으로 보아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같이 기뻐해 줄 줄 알았는데. 서운하면서도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는 것일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닥터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티 내지 말라던 조언을 들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들 이제 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눈치를 살피는 걸 보고 억지로 표정을 풀어 웃는 그를 보니 더욱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폐기될까 봐 걱정돼?”

       

      “… 조금.”

       

      “나도 무섭기는 하지만… 폐기해버릴 거라면, 굳이 이름을 지어줬을까?”

       

      “나도 그건 의외야. 전에 얘기해준 깨진 그릇들한테도 이름을 지어준 적은 없었어.”

       

      “닥터도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릇의 자기결정권 같은 거 말이야.”

       

      “... 그랬으면 좋겠다.”

       

      정수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릇이 되려는 그의 앞에서 불편한 이야기였을까 싶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근데 있잖아, 정수. 나 듣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

       

      “응?”

       

      “내 이름. 네가 불러주는 걸 듣고 싶어.”

       

      정수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민망한 듯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지석아.”

       

      “…”

       

      이상하게 가슴께가 막 간지러웠다. 자꾸 웃음이 나고, 온 몸이 사방으로 뻗어나갈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었다. 그게 그의 눈에도 보였나 보다. 정수가 내 표정에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은데.”

       

      “그럼 내가 듣고 싶은 말도 해줘.”

       

      “어떤 말?”

       

      그의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그의 서늘한 손끝을 감싸 쥐는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좋아해.”

       

      “…어?”

       

      “좋아한다고... 해줘.”

       

      ... 정적 속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맞잡은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갑자기 좋아한다니, 아니, 좋아한다고 해달라니. 그게 나를 향한 고백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종류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감정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붙잡은 손에 땀이 찰 때에야 겨우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붉어진 눈시울에서 굵직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미지근해진 손을 놓고 그를 당겨 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울지마. 그러나 끝내 좋아한다는 말은 해주지 못했다.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아직 몰라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정수는 한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때로 방문도 두드려 보고, 새벽에는 괜히 추운 복도에 나가 그의 방 앞을 기웃거렸다. 복도 끝방은 누군가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




      방으로 돌아왔을 땐 커다란 이불 덩어리가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정수는 내 방에 와 이불을 둘둘 말고 있곤 했다. 푹신한 덩어리를 통째로 안으면 정수 대신 내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잠시 안고 있으면 정수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내게 말을 걸어왔는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불 속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을 살짝 걷어냈더니 눈이 부신지 눈을 꾹 감으며 이불자락을 붙들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최종 테스트에서 또 보류 결정이 난 모양이었다. 정수 본인은 실망감에 축 처졌으나 나는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어 몰래 웃었다. 아직 무사하구나.

       

      “선생님은... 나 같은 거에 비하면 대단한 분이니까,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나 같은 거라니, 왜 그렇게 말해...”

       

      “왜 자꾸 보류되는 거야.”

       

      뭐가 부족하지?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수 있지? 중얼대며 손톱을 물어뜯기에 그의 손을 끌어와 잡았다. 벌써 손톱 끝이 제멋대로 뜯어져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꼭 그릇이어야만 되는 거야? 그냥... 그냥 정수로 살면 안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왜 말이 안 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뭔데. 왜 꼭 누군가의 그릇이 돼야 하냐고. 정수도 분명 정수로 사는 게 더 행복...”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년 돼가면서.”

       

      “...”

       

      날 선 말이 쏘아졌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정수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미안,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어. 제 얼굴이 더 울상이 되어가면서도 정수는 이미 쏟아지고 있는 말을 멈출 수가 없는 듯했다.

       

      “너는 쓸데없는 기억에 어지러울 일 없이 편히 그릇이나 되면 되겠지. 넌 똑똑하고, 실험 적응도 빠르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아니 어쩌면 너는, 그래, 네 말대로 너 자신으로 살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안 그래. 나는…”

       

      그 뒤로는 정수의 목소리가 멀리 사라지듯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 자신으로 살 수도 있을 거야.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답답하던 것이 또 다시 머릿속을 휘감았다. 나로 산다. 나로, 다른 누가 아니라 나인 채로… 그리곤 번뜩 무언가 깨달았다. 정수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정수가 깜짝 놀라 눈을 마주쳐왔다.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나가자.”

       

      “뭐?”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을 거라며. 정수도 그러면 되잖아.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일도 하고...”

       

      말을 할수록 나는 확신에 찼다. 내가 태어나고부터 줄곧 바랐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가슴 속에 무언가 부푸는 듯하고, 기대감에 심장이 점점 크게 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르쳐준 눈앞의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 좋아해.”

       

      나도 모르게 툭 터지듯 나간 고백이었다. 나조차 놀라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좋아해. 정수, 좋아해… 그의 부탁에 늦은 답을 쉼 없이 늘어놓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허탈한 비웃음이었다.

       

      “나간들 나 같은 건 아무 것도 안 돼.”

       

      “…”

       

      “나는 이제 그만, 다 끝내고 싶어.”

       

      무너진 세상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다면 그런 표정일까. 정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누구보다 비참한 얼굴이 되어 방을 나갔다.

       

      이전처럼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정수는 내게 그릇의 삶이나 테스트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카드게임을 했다. 손에 든 조커는 나에게서 정수에게로, 다시 정수에게서 나에게로 옮겨갔다. 마침내 마지막 세 장이 되었을 때 내 손에는 컬러 조커와 2 클로버가 들려있었다. 정수가 둘 중 한 장을 뽑았다.




      -




      계획이 필요하다. 이곳을 나갈 계획과, 나간 뒤의 계획이.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거기엔 당연히 정수도 포함이었다. 정수를 설득하려면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뒤에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물론 나간 뒤는커녕 나갈 방법조차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았다. 며칠간 연구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색한 결과 이 건물에 있는 연구원은 총 열두 명, 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가 다섯 명, 한 번도 본 적 없는 경비원은 무려 서른 명이 넘었다. 게다가 각 연구실과 처치실을 비롯해 모든 방과 출구는 보안시스템으로 잠겨 있었고, 관계자도 아니고 아직 제대로 된 사람조차도 아닌 나는 이를 뚫을 방법이 없었다. 모두의 시야를 피해 건물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밖에는 얼마나 클지 알 수 없는 연구단지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절망한 채 그릇이 되거나 폐기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가능성이 희박한 도박이지만.




      매일 하던 신경발달과제 수행 점수가 며칠간 눈에 띄게 떨어졌다. 나는 화면에서 깜빡이는 물고기 그림을 눈으로 대충 훑다가, 헤드셋에서 들리는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물고기를 낚아챘다. 테스트 종료 표시가 잠시 뜨고는 화면이 꺼졌다. 연구원들은 결과지를 유심히 보더니 추가 검사와 닥터와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갑자기 잡힌 면담에도 닥터는 늘 보던 것처럼 태연히 나를 맞았다. 늘 똑같이 묻는 질문도 그대로였다. 면담은 심심하게 흘러, 닥터는 이만 나가도 좋다고 했다. 최신 수행 점수에 대한 보고를 받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다. 닥터는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안경을 벗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그가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 닥터, 저를 내보내 주실 수 있나요?”

