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ALISM : 운명론

시간, 공간, 차원, 문화, 종족, 기술을 뛰어넘어

서로의 [ ] 맞닿는 교집합

" 어떤 존재냐고요? "

" 저에게 있어서 달의 뒷면 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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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AZWB89xWE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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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LHMOp02nE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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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4OngKH3AP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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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CTION

       

      사어(死語)

      에코

       

       

       

       

      하늘이 노랗다. 어지럽다거나 메스껍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하늘이 노랗다. 거의 180센티에 육박한 정수는 이제 천장과 벽 사이쯤에 난 작은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하늘이 정말, 노랗다. 무엇 때문에 하늘이 노란 걸까. 

       

      십수 년 전 거실에 난 커다란 창문을 통해 접한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구름은 하얀색이었다. 그땐 진리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허상에 불과하다. 하늘은 노랗고, 구름은 회색이다. 창문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더니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오늘은 과연 여름일까, 아니면 겨울일까. 사계절은 사어, 즉 죽은 단어가 된 지 오래다. 김정수가 이곳에 처음 왔던 그때부터 계절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매일이 뜨거운 여름이다. 여름을 싫어하는 정수에게 이 지구는 어쩌면 지옥일지도 모른다. 더위에 못 이긴 정수는 창문에 바싹 붙어 있던 얼굴을 떼어내고 책상 앞에 앉았다. 화면은 켜보니 오늘의 과제가 안내되어 있었다. 영화 보고 감상문 쓰기. 정수는 영혼 없이 파일을 재생했다. 고화질의 영상이 대형 모니터를 통해 나왔다. 영화가 재생되자 방 속 조명은 알아서 적절하게 조정되었다. 정수는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텅 빈 눈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저걸 촬영할 당시의 하늘은 파란색인 걸 보니 방영한지 최소 20년은 지난 영화일 것이다. 저 때까지만 해도 1퍼센트의 낭만이 남아있었는데. 정수는 아쉬운 심정으로 깡생수를 들이켰다.

       

      물에 빠지려고 하는 여자를 남자가 뒤에서 붙잡는다. 남자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모래사장 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여자는 우리는 절대 같아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양쪽 발을 바다에 담갔고, 남자가 붙잡을 틈도 없이 커다란 파도가 여자를 집어삼켰다.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영화가 좀 급전개같다는 생각과 달리 정수는 턱끝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정수는 모든 것이 건조해진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촉촉한 사람이었다. 땀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정수는 선반에 있는 키보드를 꺼내 감상문을 타자하기 시작했다. 이 감상문은 아마 연구원들이 돌려 읽을 것이다. 얼마나 자세히 읽는지는 정수도 잘 모른다. 아마 자세히 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덕분에 정수는 감상문에 자아실현을 하곤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도 가감 없이 적는다. 

       

      ‘남자가 여자를 붙잡으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한 감정이 궁금하다. 아마 나는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느껴봤을까? 나에게 미안해서 눈물까지 흘려봤을까. 눈물을 흘릴 정도로 미안한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떤 영화를 봐도 정수는 늘 부모를 원망하는 문장으로 감상문을 끝맺었다. 정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원망이 아니다. 연구원들 모두가 정수에게 왜 부모를 원망하냐 묻지만, 그럴 때마다 정수는 원망한 적이 없다고 답한다. 원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입체적인 감정이다. 싫고 밉고 서운한 게 아니라, 그건 이 사회를 향한, 국가를 향한, 세상을 향한 뿌리 깊은 분노와 설움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기에 부모를 탓하지는 않지만, 그냥 우리가 달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았겠지 하는 좀 특이한 모양의 그리움과 후회. 정수는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정의 내린다.

       

      감상문을 제출하자마자 방송이 나왔다. DFK626 13동 4호실로. 짧은 방송에 정수는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어제도 봤고, 그제도 본 두 연구원이 양쪽에서 정수의 팔을 잡았다. 정수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13동 4호실 문 앞까지 걸어갔다.

       

      13동 4호실 문에는 약 1년 반 동안 '이규원 연구원'이라는 문패가 박혀있었는데 오늘은 이름이 달라져 있었다. 정수는 담당 연구원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챘다. 이규원 연구원이 정수의 다섯 번째 담당 연구원이었으니, 새로 온 곽지석 연구원은 정수의 여섯 번째 담당 연구원이었다. 정수는 담당 연구원이 자주 바뀌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벌써 여섯 번째이다 보니 설렘 같은 건 딱히 없었다. 그냥 또 똑같은 지루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엘리트이겠거니 싶었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자 젊고 눈이 큰 어린 연구원이 정수의 눈동자에 가득 찼다. 인사를 하는 목소리는 살짝 달달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연구원은 여러 가지 서류를 읽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정수에게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으세요?”

       

      그 질문에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미소보다는 눈물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그간 모든 연구원이 던졌던 첫 질문들과 달랐다. 이 사람은 내 마음이 원망이라고 단정을 짓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정수는 간만에 심장이 아주 조금 뛰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곽지석 연구원.”

      “네?”

      “요즘 뭐 하고 지내나.”

       

      그 전화를 받지 말아야 했다. 지석은 연락 끊은 지 백오십 년 된 어떤 교수님의 전화를 받은 것을 아직까지도 후회한다. 교수는 용건이 없는데 안부 물으려고 전화하는 그런 따뜻하고 비효율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전화에는 분명한 용건이 있었다.

       

      “126구역에 연구소 하나가 있는데 거기 자리가 빈다고 해서.”

      “….”

      “의사….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연구소에서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어떤 연구소인데요?”

      “그건 가면 알아. 기밀이라 말 못 해. 여하튼 너는 게이고, 남들이랑 좀 다르니까….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제가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

      “이미 이름 올려놨어. 다음 주부터 가.”

      “예.”

       

      게이이고 남들이랑 다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 남들이랑 다른 사람, 다른 인생. 지석은 교수의 건조한 전화에도 온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그런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남들과는 달랐던 거겠지. 지석은 마른세수를 수차례 하고선 에어컨 온도를 더 낮췄다. 좀 차가운 인간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는 이름이 아니라 1부터 150까지의 숫자를 붙여 말하는 지루한 대한민국에서 지석은 서울에서 태어난 럭키 가이였다.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건 고급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주변에 다 잘난 사람들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석의 주변은 지석과 달랐다. 제 나이에 맞는 진도에도 허덕거리던 지석과 달리 다른 친구들은 월반은 물론이며 서울에 있는 특수한 학교들에 진학하기도 했다. 멀리 볼 필요도 없고, 당장 지석의 사촌들과 형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열일곱에 대학에 갔고 제 나이에 졸업해서 의사가 되었다. 시험 운이 좀 나쁘면 변호사가 되었다. 운이 진짜, 진짜 나쁘면 의과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다른 과에 갔다가 다시 시험을 봐서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지석은 합격한 시험보다 불합격한 시험이 더 많았다. 생일도 1월인지라 빠르게 입학하려고 본 입학 테스트에서 불합격했고 중학교 시험에서도 불합격했으며 고등학교 입학시험 또한 불합격했다. 그리고 이때 지석은 유일하게 한 시험에서 통과하는데, 그건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시험이었다. 

       

      지석의 부모는 부족한 지석을 어르고 달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너는 앞으로 내놓은 자식이다, 알아서 해라, 내일 56구역에 너를 버리고 올 거 다, 이번 시험도 떨어지면 그땐 내가 널 칼로 쑤실 거 다, 라는 말들을 아주 일상적으로 해대는 그런 부모였다. 지석이 고등학교 입학시험마저 떨어졌을 때는 이 아이는 정신질환이 있는 게 분명하다며 지석을 정신병원에 밀어 넣었다. 그런 식으로 입원을 한 학생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지석이 다녔던 서울의 모 정신병원 안에는 학교 교육과정을 진행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지석은 병원 안에서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냈고, 그 탓에 좋은 대학에는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조건을 얻었다. 어찌저찌 아버지의 입김으로 지석은 서울 끝자락에 있는 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거기서 편입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최종 실패, 진짜 찐 최종 실패. 지석이 완전히 실패했을 때 하늘은 노란색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지석은 자신이 거듭된 실패로 미쳐버려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때 하늘은 정말로 노란색이었다.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니라 정말로 하늘이 노란 것이라면, 왜 하늘이 노랗게 질려버린 것일까. 지석은 그 의문 하나로 연구원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성적대와 그 스펙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연구원이었던 것도 맞았지만, 은근히 적성에 잘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사귀던 애인이 지석에게 연구원을 권했다. 

       

      지석의 전 애인은 정신병원에서 만난 착하게 생긴 연하남이었다. 그 아이 역시 부모의 압력에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었고, 지석과는 다르게 퇴원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끝끝내 의과대학에 진학한 엘리트였다. 지석은 애인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실패자임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런데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연애를 지속했다. 하늘이 노랗게 질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아주 무더운 어느 날에 지석의 애인은 지석에게 이별을 고했다. 형이 너무 한심해서 더는 못 만나겠어. 착한 줄 알았는데 아주 못된 놈이었다. 지석은 알겠다고 말한 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기숙사로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땀과 눈물이 섞여 불쾌한 짠맛의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이후 무력하게 하루하루 보내던 중 개싸가지 교수가 전화를 건 것이었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지석은 혹시나 전 애인이지 않을까 하고 전화받았던 것이었고, 지석은 졸업을 앞두고 사실상 강제로 발령받았다. 게이이고, 이별에 이렇게나 아파하는 도태된 현대인인 자신에게 적성인 일이 2900년대에 존재한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어리바리한 곽지석 연구원은 정수에게 처음 보는 약물들을 처방했다. 식사 전에 드시고, 식사 후에 드시고, 아, 이건 자기 전에 드시고. 어리바리해 보여도 나름 꼼꼼해 보였다. 정수는 지석의 안내 사항을 모두 들은 뒤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뭐, 제가 까먹어도…. 다른 연구원분들이 알아서 챙겨주실 텐데요….”

      “아, 맞네. 그러네요.”

      “안녕히 계세요.”

       

      정수는 또 양옆에 연구원을 낀 채로 9동 6호실로 이동했다. 피검사와 엑스레이 등 각종 검사들을 마친 정수는 연구원들과 함께 2동 19호실, 그러니까 정수의 방에 도착한 후에야 혼자가 될 수 있었다. 혼자가 된 정수는 다시 창문 앞에 섰다. 하루가 아주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밖은 여전히 덥지만, 하늘은 이제 검은색이다. 다행히 아직 밤에는 하늘이 까맣다. 정수는 하루가 종료되었음을 인지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루가 지나가듯 나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겠지, 종료되겠지, 버려지겠지.







