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어(死語)
에코
하늘이 노랗다. 어지럽다거나 메스껍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하늘이 노랗다. 거의 180센티에 육박한 정수는 이제 천장과 벽 사이쯤에 난 작은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하늘이 정말, 노랗다. 무엇 때문에 하늘이 노란 걸까.
십수 년 전 거실에 난 커다란 창문을 통해 접한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구름은 하얀색이었다. 그땐 진리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허상에 불과하다. 하늘은 노랗고, 구름은 회색이다. 창문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더니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오늘은 과연 여름일까, 아니면 겨울일까. 사계절은 사어, 즉 죽은 단어가 된 지 오래다. 김정수가 이곳에 처음 왔던 그때부터 계절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매일이 뜨거운 여름이다. 여름을 싫어하는 정수에게 이 지구는 어쩌면 지옥일지도 모른다. 더위에 못 이긴 정수는 창문에 바싹 붙어 있던 얼굴을 떼어내고 책상 앞에 앉았다. 화면은 켜보니 오늘의 과제가 안내되어 있었다. 영화 보고 감상문 쓰기. 정수는 영혼 없이 파일을 재생했다. 고화질의 영상이 대형 모니터를 통해 나왔다. 영화가 재생되자 방 속 조명은 알아서 적절하게 조정되었다. 정수는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텅 빈 눈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저걸 촬영할 당시의 하늘은 파란색인 걸 보니 방영한지 최소 20년은 지난 영화일 것이다. 저 때까지만 해도 1퍼센트의 낭만이 남아있었는데. 정수는 아쉬운 심정으로 깡생수를 들이켰다.
물에 빠지려고 하는 여자를 남자가 뒤에서 붙잡는다. 남자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모래사장 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여자는 우리는 절대 같아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양쪽 발을 바다에 담갔고, 남자가 붙잡을 틈도 없이 커다란 파도가 여자를 집어삼켰다.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영화가 좀 급전개같다는 생각과 달리 정수는 턱끝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정수는 모든 것이 건조해진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촉촉한 사람이었다. 땀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정수는 선반에 있는 키보드를 꺼내 감상문을 타자하기 시작했다. 이 감상문은 아마 연구원들이 돌려 읽을 것이다. 얼마나 자세히 읽는지는 정수도 잘 모른다. 아마 자세히 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덕분에 정수는 감상문에 자아실현을 하곤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도 가감 없이 적는다.
‘남자가 여자를 붙잡으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한 감정이 궁금하다. 아마 나는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느껴봤을까? 나에게 미안해서 눈물까지 흘려봤을까. 눈물을 흘릴 정도로 미안한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떤 영화를 봐도 정수는 늘 부모를 원망하는 문장으로 감상문을 끝맺었다. 정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원망이 아니다. 연구원들 모두가 정수에게 왜 부모를 원망하냐 묻지만, 그럴 때마다 정수는 원망한 적이 없다고 답한다. 원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입체적인 감정이다. 싫고 밉고 서운한 게 아니라, 그건 이 사회를 향한, 국가를 향한, 세상을 향한 뿌리 깊은 분노와 설움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기에 부모를 탓하지는 않지만, 그냥 우리가 달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았겠지 하는 좀 특이한 모양의 그리움과 후회. 정수는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정의 내린다.
감상문을 제출하자마자 방송이 나왔다. DFK626 13동 4호실로. 짧은 방송에 정수는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어제도 봤고, 그제도 본 두 연구원이 양쪽에서 정수의 팔을 잡았다. 정수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13동 4호실 문 앞까지 걸어갔다.
13동 4호실 문에는 약 1년 반 동안 '이규원 연구원'이라는 문패가 박혀있었는데 오늘은 이름이 달라져 있었다. 정수는 담당 연구원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챘다. 이규원 연구원이 정수의 다섯 번째 담당 연구원이었으니, 새로 온 곽지석 연구원은 정수의 여섯 번째 담당 연구원이었다. 정수는 담당 연구원이 자주 바뀌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벌써 여섯 번째이다 보니 설렘 같은 건 딱히 없었다. 그냥 또 똑같은 지루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엘리트이겠거니 싶었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자 젊고 눈이 큰 어린 연구원이 정수의 눈동자에 가득 찼다. 인사를 하는 목소리는 살짝 달달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연구원은 여러 가지 서류를 읽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정수에게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으세요?”
그 질문에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미소보다는 눈물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그간 모든 연구원이 던졌던 첫 질문들과 달랐다. 이 사람은 내 마음이 원망이라고 단정을 짓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정수는 간만에 심장이 아주 조금 뛰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곽지석 연구원.”
“네?”
“요즘 뭐 하고 지내나.”