       

      “언제 이야기하나 했더니. 그 말 하려고 일부러 수행도 망쳤니?”

       

      “내보내 주세요. 정수도 함께요.”

       

      “하하… 당연히 안 되지. 이제 겨우 완성시켰는데.”

       

      “… 완성요?”

       

      “의도적 수행 저하는 전두엽 기능이 충분히 발달했다는 증거지. 조만간 수술 일정을 잡아야겠구나.”

       

      “제가 원하지 않는다면요?”

       

      닥터는 싱긋 웃었다. 천천히 일어나 등 뒤로 걸어온 그는 내 어깨를 꾹꾹 누르듯 주무르며 말했다.

       

      “그릇엔 욕구도, 기호도 없어. 자아를 만든 부분만 기억을 도려내면 그만이다.”

       

      “실험 윤리라곤 개나 줬네요.”

       

      “윤리? 그건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거지, 도구에게는 해당 없단다.”

       

      “나는 사람이에요!”

       

      벌떡 일어나 그를 보며 외쳤다. 닥터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그가 내 턱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근거로?”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잖아요. 주체적으로 행동한다고요. 닥터야말로… 당신이야말로 무슨 권리로 내 의지는 무시하고 도구로 사용하는데?”

       

      “‘우리’라… 네가 말하는 ‘우리’는 아마 너와 정수를 말하는 거겠지? 다른 그릇들은 아직 사고 발달이 덜 됐으니. … 그렇게 노려보지는 말아라. 이래 봬도 널 만든 사람한테.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닥터는 한 걸음 다가와 나를 껴안고 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를 밀어내려는 순간, 목 부근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럼 우리, 정수의 생각도 들어볼까? 그 애는 여전히 그릇이 되고 싶어 하던데.”

       

      “으으… 으…”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려 했으나, 벌써 혀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채 웅얼대는 소리만 겨우 입 밖으로 흘렀다.

       

      “마비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풀리니 괜히 움직이지 마라. 근육 다친다.”

       

      설마 내가 내 손으로 만든 최고의 그릇을 내 손으로 깨버리겠니. 닥터는 나를 구석에 옮겨 앉혀두고는 자꾸만 떨구어지는 고개를 벽에 기대게 했다. 조용히 있거라. 경고하듯 날카로운 눈빛이 피부를 찔렀다. 곧 그는 벽에 기대 앉은 내 앞에 짐을 쌓아 나를 가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닥터가 어디엔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 방으로 오거라. 짧은 한마디 끝에 긴 한숨이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선생님.”

       

      정수의 목소리였다.

       

      “뭐가 문제인지를 말씀해 주세요. 계속 보류되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일단 앉아.”

       

      “선생님…”

       

      잠시 뒤에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정수가 닥터의 말에 따라 얌전히 앉은 듯했다.

       

      “너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냥 조금 기다리면 해결 될 일이야.”

       

      “그 말씀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어요. 저 더는 못 버티겠어요…”

       

      “그래서 그것에게 네 이름을 알려줬니? 그걸 못쓰게 되면 너라도 쓸 것 같아서? 정신 차려. 너는 사람이야. 그것들이랑 달라.”

       

      “아뇨, 저는 그릇이 될 거예요. 제가 돼야 해요. 그 애 말고 제가…”

       

      울음을 참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가 고막을 진동시켰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정수가 사람이라고, 아니, 그보다는 내게 이름을 알려준 이유가, 그러니까 내가 나로 살기를 원하고 그릇이길 거부하면 본인이 그 자리를… 아니야. 아닐 거야. 아무리 부정한들 정수는 여전히 닥터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샘은 마비되지 않았는지 반쯤 뜨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좋아한다고 해줘’.

       

      ‘너 자신으로 살 수도 있을 거야’.

       

      그 말들이 전부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




      ◇ ◆ ◇




      “왜 그렇게까지 그릇이 되려는 건데?”

       

      내가 말을 하면 너는 들어줄까. 만들어진 지 만 3년도 되지 않은, 나보다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 유전자 복제품이 내 지난 25년을 이해해 줄까.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지석은 그 짧은 생에 벌써 답을 찾아 스스로 빛을 내려 한다. 그게 못내 부럽다. 시기 질투가 밖으로 새어나갈세라 이불을 꼭 끌어안아 못생긴 마음을 감추었다.

       

      하기야 지석은 그릇들 중에서도 조금 남다르긴 했다. 남성체 치고 조금 작은 신장에서 성장을 멈추기에 발달이 더딘 유전자인가 했더니, 언어 중추를 삽입하자마자 뇌가 급격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시 …의 유전자는 다르구나. 성장점이 뇌세포에 집중적으로 형성된 걸까.

       

      17년 전 선생님께 발견된 게 내가 아니라 지석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정신세계가 비범한 발달을 보일 때면 그런 상상을 했다. 연구단지 앞 공원에서, 짙은 녹색의 목도리를 양손에 꼭 쥐고 울고 있던 여덟 살배기. 어떤 평행 세계에선 그게 곽지석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애는 어떻게 자랐을까. 이 세상에 있던 여덟 살 김정수의 발달 수준은 매우 평범해서, 어른들이 손뼉 치면 춤을 추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코를 막고서라도 가지나물을 먹었다. 그러나 차원 너머 어딘가의 어린 지석이라면 왠지,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머리에 삽입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의 첫 기억은 내 것이 아니다. 너무 어렴풋해 그걸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호하다. 다만 그게 내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처음 삽입기를 쓰기 이전에는 없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얼굴이 온통 뜨겁고, 어둠 속에서 앞은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고, 울고 있었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버둥거리고 있으니 발치에 옅은 빛이 들며 발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나는 커다란 누군가에게 안겼다. 겨울의 찬바람 냄새가 가시지 않은 서늘한 품이었다.

       

      70여 년 전,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일 때 추출한 일화기억 중 하나라고 했다. 성인의 기억은 보다 복잡해 추출도 삽입도 어려워, 신생아의 기억을 주로 테스트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으니 미처 몰랐으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어느 미친 부모가 신생아를 대상으로 뇌 신호를 추출하도록 두었나 싶다. 기억 추출은 신호를 극대화하기 위해 뇌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데, 패턴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이유로 한창 활발하게 발달 중인 신생아의 뇌에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다니.

       

      나를 거둔 선생님, 노아는 첫 기억 삽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뛸 듯이 기뻐했다.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신께 기도를 올렸던 기억이 난다. 영어라 뭐라고 하시는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땡큐.” 그 한마디 알아듣고는 뿌듯해졌었다. 그날 먹은 딸기생크림케이크는 살면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달콤했다. 선생님은 내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정수는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어느 어린이가 이렇게 의젓하게 해낼 수 있겠니. 네 이름은 인류에 길이 남을 거야.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도록 하마.