      정수는 자신이 실험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아마 한 열 살 때쯤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정수는 만 6세 때 연구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자의로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때는 이곳이 연구소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다.

       

      정수는 서울이 아닌 89구역 출신이다. 89구역은 덥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800년 전에는 경상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89구역 자체가 부유하게 사는 지역은 아니지만 정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부유하지 못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대강 행복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새벽에 나가서 아주 늦게 들어오셨지만, 정수는 유치원 종일반에서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 더위를 먹기도 하고 가끔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기도 했다. 그때마다 바라본 하늘의 색은 가끔은 파랗기도, 회색이기도, 검은색이기도 했다. 날이 더웠지만 지금처럼 덥지는 않았다.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 같았던 초록색 잔디 언덕이 점점 말라비틀어져서 황갈색이 될 무렵, 정수는 유치원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원비를 낼 수 없게 된 정수의 부모님은 어린 정수를 붙잡고 정수가 왜 유치원에 갈 수 없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래도 정수야, 동생이랑 집에서 놀면 되잖아. 지수랑 집에서 놀아, 응?”

       

      부모님의 설득에도 정수는 울기에 바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수는 집에서 동생을 돌봐야 했고,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유치원은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밤마다 졸랐다. 몇 달이 지나고 다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정수의 부모님은 일단 정수부터 유치원에 보냈다. 정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은 집에 혼자 남겨졌다. 동네 사람들이 종종 들어와서 봐주기도 했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그 동네는 바쁜 부모 때문에 집에 혼자 남겨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들 그러니 괜찮을 줄 알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늘이 때때로 노랗게 질리는 시절이었다. 최고기온이 80도를 돌파했다고 떠드는 티브이가 정수네 집에는 없었다. 바깥의 기온에 맞춰 적절한 음성 안내를 해주는 인공지능 로봇은 서울 어딘가에 사는 가정집에나 있었다. 정수네 집에는 그런 게 없었다. 정수의 동생은 분 단위로 바뀌는 하늘색이 신기해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은 80도였고, 아무 데나 버려진 오물들이 끓어오르고 있었고, 고작 네 살배기 아이는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정수의 가정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정수는 동생을 잃었고 정수의 부모님은 아이를 잃었다. 장례 비용을 대느라 주머니 사정은 더더욱 여의치 않아졌고 그렇다고 정수를 다시 집에 혼자 두자니 정수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모든 생활에 질리기 시작했다. 정수의 행복만을 바랐는데 앞으로의 길이 까마득했다. 그때 직장에서는 서울의 한 지역에 아이들을 엄청나게 많이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동료들은 아무래도 그게 학교 같다고, 새로운 정부의 정책 중 일부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수의 부모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곧장 트램표를 샀다. 서울로 가는 트램이었다. 성인용 왕복표 두 장과 어린이용 편도표 한 장. 한창 한글을 배우던 정수는 편도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부모님 중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정수는 서울에 갔고 다시는 89구역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곳은 평생 교육을 책임져주는 학교도 새로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세워진 곳도 아니었다. 그저 서울 중 가장 덥고 도태된 커다란 공터에 지어진 연구소였다. 인간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그런 곳이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누가 그런 인류애 떨어진 연구를 진행하냐 하겠지만 연구는 이미 합법화된 지 오래였다. 사실상 실험체들은 연구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터질 것같이 뜨거운 곳에서 방치되는 아이들, 걸음마를 뗀 시기부터 막노동하는 아이들, 영양실조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아이들이 주로 연구소에 들어왔으니, 이들의 인권에 대해 논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실험체로 키워지라는 게 이 세상의 뜻이었고, 국가의 뜻이었고, 가끔은 부모의 뜻이었다.

       

      정수가 속한 연구소에는 현재 정수만이 실험체로 남아있다. 정수와 함께 들어왔던 수십 명의 아이들은 모조리 다 던져졌다. 말 그대로 던져졌다. 연구소는 보통 광활한 공터, 마치 사막 같은 공터에 지어지기 때문에 연구소 밖으로 나가면 3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너무나 덥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사막을 피해 지하로 통하는 열차를 타고 출퇴근한다. 가끔 내쫓아지고도 지하에 몰래 들어가 노숙하는 방출된 실험체들도 있지만 발각되면 다시 밖으로 던져진다. 필요한 만큼 쓰이고 버려지는 것. 정수는 열두 살 무렵 이 연구소의 모든 시스템을 간파해 버렸다. 친구 한명 한명이 사라질 때마다 정수는 완벽하게 노랗게 질린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다음 생에는 부디 친구가 달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곽지석 연구원이 온 이후로 정수는 열심히 약물들을 복용했다. 약을 그렇게 때려 넣는데 속이 메스껍지도 않았다. 여전히 과제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적는 것이었다. 정수는 영화를 재생했고, 이번에 나온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였다. 하늘이 노란 걸 보니 이건 좀 최근에 촬영한 영화인가 보다 싶었다. 외계인과 인간은 아주 깊은 관계였고, 외계인은 결국 외계로 돌아가는 슬픈 내용의 영화였다. 그러나 정수는 이번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외계인이 고향에 돌아가서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감상문도 상당히 건조했다. 이번에는 영화를 봐도 가족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외계인이 고향에 돌아가게 되어서 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살던 곳은 덥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나는 딱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1부터 150구역에 살 바에는 서울에서 살고 싶다. 다음 생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싶다.’

       

      정수의 감상문을 읽던 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물론 정수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연구는 놀랍도록 계획대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내가 정말 연구원이 천직이었던 걸까. 지석은 당장이라도 전 애인에게 연락해 내가 이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고 싶었다. 한편으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게, 그것도 말라비틀어진 세상에서 사람을 더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연구가 과연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 지석은 차라리 자신이 실험체가 되어 좀 건조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석은 모니터에 연구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 

       

      ‘DFK626이 감정 상태에 이상을 보임. 전두엽 기능 저하 증상 사라짐. 코르티솔 호르몬은 감소한 반면 도파민, 세로토닌은 일정하게 유지됨.’

       

      일지를 적고 지석은 맞은편에 앉은 정수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어딘가 훨씬 텅 비어 보이는 눈동자에 지석은 그 눈빛을 피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려는데 정수가 입을 열었다.

       

      “곽지석 연구원님.”

      “네.”

      “제가 처음 만났던 연구원님하고 닮았어요.”

      “아, 그래요?”

      “그분은 40대였는데….”

      “노안이라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냥 닮았다고요. 그분 되게 좋은 분이었는데…. 아무튼 내일 봬요.”










      ‘남자랑 남자가 사랑을 하고, 편견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지만, 세상에 있는 편견은 대부분 깰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 순응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성과 남성이 결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동성 결혼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재까지 합법화되지 못한 것을 보면, 이 영화는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

       

      지석은 정수의 감상문을 읽고 작게 웃었다. 뭐가 웃기죠? 정수는 냉랭한 표정을 하고서 지석에게 물었다.

       

      “말투가 엄청 단호해 보여서…. 그게 좀 재밌네요.”

      “…. 그, 제가 전에 연구원님하고 제가 아는 다른 연구원님하고 닮았다 했었잖아요.”

      “네.”

      “제 청소년기 내내 그분이 제 담당 연구원이었는데,”

      “….”

      “솔직히 좀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 연구원분은 남자셨고요.”

      “….”

      “그래서 이번 영화를 보는 데 마음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

      “저는 그 연구원분이랑 나이 차이도 크게 났고, 동성이었고…. 무엇보다 저는 그냥 인간만도 못한 실험체고 그분은 연구원이었는데….”

      “….”

      “잘 모르시겠지만, 연구원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환경…. 서울 내에서 빵빵하게 에어컨 맞으면서 산 사람하고 실험체로 사는 게 그냥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저 같은 사람이 이어지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

      “그냥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분을 좋아했던 건가 싶고 그러네요.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지 뭐….”

      “….”

      “너무 아무 말이나 한 것 같네요. 곽지석 연구원님은 잘 알지도 못할 것 같은 이야기를.”

       

      바쁘게 타자를 하던 지석의 손이 멈췄다. 잊고 있던 이별의 아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사회이지만 지석은 아주 조금 그 말을 믿었다. 무엇보다 지석은 씁쓸한 표정의 정수를 그저 방치할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실적 좋은 연구원이었지만 그 정도로 이성적인 연구원이 될 위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삼가라는, 상담 중 지켜야 할 규칙을 크게 어겨버렸다.

       

      “저도 뭐 좋은 곳에서 자랐고…. 김정수 씨랑은 많이 다르게 살아왔지만….”

      “….”

      “저도 그런 죽었다 깨어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과 사랑이 뭔지는 알 것 같아요.”

      “….”

      “저는 붙은 시험보다 떨어진 시험이 많아요. 연구원도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고. 어떻게 들릴 지는 모르겠다만, 이렇게 한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건 아직도 미친 짓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기는 하는데.”

      “….”

      “제가 사랑한 사람은 저랑 많이 달랐어요. 시험을 보면 다 붙고, 그 친구는 지금 의사인데, 인체 실험도 아무렇게나 그냥 막 하고요. 또 저랑 동성이고요.”

      “….”

      “결국 제가 능력 없고 창피해서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서로 조건 안 맞거나 한쪽이 좀 힘들면 막말하고 헤어져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엄청나게 막말 듣고 헤어졌어요.”

      “….”

      “집에서는 남자 좋아한다고, 왜 뭐하나 평범하게 하지를 못하냐고 하고, 애인은 제가 할 수도 없는 일들을 좀 해보라고 강요하고.”

      “….”

      “…. 쉽지 않네요. 쉽지 않아.”

      “맞아요. 쉬운 게 없더라고요.”

      “….”

      “그래도 저는 쓰임을 다하면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죽을 텐데. 연구원님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잖아요. 요즘 수명도 엄청 긴데. 긴긴 삶을 그렇게 원하는 거 하나도 못 하면서 산다는 게…. 쉽지 않죠.”

      “김정수 씨는…. 안 죽을 거예요.”

      “안 믿어요.”

      “…. 죽지 않게 할게요.”