그 전화를 받지 말아야 했다. 지석은 연락 끊은 지 백오십 년 된 어떤 교수님의 전화를 받은 것을 아직까지도 후회한다. 교수는 용건이 없는데 안부 물으려고 전화하는 그런 따뜻하고 비효율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전화에는 분명한 용건이 있었다.
“126구역에 연구소 하나가 있는데 거기 자리가 빈다고 해서.”
“….”
“의사….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연구소에서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어떤 연구소인데요?”
“그건 가면 알아. 기밀이라 말 못 해. 여하튼 너는 게이고, 남들이랑 좀 다르니까….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제가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
“이미 이름 올려놨어. 다음 주부터 가.”
“예.”
게이이고 남들이랑 다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 남들이랑 다른 사람, 다른 인생. 지석은 교수의 건조한 전화에도 온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그런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남들과는 달랐던 거겠지. 지석은 마른세수를 수차례 하고선 에어컨 온도를 더 낮췄다. 좀 차가운 인간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는 이름이 아니라 1부터 150까지의 숫자를 붙여 말하는 지루한 대한민국에서 지석은 서울에서 태어난 럭키 가이였다.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건 고급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주변에 다 잘난 사람들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석의 주변은 지석과 달랐다. 제 나이에 맞는 진도에도 허덕거리던 지석과 달리 다른 친구들은 월반은 물론이며 서울에 있는 특수한 학교들에 진학하기도 했다. 멀리 볼 필요도 없고, 당장 지석의 사촌들과 형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열일곱에 대학에 갔고 제 나이에 졸업해서 의사가 되었다. 시험 운이 좀 나쁘면 변호사가 되었다. 운이 진짜, 진짜 나쁘면 의과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다른 과에 갔다가 다시 시험을 봐서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지석은 합격한 시험보다 불합격한 시험이 더 많았다. 생일도 1월인지라 빠르게 입학하려고 본 입학 테스트에서 불합격했고 중학교 시험에서도 불합격했으며 고등학교 입학시험 또한 불합격했다. 그리고 이때 지석은 유일하게 한 시험에서 통과하는데, 그건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시험이었다.
지석의 부모는 부족한 지석을 어르고 달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너는 앞으로 내놓은 자식이다, 알아서 해라, 내일 56구역에 너를 버리고 올 거 다, 이번 시험도 떨어지면 그땐 내가 널 칼로 쑤실 거 다, 라는 말들을 아주 일상적으로 해대는 그런 부모였다. 지석이 고등학교 입학시험마저 떨어졌을 때는 이 아이는 정신질환이 있는 게 분명하다며 지석을 정신병원에 밀어 넣었다. 그런 식으로 입원을 한 학생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지석이 다녔던 서울의 모 정신병원 안에는 학교 교육과정을 진행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지석은 병원 안에서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냈고, 그 탓에 좋은 대학에는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조건을 얻었다. 어찌저찌 아버지의 입김으로 지석은 서울 끝자락에 있는 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거기서 편입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최종 실패, 진짜 찐 최종 실패. 지석이 완전히 실패했을 때 하늘은 노란색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지석은 자신이 거듭된 실패로 미쳐버려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때 하늘은 정말로 노란색이었다.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니라 정말로 하늘이 노란 것이라면, 왜 하늘이 노랗게 질려버린 것일까. 지석은 그 의문 하나로 연구원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성적대와 그 스펙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연구원이었던 것도 맞았지만, 은근히 적성에 잘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사귀던 애인이 지석에게 연구원을 권했다.
지석의 전 애인은 정신병원에서 만난 착하게 생긴 연하남이었다. 그 아이 역시 부모의 압력에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었고, 지석과는 다르게 퇴원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끝끝내 의과대학에 진학한 엘리트였다. 지석은 애인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실패자임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런데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연애를 지속했다. 하늘이 노랗게 질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아주 무더운 어느 날에 지석의 애인은 지석에게 이별을 고했다. 형이 너무 한심해서 더는 못 만나겠어. 착한 줄 알았는데 아주 못된 놈이었다. 지석은 알겠다고 말한 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기숙사로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땀과 눈물이 섞여 불쾌한 짠맛의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이후 무력하게 하루하루 보내던 중 개싸가지 교수가 전화를 건 것이었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지석은 혹시나 전 애인이지 않을까 하고 전화받았던 것이었고, 지석은 졸업을 앞두고 사실상 강제로 발령받았다. 게이이고, 이별에 이렇게나 아파하는 도태된 현대인인 자신에게 적성인 일이 2900년대에 존재한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어리바리한 곽지석 연구원은 정수에게 처음 보는 약물들을 처방했다. 식사 전에 드시고, 식사 후에 드시고, 아, 이건 자기 전에 드시고. 어리바리해 보여도 나름 꼼꼼해 보였다. 정수는 지석의 안내 사항을 모두 들은 뒤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뭐, 제가 까먹어도…. 다른 연구원분들이 알아서 챙겨주실 텐데요….”