       

      날마다 새로운 기억이 쌓여 갔다. 어떤 것은 선명한 장면으로, 또 어떤 것은 은은한 향기로 남았다. 언성을 높이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려대기도 하고, 살며시 잡아 오던 투박한 손의 감촉에 덩달아 심장이 마구 뛰기도 했다. 대부분 강렬한 신호가 추출되기 용이한 탓에 기억 샘플들은 자극적인 것이 많았다. 그나마 범죄 관련 기억처럼 트라우마를 일으킬 법한 샘플을 삽입하지는 않았던 것은 미성년 어린아이에게 임상실험을 자행하던 노아 선생님의 마지막 양심이었을 테다.

       

      열세 살이 될 즈음 나는 더 이상 원래 나의 기억과 삽입된 기억을 구분해 내지 못할 지경이 됐다. 지난주에 먹은 줄 알았던 카레는 30년 전 어느 노부부가 함께한 마지막 식사였다. 작년에 계단에서 넘어져 생긴 흉터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의아했더니, 노아 선생님의 무릎에 그 흉터가 있었다. 나는 그때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는 대신 이제는 간지럽지도 않을 선생님의 흉터를 쓸며 많이 아팠겠다며 눈물지었다. 그렇게 열여덟 살이 된 어느 날에는 수많은 기억들 사이 내 이름을 8초 만에 생각해 내는 데 성공하고 안도했다. 내가 누구인지 점점 잊어가던 그때, 프로젝트 그릇이 시작됐다.




      -




      프로젝트가 시작하고 수많은 실패와 성공이 지나갔다. 어떤 그릇은 육체조차 완성되기 전에 심장이 멎고, 어떤 그릇은 누군가로 완전히 대체되어 이곳을 나갔다. 그릇에 붙은 일련번호가 50번을 넘어갈 무렵 내 스무 살도 해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선생님의 연구실은 늘 19도 정도. 약간은 서늘해야 몸이 늘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평소에는 조금 춥다고 느꼈었는데, 바짝 긴장하고 있으니 그런 것도 몰랐다. 선생님은 묵묵히 책장을 넘기셨다. 흘긋 보아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원서였다.

       

      “저도 그릇이 되게 해주세요.”

       

      그제야 선생님은 책에서 시선을 거두어 나를 바라보았다.

       

      “…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니?”

       

      “네.”

       

      “나 때문이니?”

       

      “…”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것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는지 선생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이미 선생님의 기억도 많고, 아직 젊고, 건강해요. 그릇을 새로 만드는 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예요. 차분히 의견을 내어놓았으나 선생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지난 겨울, 선생님의 뇌에서는 교모세포종이 발견됐다. 발견 즉시 치료했으나 악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듬해 가을에 재발했다. 프로젝트는 아직 성공 케이스가 얼마 되지 않아 완성되기까지 갈 길이 멀었고, 선생님은 할 일이 많았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고 하지만, 만약… 기억으로 연명할 수 있다면. 어차피 나는 낙서하듯이 아무 기억이나 이리저리 쑤셔 넣은 연습장일 뿐이었다. 이 몸으로 더 살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인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목적만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조금, 지쳤다. 아직 기억이전수술은 완전하지 않았고, 언젠가부터는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삽입기를 머리에 썼다. 새로운 테스트메모리를 내 머리에 이식해 안정성 테스트를 하고 나면, 10분 정도 머리를 정리해야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 모든 게 이제는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지는데, 바로 그다음 단계가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꺾어버리고자 하는 욕구가 드는 것이다.

       

      고집이 더 센 것은 나였다. 그릇의 방이 하나 비워지자마자 그 방은 내 차지가 되었다. 방문 앞에는 59번이라는 번호가 붙었다. 나는 갓 태어난 복제품이 아니므로 다른 그릇들처럼 여러 신경과제를 수행할 필요는 없었으나, 인위적으로 주입했던 기억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제 원래 기억은 왜 놔두는 거죠? 어차피 그릇이 되려면 제 기억도 사라지는 게 낫지 않나요? 선생님께 질문하니 실험 절차 상 그 편이 안전하고 깔끔하다고 했다. 어차피 이미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고 생각한 나는 순순히 따랐다. 기억을 삽입하는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고, 여러 기억에 머리가 어지러울 일이 줄어드니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전보다 거부감은 더 크게 들었다. 파형을 분석하고 상쇄하기 위해 지우고자 하는 특정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고, 처치를 한다 해도 기억이 깔끔하게 삭제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처치 후에는 심리 상담이 따라붙었다.

       

      - 요즘은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똑같아요.”

       

      - 기분은 어때요? 저번 상담 때엔 많이 무기력하다고 하셨는데, 아직 그런가요?

       

      “비슷한 것 같은데... 저, 다른 그릇들도 상담을 하나요?”

       

      - 네, 필요한 경우에는요. 음, 정수 씨는 평소에 주로 뭐하고 시간을 보내세요?

       

      여상한 질문과 답변의 연속이었다. 상담사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게 문제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접근해 왔다. 굳이 내 속내를 말하고 싶지 않아 매번 대충 둘러댔는데, 그럴수록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어 와 불쾌했다. 왜 그릇이 되고 싶어요? 결국 그 한마디를 묻기까지 5분이 더 걸렸다.

       

      “… 전 이제 그렇게밖에는 쓸모가 없으니까요.”

       

      - 쓸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는 어차피 존재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분께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해요.”

       

      -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그때의 정수 씨에게는 아주 중요한 생존 방식이었을 것 같아요.

       

      “… 실험에 참여하면 선생님이 웃으셨어요. 정말 고맙다, 너 아니면 안 됐다 이런 말도 했고요. 그 말 들으면… 제가 여기 있어도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 그 말들이 정수 씨에게는 ‘너는 필요하다’, ‘너는 환영받는다’라는 신호였겠군요.

       

      “…”

       

      - 그때의 당신은 아직 아주 어렸죠.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역할이 된다는 감각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네요.

       

      “선생님은 나쁜 분은 아니에요. 저를 엄청 아껴주셨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요.”

       

      - 그 말을 굉장히 조심해서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고마움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바로 이런 부분이 불편했다. 다 알겠다는 듯이 말하는 저런 태도가. 다정한 척, 꿰뚫을 듯이 눈을 맞춰오는 것을 피해 자세를 고쳐 앉고 몸을 등받이에 기대었다. 

       

      “… 제가 원해서 한 거니까요.”

       

      - 네. 정수 씨는 그때 최선을 다해 선택했어요. 그런데 만약, 그때의 정수 씨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선생님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요?

       

      “… 모르겠어요.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 그럴 수 있어요.

       

      “실험조차 안 하면… 저는 선생님께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잖아요.”