       

      지석의 말에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진짜 제 예전 담당 연구원님하고 닮았어요. 지석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정수의 이전 연구원들에 대해 모두 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정수를 담당했던 첫 번째 연구원은, 당시 열네살이던 정수와 약 여덟 살 차이였는데, 연구소에서 해고를 당했다. 정수에게 고의로 약물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수의 첫 번째 담당 연구원은 정수가 쓸모없는 실험체로 전락해 죽임당하는 것을 막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부러 연구의 속도를 늦췄다. 꽤나 오랜 기간에 거짓으로 작성된 연구일지가 발각되어 그 연구원은 해고가 된 것이었고, 정수도 그 사실을 들었다는 걸 지석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석은 정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당신도 그 사람처럼 마음씨가 지나치게 좋은 아주 도태된 인간이네요.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석은 제게 남은 마지막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저와 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정수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석은 약물을 대폭 축소했다. 일지에는 거짓으로 복용량을 기재했고, 정수의 영화 감상문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글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뛰어난 연구 실적으로 촉망 받던 곽지석 연구원은 다시 감이 없고 머리가 나쁜 하위급 연구원으로 분류되었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아버지가 막말을 쏟아부어도 지석은 왠지 모르게 이전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합격하지 못하는 시험을 볼 때보다, 끌려오듯 연구소에 부임했을 때보다, 어울리지 않는 연구를 하고 실적을 내 거짓된 보람을 느꼈을 때보다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정수는 지석과 감상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보고 싶은 가족들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도 곽지석 연구원이 잘릴까 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너무나 다르게 살아온 둘은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았기에 대화가 잘 통했다. 두 사람 모두 하루 중 상담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생활하면서 만나는 사람 중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만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기서 연애하기는 글렀지만, 다시 태어나면 저는 따뜻한 사람 만나고 싶어요.”

      “여기서도 마음만 먹으면 연애할 수 있지 않나요?”

      “여기 실험체 이제 저밖에 안 남았어요.”

      “널린게 연구원이잖아요. 연구원이랑 잘해보시지 왜.”

      “연구원이 저랑 어떻게 만나요.”

      “뭐 아주 안되는 건 아니겠죠…?”

      “그 사람도 죽고 저도 죽을 텐데…. 아니, 그 사람은 안 죽겠죠, 그 사람은 국가에서 인간으로 취급할 테니까. 저만 죽겠죠. 저만.”

      “저도 다시 연애하면….”

      “….”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 좋아요. 제가 능력 없어도 막말하지 않는 사람. 이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요. 이런 연구도 막 하지 말라고 하고.”

      “연구원님도 아무래도 실험체 같은 사람이랑 만나셔야겠네요. 이런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실험체 뿐이니까요. ”

      “하하. 그런가요.”

       

      상담이 끝나고 지석은 정수의 신체검사 결과를 분석하곤 했다. 요즘 정수의 신체에는 특이 사항이 생겼다. 도파민 증가, 옥시토신 증가, 세로토닌 증가,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 증가. 일지를 작성하던 지석의 손이 멈췄다. 정수의 신체가 너무나 명확하게 한가지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한 정수는 밤에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콩닥거렸고, 식욕도 좀 줄었다. 정수는 제 신체검사 결과를 알지 못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걸 잘 알았다. 정수는 밤잠을 설치며 한숨만 연이어 쉬었다. 이 닭장 같은 곳에서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정수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졌다. 정수는 남들보다 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눈물을 흘리며, 이러한 면 때문에 정수는 최종 실험체로 선정된 것이기도 했다.

       

      다시는 연구원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정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사랑은 언제나 늘 자극적이고 매력적이라 또다시 정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죽는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곽지석 연구원의 커다란 눈동자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되었다. 상담 시간이 몇 시간 남았는지 정수는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이건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생각에, 정수는 다시 한번 더 절망했다. 절망스러우면서도 내일이 기대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정수는 내일이 기대되었다. 하늘의 색이 다시 파란색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곽지석 연구원 요즘 실적이 너무 나빠. DFK626 상태가 왜 이래?”

      “효과가 좀 더딘 것 같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저번에도 그래서 기간 늘려주지 않았나.”

      “너무 짧습니다. 3개월만 더 늘려주세요.”

      “이게 얼마나 중대한 연구인지 몰라서 그래? 3개월 뒤에도 실적없으면 담당 연구원 교체할 거야.”

      “네.”

      “복용량을 늘릴 수는 없어? 실험체 상태가 어떤데?”

      실험체라는 말에 지석은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실험체 김정수, 아니, DFK626 은 현재 도파민이 증가했고, 식욕이 감소했으며, 이는 유대관계,”

      “됐고. 연구원은 무조건 실적 싸움이야.”

      “…. 네, 알겠습니다.”

      “자네도 살면서 한 번쯤은 좀,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수석 연구원의 잔소리에 지석은 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말이지, 못 해 먹겠다. 지석은 퇴사를 고민했으나 김정수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김정수는 사실 약물을 투여하면 그 효과가 곧장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다른 연구원이 김정수를 담당하고, 복용량을 늘려서, 그 효과가 입증되면 연구는 종료되고, 김정수는 버려진다.

       

      일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지석은 알았다. 3개월 뒤면 자신이 김정수를 담당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일단 지금은 빨리 상담하러 가고 싶었다. 김정수가 보고 싶었다.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인간 김정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늘 빨갛게 달아오른 손을 만져보고 싶었다. 

       

      상담실로 걸어가던 지석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목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연구원은 철저히 양의학에 의지했지만, 지석은 맥박 정도는 믿었다. 맥박이 터질 것 같았다. 빠른 심장박동과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 젠장. 지석의 몸에도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있었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둘은 언젠가부터 영화 이야기보다는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담은 상담의 역할을 잃은 지 오래였고 일지를 타자하던 지석의 손은 정수의 손과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러다 스치기라도 하면 두 사람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수의 귀 끝이 붉어졌고, 지석의 손은 정수의 손을 잡지 못한 것이 아쉽기라도 한 듯 쉴 틈 없이 꼼지락댔다. 지석과 정수 모두 온몸이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오직 뇌만이 그 사실을 거부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무 외로워서, 혹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사랑이라고 느끼는 거야, 라고 자기 최면을 했다. 그러다 한 영화의 감상문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둘의 뇌는 감정을 거부하는 것을 멈췄다.

       

      그 영화는 아주 오래전에 촬영된 영화였다. 한 배에 타서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는, 아주 빤한 이야기의 영화였다. 정수는 그 영화를 보며 역시나 눈물을 흘렸고 감상문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었다.

       

      ‘연구원님과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떨지 상상했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났지만, 나는 그 상상을 통해 비로소 남자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감상문을 읽은 지석은 정수에게 말했다.

       

      “김정수 씨가 저를 살려주실 거라는 뜻이죠?”

      “당연하죠.”

      “저도 저 영화 봤는데. 저는 제가 김정수 씨를 살릴 것 같아요. 저는 살아도…. 의미가 없거든요.”

      “실험체인 제가 더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안 살면 되죠. 그런 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면…. 도망갈 수 있잖아요. 그러면 신분도 새로 생기고…. 정수 씨는 시인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시인이라니…. 시인이라는 직업이 아직 있는 직업은 맞죠?”

      “그럼요.”

      “…. 근데 저는 그래도 곽지석 연구원님을 살릴래요.”

      “왜요?”

      “그냥 그러고 싶어요. 온몸이 그렇게 하라고 얘기하네요.”

      “….”

      “…. 몸은 한참 전부터 그러라고 했는데, 머리가 거부했었는데…. 이제는 머리도 그러라고 해요.”

      “….”

      “저는 진짜 왜 이럴까요. 어차피 안될 거라는 거 아는데,”

       

      지석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곤 가운을 벗어 상담실 상단에 있는 CCTV를 향해 던졌다. 운 좋게 가운이 한 번에 CCTV에 걸렸다. 반팔 차림의 지석은 놀란 눈동자를 한 정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건 연구원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냥, 인간 곽지석의 눈빛이었다. 감정에 아주 충실한 곽지석의 눈빛이었다.

       

      지석은 손을 뻗어 정수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것도 상담의 일종인가요? 정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지석은 가벼운 미소를 지은 뒤 정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입술이 닿았고, 지석은 정수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정수의 맥박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건 명백히 노르에피네프린의 과다분비였다.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사랑이었다. 사랑. 그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정수가 입술을 움직여 사랑을 말했다.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곳에서, 둘은 꿋꿋하게 사랑을 말했다.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는 딱히 망설일 것이 없었다. 상담하는 시간은 하루 중 30분, 길어봤자 1시간이었지만 지석과 정수는 마치 그 시간이 영원인 것처럼 보냈다. 지석은 근육의 강직도를 검사한다는 핑계로 정수의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기도 했고, 정수는 영화 감상문을 가장한 연애편지를 적기도 했다. 상담과 일지 기록은 오직 지석의 몫이었으므로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석이 상사와 약속한 3개월도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정수를 향한 마음은 더욱 커져가는데 시간은 없었다. 정수와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수가 이전에 봤던 그 영화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지석은 무조건적으로 정수를 구할 생각이었지만 방법이 필요했다. 이 모든 감정이 들통나면 우린 사이좋게 내쫓아질 것이고, 터질 것같이 뜨거운 공터에서 서로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둘 다 사이좋게 죽겠지. 지석은 그런 결말은 원하지 않았다. 정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정수 역시 지석과의 마지막을 상상했다. 정수는 지석과의 관계가 들통날 때쯤에 11동에 있는 약물 창고에서 약물을 과다 복용하여 제 발로 세상을 떠날 생각이었다. 실험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연구는 자동으로 무효가 되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수는 지석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정말 죽을 만큼 사랑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의 어떤 이름 모를 가수의 이름 모를 팬픽에도 적혀 있듯 농도가 짙은 사랑은 눈에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연구소 속 사람들은 감정이라는 것을 하대하고 멸종시키기 위해 온 정성을 쏟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연구소 속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정수의 이동을 돕던 연구원 중 한 명이 지석과 정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석은 연구소 속 수석 연구원에게 호출을 당했다.

       

      “3개월도 거의 다 지났고, 들리는 소문도 안 좋은데…. 내가 너를 계속 고용해야 할 이유를 말해봐.”

      “…. 실적 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연구를 미루는 이유가 뭐야?”

      “…. 더 정확하게, 진행하고 싶어서,”

      “정확하게? 실험체랑 붙어먹는 게 정확한 건가?”

      “….”

      “자존심도 없는 놈. 천박하고 더러운 인간만도 못한 것들이랑 붙어먹을 생각을 한다는 게….”

      “….”

      “원래 동성애자들은 다 그런 거야 아니면 너만 그런 거야? 네가 연애 경험이 부족하고 살아온 게 기구해서 그 실험체가 꼬드긴 거에 넘어간 거지?”

      “그런 거 아닙니다.”

      “됐고…. 해고야 너.”

       

      수석 연구원의 마지막 말과 동시에 연구소에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DFK626 제11동 4호실로.