“아, 맞네. 그러네요.”
“안녕히 계세요.”
정수는 또 양옆에 연구원을 낀 채로 9동 6호실로 이동했다. 피검사와 엑스레이 등 각종 검사들을 마친 정수는 연구원들과 함께 2동 19호실, 그러니까 정수의 방에 도착한 후에야 혼자가 될 수 있었다. 혼자가 된 정수는 다시 창문 앞에 섰다. 하루가 아주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밖은 여전히 덥지만, 하늘은 이제 검은색이다. 다행히 아직 밤에는 하늘이 까맣다. 정수는 하루가 종료되었음을 인지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루가 지나가듯 나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겠지, 종료되겠지, 버려지겠지.
정수는 자신이 실험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아마 한 열 살 때쯤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정수는 만 6세 때 연구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자의로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때는 이곳이 연구소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다.
정수는 서울이 아닌 89구역 출신이다. 89구역은 덥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800년 전에는 경상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89구역 자체가 부유하게 사는 지역은 아니지만 정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부유하지 못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대강 행복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새벽에 나가서 아주 늦게 들어오셨지만, 정수는 유치원 종일반에서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 더위를 먹기도 하고 가끔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기도 했다. 그때마다 바라본 하늘의 색은 가끔은 파랗기도, 회색이기도, 검은색이기도 했다. 날이 더웠지만 지금처럼 덥지는 않았다.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 같았던 초록색 잔디 언덕이 점점 말라비틀어져서 황갈색이 될 무렵, 정수는 유치원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원비를 낼 수 없게 된 정수의 부모님은 어린 정수를 붙잡고 정수가 왜 유치원에 갈 수 없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래도 정수야, 동생이랑 집에서 놀면 되잖아. 지수랑 집에서 놀아, 응?”
부모님의 설득에도 정수는 울기에 바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수는 집에서 동생을 돌봐야 했고,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유치원은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밤마다 졸랐다. 몇 달이 지나고 다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정수의 부모님은 일단 정수부터 유치원에 보냈다. 정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은 집에 혼자 남겨졌다. 동네 사람들이 종종 들어와서 봐주기도 했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그 동네는 바쁜 부모 때문에 집에 혼자 남겨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들 그러니 괜찮을 줄 알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늘이 때때로 노랗게 질리는 시절이었다. 최고기온이 80도를 돌파했다고 떠드는 티브이가 정수네 집에는 없었다. 바깥의 기온에 맞춰 적절한 음성 안내를 해주는 인공지능 로봇은 서울 어딘가에 사는 가정집에나 있었다. 정수네 집에는 그런 게 없었다. 정수의 동생은 분 단위로 바뀌는 하늘색이 신기해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은 80도였고, 아무 데나 버려진 오물들이 끓어오르고 있었고, 고작 네 살배기 아이는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정수의 가정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정수는 동생을 잃었고 정수의 부모님은 아이를 잃었다. 장례 비용을 대느라 주머니 사정은 더더욱 여의치 않아졌고 그렇다고 정수를 다시 집에 혼자 두자니 정수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모든 생활에 질리기 시작했다. 정수의 행복만을 바랐는데 앞으로의 길이 까마득했다. 그때 직장에서는 서울의 한 지역에 아이들을 엄청나게 많이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동료들은 아무래도 그게 학교 같다고, 새로운 정부의 정책 중 일부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수의 부모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곧장 트램표를 샀다. 서울로 가는 트램이었다. 성인용 왕복표 두 장과 어린이용 편도표 한 장. 한창 한글을 배우던 정수는 편도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부모님 중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정수는 서울에 갔고 다시는 89구역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곳은 평생 교육을 책임져주는 학교도 새로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세워진 곳도 아니었다. 그저 서울 중 가장 덥고 도태된 커다란 공터에 지어진 연구소였다. 인간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그런 곳이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누가 그런 인류애 떨어진 연구를 진행하냐 하겠지만 연구는 이미 합법화된 지 오래였다. 사실상 실험체들은 연구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터질 것같이 뜨거운 곳에서 방치되는 아이들, 걸음마를 뗀 시기부터 막노동하는 아이들, 영양실조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아이들이 주로 연구소에 들어왔으니, 이들의 인권에 대해 논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실험체로 키워지라는 게 이 세상의 뜻이었고, 국가의 뜻이었고, 가끔은 부모의 뜻이었다.