       

      - 아… 그 생각이 지금까지도 정수 씨를 붙잡고 있나 보네요. 그때의 정수 씨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 자리가 사라질 것 같았을 수도 있겠어요.

       

      “…”

       

      - 그 신념은 관계를 잃지 않게 해줬고, 정수 씨를 살아남게 해줬어요. 그 생각이 나쁘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제는 그게 정수 씨를 너무 아프게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싶네요.

       

      “저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는데요. 저를 있게 한 건 선생님이고, 그런 선생님께 보답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 지금 이 방에서, 아무 실험도 하지 않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제 앞에 한 사람으로 앉아 있어요. 그리고 저는, 당신이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아도 여기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 괜찮아요. 지금 당장 믿지 않아도 돼요. 다음 시간에는…




      -




      그때까지만 해도 그릇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발달을 위해 그릇들끼리 대화를 하기도 했고, 협력하는 과제도 간혹 있었다. 갓 태어난 그릇들과 대화하는 건 생각보다 재밌어 나는 그 시간을 제일 기다렸다.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건 별희였다. 그녀는 62번으로 내가 입소한 후 태어나는 데 성공한 첫 그릇이었는데, 사회 발달 시간마다 아이처럼 질문을 쏟아내더니 날이 갈수록 놀라운 속도로 성숙해져 반년 만에 연상의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자기 이름을 말해주었다.

       

      “나는 별희야.”

       

      그릇도 이름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그녀에게 그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느냐 물었다. 별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내 이름인데 누가 짓냐니, 그럼 정수는 네 이름을 네가 지은 게 아니야? 우리는 서로 놀랐다. 사람은 보통 태어나서부터 부모나 주변 어른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것이라 알려주었다. 별희는 당연히 제 이름이니 저 스스로 짓는 것인 줄 알았다고 하며 재미있어했다.

       

      “그래도 난 별희야. 난 내가 지은 이름으로 할래. 앞으로 네가 불러주면 그게 내 이름이 되겠지.”

       

      별희는 점점 더 활발하게 나를 포함한 다른 그릇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나조차 이해하지 못할 깊은 수준의 철학적 질문도 던져 연구원들을 당혹시키기도 했다. 연구원들은 날이 갈수록 그녀의 사회 발달 시간을 줄여갔고, 일과시간 외에 그녀를 찾아가도 잠을 자고 있어 점점 대화할 기회가 줄었다.

       

      새벽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잠결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가, 두 번째 노크 소리에 몸을 일으켜 문가로 다가갔다. 살며시 열어본 문밖에는 별희가 있었다. 깨웠다면 미안. 지금밖에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녀는 조금 초조해 보였고, 그 사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매일 잠만 자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 한 건지 동그랗던 뺨이 옴폭 들어가 있었고, 늘 깔끔했던 단발머리는 어느덧 어깨에 닿아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방으로 들여 앉혀두고 따뜻한 물을 한 잔 가져왔다.

       

      “일과가 점점 줄어들더니, 매일 너무 잠이 오는 거야. 종일 한 거라고는 아침 운동과 기본 과제 한두 시간 뿐이었는데. 이상하다 했는데 마지막에 추가된 영양제가 수면 유도 성분이 있는 거였어.”

       

      기억이전수술을 받을 대상자가 아직 수술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별희는 이미 그릇으로서 과발달 상태였고, 선생님은 그녀의 발달 상태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연구원들에게 그녀의 생활을 최소화시키고 대기상태에 두도록 지시했다. 별희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뇌는 빈 그릇에서 멀어질 테고, 수술 성공률도 당연히 하락할 것이다. 그녀를 재워두기로 한 결정은 잔인하도록 당연했다.

       

      “근데 정수야, 난 그릇이 되기 싫어.”

       

      문제는, 별희는 이미 빈 그릇이 아니었다.




      얼마 뒤 몇 번의 기억 삽입 테스트가 있었다. 별희는 주어지는 모든 기억을 완벽하게 구분해냈다. 이미 형성된 자아가 너무 견고하여 받아들인 기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융화시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별희는 폐기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인식할 수 없게 됐고, 곧 영영 잠에 들었다.

       

      그릇들의 상호 교류가 제한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특히, 나의 경우 다른 그릇들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모든 일과가 그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짜였고, 혹여 마주치더라도 대화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릇들에게도 별도의 조치가 있었는지 그들은 나를 보고도 못 본 것처럼 지나쳤고, 나 역시 점점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혔다. 선생님이 걱정스레 몇 번 연락을 주셨지만, 차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일부러 바쁘실 시간에만 대답하며 자연스레 만나기를 피했다. 별희의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나를 탓하실까 두려웠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선생님께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제일 크다는 것이, 별희에게 미안했다.




      -




      오랜만에 선생님의 연락이 와 있었다. 이따 세 시에 연구실로 오거라. 다른 말 없이 이렇게 부르시는 것은 거의 1년 만이었다. 오전 내내 안절부절못하다 간호사 선생님께 청심환을 하나 부탁해 먹어야 할 정도로 긴장했다.

       

      막상 마주한 선생님은 너무도 똑같아서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부대꼈다. 예전에는 선생님의 여전함을 안정감으로 느꼈던 것 같은데. 내가 가장 좋아하던 웃는 얼굴로 반겨주시는데도 어쩐지 나는 편히 웃을 수 없었다. 선생님도 나도 별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안부를 조금 묻다가, 보여줄 게 있다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셨다. 드물게 손까지 꼭 잡고서 앞장서시는 모습에는 기대감에 들뜬 기색이 역력해서, 나도 불편한 마음을 접어두고 따라나섰다.

       

      완성된 그에 대한 첫인상은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선생님은 양수관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셨다. 양수관 아래 작은 팻말에는 그를 가리키는 일련번호가 쓰여 있었다. Ves. 114. 내 숫자에서 두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일련번호다. 그 사이 많은 그릇들이 쓰이거나 깨어졌을 것이다. 이 아이도, 아마.

       

      “내 그릇이란다.”

       

      투명한 유리관을 쓸어내리던 손이 일순 멈추었다. 머리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선생님의 그릇이라니. 그럼...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저를 그릇으로 받아주셨잖아요. 제가 선생님의 그릇이 되는 게 아니었나요. 저는 역시 기준에 못 미치는 건가요. 저는, 저는 부족한가요. 손바닥에 손톱 모양대로 자국이 남도록 꾹 말아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이제 그만 해도 된단다.’