       

      11동은 약물 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지석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11동을 향해 달려갔다. 수석연구원은 얄미운 목소리로 모든 게 끝났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정수는 영문도 모른 채 약물 창고에 끌려가 그간 섭취하지 못했던 약물을 모두 먹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고 거절의 의사를 표시해도 연구원들은 미동도 없었다. 그게 원래 정수의 삶이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삶, 존엄성을 훼손당하는 삶. 고용량의 용액들을 수액으로 맞고 토가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의 알약을 쉬지 않고 먹었다. 덩치가 곰만 한 경비원들이 정수의 양팔을 붙잡고 정수가 그 약물들을 모두 삼키는지 확인했다. 

       

      11동에 뒤늦게 도착한 지석은 당연히 입구에서 붙잡혔다. 이제는 더 이상 연구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경비원들을 뿌리치기엔 지석은 힘이 약했다.

       

      한편, 밀린 약물을 모두 복용한 정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약물의 효과가 벌써 나타난 것이었다. 정수는 지석이 해고될 거라는 것을 눈치챘다. 지석과는 헤어질 것이고, 자신은 약을 아주 많이 먹고 결국 공터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라는 걸 정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쉽지는 않았다. 죽는 것보다 지석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게 억울했다. 정수는 지석을 죽을 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정수는 메스꺼운 속을 붙잡고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가락을 입안으로 쑤셔 넣어 강제로 구역질했다. 그러나 약물이 너무 완벽하게 흡수된 것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는 깨질 것 같았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정수는 홀린 듯이 창문에 붙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노랗다. 하늘은 다시는 파래질 수 없다. 앞으로도 영영 노랗게 질려 있을 것이다. 정수는 뜨끈거리는 얼굴을 뜨끈거리는 창문에 밀착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내일이면 담당 연구원이 바뀔 테고, 무슨 목적의 연구인지 정수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연구 목적이 달성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황무지로 던져질 것이다. 지석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한 채로. 그러면 아주 외롭게 죽겠지. 더위 속에서 아주 고통스럽게 서서히 숨이 멎겠지. 정수는 제 뺨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분명 눈물이 나온 것 같았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수는 작게 아, 하고 탄식했다. 이런 거구나, 이런 연구였구나.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또래보다 눈물이 많고 감정의 폭이 다양한 본인을 최종 실험체로 선정한 것도, 연구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참 쉬운 존재를 실험체로 선정한 것도 정수는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의 눈물을 아주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그런 연구였구나. 그런 거였네. 정수는 손바닥을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지석만 생각하면 터질 것 같은 심장이 그다지 터질 것 같지도 않았다.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정수는 분노에 찬 상태로 그대로 문고리를 잡았다. 이런 연구는 명백히 실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이딴 연구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의 씨를 말려버리는 것, 동물의 고유한 감정, 급기야 사랑까지 멸종시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면 정수는 연구의 실패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수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11동을 향해 달렸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퇴근해서 경비원들만이 정수를 쫓아왔다. 정수는 달리고 또 달려서 11동 현관 앞에 섰다. 문제는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수의 얼굴을 감지한 센서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결국 정수는 문고리를 부쉈다. 문을 몸으로 밀치고 정수는 약물 창고를 향해 달렸다. 정수는 가장 독한 약을 찾았다. 먹고 죽어버릴 각오였다. 십여 년간 공들여 키운 실험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최소한 연구가 지연되기라도 하지 않을까. 약을 찾는 손이 벌벌 떨렸다. 경비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정수는 아무 약이나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문이 열렸다. 덩치가 곰만 한 그 경비원들이 정수를 끌어냈다. 그리고 강제로 또 다른 약물을 정수의 팔에 꽂았다. 이번에는 저항할 틈도 주지 않았다. 정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이 연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연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정수를 불렀다. 김정수 씨!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이 연구소에서 김정수를 DFK626이 아니라 김정수라고 부르는 사람은 곽지석이 유일했다. 정수를 향해 달려온 지석은 덩치가 곰만 한 연구원들을 밀쳤다.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는 지석도 정수도 모른다. 지석은 정수의 팔에서 해독제를 빼고서 말했다.

       

      “죽지 말아요.”

      “저 이 연구가 뭔지 알아요. 이제.”

      “….”

      “인간을 메마르게 만드는 거잖아요.”

      “….”

      “그런 연구는 성공하면 안 되는 거예요,”

      “….”

      “저는 곽지석씨를 사랑하고 싶어요.”

      “…. 김정수 씨,”

      “사랑하는 채로 죽고 싶어요. 다 까먹고 말라비틀어지기 싫다고요.”

       

      해독제를 꽉 쥐고 있던 지석의 손에 힘이 풀렸다. 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석을 마지막으로 끌어안았다. 잘 있어요. 정수는 나지막이 인사를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정수는 11동과 10동을 지나 1동을 향해 달렸다. 1동은 연구소 정문이 있는 곳이었다. 정문도 몸빵하면 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문의 보안은 더욱 철저했다. 역시나 정수를 감지한 센서가 강력한 사이렌을 울렸다. 참 공포스러운 것은 경비원들은 어떻게든 정수를 살린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려서, 어떻게든 정수를 실험체로 사용할 것이다.

       

      이대로 물러서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 머리가 산발이 된 지석이 제 지문을 출입문에 가져다 댔다. 연구원은 정문을 여닫을 권한이 있었다. 정수는 뒤를 돌아 지석을 바라보았다. 지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정수는 뺨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눈물이 느껴졌다.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딴 개같은 연구는 애초에 잘 될 수가 없는 거야. 사랑을 무력화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사랑뿐일 거야. 정수는 지석에게 손 인사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정문 밖으로 나갔다.

       

      사막과 비슷한 건조한 땅이 정수를 반겼다. 어찌나 덥던지 나가자마자 땀이 주르륵 흘렀다. 눈앞이 핑 돌았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걷는 정수를 붙잡는 건 지석이었다. 지석 역시 정수를 따라 연구소 밖으로 나왔다. 지석이 바람을 뚫고 아주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잘했죠.”

      “…. 보고 싶었어요.”

      “애초에 이건 실패할 연구였던 거예요. 나를 연구원으로 고용하다니.”

       

      둘은 꽤 오랜 시간 버텼다. 80도, 90도에 육박하는 건조한 황무지 위에 둘은 나란히 발걸음을 남겼다. 정수가 먼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석도 정수를 따라 주저앉았다. 뜨거운 공기에 심장이 잔뜩 팽창된 기분이었다. 지석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좀 있다.”

      “….”

      “좋은 데서, 진짜 좋은 데서 다시 만나요.”



      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자요. 그리고 지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모래사장 위로 쓰러졌다.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더위 속에서 딱 하나만이 타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다. 

       

      사랑, 영원히 죽지 않을 단어.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이 사어가 되는 그 세상 속에서 사랑은 영영 死語가 될 수 없다.


      LIST
      FICTION

       

       

      엘리제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일

       



      ◆ ◇ ◇






      사람의 쓸모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쓸모 있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더러는 어딘가에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주체이지 객체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먹고, 달리고, 꿈꾸고, 사랑하고, 일을 한다. 그러한 행위에는 스스로의 욕구 외에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다. 반면 나의 경우 명백한 쓸모가 있기에 태어났으며, 철저히 쓸모에 의해 살아간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동일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렇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정의한 바에 의하면 말이다.




      -




      수요일 오전 열한 시 삼십 분. 팔꿈치 안쪽 주사 자국을 꾹 눌러 지혈한다. 잠도 덜 깨어 몽롱한 정신으로 하얀 대리석 바닥을 멍하니 바라본다. 대기실 소파는 푹신하고, 주변은 온통 새하얀 벽과 천장이라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정말 하늘을 날아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면 차가운 안개가 잔뜩 낀 허공뿐이겠지만. 정수가 들었다면 굳이 그렇게 감수성 다 깨뜨리는 말을 덧붙여야겠냐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실인데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정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도 피식 웃겠지.

       

      매월 셋째 주 수요일에는 기초적인 검진 후에 처치를 받는다. 주로 감각수용과 운동기능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대사 및 장기 기능을 점검한 뒤 각종 약물이나 병원체에 대한 신체 반응성을 테스트한다. 백신 접종도 주로 이날에 이루어지는데, 접종 후에는 무리하지 않도록 하루 혹은 반나절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각종 검진과 처치가 귀찮기는 하지만, 평소와 비교하면 널널한 편이기에 가끔 있는 접종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보통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나오면 준비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은 가벼운 재활과 운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점심을 먹은 후엔 인지기능과 뇌의 가소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한다. 기본적인 지식이 주입되기는 했어도 뇌의 발달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주로 지루한 퍼즐 게임이나 신경과학적으로 설계된 과제들을 수행한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이 육체로 살아갈 이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그게 내가 될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나를 인식하는 한 ‘그릇’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수명이 다해가거나,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몸을 대체할 용도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일컬어 ‘그릇’이라 한다. 극히 사용 목적에 집중한 명칭이다. 단순히 클론이나 레플리카와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데에도 그러한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본인들이 정해둔 그릇으로서의 용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너는 그릇 치고 생각이 너무 많아.”

       

      … 정수는 매번 그렇게 말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는 것을 가만히 들어주다가도, 내가 그들이 그어놓은 선을 조금만 넘으려 하면 단호해졌다. 그러는 자신도 늘 생각 속에 파묻혀 살면서 그랬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종류로.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까지 그릇이 되려는 건데?”

       

      벌써 몇 번이고 했던 질문이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폐기되는 게 무서워서? 그릇으로 쓰이고 지금의 내가 사라지는 건 안 무서워? 정수는 이번에도 못 들은 척 몸을 둥글려 이불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내 침대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는 대신 옆에 몸을 뉘었다. 정수는 꾸물거리며 공간을 내어주었다.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이렇게 살아있는데, 숨 쉬고, 생각하고, 말을 하는데. 왜 누군가의 기억을 주입 당해 그의 삶을 살아내어야 하는지 영영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삶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김정수는 더더욱 그렇다. 고개를 돌리니 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다. 나를 잃고 그릇이 된다는 건 이 눈동자를 잊어버린다는 뜻일 테다. 정수가 그릇이 된다면, 이 눈동자가 더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절대로 전해지지 못할 눈빛을 보낸다. 너는 정말, 그렇게 되어도 좋은 거냐고.