정수가 속한 연구소에는 현재 정수만이 실험체로 남아있다. 정수와 함께 들어왔던 수십 명의 아이들은 모조리 다 던져졌다. 말 그대로 던져졌다. 연구소는 보통 광활한 공터, 마치 사막 같은 공터에 지어지기 때문에 연구소 밖으로 나가면 3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너무나 덥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사막을 피해 지하로 통하는 열차를 타고 출퇴근한다. 가끔 내쫓아지고도 지하에 몰래 들어가 노숙하는 방출된 실험체들도 있지만 발각되면 다시 밖으로 던져진다. 필요한 만큼 쓰이고 버려지는 것. 정수는 열두 살 무렵 이 연구소의 모든 시스템을 간파해 버렸다. 친구 한명 한명이 사라질 때마다 정수는 완벽하게 노랗게 질린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다음 생에는 부디 친구가 달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곽지석 연구원이 온 이후로 정수는 열심히 약물들을 복용했다. 약을 그렇게 때려 넣는데 속이 메스껍지도 않았다. 여전히 과제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적는 것이었다. 정수는 영화를 재생했고, 이번에 나온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였다. 하늘이 노란 걸 보니 이건 좀 최근에 촬영한 영화인가 보다 싶었다. 외계인과 인간은 아주 깊은 관계였고, 외계인은 결국 외계로 돌아가는 슬픈 내용의 영화였다. 그러나 정수는 이번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외계인이 고향에 돌아가서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감상문도 상당히 건조했다. 이번에는 영화를 봐도 가족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외계인이 고향에 돌아가게 되어서 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살던 곳은 덥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나는 딱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1부터 150구역에 살 바에는 서울에서 살고 싶다. 다음 생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싶다.’
정수의 감상문을 읽던 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물론 정수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연구는 놀랍도록 계획대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내가 정말 연구원이 천직이었던 걸까. 지석은 당장이라도 전 애인에게 연락해 내가 이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고 싶었다. 한편으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게, 그것도 말라비틀어진 세상에서 사람을 더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연구가 과연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 지석은 차라리 자신이 실험체가 되어 좀 건조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석은 모니터에 연구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
‘DFK626이 감정 상태에 이상을 보임. 전두엽 기능 저하 증상 사라짐. 코르티솔 호르몬은 감소한 반면 도파민, 세로토닌은 일정하게 유지됨.’
일지를 적고 지석은 맞은편에 앉은 정수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어딘가 훨씬 텅 비어 보이는 눈동자에 지석은 그 눈빛을 피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려는데 정수가 입을 열었다.
“곽지석 연구원님.”
“네.”
“제가 처음 만났던 연구원님하고 닮았어요.”
“아, 그래요?”
“그분은 40대였는데….”
“노안이라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냥 닮았다고요. 그분 되게 좋은 분이었는데…. 아무튼 내일 봬요.”
‘남자랑 남자가 사랑을 하고, 편견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지만, 세상에 있는 편견은 대부분 깰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 순응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성과 남성이 결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동성 결혼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재까지 합법화되지 못한 것을 보면, 이 영화는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
지석은 정수의 감상문을 읽고 작게 웃었다. 뭐가 웃기죠? 정수는 냉랭한 표정을 하고서 지석에게 물었다.
“말투가 엄청 단호해 보여서…. 그게 좀 재밌네요.”
“…. 그, 제가 전에 연구원님하고 제가 아는 다른 연구원님하고 닮았다 했었잖아요.”
“네.”
“제 청소년기 내내 그분이 제 담당 연구원이었는데,”
“….”
“솔직히 좀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 연구원분은 남자셨고요.”
“….”
“그래서 이번 영화를 보는 데 마음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
“저는 그 연구원분이랑 나이 차이도 크게 났고, 동성이었고…. 무엇보다 저는 그냥 인간만도 못한 실험체고 그분은 연구원이었는데….”
“….”
“잘 모르시겠지만, 연구원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환경…. 서울 내에서 빵빵하게 에어컨 맞으면서 산 사람하고 실험체로 사는 게 그냥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저 같은 사람이 이어지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
“그냥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분을 좋아했던 건가 싶고 그러네요.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지 뭐….”
“….”
“너무 아무 말이나 한 것 같네요. 곽지석 연구원님은 잘 알지도 못할 것 같은 이야기를.”
바쁘게 타자를 하던 지석의 손이 멈췄다. 잊고 있던 이별의 아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사회이지만 지석은 아주 조금 그 말을 믿었다. 무엇보다 지석은 씁쓸한 표정의 정수를 그저 방치할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실적 좋은 연구원이었지만 그 정도로 이성적인 연구원이 될 위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삼가라는, 상담 중 지켜야 할 규칙을 크게 어겨버렸다.
“저도 뭐 좋은 곳에서 자랐고…. 김정수 씨랑은 많이 다르게 살아왔지만….”
“….”
“저도 그런 죽었다 깨어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과 사랑이 뭔지는 알 것 같아요.”
“….”
“저는 붙은 시험보다 떨어진 시험이 많아요. 연구원도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고. 어떻게 들릴 지는 모르겠다만, 이렇게 한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건 아직도 미친 짓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기는 하는데.”