       

      나는 결국 또 그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




      땅거미가 질 때쯤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한밤중에는 폭설이 내렸다. 온 세상이 얼어붙는 동안 방 안은 눈치 없이 따뜻하고 포근해서, 되려 바깥의 한기가 그리웠다. 가디건 하나 대충 걸쳐 입고 추운 복도로 나와 온통 깜깜한 창밖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저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게 되면 이 무가치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중간방의 문이 열리며 그 애가 나왔다. 114번 그릇. 선생님의 유전자.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채 곧 쓰러질 듯이 비틀대기에 다가가 붙잡았더니 힘없이 내게 기대어 왔다. 닿는 곳마다 열기운이 훅 끼쳐왔다. 그 애를 방에 뉘여 놓고 체온을 재어보니 열이 꽤 높았다. 물수건을 가져와 그 애 이마에 올려놓고, 더운 숨을 내뱉는 그 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처음 보았을 적 선생님을 닮아 있었다. 추위에 얼어버린 작은 몸을 코트로 감싸안고 오느라 지독한 독감에 걸렸던 노아 선생님. 선생님의 옆에서도 이렇게 서투른 간호를 했었는데. 작은 손으로 물수건을 꼭 쥐어짜지도 못해 물이 뚝뚝 흐르는 대로 이마에 얹어두어 베개가 다 젖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이건 내 기억이 맞을까. 또 남의 삶을 내 것인 양 착각한 건 아닐까. 피식 웃음이 샜다. 아, 정말. 등신 같애.




      다음 날 그 애가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을 알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열정도. 선생님을 닮았을 테니. 역시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프로젝트 초기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고 대충 둘러댔다. 실제로는 나 같은 게 또 있어선 안 되겠지만. 사람이 그릇이 되겠다고 자진해 들어왔다고 하면 저 크고 맑은 눈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시 나도 궁금해져 사실 나는 사람인데, 하고 얘기해줄까 하다가 별희를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겉모습만 성인일 뿐, 아직 자라는 아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내 말 한 마디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서였다. 나는 여전히 별희를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을 버릴 수 없었다. 내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어도, 그녀는 폐기돼야 할 만큼 견고한 자아를 갖게 됐을까.

       

      “닥터를... 좋아하세요?”

       

      놀랍게도 답은, ‘그렇다’였다. 114번, 이 그릇은 스스로 감정을 인지하고 탐색하고 관찰까지 할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명이구나. 그러니, 성장을 하는구나. 그 간단한 것을 그제야 깨달아서.

       

      “노아는…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과연 나도 그에게 아들 같은 존재일까? 그런 건 모르겠다. 다만 내게 이제까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얼만큼이냐 하면, 나는 감히 선생님을 거스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저 어린 생명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부터 무언가 불쑥불쑥 치밀었다.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존재가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무얼까.

       

      “선생님이랑 면담 때에도 그런 적 있나요?”

       

      절대 들켜서는 안 될,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또 한 번 눈앞에서 스러지기 전에.

       

      “앞으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어차피 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할 테니, 그저 잠시만 들여다보려는 것 뿐이다.

       

      “정수라고 불러.”

       

      그러니 겨우 이런 비밀 정도는 선생님을 거역하는 게 아닐 테다.




      -




      말과 생각은 닿아있다. 입에서 나간 말은 귀를 통해 흘러들어오고, 또 다른 나의 생각이 된다. 생각은 다시 말이 되어 나간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뇌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수없이 많은 생각 덩어리를, 조각을 나누고 퍼뜨리는 작은 신경 하나. 이 커다란 세상의 작은 세포 하나로서 나는 대체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아무도 쓰지 않고 찬장에 박힌 골동품 그릇 신세가 된 내게, 이제 막 빚어진 어여쁜 그릇이 자꾸만 와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럴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또 같은 실수를 한 건 아닐까. 그 애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덜컥 지어 말해버릴까 봐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네가 궁금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해. 그러니 너무 멀리 가지는 마.

       

      깊어지는 그 애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자 카드게임을 가르쳐주었다. 어차피 이 구석진 연구소 건물 안에서 할 일이라곤 재미 없는 신경과제밖에 없으니, 심심함을 달랠 게임 정도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애는 내가 가르쳐주는 게임들을 재미있어했다. 처음 몇 번은 내가 이겼지만, 금세 규칙을 다 익힌 그에게는 내 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더 못 볼 꼴인 걸 알면서도 괜히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내 기분을 풀어주겠다고 앞에서 알짱대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귀엽기도 했다. 괜찮다는 뜻으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제야 물러났다. 이불 속에 푹 파묻혀서는 나만 바라보던 그 애가 갑자기 정수, 하고 불렀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쳐다보아도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빤히 보기에, 왜. 하고 되물으니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살고 싶어.”

       

      그 말에 나는 죽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전처럼 그저 쓸모나 다하고 사라지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달랐다. 살고 싶은 네게, 삶을 주고 싶어서 죽고 싶었다. 보잘것없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미소를 가진 너를 대신해서 그릇이 되고 싶었다는 뜻이다.




      -




      면담이 있는 날이면 끝나자마자 내 방에 꼭 들르곤 했는데, 그날은 잠잠했다. 종일 창밖에 달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문밖에선 웃음소리나 말소리가 간혹 들렸으나 나와는 상관 없는 것들이었다. 이 문을 나가 큰 보폭으로 열 걸음 정도. 고작 그만큼을 넘지 못해 온통 깜깜해지도록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창가에 달빛이 내린 걸 보고 방문을 슬쩍 열었다. 최소한의 조명만 남긴 어둑한 복도를 지나 114번 방문을 작게 두드렸다. 잠시 기다리니 달칵 소리와 함께 잠이 덜 깬 얼굴이 나타났다. 나 왔어. 한 마디에 환히 웃는 그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 이름을 얘기해주셨다고? 선생님이 먼저?”

       

      별희 이후로 그릇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됐다. 이름뿐이 아니라, 의미를 두지 않은 일련번호 외에는 별명조차 함부로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이름을 주셨다는 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의 그릇인데.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선생님의 상태가 더욱 악화된 걸까.

       

      “내가 폐기될까 봐 걱정돼?”

       

      아니, 그 반대였다. 만약 선생님의 병이 더 나빠진 거라면, 그는 예정보다 앞당겨 그릇이 될지도 몰랐다. 굳이 이름까지 붙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릇의 자아 형성을 칼같이 차단해 오던 선생님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우스운 건, 그 생각이 든 순간 내가 걱정한 대상이 선생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근데 있잖아, 정수. 나 듣고 싶은 게 있어.”

       

      기쁨에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너의 순수함과 상기된 뺨, 나를 다정히 부르는,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

       

      너.

       

      “지석아.”

       

      지석아. 나는 네가 걱정돼.

       

      불안이 물밀듯 밀려와 가슴께에 넘실거린다. 속에서 무언가 응어리가 맺히는 느낌, 답답하고, 메슥거린다.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어진다.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진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그 두근거림을 옆의 사람 때문으로 착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울렁임은 너 때문이 아닐 리 없다. 애초에 둘이서 타는 놀이 기구에 옆에 앉은 사이인걸. 원래 있던 작은 떨림이 잠시 요동쳤을 뿐이다. 너를 잃고 싶지 않은 만큼, 내 불안이 떨림이 되어 요동친다.

       

      “좋아해.”