      -




      1년 전 겨울, 백신을 맞고 나서 고열에 시달린 어느 새벽이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라는 말에 물을 계속 마셨더니 요의가 밀려와 잠에서 깨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머리는 어지럽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백신이 아니라 그냥 생바이러스를 접종한 게 아닌가 싶었다. 비척비척 방 밖에 나와 보니 난방이 닿지 않는 복도 바닥은 냉골이었고, 눈보라가 친다더니 창밖으로 휘이, 바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누군가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았다. 마침 다리에 힘이 풀리려던 차라 그에게 안기다시피 기대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방에서 고작 열 발자국 떨어진 화장실을 간신히 다녀오고서야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를 방에 데려다 놓고는 체온계를 가져왔다. 38.4도. 곧 물수건이 이마 위에 얹어졌다. 시원한 기운에 핑 돌던 눈앞이 조금 맑아지면서, 그제야 고마운 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데, 대체 누구일까.

       

      “아침에도 열이 안 떨어지면, 선생님께 해열제를 달라고 해볼게요.”

       

      그는 이불을 목 아래까지 덮어주고는 아이 재우듯 내 가슴께를 도닥였다. 스르륵 감기려는 눈꺼풀을 겨우 붙잡고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요, 잠이 안 와요?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어지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누구세요…?”

       

      갈라지는 목을 짜내어 물었다. 옆 동의 연구원? 다음 달에 새로 오실 예정이라던 간호사 선생님?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저는, 음, 59번 방에 있어요.”

       

      59번은 복도 끝에 위치한 그릇의 방이다. 아무도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빈 방으로 알고 있었는데. 현재 그릇 실험을 진행 중인 개체는 114번, 125번, 128번 세 채였다. 59번이면 못해도 3년도 전에 기억이전수술이 끝나고 밖에 나갔어야 하는 순번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릇이라면 모두 필수로 나와야 하는 일과시간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 실험을 시작하는 개체일까. 이곳의 규칙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우선 틀린 부분부터 짚었다.

       

      “해열제라면 간호사 선생님 마음대로 받을 수 없을 거예요. 닥터의 처방이 있어야…”

       

      “제가 말한 선생님은 닥터 노아예요. 간호사 선생님은 저를 모르실 거예요. 음, 그리고 당신도 모른 척해줘야 하는데. 선생님 외에 제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는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당신도 그릇이 맞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과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그릇이 모두 잠든 이 시간에 복도에 있었던 거나, 개인적인 처방 부탁이나, 어느 것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그릇 간 사적 대화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는 주요 원칙을 어기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은데, 그 산이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바람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침대 옆은 당연하게도 비어 있었다. 다만 베개 옆에 떨어져 있는 축축한 물수건에 간밤의 만남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뜬 지 몇 분 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을 확인하고 가져온 해열제를 놓아주며 물었다.

       

      “혹시 닥터가 왔다 가셨나요?”

       

      “아뇨?”

       

      “근데 어떻게 아셨지. 아침부터 스테이션 찾아오셔서 114번 방에 해열제 놔 달라고 하셨거든요.”

       

      “하하, 글쎄요…”

       

      찔리는 구석이 있어 웃어넘기는데, 밤새 가라앉지 않은 열 때문인지 땀이 비죽비죽 흘렀다. 간호사 선생님은 연신 이상하네,를 내뱉으며 해열제가 잘 들어가는지 링거액을 확인하고 방을 나갔다. 확실히 이상하다. 이상하고, 궁금하다. 곧장 일정 관리용 태블릿을 확인했다. 내 상태를 보고 연구원들이 이미 조정해 두었는지 오늘은 휴식과 식사 외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곧장 방을 나가려다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이 툭 걸렸다. 이십여 분 후면 바늘을 제거하러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오실 테니, 그때까지만 호기심을 잠깐 미루기로 한다.

       

      가만히 누워 그의 얼굴을 흰 천장 위에 그렸다. 눈매는 조금 뾰족했지만 매섭지는 않았고, 볼은 동그랬다. 인상만큼이나 순한 성품으로 보였다. 침대에 발이 묶인 채 정신은 온통 복도 끝 59번 방에 가 있었다. 완성 기간이 한참 지나도록 아직 그릇이 되지 않은 그라면, 나의 짧은 생에 가장 깊이 품은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링거 바늘을 제거하고 나간 간호사 선생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 59번 방 앞에 섰다. 똑똑. 노크 소리가 작게 울렸다. 방 안쪽은 여전히 조용했다. 너무 작아 못 들었나 싶어 이번엔 조금 더 크게 두드리려는 순간, 달칵 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살짝 열렸다. 문틈 안으로 보이는 방은 환한 복도와 달리 대낮에도 어둑해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엉거주춤 서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내게 간이의자 하나를 꺼내어 주고 자신은 맨바닥에 앉았다. 침대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앉아서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몸은 좀 괜찮은가요?”

       

      “네, 덕분에요.”

       

      “누가 방에 오는 건 처음이라, 드릴 물 한 잔도 없네요.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멋대로 왔는걸요.”

       

      그의 방은 내 방의 구조와 크게 다를 것 없었으나, 침대 위에 인형이나 선반에 놓인 작은 모형들이 시선을 끌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무엇부터 물어야 할까. 당신에 대해, 닥터에 대해, 나에 대해. 머릿속에서 여러 질문이 뒤섞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얘기해도 된다며 차분히 기다렸다.

       

      “그냥, 왠지… 궁금해서요. 다른 그릇들이랑, 좀 달라 보이셔서.”

       

      “저는 엄청 평범한데.”

       

      “연구원들도, 간호사 선생님도 아무도 모르는 그릇이 평범한가요?”

       

      “하하…”

       

      “해열제 부탁은 어떻게 한 거예요? 닥터가 왔었나요?”

       

      “아뇨,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이 닥터가 비밀리에 단독으로 관리하는 그릇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실험이 무기한 중단된 상태였는데, 비교적 실험 초기였던 50번 대까지는 그러한 경우가 많아 큰 이슈가 될 사건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 내내 그는 닥터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눈빛과 목소리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묘하게 신경이 쓰여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닥터를... 좋아하세요?”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한다는 건 연애 감정을 말하는 거겠죠? 전혀요.”

       

      뭘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네. 노아는…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그는 무릎을 당겨 안아 웅크리고, 한쪽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았다.

       

      “의외긴 하네요. 감정을 질문하는 그릇이라니. 선생님이랑 면담 때에도 그런 적 있나요?”

       

      “음… 아뇨.”

       

      “… 앞으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곧바로 되물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조금 슬픈 눈빛을 하고서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정수라고 불러. 내 이름이야. 다른 그릇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갑자기 짧아진 말끝에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으나 그는 생긋 웃기만 했다.




      그 후로도 정수를 종종 마주쳤다. 그는 귀신같이 아무도 없는 순간에만 나타났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거실과 스테이션이 텅 비어 있는 새벽 시간이 아니면 그의 방이나 내 방에서만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의 방에는 여전히 잡동사니가 많았다. 그 중 선반 위에 못 보던 것이 생겨 구경하고 있으니 정수가 옆으로 다가와 설명해 주었다.

       

      “그건 톰과 제리라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야. 회색 고양이가 톰, 갈색 쥐가 제리. 주로 제리가 톰을 약 올리고 도망치고, 톰은 제리를 뒤쫓다가 골탕먹는 내용이야.”

       

      “이런 건 어디에 써?”

       

      “그냥 장식인데. 귀엽지 않아?”

       

      …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이런 걸 침대 머리맡에 두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톰과 제리 중 제리가 나랑 비슷하다며 손에 쥐여주기에 내 방에 가져와 머리맡에 두었다. 이런 건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을 때 정수는 우물쭈물 말을 흘렸는데, 그는 가끔 연구소 밖으로도 나가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정수에게서 창문을 열었을 때 나는 겨울의 냄새가 나서 알았다. 당연히, 다른 그릇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정수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왜 실험과제에 참여하지 않는지, 왜 여기 있는 모두가 그를 모르는지, 연구시설 밖엔 무엇이 있는지, 왜 내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건지. 궁금증이 일 때마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언뜻 차가워 보였던 그 얼굴에 질문을 삼켜낼 때마다 목에 알약이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닥터 노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현 기억이전연구소장이다. 언제나 부스스한 중단발 머리를 아래로 질끈 묶고, 눈 밑은 시커멓게 죽은 채 힘없이 터벅거리며 연구소 건물을 돌아다닌다. 연구소 내 다른 박사들도 있으나, 그 중 오로지 노아만이 그릇들을 직접 마주하기에 이 건물에서 닥터라고 하면 곧 노아를 가리킨다. 이곳에서의 모든 처치나 검사는 닥터 노아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며, 그릇이 될 실험체들은 닥터와 달에 한 번씩 일대일 면담을 한다. 59번, 김정수만 빼고. 정수는 닥터와 정해진 시간 없이 만나는 것 같았다.

       

      닥터 노아를 두고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그릇이라면 모두 닥터가 아버지인 셈이긴 하지만, 그런 맥락으로 한 말 같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정수와 많은 이야기를 했으나 그는 닥터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정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다. 당장 실험 대상인 내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어도 되냐고 물으니 이미 노아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내 방에 와서 문도 꼭 걸어 잠그고,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보아 거짓말일 가능성이 컸다.

       

      그가 해준 이야기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릇은 주로 의뢰한 사람의 유전자나 기증된 유전자를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매번 쓰이는 재료가 다르니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지 않고, 사용된 유전자에 따라 외형도 내면도 다르게 형성된다. 특히 다른 장기에 비해 뇌의 발달은 편차가 크다. 어떤 실험체는 모든 실험이 끝나고 준비 과정을 거친 후에도 정체성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반면, 또 다른 실험체는 너무도 명확한 자아를 가지고 그릇이 되기를 거부한다. 후자의 경우 새로운 기억으로 형성되어야 할 자아와 충돌하여 해리장애를 발생시키거나, 기억을 온전히 이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기억이전수술을 진행할 수 없다. 이에 수술을 확정하기 전에 자아 형성도 테스트를 거쳐 부적격 개체를 걸러낸다. 통과한 개체는 곧바로 그릇이 될 준비에 들어가고, 걸러진 개체는 담당 연구원과 관계자들의 심의로 앞으로의 처분이 결정된다. 수술을 보류하고 실험을 재개하거나, 혹은…

       

      “또 무슨 생각해?”

       

      눈앞에 불퉁한 얼굴이 불쑥 들이밀어진다. 딴 생각을 하다가 그의 말을 놓쳤나 보다. 대답 대신 말랑한 뺨을 잡아당기자 입술이 댓 발 나와서는 구시렁댄다. 자아 형성도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이 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하면 또 잔소리가 날아들 테다. 괜히 얘기해줬어. 어쩌려고 그래? 상상 속의 정수가 미간을 찌푸린다. 아니, 찌푸린 건 눈앞의 정수인가? 이 둥글둥글한 얼굴이 더 구겨지기 전에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정수 생각.”