“….”
“제가 사랑한 사람은 저랑 많이 달랐어요. 시험을 보면 다 붙고, 그 친구는 지금 의사인데, 인체 실험도 아무렇게나 그냥 막 하고요. 또 저랑 동성이고요.”
“….”
“결국 제가 능력 없고 창피해서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서로 조건 안 맞거나 한쪽이 좀 힘들면 막말하고 헤어져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엄청나게 막말 듣고 헤어졌어요.”
“….”
“집에서는 남자 좋아한다고, 왜 뭐하나 평범하게 하지를 못하냐고 하고, 애인은 제가 할 수도 없는 일들을 좀 해보라고 강요하고.”
“….”
“…. 쉽지 않네요. 쉽지 않아.”
“맞아요. 쉬운 게 없더라고요.”
“….”
“그래도 저는 쓰임을 다하면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죽을 텐데. 연구원님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잖아요. 요즘 수명도 엄청 긴데. 긴긴 삶을 그렇게 원하는 거 하나도 못 하면서 산다는 게…. 쉽지 않죠.”
“김정수 씨는…. 안 죽을 거예요.”
“안 믿어요.”
“…. 죽지 않게 할게요.”
지석의 말에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진짜 제 예전 담당 연구원님하고 닮았어요. 지석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정수의 이전 연구원들에 대해 모두 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정수를 담당했던 첫 번째 연구원은, 당시 열네살이던 정수와 약 여덟 살 차이였는데, 연구소에서 해고를 당했다. 정수에게 고의로 약물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수의 첫 번째 담당 연구원은 정수가 쓸모없는 실험체로 전락해 죽임당하는 것을 막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부러 연구의 속도를 늦췄다. 꽤나 오랜 기간에 거짓으로 작성된 연구일지가 발각되어 그 연구원은 해고가 된 것이었고, 정수도 그 사실을 들었다는 걸 지석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석은 정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당신도 그 사람처럼 마음씨가 지나치게 좋은 아주 도태된 인간이네요.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석은 제게 남은 마지막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저와 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정수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석은 약물을 대폭 축소했다. 일지에는 거짓으로 복용량을 기재했고, 정수의 영화 감상문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글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뛰어난 연구 실적으로 촉망 받던 곽지석 연구원은 다시 감이 없고 머리가 나쁜 하위급 연구원으로 분류되었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아버지가 막말을 쏟아부어도 지석은 왠지 모르게 이전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합격하지 못하는 시험을 볼 때보다, 끌려오듯 연구소에 부임했을 때보다, 어울리지 않는 연구를 하고 실적을 내 거짓된 보람을 느꼈을 때보다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정수는 지석과 감상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보고 싶은 가족들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도 곽지석 연구원이 잘릴까 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너무나 다르게 살아온 둘은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았기에 대화가 잘 통했다. 두 사람 모두 하루 중 상담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생활하면서 만나는 사람 중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만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기서 연애하기는 글렀지만, 다시 태어나면 저는 따뜻한 사람 만나고 싶어요.”
“여기서도 마음만 먹으면 연애할 수 있지 않나요?”
“여기 실험체 이제 저밖에 안 남았어요.”
“널린게 연구원이잖아요. 연구원이랑 잘해보시지 왜.”
“연구원이 저랑 어떻게 만나요.”
“뭐 아주 안되는 건 아니겠죠…?”
“그 사람도 죽고 저도 죽을 텐데…. 아니, 그 사람은 안 죽겠죠, 그 사람은 국가에서 인간으로 취급할 테니까. 저만 죽겠죠. 저만.”
“저도 다시 연애하면….”
“….”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 좋아요. 제가 능력 없어도 막말하지 않는 사람. 이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요. 이런 연구도 막 하지 말라고 하고.”
“연구원님도 아무래도 실험체 같은 사람이랑 만나셔야겠네요. 이런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실험체 뿐이니까요. ”
“하하. 그런가요.”
상담이 끝나고 지석은 정수의 신체검사 결과를 분석하곤 했다. 요즘 정수의 신체에는 특이 사항이 생겼다. 도파민 증가, 옥시토신 증가, 세로토닌 증가,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 증가. 일지를 작성하던 지석의 손이 멈췄다. 정수의 신체가 너무나 명확하게 한가지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한 정수는 밤에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콩닥거렸고, 식욕도 좀 줄었다. 정수는 제 신체검사 결과를 알지 못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걸 잘 알았다. 정수는 밤잠을 설치며 한숨만 연이어 쉬었다. 이 닭장 같은 곳에서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정수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졌다. 정수는 남들보다 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눈물을 흘리며, 이러한 면 때문에 정수는 최종 실험체로 선정된 것이기도 했다.