       

      “…”

       

      “좋아한다고... 해줘.”

       

      지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나를 보지 못하고 방황하더니, 이내 시선이 아래로 떨구어졌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이젠 꾹, 죄는 듯이 아파왔다. 얼굴이 터질 듯이 열이 올랐다. 창피해. 그러나 금세 차올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멈출 재간이 없었다. 지석은 놀라 나를 끌어안고 연신 사과하며 달랬다. 그 작은 품이 너무 다정하고 잔인해 한참을 더 울어야 했다.




      -




      다음 날은 퉁퉁 부은 눈으로 지석을 보기 싫어서 찾아가지 않았다. 그다음 날은 얼굴에 뾰루지가 생겨서. 또 그다음 날은 방 청소를 하느라. 그렇게 사흘을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나흘째 새벽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문 앞까지 다가갔다가 손잡이를 잡지도 못하고 뒤를 돌았다. 좋아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마주한 표정이 문 앞에 있을까 두려웠다.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상상한다. 살그머니 열리는 문, 들어오는 지석,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석이 말한다.

       

      ‘다행히 성공해 냈어.’

       

      ‘뭐가?’

       

      ‘날... 못 알아보겠니?’

       

      ‘너 말투가 왜 그래?’

       

      ‘정수야, 나란다. 노아 선생님이야.’

       

      “헉!”

       

      깜짝 놀라 튕기듯 일어났다.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댔으나 지석도, 선생님도 없었다. 늘 그렇듯 혼자뿐인 방이었다. 문 앞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바닥에서 잠든 모양이었다. 식은땀이 났었는지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무슨 그런 꿈을 다 꾼담. 아직도 팔에 소름이 남아있어 양 팔뚝을 쓱쓱 문질렀다. 물론 언젠간 일어날 일이긴 했다. 언젠간... 지석이 사라지고 선생님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선생님이 건강해지시는 건 분명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인데. 이상하게 선생님이 기억이전수술을 받으신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답답하고 가슴이 저렸다. 내가 선택받지 못한 데에 대한 속상함일까. ... 아니,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건 다름 아닌, 지석이 사라지는 것이다.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연구실로 향했다. 이상한 기분이다. 이렇게나 내 걸음에 확신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비상구 계단으로 두 층을 내려가면 선생님의 연구실이 있다. 이윽고 다다른 문 앞에 잠시 멈추어 심호흡을 한다.




      -




      [Be Deferred]

       

      또 다시 보류였다. 벌써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들 새빨간 글씨는 바뀌지 않았다. 결과서를 구겨 방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종이 뭉치는 데구르르 굴러 내 앞으로 돌아왔다. 괜히 짜증이 나 툭 차려다 침대 모서리를 발로 차는 바람에 새끼발가락을 붙잡고 끙끙댔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지석이 보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 애의 이불에서 나는 곽지석만의 체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누군가 이불을 끌어당긴다. 빛이 새어들어 눈살을 찌푸리며 힘주어 붙든다.

       

      “정수. 일어나 봐.”

       

      그 애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려왔다. 마치 정말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

       

      “너, 너 왜 여기 있어?”

       

      “여기 내 방인데.”

       

      “... 나 왜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는지, 지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내가 갔을 땐 문도 안 열어주고.”

       

      그제야 내가 한동안 그를 왜 못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났다.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왔을까. 수술 적합성 테스트에서 보류 처리가 된 게 너무 심란한 나머지 나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이 이 곳에 닿았다. 다시 생각하니 또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너를 대신해야 하는데. 몇 년째 보류 처분을 받고 있는 애물단지 골동품 그릇은 여전했다. 지석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옆에 앉았다. 그 어깨에 기대어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이번에도 보류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턱이 없는 지석은 속 편한 말로 내 속을 긁었다.

       

      “꼭 그릇이어야만 되는 거야? 그냥... 그냥 정수로 살면 안 돼?”

       

      정수로 사는 게 뭘까. 나는 내가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어쩌면 나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내게, 나로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냐니. 부러움이 울컥 치밀었다. 너는 참 편하게 생각할 수 있구나. 쓸데없이 예민해져서는 지석을 쏘아붙였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년 돼가면서.”

       

      “...”

       

      놀라 굳어버린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황급히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나, 줄줄이 변명이 따라붙었다. 너는 그럴 수 있겠지. 나는 안 그래. 내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매일 산산이 조각나고 흩어지는 느낌이란 말이야. 이대로 계속 살라는 건 날 죽이는 것보다 더 끔찍한 짓이야. 마지막으로 내게도 나만의 선택이란 걸 할 수 있게 해줘. 나는 가장 가치 있게 사라지고 싶어. 너를 살리고, 노아 선생님도 살리고, 나는... 나는 그렇게 죽고 싶어.

       

      “우리, 나가자.”

       

      “뭐?”

       

      갑자기 뭐에 꽂힌 건지 지석이 눈을 빛냈다. 밖에 나가자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자 한다. 그는 이미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방금 막 인사를 나눈 사람과 악수를 하고, 제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서 일을 한다. 그리고 환히 웃는다. 완벽히, 완벽하다. 지석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반면에, 나는…

       

      “좋아해.”

       

      네게서 듣고 싶던 말을 이런 타이밍에 돌려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 꼴이 너무 우스워서.

       

      “나는 이제 그만, 다 끝내고 싶어.”




      -




      보류 처분에 대한 이유를 물으려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으나, 며칠 동안 번번이 헛걸음만 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었다. 명백히 일부러 피하시는 거야.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언제까지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방으로 오라는 짧은 통화를 끊자마자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것도 나중에 알았다. 높이가 다른 밑창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면서 달려갔다. 익숙한 철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는 늘 활짝 열려 있던 문이었다. 그게 마치 너는 안 된다고 밀어내는 것만 같아, 더욱 조급해져 노크하는 것도 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뭐가 문제인지를 말씀해 주세요. 계속 보류되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일단 앉아.”

       

      선생님의 분위기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기분이 좋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다정한 미소를 띠고 계셨는데. 어딘가 살벌하기까지 한 공기에 조용히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상담은 잘 받고 있니? 요즘 자꾸 시간에 늦는다고 하던데.”

       

      “잠이 많아져서 그런 것뿐이에요. 상담 시간이 새벽 일찍이라. 선생님, 저는 진짜 안 되나요?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너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저 조금 기다리면 해결될 일이야.”

       

      “그 말씀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어요.”

       

      아직은 어렵겠구나, 조금만 기다려 보렴. 다음번에는 원하는 대로 해주마. 매번 미루고 또 미루던 것이 벌써 5년이 넘었다.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해 준 적 없었다. 삽입한 기억을 지우라는 말씀도 잘 들었고, 상담도 빠진 적 없이 갔다. 내 것이 아닌 기억들은 벌써 반 이상이 사라졌다. 너무 어릴 때 삽입해 파형이 잘 튀지 않는 기억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한 거의 다 지웠다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엔 이 수많은 기억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러니 나를 잃어야 벗어날 수 있었다.