       

      “… 퍽이나 그랬겠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그는 답지 않게 빈정대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었다. 세모난 눈빛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다. 그에 무슨 말이라도 덧붙여야 할 것 같지만, 쓸만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정수의 걱정이 기우는 아니다. 재작년 봄부터 시작한 실험은 벌써 2년이 다 되어갔고, 그의 말대로라면 만 2년이 되는 날 자아 형성도 테스트를 받게 된다. 부적합이 나오면 운이 좋아야 보류, 어쩌면 그대로 폐기처분될지도 모른다.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미 그릇으로서 결격이다. 내 자신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고, 그릇의 역할을 수행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릇이 될 개체 하나를 만드는 데에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가 든다고 했다. 게다가 그 비싼 육체를 완성한 뒤에는 각종 면역체계와 중추신경 발달을 쓸만한 수준으로 닦아놓는 데에 최소한 2년, 평균적으로 3년이 걸린다. 웬만해서 완전 폐기를 결정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리다.

       

      정수는 작년과 재작년 모두 보류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자아 형성 수준이 임계치 이상이나, 그 방향이 본 목적에서 벗어나 있지 않아 몸의 주인이 될 다른 기억을 주입하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렇게 보류한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릇을 기다리는 유전자 주인이 기약 없이 기다렸을 리는 없으니 길어야 5년 정도일 거라 추측한다. 기억 이전 수술에 들어간 실험체 중 연구소에 가장 길게 머무른 개체가 햇수로 6년 정도 있었다고 했는데, 정수는 얼마나 더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유전자 주인이 위험을 감내하고 수술을 원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는 바람대로 그릇이 될 운명이었다.




      -




      언어는 사고를 증폭시킨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나 자신, 타인, 우리 혹은 그들,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 스스로 사고하는 모든 존재는 자아를 필연적으로 가진다. 그러나 그릇에게는 자아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릇에게 일찌감치 지식과 언어를 주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후 누군가의 기억을 주입했을 때 뇌 활동이 이전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위함이라는 말은, 그릇으로서의 시간이 철저히 쓰임을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소모품의 삶. 그것이 그릇의 본질이다.

       

      자아를 가진 그릇이 타인의 삶을 주입 당하기를 거부한 사례는 앞서 단 세 차례뿐이었다. 수십차례의 실험에도 단 세 개체만이 특별히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은,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에 세뇌를 통하여 그릇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때문이었다. 세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자아를 가진 첫 번째 그릇은 아무도 모르게 폐기되어 사라졌다. 두 번째는 똑같이 폐기되었으나 그 사실이 알려져 윤리위원회의 고발과 세상의 질타를 받았고, 세 번째는 자유를 얻었으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겨우 얻어낸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자아를 가진 그릇이 마주 앉았다. 우리 사이에는 카드 덱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각자의 손에는 세 장의 카드가 들려있었다. 어느 날 심심하다며 정수가 서랍에서 카드 덱을 꺼낸 후로 종종 함께 게임을 했다. 처음 그에게서 카드게임을 배울 때엔 줄곧 졌으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이기는 빈도가 늘었다. 도톰한 아랫입술이 삐죽였다. 속상해 보이는 눈빛에 다시 할까? 물으면 금세 표정을 지우고 괜찮다며 트럼프 카드를 정리했다. 정수가 가르쳐준 게임 중 하나인 도둑잡기는 가장 이기기 쉬운 게임이었다. 단 한 장 뿐인 조커를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떨어내지 못한 정수는 늘 표정이 같았다. 그에 웃음을 참지 못하면 더 울상이 되는 통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열심히 붙잡아야 했다. 정수가 카드 덱을 정리하는 사이 그의 침대에 모로 누워 구경했다. 카드끼리 사락거리며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수의 이불에서는 포근한 향이 느껴졌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때.

       

      ... 문득 나는 행복을 느꼈다.

       

      “정수.”

       

      “왜.”

       

      “나는 살고 싶어.”

       

      “...”

       

      “나는 너랑 이렇게 살고 싶어. 다른 누가 되는 것도, 폐기되는 것도 싫어.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기분이야.”

       

      “...”

       

      정수는 말 없이 카드 케이스만 만지작거렸다. 그날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무언가 알 듯 말 듯한 것이 마음속에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




      나는 그때까지 이름이 없었다. 자아가 생겨서는 안 되는 그릇들에게 이름을 붙일 리가 없었거니와, 누군가 우리를 부를 일도 많지 않았기에 만들어질 때 시험관에 붙어 있던 라벨지의 숫자가 우리를 가리키는 전부였다. 나는 114번이었다. 정수는 59번, 내 옆방은 128번, 그 앞방은 125번이었다. 문패에 쓰여 있는 그 숫자를 다들 이름처럼 여기고 살았다. 때로 가져보지 않으면 응당 가져야 했던 것임에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내게는 이름이 그러했다. 정수, 하고 그를 부를 때마다 그의 입에서도 내 이름이란 것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닥터 노아와의 면담 날이었다. 닥터는 상투적인 질문들을 건넸다. 요즘 컨디션은 어떤지, 신경발달과제의 난이도는 어떠한지, 휴식시간엔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아 형성을 제한하고 있으면서 여가 활동과 생각을 묻는 속셈이 뻔해 솔직하게 답한 적은 없었다. 닥터와의 면담 후 추가 처치를 받고 멍청한 눈빛으로 돌아온 개체들로 보아 쓸데없는 말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닥터가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나, 면담은 아무런 측정 없이 구두로만 이루어지기에 확신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날은 위험한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닥터. 그릇에게도 이름이 있나요?”

       

      “이름?”

       

      닥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장이 덜컹였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내 호기심에 변명을 시작했다.

       

      “음, 닥터 노아, 솔 간호사 선생님, 지나 연구원, 다 이름이 있길래요. 그릇들은 어차피 수술 전까지 시설에만 있으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이랑 달리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긴장을 하니 말이 길어진다. 한마디 내뱉을수록 심장 소리가 더 커지는 듯했다. 하는 말마다 오답이었다. 수술을 의식하는 것도, 그릇이 아닌 사람들과 나를 구분해 말하는 것도, 애초에...

       

      “흐음, 갑자기 누가 네게 이름 얘기를 해줬을까.”

       

      ...이름은 존재를 의식하는 첫 단계다. 그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부터가 나는 깨어질 그릇이라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닥터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내 대답을 기다리듯 턱을 괴고 빤히 바라보던 그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물었다.

       

      “정수니?”

       

      “…”

       

      “놀란 표정이구나. 뻔하지, 그 애만이 자기 이름을 알고 있거든. 너도 이름을 갖고 싶니?”

       

      여기서 끄덕이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아니라는 말이 목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닥터는 몸을 뒤로 기대어 앉았다. 편히 말해도 좋다며 웃는 저 얼굴을 믿어도 될까, 고민하는 사이 닥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네게도 이름이 있는데.”

       

      궁금하면 알려주마.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절벽 끝에서 뛰어내리라는 말을 이보다 달콤하게 속삭일 수 있을까. 일부러 함정으로 유도하는 것을 알고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등은 벌써 긴장으로 푹 젖어 있었다. 영원 같은 삼초가 지나고, 닥터에게 회피성 질문 한 마디를 겨우 던졌다.

       

      “그건 누가 지었나요?”

       

      예상하지 못한 반문이었는지 닥터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곧 무릎까지 쳐가며 박장대소를 했다. 아, 내가 정말 그릇 하나는 잘 빚었다니까. 용케 빠져나가는구나. 이름도 기가 막히게 어울리게 지었지. 언제까지 쓸 이름인지는 모르겠다만. 닥터는 메모지와 펜을 가져와 이름 석 자를 적어 건네었다.

       

      [곽지석]

       

      “네 이름이란다. 내가 지었지. 네가 말을 막 배울 때쯤이었나.”

       

      닥터는 꽤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그를 보니 정수가 왜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그 작은 종이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곽지석. 입을 달싹여 발음해 본다.

       

      “아. 다른 그릇들에겐 이름 이야기는 말거라.”

       

      “… 제게는 왜 알려주시죠? 알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넌 어차피 …니까,”

       

      “…?”

       

      닥터는 내 동공 안쪽의 무언갈 파내기라도 할 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소름이 돋아 눈을 피하자 닥터는 그제야 내게서 눈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그만 가도 좋다.”

       

      마지막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뜬 마음이 감추어지지 않았다. 닥터가 내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신호가 아닐까. 나를 인정해 준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그릇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삶을 얻어낸 두 번째 그릇, 아니, 곽지석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정수였다. 나는 곧장 59번 방으로 달려가려다, 복도에서 면담을 대기 중이던 125번을 보고 우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정수를 만나고부터는 아무도 없는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면 나는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그는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번갈아 서로의 방에 발을 들여놓다가 한 번씩은 복도에서 마주치고서 소리죽여 웃었다. 조금 피곤한 날은 미처 깜깜해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잠에 들기도 했다. 닥터와의 면담이 생각보다 긴장됐었는지, 그날은 누워 있자니 눈이 스르륵 감겼다. 자연스레 잠들려던 순간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지 물을 것도 없었다. 곧장 이불을 걷어차고 방문을 열었다. 정수가 웃었다. 나 왔어.

       

      면담 이야기를 들을수록 정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름을 얘기해주셨다고? 선생님이 먼저? 평소 그릇에서 벗어나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가 보인 반응으로 보아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같이 기뻐해 줄 줄 알았는데. 서운하면서도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는 것일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닥터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티 내지 말라던 조언을 들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들 이제 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눈치를 살피는 걸 보고 억지로 표정을 풀어 웃는 그를 보니 더욱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폐기될까 봐 걱정돼?”

       

      “… 조금.”

       

      “나도 무섭기는 하지만… 폐기해버릴 거라면, 굳이 이름을 지어줬을까?”

       

      “나도 그건 의외야. 전에 얘기해준 깨진 그릇들한테도 이름을 지어준 적은 없었어.”

       

      “닥터도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릇의 자기결정권 같은 거 말이야.”

       

      “... 그랬으면 좋겠다.”

       

      정수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릇이 되려는 그의 앞에서 불편한 이야기였을까 싶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근데 있잖아, 정수. 나 듣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

       

      “응?”

       

      “내 이름. 네가 불러주는 걸 듣고 싶어.”

       

      정수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민망한 듯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지석아.”

       

      “…”

       

      이상하게 가슴께가 막 간지러웠다. 자꾸 웃음이 나고, 온 몸이 사방으로 뻗어나갈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었다. 그게 그의 눈에도 보였나 보다. 정수가 내 표정에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은데.”

       

      “그럼 내가 듣고 싶은 말도 해줘.”

       

      “어떤 말?”