다시는 연구원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정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사랑은 언제나 늘 자극적이고 매력적이라 또다시 정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죽는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곽지석 연구원의 커다란 눈동자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되었다. 상담 시간이 몇 시간 남았는지 정수는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이건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생각에, 정수는 다시 한번 더 절망했다. 절망스러우면서도 내일이 기대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정수는 내일이 기대되었다. 하늘의 색이 다시 파란색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곽지석 연구원 요즘 실적이 너무 나빠. DFK626 상태가 왜 이래?”
“효과가 좀 더딘 것 같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저번에도 그래서 기간 늘려주지 않았나.”
“너무 짧습니다. 3개월만 더 늘려주세요.”
“이게 얼마나 중대한 연구인지 몰라서 그래? 3개월 뒤에도 실적없으면 담당 연구원 교체할 거야.”
“네.”
“복용량을 늘릴 수는 없어? 실험체 상태가 어떤데?”
실험체라는 말에 지석은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실험체 김정수, 아니, DFK626 은 현재 도파민이 증가했고, 식욕이 감소했으며, 이는 유대관계,”
“됐고. 연구원은 무조건 실적 싸움이야.”
“…. 네, 알겠습니다.”
“자네도 살면서 한 번쯤은 좀,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수석 연구원의 잔소리에 지석은 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말이지, 못 해 먹겠다. 지석은 퇴사를 고민했으나 김정수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김정수는 사실 약물을 투여하면 그 효과가 곧장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다른 연구원이 김정수를 담당하고, 복용량을 늘려서, 그 효과가 입증되면 연구는 종료되고, 김정수는 버려진다.
일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지석은 알았다. 3개월 뒤면 자신이 김정수를 담당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일단 지금은 빨리 상담하러 가고 싶었다. 김정수가 보고 싶었다.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인간 김정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늘 빨갛게 달아오른 손을 만져보고 싶었다.
상담실로 걸어가던 지석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목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연구원은 철저히 양의학에 의지했지만, 지석은 맥박 정도는 믿었다. 맥박이 터질 것 같았다. 빠른 심장박동과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 젠장. 지석의 몸에도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있었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둘은 언젠가부터 영화 이야기보다는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담은 상담의 역할을 잃은 지 오래였고 일지를 타자하던 지석의 손은 정수의 손과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러다 스치기라도 하면 두 사람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수의 귀 끝이 붉어졌고, 지석의 손은 정수의 손을 잡지 못한 것이 아쉽기라도 한 듯 쉴 틈 없이 꼼지락댔다. 지석과 정수 모두 온몸이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오직 뇌만이 그 사실을 거부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무 외로워서, 혹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사랑이라고 느끼는 거야, 라고 자기 최면을 했다. 그러다 한 영화의 감상문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둘의 뇌는 감정을 거부하는 것을 멈췄다.
그 영화는 아주 오래전에 촬영된 영화였다. 한 배에 타서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는, 아주 빤한 이야기의 영화였다. 정수는 그 영화를 보며 역시나 눈물을 흘렸고 감상문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었다.
‘연구원님과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떨지 상상했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났지만, 나는 그 상상을 통해 비로소 남자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감상문을 읽은 지석은 정수에게 말했다.
“김정수 씨가 저를 살려주실 거라는 뜻이죠?”
“당연하죠.”
“저도 저 영화 봤는데. 저는 제가 김정수 씨를 살릴 것 같아요. 저는 살아도…. 의미가 없거든요.”
“실험체인 제가 더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안 살면 되죠. 그런 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면…. 도망갈 수 있잖아요. 그러면 신분도 새로 생기고…. 정수 씨는 시인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시인이라니…. 시인이라는 직업이 아직 있는 직업은 맞죠?”
“그럼요.”
“…. 근데 저는 그래도 곽지석 연구원님을 살릴래요.”
“왜요?”
“그냥 그러고 싶어요. 온몸이 그렇게 하라고 얘기하네요.”
“….”
“…. 몸은 한참 전부터 그러라고 했는데, 머리가 거부했었는데…. 이제는 머리도 그러라고 해요.”
“….”
“저는 진짜 왜 이럴까요. 어차피 안될 거라는 거 아는데,”
지석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곤 가운을 벗어 상담실 상단에 있는 CCTV를 향해 던졌다. 운 좋게 가운이 한 번에 CCTV에 걸렸다. 반팔 차림의 지석은 놀란 눈동자를 한 정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건 연구원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냥, 인간 곽지석의 눈빛이었다. 감정에 아주 충실한 곽지석의 눈빛이었다.