       

      “저 더는 못 버티겠어요...”

       

      “그래서 그것에게 네 이름을 알려줬니? 그걸 못쓰게 되면 너라도 쓸 것 같아서? 정신 차려. 너는 사람이야. 그것들이랑 달라.”

       

      선생님은 한 번도 그릇들을 사람처럼 부르신 적이 없었다. 그것. 지석에게는 이름까지 지어주셨으면서도 여전히 '그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안 되는 걸까. 내가 사람이라서? 하지만 절 사람답지 않도록 만든 것은 선생님이시잖아요. 원망 대신 애원을 택했다.

       

      “제가 돼야 해요. 그 애 말고 제가, 제가 그릇이 되어야 해요.”

       

      그렇게 사라지면 안 되는 아이예요. 그 애를 살려주세요. 그리고 부디, 저를 이만 편안하게 해주세요.

       

      “그건 이미 완성됐다. 조만간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러시지 않는다면, 이제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




      노크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옷을 갈아입던 지석이 놀라 펄쩍 뛰었다. 다리 한 쪽이 옷에 끼인 채 허우적거리는 걸 넘어지기 전에 겨우 잡아 침대에 앉혀두었다.

       

      “당장 나가자.”

       

      시간이 없다. 완성 후에는 의뢰인의 컨디션에 따라 수술 일정을 잡으니, 병으로 한시가 급한 선생님이라면 내일 당장이라도 수술에 들어갈지도 몰랐다. 온 방 안을 휘저으며 더플백에 옷이며 세안 도구 등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었다.

       

      “왜 이래?”

       

      “나가자며, 밖에. 가자. 지금 시간 없어.”

       

      “갑자기 날 왜 내보내려고 안달이야.”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석을 돌아보았다. 그는 표정을 잔뜩 굳힌 채 내가 넣어놓은 옷가지를 도로 꺼내어 꽉 쥐었다.

       

      “나 말고 네가 그릇이 돼야 하니까?”

       

      “네가 살고 싶다며. 여기서 나가서,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일도 하고 싶다며.”

       

      “내 핑계 대지 마... 내 방에서 나가줘.”

       

      더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지석이 나를 잡아끌었다. 몇 발짝 끌려가다 힘을 주어 버텼더니 우뚝 멈춰버렸다. 지석이 내 손목을 꽉 잡았다. 힘이 얼마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너랑 살고 싶었던 거란 말이야.”

       

      “어?”

       

      “정수랑... 밖에 나가고 싶었던 거란 말이야. 그런데 너는 그냥 내가 거슬렸던 것뿐이잖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끅끅대며 목이 메이는 소리가 나더니 지석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거슬리다니. 손바닥으로 급히 그의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눈이 커서 그런지 눈물방울도 커다래서 소매가 금세 다 젖었다.

       

      “닥터한테 그랬잖아. 나 말고 네가 돼야 한다며.”

       

      “너, 너 그걸 어떻게 들었어?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려던 변명이 뚝 끊겼다. 정말로 그런 뜻이 아닌 것이 맞나? 내가 그를 대신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만 사라지고 싶었다. 다만 네가 거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내 말을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가...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은 느낌에 말문이 턱 막혔다. 꼭 나랑 같이 살지 않아도 되니까, 정수 말고 다른 누가 되지 않았음 좋겠어... 지석은 자꾸 들썩이려는 숨을 겨우 붙잡고 말을 끝내고선 아이처럼 소리 내 울었다. 참지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도야. 나도,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그랬어. 그를 따라 눈물이 비죽비죽 새어 나왔다. 부둥켜안은 채 우리는 한참을 울었다.




      “사실 넌 노아 선생님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선생님의 그릇이야.”

       

      “알아.”

       

      “어떻게?”

       

      “... 닮았잖아.”

       

      지석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마저도 언젠가 선생님이 쌀국수에 들어간 고수를 먹었을 때 표정과 비슷해서 쓴웃음을 지었다.

       

      “선생님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당장이라도 준비만 되면 수술에 들어갈 수 있어. 최대한 빨리 여기서 나가야 돼.”

       

      “정수는? 정수도 갈 거지?”

       

      “...나는...”

       

      “같이 가야지. 응?”

       

      선생님은 나한테 아버지나 다름 없었다. 우리 둘 다 없으면 선생님은 곧 돌아가실 텐데.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지석이 불안한 듯이 내 손을 꼭 잡아 왔다. 사람은 원래 언젠가 죽어. 기억만 보존한다고 그걸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냥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거야. 네가 닥터의 기억을 갖는다고 해서 닥터가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 미안. 그래도 나는 여기 있을래.”

       

      “그럼 나도 못 나가.”

       

      “지석아, 떼쓰지 말고,”

       

      “나 다리가 잘 안 움직여.”

       

      “뭐?”

       

      침대에 앉혀두었을 때부터 연신 다리를 주무르더라니.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 살펴보았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알 방도가 없었다. 

       

      “닥터가 마취를 해뒀어. 풀려가는 중이긴 한데, 아직... 다리가 계속 저리고 힘이 잘 안 들어가. 아마 곧 다시 약을 놓으러 올 거야. 다 풀리기 전에.”

       

      “...”

       

      아찔해지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선생님. 어디까지 추락하고 계신 걸까. 언제나 그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병이 악화될수록 선생님은 점점 내가 아는 다정한 모습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




      평소 그릇들의 식사와 운동 스케줄이 어땠길래, 지석은 너무도 가벼웠다. 등에 얌전히 업힌 그는 5년째 이곳에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게 다닌 나조차 모르던 경비의 배치와 비상구 위치를 안내했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았을까. 어차피 CCTV에 전부 찍히고 있겠으나, 선생님 외에 내가 이곳을 드나드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인 관리실 아저씨는 지금 모니터를 보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쯤 내가 시켜놓은 야식을 앞에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평소에 같이 야식 먹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복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 발소리를 죽이고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무리 가볍다 해도 지석을 등에 업은 상태로 몇 층을 계단으로 내려오고 나니 이 추운 날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1층에 다다르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문이 열려있나. 흠뻑 젖어있던 땀이 식으며 오싹한 추위가 느껴졌다. 평소에 밖을 드나들 때 사용하던, 아무도 오지 않는 뒷문으로 향했다. 지석은 그때부터 제가 걷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제 괜찮아. 움직여진다니까. 그럼 다리를 꽉 붙들고 부러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뒷문은 경첩이 낡아 조금 비틀어져 있었다.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문틈으로 바람이 새어드는 소리가 스산했다. 문을 잡아 뜯듯이 열면 발목까지 쌓인 숫눈길과 시멘트 담장이 보였다. 건물을 빙 돌아 나가면 연구단지 밖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가다 보이는 머릿돌에서 좌회전, 다시 나타난 담장을 따라 우회전해서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

       

      바람이 꽤 차가웠다. 얇은 재킷 하나 겨우 걸친 지석을 힐끔 보고 걸음을 재촉했다. 신고 나온 검은색 운동화는 눈길에 금세 젖었다. 발가락이 얼어 통증이 느껴졌다. 곧 지나니 그마저도 감각이 없어, 땅바닥에 내딛고 있는 게 발인지 발목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니?”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걸음을 멈추고 메이는 목을 쥐어짜 대답했다.