       

      그의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그의 서늘한 손끝을 감싸 쥐는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좋아해.”

       

      “…어?”

       

      “좋아한다고... 해줘.”

       

      ... 정적 속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맞잡은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갑자기 좋아한다니, 아니, 좋아한다고 해달라니. 그게 나를 향한 고백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종류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감정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붙잡은 손에 땀이 찰 때에야 겨우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붉어진 눈시울에서 굵직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미지근해진 손을 놓고 그를 당겨 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울지마. 그러나 끝내 좋아한다는 말은 해주지 못했다.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아직 몰라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정수는 한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때로 방문도 두드려 보고, 새벽에는 괜히 추운 복도에 나가 그의 방 앞을 기웃거렸다. 복도 끝방은 누군가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




      방으로 돌아왔을 땐 커다란 이불 덩어리가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정수는 내 방에 와 이불을 둘둘 말고 있곤 했다. 푹신한 덩어리를 통째로 안으면 정수 대신 내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잠시 안고 있으면 정수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내게 말을 걸어왔는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불 속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을 살짝 걷어냈더니 눈이 부신지 눈을 꾹 감으며 이불자락을 붙들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최종 테스트에서 또 보류 결정이 난 모양이었다. 정수 본인은 실망감에 축 처졌으나 나는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어 몰래 웃었다. 아직 무사하구나.

       

      “선생님은... 나 같은 거에 비하면 대단한 분이니까,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나 같은 거라니, 왜 그렇게 말해...”

       

      “왜 자꾸 보류되는 거야.”

       

      뭐가 부족하지?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수 있지? 중얼대며 손톱을 물어뜯기에 그의 손을 끌어와 잡았다. 벌써 손톱 끝이 제멋대로 뜯어져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꼭 그릇이어야만 되는 거야? 그냥... 그냥 정수로 살면 안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왜 말이 안 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뭔데. 왜 꼭 누군가의 그릇이 돼야 하냐고. 정수도 분명 정수로 사는 게 더 행복...”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년 돼가면서.”

       

      “...”

       

      날 선 말이 쏘아졌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정수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미안,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어. 제 얼굴이 더 울상이 되어가면서도 정수는 이미 쏟아지고 있는 말을 멈출 수가 없는 듯했다.

       

      “너는 쓸데없는 기억에 어지러울 일 없이 편히 그릇이나 되면 되겠지. 넌 똑똑하고, 실험 적응도 빠르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아니 어쩌면 너는, 그래, 네 말대로 너 자신으로 살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안 그래. 나는…”

       

      그 뒤로는 정수의 목소리가 멀리 사라지듯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 자신으로 살 수도 있을 거야.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답답하던 것이 또 다시 머릿속을 휘감았다. 나로 산다. 나로, 다른 누가 아니라 나인 채로… 그리곤 번뜩 무언가 깨달았다. 정수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정수가 깜짝 놀라 눈을 마주쳐왔다.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나가자.”

       

      “뭐?”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을 거라며. 정수도 그러면 되잖아.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일도 하고...”

       

      말을 할수록 나는 확신에 찼다. 내가 태어나고부터 줄곧 바랐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가슴 속에 무언가 부푸는 듯하고, 기대감에 심장이 점점 크게 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르쳐준 눈앞의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 좋아해.”

       

      나도 모르게 툭 터지듯 나간 고백이었다. 나조차 놀라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좋아해. 정수, 좋아해… 그의 부탁에 늦은 답을 쉼 없이 늘어놓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허탈한 비웃음이었다.

       

      “나간들 나 같은 건 아무 것도 안 돼.”

       

      “…”

       

      “나는 이제 그만, 다 끝내고 싶어.”

       

      무너진 세상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다면 그런 표정일까. 정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누구보다 비참한 얼굴이 되어 방을 나갔다.

       

      이전처럼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정수는 내게 그릇의 삶이나 테스트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카드게임을 했다. 손에 든 조커는 나에게서 정수에게로, 다시 정수에게서 나에게로 옮겨갔다. 마침내 마지막 세 장이 되었을 때 내 손에는 컬러 조커와 2 클로버가 들려있었다. 정수가 둘 중 한 장을 뽑았다.




      -




      계획이 필요하다. 이곳을 나갈 계획과, 나간 뒤의 계획이.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거기엔 당연히 정수도 포함이었다. 정수를 설득하려면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뒤에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물론 나간 뒤는커녕 나갈 방법조차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았다. 며칠간 연구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색한 결과 이 건물에 있는 연구원은 총 열두 명, 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가 다섯 명, 한 번도 본 적 없는 경비원은 무려 서른 명이 넘었다. 게다가 각 연구실과 처치실을 비롯해 모든 방과 출구는 보안시스템으로 잠겨 있었고, 관계자도 아니고 아직 제대로 된 사람조차도 아닌 나는 이를 뚫을 방법이 없었다. 모두의 시야를 피해 건물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밖에는 얼마나 클지 알 수 없는 연구단지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절망한 채 그릇이 되거나 폐기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가능성이 희박한 도박이지만.




      매일 하던 신경발달과제 수행 점수가 며칠간 눈에 띄게 떨어졌다. 나는 화면에서 깜빡이는 물고기 그림을 눈으로 대충 훑다가, 헤드셋에서 들리는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물고기를 낚아챘다. 테스트 종료 표시가 잠시 뜨고는 화면이 꺼졌다. 연구원들은 결과지를 유심히 보더니 추가 검사와 닥터와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갑자기 잡힌 면담에도 닥터는 늘 보던 것처럼 태연히 나를 맞았다. 늘 똑같이 묻는 질문도 그대로였다. 면담은 심심하게 흘러, 닥터는 이만 나가도 좋다고 했다. 최신 수행 점수에 대한 보고를 받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다. 닥터는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안경을 벗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그가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 닥터, 저를 내보내 주실 수 있나요?”

       

      “언제 이야기하나 했더니. 그 말 하려고 일부러 수행도 망쳤니?”

       

      “내보내 주세요. 정수도 함께요.”

       

      “하하… 당연히 안 되지. 이제 겨우 완성시켰는데.”

       

      “… 완성요?”

       

      “의도적 수행 저하는 전두엽 기능이 충분히 발달했다는 증거지. 조만간 수술 일정을 잡아야겠구나.”

       

      “제가 원하지 않는다면요?”

       

      닥터는 싱긋 웃었다. 천천히 일어나 등 뒤로 걸어온 그는 내 어깨를 꾹꾹 누르듯 주무르며 말했다.

       

      “그릇엔 욕구도, 기호도 없어. 자아를 만든 부분만 기억을 도려내면 그만이다.”

       

      “실험 윤리라곤 개나 줬네요.”

       

      “윤리? 그건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거지, 도구에게는 해당 없단다.”

       

      “나는 사람이에요!”

       

      벌떡 일어나 그를 보며 외쳤다. 닥터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그가 내 턱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근거로?”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잖아요. 주체적으로 행동한다고요. 닥터야말로… 당신이야말로 무슨 권리로 내 의지는 무시하고 도구로 사용하는데?”

       

      “‘우리’라… 네가 말하는 ‘우리’는 아마 너와 정수를 말하는 거겠지? 다른 그릇들은 아직 사고 발달이 덜 됐으니. … 그렇게 노려보지는 말아라. 이래 봬도 널 만든 사람한테.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닥터는 한 걸음 다가와 나를 껴안고 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를 밀어내려는 순간, 목 부근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럼 우리, 정수의 생각도 들어볼까? 그 애는 여전히 그릇이 되고 싶어 하던데.”

       

      “으으… 으…”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려 했으나, 벌써 혀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채 웅얼대는 소리만 겨우 입 밖으로 흘렀다.

       

      “마비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풀리니 괜히 움직이지 마라. 근육 다친다.”

       

      설마 내가 내 손으로 만든 최고의 그릇을 내 손으로 깨버리겠니. 닥터는 나를 구석에 옮겨 앉혀두고는 자꾸만 떨구어지는 고개를 벽에 기대게 했다. 조용히 있거라. 경고하듯 날카로운 눈빛이 피부를 찔렀다. 곧 그는 벽에 기대 앉은 내 앞에 짐을 쌓아 나를 가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닥터가 어디엔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 방으로 오거라. 짧은 한마디 끝에 긴 한숨이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선생님.”

       

      정수의 목소리였다.

       

      “뭐가 문제인지를 말씀해 주세요. 계속 보류되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일단 앉아.”

       

      “선생님…”

       

      잠시 뒤에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정수가 닥터의 말에 따라 얌전히 앉은 듯했다.

       

      “너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냥 조금 기다리면 해결 될 일이야.”

       

      “그 말씀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어요. 저 더는 못 버티겠어요…”

       

      “그래서 그것에게 네 이름을 알려줬니? 그걸 못쓰게 되면 너라도 쓸 것 같아서? 정신 차려. 너는 사람이야. 그것들이랑 달라.”

       

      “아뇨, 저는 그릇이 될 거예요. 제가 돼야 해요. 그 애 말고 제가…”

       

      울음을 참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가 고막을 진동시켰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정수가 사람이라고, 아니, 그보다는 내게 이름을 알려준 이유가, 그러니까 내가 나로 살기를 원하고 그릇이길 거부하면 본인이 그 자리를… 아니야. 아닐 거야. 아무리 부정한들 정수는 여전히 닥터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샘은 마비되지 않았는지 반쯤 뜨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좋아한다고 해줘’.

       

      ‘너 자신으로 살 수도 있을 거야’.

       

      그 말들이 전부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




      ◇ ◆ ◇




      “왜 그렇게까지 그릇이 되려는 건데?”

       

      내가 말을 하면 너는 들어줄까. 만들어진 지 만 3년도 되지 않은, 나보다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 유전자 복제품이 내 지난 25년을 이해해 줄까.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지석은 그 짧은 생에 벌써 답을 찾아 스스로 빛을 내려 한다. 그게 못내 부럽다. 시기 질투가 밖으로 새어나갈세라 이불을 꼭 끌어안아 못생긴 마음을 감추었다.

       

      하기야 지석은 그릇들 중에서도 조금 남다르긴 했다. 남성체 치고 조금 작은 신장에서 성장을 멈추기에 발달이 더딘 유전자인가 했더니, 언어 중추를 삽입하자마자 뇌가 급격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시 …의 유전자는 다르구나. 성장점이 뇌세포에 집중적으로 형성된 걸까.