지석은 손을 뻗어 정수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것도 상담의 일종인가요? 정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지석은 가벼운 미소를 지은 뒤 정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입술이 닿았고, 지석은 정수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정수의 맥박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건 명백히 노르에피네프린의 과다분비였다.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사랑이었다. 사랑. 그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정수가 입술을 움직여 사랑을 말했다.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곳에서, 둘은 꿋꿋하게 사랑을 말했다.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는 딱히 망설일 것이 없었다. 상담하는 시간은 하루 중 30분, 길어봤자 1시간이었지만 지석과 정수는 마치 그 시간이 영원인 것처럼 보냈다. 지석은 근육의 강직도를 검사한다는 핑계로 정수의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기도 했고, 정수는 영화 감상문을 가장한 연애편지를 적기도 했다. 상담과 일지 기록은 오직 지석의 몫이었으므로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석이 상사와 약속한 3개월도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정수를 향한 마음은 더욱 커져가는데 시간은 없었다. 정수와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수가 이전에 봤던 그 영화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지석은 무조건적으로 정수를 구할 생각이었지만 방법이 필요했다. 이 모든 감정이 들통나면 우린 사이좋게 내쫓아질 것이고, 터질 것같이 뜨거운 공터에서 서로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둘 다 사이좋게 죽겠지. 지석은 그런 결말은 원하지 않았다. 정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정수 역시 지석과의 마지막을 상상했다. 정수는 지석과의 관계가 들통날 때쯤에 11동에 있는 약물 창고에서 약물을 과다 복용하여 제 발로 세상을 떠날 생각이었다. 실험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연구는 자동으로 무효가 되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수는 지석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정말 죽을 만큼 사랑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의 어떤 이름 모를 가수의 이름 모를 팬픽에도 적혀 있듯 농도가 짙은 사랑은 눈에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연구소 속 사람들은 감정이라는 것을 하대하고 멸종시키기 위해 온 정성을 쏟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연구소 속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정수의 이동을 돕던 연구원 중 한 명이 지석과 정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석은 연구소 속 수석 연구원에게 호출을 당했다.
“3개월도 거의 다 지났고, 들리는 소문도 안 좋은데…. 내가 너를 계속 고용해야 할 이유를 말해봐.”
“…. 실적 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연구를 미루는 이유가 뭐야?”
“…. 더 정확하게, 진행하고 싶어서,”
“정확하게? 실험체랑 붙어먹는 게 정확한 건가?”
“….”
“자존심도 없는 놈. 천박하고 더러운 인간만도 못한 것들이랑 붙어먹을 생각을 한다는 게….”
“….”
“원래 동성애자들은 다 그런 거야 아니면 너만 그런 거야? 네가 연애 경험이 부족하고 살아온 게 기구해서 그 실험체가 꼬드긴 거에 넘어간 거지?”
“그런 거 아닙니다.”
“됐고…. 해고야 너.”
수석 연구원의 마지막 말과 동시에 연구소에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DFK626 제11동 4호실로.
11동은 약물 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지석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11동을 향해 달려갔다. 수석연구원은 얄미운 목소리로 모든 게 끝났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정수는 영문도 모른 채 약물 창고에 끌려가 그간 섭취하지 못했던 약물을 모두 먹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고 거절의 의사를 표시해도 연구원들은 미동도 없었다. 그게 원래 정수의 삶이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삶, 존엄성을 훼손당하는 삶. 고용량의 용액들을 수액으로 맞고 토가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의 알약을 쉬지 않고 먹었다. 덩치가 곰만 한 경비원들이 정수의 양팔을 붙잡고 정수가 그 약물들을 모두 삼키는지 확인했다.
11동에 뒤늦게 도착한 지석은 당연히 입구에서 붙잡혔다. 이제는 더 이상 연구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경비원들을 뿌리치기엔 지석은 힘이 약했다.