       

      “네. 가려고요.”

       

      “내가 죽어도 괜찮다는 소리구나.”

       

      “제가 남으면 되잖아요. 이 애는 보내주세요.”

       

      “정수! 무슨 소리야?!”

       

      “넌 애초부터 그릇으로 쓰일 수도 없어. 날 살리려거든 그걸 이리 내라.”

       

      지석을 그대로 업은 채 하나도 소용 없을 뒷걸음질을 쳤다. 안 돼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거절하니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한 발짝. 선생님이 천천히 다가왔다.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간신히 버티고 섰다. 그 사이 지석이 내려오겠다고 발버둥을 치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놀라 그를 부축하는 사이 선생님은 어느새 눈앞에 서 계셨다. 그리고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은 건조한 눈으로 나와 지석을 내려다보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저도, 선생님도, 지석이도 모두 방법이 있을 거예요…”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 건 없어. 얘야, 정수야. 너는 왜 자꾸 그것들에게 정을 주는 거니.”

       

      “선생님도 그러실 거예요. 좋은 분이시잖아요. 제가 알아요. 그니까…”

       

      탕,

       

      온통 하얀 세상에 핏빛으로 굉음이 터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잠시 이명이 울리며 귀가 안 들리고, 시야가 흐려졌다.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곧 이명이 가시고 난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 내게 내밀어졌던 그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가 가리키는 곳에는…

       

      “지석아!”

       

      왼쪽 어깨에서부터 핏자국이 빠르게 번져갔다. 안 돼, 안 돼. 충격에 정신을 잃은 지석은 눈을 감은 채 쓰러져 미동도 없었다. 숨은, 숨은 쉬고 있다. 심장도 뛰고 있다. 그제야 다급하게 겉옷을 벗어 상처 부위를 지혈했으나, 소용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금세 피로 젖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원망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으나, 선생님은 여전히 서늘한 표정으로 다시 장전하여 이번에는 나를 겨누었다.

       

      “의료진을 불러주마. 데리고 들어가자.”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에 그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 나의 하늘이 더 이상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단단히 딛고 있던 발밑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종양이 당신의 뇌를 전부 파먹어 버리기 전에, 차라리.

       

      정신을 차렸을 땐 내 양손이 선생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나 손을 떼었으나 선생님은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초점 잃은 눈동자도 움직임이 없었다. 아아. 아아아… 그러게 왜, 왜 그러셨어요. 눈바닥을 기어 그에게서 멀어졌다. 손바닥에 닿았던 살의 감촉이, 발작하듯 몸부림치던 움직임이 여전히 징그럽도록 생생하게 남아 피부를 타고 온몸을 기어다녔다. 머리를 부여잡고 태아처럼 웅크린다. 작게 작게 구겨진다. 이대로 점점 작아져 사라지면 나을 텐데. 아무도 모르게. 여기서 있던 모든 일이 모두에게서 없던 것이 될 수 있다면…

       

      …아.

       

      그래선 안 된다. 번뜩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지석이를, 그 애를 살려야 한다.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겨우 가누어 그에게 다가갔다. 이 모든 참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던 일이 되어선 안 되는 유일한 이유. 지석의 어깨를 할 수 있는 한 동여 매어 두고 그를 등에 업었다. 여전히 눈앞을 가리우는 눈보라를 향하여 한 발씩 내딛었다.

       

      선생님, 저를 영영 용서하지 마세요.




      ...

       

      ..




      -




      ◇ ◇ ◆




      Epilogue_“the Joker”




      삐, 삐.

       

      심전도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눈을 뜨기도 전에 어깨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만 싶은 통증이었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차분한 목소리가 나를 잠기운에서 끌어냈다. 가까스로 눈을 뜨니 처음 보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김정수 환자분, 여기 다온병원이에요. 총상 수술하셨고, 지금 상태 괜찮으세요. 움직이지 마시고 숨 천천히 쉬세요.

       

      “총상요...? 헉,”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에 튕기듯 몸을 일으키려다 극심한 고통에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아이고, 움직이지 마시라니까.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의료진은 저들끼리 몇 마디 나누고는 병실을 나갔다. 1인실의 널찍하고 조용한 입원실엔 나만 혼자 덜렁 남았다.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파서, 누운 채로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나를 여기까지 어떻게 데려다 놓은 건지,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당장 일어나 찾아 나서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정수 환자분.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중에 겨우 움직여 확인해 본 바로는 병실 이름표도 김정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정수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이틀만이었다. 닥터 노아가 죽었다는 소식이 한창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익명의 신고로 발견된 그는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 진행 중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전했다. 눈이 계속 쌓여 족적도 사라지고, 시신도 뒤늦게 발견된 데다가 영하의 날씨에 사망 추정 시간도 알기 어렵다는 것 같았다.

       

      정수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 두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환자 김정수의 보호자 이름 란에 곽지석 세글자를 적어두었다고 했다. 빼뚤한 글씨로 이름 석 자 적힌 동의서를 확인하고서 이 사람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뒤 발견된 닥터의 유서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권리를 아들인 김정수에게 남긴다고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여 필적감정을 의뢰했으나 닥터의 필체가 맞다는 분석이 나왔다. 닥터가 정수를 특별히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 가족으로 올려놓았을 줄은 몰랐지만. 정수는 알고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을 알고서도... 내게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었을까.

       

      그와 닮은 것을 넘어 유전자까지 완벽히 일치하고, 이름이 김정수이기까지 한 나는 상속자로 인정받기 충분했다. 내게 있는 돈이라고는 닥터의 상속재산밖에 없었기에 병원비는 그것으로 충당했다. 미안, 정수. 나중에 갚을게. 결국 퇴원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그에게 속으로 사과하며 병원을 나섰다.

       

      그날처럼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백지 같은 풍경에 나는 목적도 잃고 우두커니 섰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나오고 싶던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다. 사전지식이라곤 3개 국어와 전자레인지에 달걀을 통째로 돌리면 안 된다는 수준의 상식뿐인 내게 진짜 사람들의 도시는 황야나 다름없었다. 나는 껍데기가 맞았다. 내가 나인 줄 알았던 모든 것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지나쳐갔다. 붙박인 듯이 서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다리가 아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무릎이 아파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해가 기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었다. 가로등 아래로 흩날리는 눈발이 희이 빛났다. 더 있다가는 얼어 죽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려다가, 숨을 멈추었다. 눈앞에 내밀어진 두 장의 트럼프카드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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