한편, 밀린 약물을 모두 복용한 정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약물의 효과가 벌써 나타난 것이었다. 정수는 지석이 해고될 거라는 것을 눈치챘다. 지석과는 헤어질 것이고, 자신은 약을 아주 많이 먹고 결국 공터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라는 걸 정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쉽지는 않았다. 죽는 것보다 지석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게 억울했다. 정수는 지석을 죽을 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정수는 메스꺼운 속을 붙잡고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가락을 입안으로 쑤셔 넣어 강제로 구역질했다. 그러나 약물이 너무 완벽하게 흡수된 것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는 깨질 것 같았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정수는 홀린 듯이 창문에 붙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노랗다. 하늘은 다시는 파래질 수 없다. 앞으로도 영영 노랗게 질려 있을 것이다. 정수는 뜨끈거리는 얼굴을 뜨끈거리는 창문에 밀착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내일이면 담당 연구원이 바뀔 테고, 무슨 목적의 연구인지 정수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연구 목적이 달성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황무지로 던져질 것이다. 지석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한 채로. 그러면 아주 외롭게 죽겠지. 더위 속에서 아주 고통스럽게 서서히 숨이 멎겠지. 정수는 제 뺨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분명 눈물이 나온 것 같았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수는 작게 아, 하고 탄식했다. 이런 거구나, 이런 연구였구나.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또래보다 눈물이 많고 감정의 폭이 다양한 본인을 최종 실험체로 선정한 것도, 연구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참 쉬운 존재를 실험체로 선정한 것도 정수는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의 눈물을 아주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그런 연구였구나. 그런 거였네. 정수는 손바닥을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지석만 생각하면 터질 것 같은 심장이 그다지 터질 것 같지도 않았다.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정수는 분노에 찬 상태로 그대로 문고리를 잡았다. 이런 연구는 명백히 실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이딴 연구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의 씨를 말려버리는 것, 동물의 고유한 감정, 급기야 사랑까지 멸종시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면 정수는 연구의 실패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수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11동을 향해 달렸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퇴근해서 경비원들만이 정수를 쫓아왔다. 정수는 달리고 또 달려서 11동 현관 앞에 섰다. 문제는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수의 얼굴을 감지한 센서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결국 정수는 문고리를 부쉈다. 문을 몸으로 밀치고 정수는 약물 창고를 향해 달렸다. 정수는 가장 독한 약을 찾았다. 먹고 죽어버릴 각오였다. 십여 년간 공들여 키운 실험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최소한 연구가 지연되기라도 하지 않을까. 약을 찾는 손이 벌벌 떨렸다. 경비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정수는 아무 약이나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문이 열렸다. 덩치가 곰만 한 그 경비원들이 정수를 끌어냈다. 그리고 강제로 또 다른 약물을 정수의 팔에 꽂았다. 이번에는 저항할 틈도 주지 않았다. 정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이 연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연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정수를 불렀다. 김정수 씨!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이 연구소에서 김정수를 DFK626이 아니라 김정수라고 부르는 사람은 곽지석이 유일했다. 정수를 향해 달려온 지석은 덩치가 곰만 한 연구원들을 밀쳤다.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는 지석도 정수도 모른다. 지석은 정수의 팔에서 해독제를 빼고서 말했다.
“죽지 말아요.”
“저 이 연구가 뭔지 알아요. 이제.”
“….”
“인간을 메마르게 만드는 거잖아요.”
“….”
“그런 연구는 성공하면 안 되는 거예요,”
“….”
“저는 곽지석씨를 사랑하고 싶어요.”
“…. 김정수 씨,”
“사랑하는 채로 죽고 싶어요. 다 까먹고 말라비틀어지기 싫다고요.”
해독제를 꽉 쥐고 있던 지석의 손에 힘이 풀렸다. 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석을 마지막으로 끌어안았다. 잘 있어요. 정수는 나지막이 인사를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정수는 11동과 10동을 지나 1동을 향해 달렸다. 1동은 연구소 정문이 있는 곳이었다. 정문도 몸빵하면 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문의 보안은 더욱 철저했다. 역시나 정수를 감지한 센서가 강력한 사이렌을 울렸다. 참 공포스러운 것은 경비원들은 어떻게든 정수를 살린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려서, 어떻게든 정수를 실험체로 사용할 것이다.
이대로 물러서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 머리가 산발이 된 지석이 제 지문을 출입문에 가져다 댔다. 연구원은 정문을 여닫을 권한이 있었다. 정수는 뒤를 돌아 지석을 바라보았다. 지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정수는 뺨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눈물이 느껴졌다.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딴 개같은 연구는 애초에 잘 될 수가 없는 거야. 사랑을 무력화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사랑뿐일 거야. 정수는 지석에게 손 인사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정문 밖으로 나갔다.
사막과 비슷한 건조한 땅이 정수를 반겼다. 어찌나 덥던지 나가자마자 땀이 주르륵 흘렀다. 눈앞이 핑 돌았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걷는 정수를 붙잡는 건 지석이었다. 지석 역시 정수를 따라 연구소 밖으로 나왔다. 지석이 바람을 뚫고 아주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잘했죠.”
“…. 보고 싶었어요.”
“애초에 이건 실패할 연구였던 거예요. 나를 연구원으로 고용하다니.”
둘은 꽤 오랜 시간 버텼다. 80도, 90도에 육박하는 건조한 황무지 위에 둘은 나란히 발걸음을 남겼다. 정수가 먼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석도 정수를 따라 주저앉았다. 뜨거운 공기에 심장이 잔뜩 팽창된 기분이었다. 지석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좀 있다.”
“….”
“좋은 데서, 진짜 좋은 데서 다시 만나요.”
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자요. 그리고 지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모래사장 위로 쓰러졌다.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더위 속에서 딱 하나만이 타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다.
사랑, 영원히 죽지 않을 단어.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이 사어가 되는 그 세상 속에서 사랑은 영영 死語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