       

      17년 전 선생님께 발견된 게 내가 아니라 지석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정신세계가 비범한 발달을 보일 때면 그런 상상을 했다. 연구단지 앞 공원에서, 짙은 녹색의 목도리를 양손에 꼭 쥐고 울고 있던 여덟 살배기. 어떤 평행 세계에선 그게 곽지석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애는 어떻게 자랐을까. 이 세상에 있던 여덟 살 김정수의 발달 수준은 매우 평범해서, 어른들이 손뼉 치면 춤을 추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코를 막고서라도 가지나물을 먹었다. 그러나 차원 너머 어딘가의 어린 지석이라면 왠지,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머리에 삽입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의 첫 기억은 내 것이 아니다. 너무 어렴풋해 그걸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호하다. 다만 그게 내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처음 삽입기를 쓰기 이전에는 없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얼굴이 온통 뜨겁고, 어둠 속에서 앞은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고, 울고 있었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버둥거리고 있으니 발치에 옅은 빛이 들며 발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나는 커다란 누군가에게 안겼다. 겨울의 찬바람 냄새가 가시지 않은 서늘한 품이었다.

       

      70여 년 전,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일 때 추출한 일화기억 중 하나라고 했다. 성인의 기억은 보다 복잡해 추출도 삽입도 어려워, 신생아의 기억을 주로 테스트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으니 미처 몰랐으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어느 미친 부모가 신생아를 대상으로 뇌 신호를 추출하도록 두었나 싶다. 기억 추출은 신호를 극대화하기 위해 뇌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데, 패턴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이유로 한창 활발하게 발달 중인 신생아의 뇌에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다니.

       

      나를 거둔 선생님, 노아는 첫 기억 삽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뛸 듯이 기뻐했다.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신께 기도를 올렸던 기억이 난다. 영어라 뭐라고 하시는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땡큐.” 그 한마디 알아듣고는 뿌듯해졌었다. 그날 먹은 딸기생크림케이크는 살면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달콤했다. 선생님은 내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정수는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어느 어린이가 이렇게 의젓하게 해낼 수 있겠니. 네 이름은 인류에 길이 남을 거야.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도록 하마.

       

      날마다 새로운 기억이 쌓여 갔다. 어떤 것은 선명한 장면으로, 또 어떤 것은 은은한 향기로 남았다. 언성을 높이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려대기도 하고, 살며시 잡아 오던 투박한 손의 감촉에 덩달아 심장이 마구 뛰기도 했다. 대부분 강렬한 신호가 추출되기 용이한 탓에 기억 샘플들은 자극적인 것이 많았다. 그나마 범죄 관련 기억처럼 트라우마를 일으킬 법한 샘플을 삽입하지는 않았던 것은 미성년 어린아이에게 임상실험을 자행하던 노아 선생님의 마지막 양심이었을 테다.

       

      열세 살이 될 즈음 나는 더 이상 원래 나의 기억과 삽입된 기억을 구분해 내지 못할 지경이 됐다. 지난주에 먹은 줄 알았던 카레는 30년 전 어느 노부부가 함께한 마지막 식사였다. 작년에 계단에서 넘어져 생긴 흉터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의아했더니, 노아 선생님의 무릎에 그 흉터가 있었다. 나는 그때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는 대신 이제는 간지럽지도 않을 선생님의 흉터를 쓸며 많이 아팠겠다며 눈물지었다. 그렇게 열여덟 살이 된 어느 날에는 수많은 기억들 사이 내 이름을 8초 만에 생각해 내는 데 성공하고 안도했다. 내가 누구인지 점점 잊어가던 그때, 프로젝트 그릇이 시작됐다.




      -




      프로젝트가 시작하고 수많은 실패와 성공이 지나갔다. 어떤 그릇은 육체조차 완성되기 전에 심장이 멎고, 어떤 그릇은 누군가로 완전히 대체되어 이곳을 나갔다. 그릇에 붙은 일련번호가 50번을 넘어갈 무렵 내 스무 살도 해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선생님의 연구실은 늘 19도 정도. 약간은 서늘해야 몸이 늘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평소에는 조금 춥다고 느꼈었는데, 바짝 긴장하고 있으니 그런 것도 몰랐다. 선생님은 묵묵히 책장을 넘기셨다. 흘긋 보아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원서였다.

       

      “저도 그릇이 되게 해주세요.”

       

      그제야 선생님은 책에서 시선을 거두어 나를 바라보았다.

       

      “…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니?”

       

      “네.”

       

      “나 때문이니?”

       

      “…”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것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는지 선생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이미 선생님의 기억도 많고, 아직 젊고, 건강해요. 그릇을 새로 만드는 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예요. 차분히 의견을 내어놓았으나 선생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지난 겨울, 선생님의 뇌에서는 교모세포종이 발견됐다. 발견 즉시 치료했으나 악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듬해 가을에 재발했다. 프로젝트는 아직 성공 케이스가 얼마 되지 않아 완성되기까지 갈 길이 멀었고, 선생님은 할 일이 많았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고 하지만, 만약… 기억으로 연명할 수 있다면. 어차피 나는 낙서하듯이 아무 기억이나 이리저리 쑤셔 넣은 연습장일 뿐이었다. 이 몸으로 더 살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인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목적만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조금, 지쳤다. 아직 기억이전수술은 완전하지 않았고, 언젠가부터는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삽입기를 머리에 썼다. 새로운 테스트메모리를 내 머리에 이식해 안정성 테스트를 하고 나면, 10분 정도 머리를 정리해야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 모든 게 이제는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지는데, 바로 그다음 단계가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꺾어버리고자 하는 욕구가 드는 것이다.

       

      고집이 더 센 것은 나였다. 그릇의 방이 하나 비워지자마자 그 방은 내 차지가 되었다. 방문 앞에는 59번이라는 번호가 붙었다. 나는 갓 태어난 복제품이 아니므로 다른 그릇들처럼 여러 신경과제를 수행할 필요는 없었으나, 인위적으로 주입했던 기억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제 원래 기억은 왜 놔두는 거죠? 어차피 그릇이 되려면 제 기억도 사라지는 게 낫지 않나요? 선생님께 질문하니 실험 절차 상 그 편이 안전하고 깔끔하다고 했다. 어차피 이미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고 생각한 나는 순순히 따랐다. 기억을 삽입하는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고, 여러 기억에 머리가 어지러울 일이 줄어드니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전보다 거부감은 더 크게 들었다. 파형을 분석하고 상쇄하기 위해 지우고자 하는 특정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고, 처치를 한다 해도 기억이 깔끔하게 삭제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처치 후에는 심리 상담이 따라붙었다.

       

      - 요즘은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똑같아요.”

       

      - 기분은 어때요? 저번 상담 때엔 많이 무기력하다고 하셨는데, 아직 그런가요?

       

      “비슷한 것 같은데... 저, 다른 그릇들도 상담을 하나요?”

       

      - 네, 필요한 경우에는요. 음, 정수 씨는 평소에 주로 뭐하고 시간을 보내세요?

       

      여상한 질문과 답변의 연속이었다. 상담사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게 문제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접근해 왔다. 굳이 내 속내를 말하고 싶지 않아 매번 대충 둘러댔는데, 그럴수록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어 와 불쾌했다. 왜 그릇이 되고 싶어요? 결국 그 한마디를 묻기까지 5분이 더 걸렸다.

       

      “… 전 이제 그렇게밖에는 쓸모가 없으니까요.”

       

      - 쓸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는 어차피 존재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분께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해요.”

       

      -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그때의 정수 씨에게는 아주 중요한 생존 방식이었을 것 같아요.

       

      “… 실험에 참여하면 선생님이 웃으셨어요. 정말 고맙다, 너 아니면 안 됐다 이런 말도 했고요. 그 말 들으면… 제가 여기 있어도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 그 말들이 정수 씨에게는 ‘너는 필요하다’, ‘너는 환영받는다’라는 신호였겠군요.

       

      “…”

       

      - 그때의 당신은 아직 아주 어렸죠.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역할이 된다는 감각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네요.

       

      “선생님은 나쁜 분은 아니에요. 저를 엄청 아껴주셨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요.”

       

      - 그 말을 굉장히 조심해서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고마움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바로 이런 부분이 불편했다. 다 알겠다는 듯이 말하는 저런 태도가. 다정한 척, 꿰뚫을 듯이 눈을 맞춰오는 것을 피해 자세를 고쳐 앉고 몸을 등받이에 기대었다. 

       

      “… 제가 원해서 한 거니까요.”

       

      - 네. 정수 씨는 그때 최선을 다해 선택했어요. 그런데 만약, 그때의 정수 씨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선생님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요?

       

      “… 모르겠어요.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 그럴 수 있어요.

       

      “실험조차 안 하면… 저는 선생님께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잖아요.”

       

      - 아… 그 생각이 지금까지도 정수 씨를 붙잡고 있나 보네요. 그때의 정수 씨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 자리가 사라질 것 같았을 수도 있겠어요.

       

      “…”

       

      - 그 신념은 관계를 잃지 않게 해줬고, 정수 씨를 살아남게 해줬어요. 그 생각이 나쁘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제는 그게 정수 씨를 너무 아프게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싶네요.

       

      “저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는데요. 저를 있게 한 건 선생님이고, 그런 선생님께 보답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 지금 이 방에서, 아무 실험도 하지 않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제 앞에 한 사람으로 앉아 있어요. 그리고 저는, 당신이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아도 여기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 괜찮아요. 지금 당장 믿지 않아도 돼요. 다음 시간에는…




      -




      그때까지만 해도 그릇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발달을 위해 그릇들끼리 대화를 하기도 했고, 협력하는 과제도 간혹 있었다. 갓 태어난 그릇들과 대화하는 건 생각보다 재밌어 나는 그 시간을 제일 기다렸다.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건 별희였다. 그녀는 62번으로 내가 입소한 후 태어나는 데 성공한 첫 그릇이었는데, 사회 발달 시간마다 아이처럼 질문을 쏟아내더니 날이 갈수록 놀라운 속도로 성숙해져 반년 만에 연상의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자기 이름을 말해주었다.

       

      “나는 별희야.”

       

      그릇도 이름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그녀에게 그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느냐 물었다. 별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내 이름인데 누가 짓냐니, 그럼 정수는 네 이름을 네가 지은 게 아니야? 우리는 서로 놀랐다. 사람은 보통 태어나서부터 부모나 주변 어른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것이라 알려주었다. 별희는 당연히 제 이름이니 저 스스로 짓는 것인 줄 알았다고 하며 재미있어했다.

       

      “그래도 난 별희야. 난 내가 지은 이름으로 할래. 앞으로 네가 불러주면 그게 내 이름이 되겠지.”

       

      별희는 점점 더 활발하게 나를 포함한 다른 그릇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나조차 이해하지 못할 깊은 수준의 철학적 질문도 던져 연구원들을 당혹시키기도 했다. 연구원들은 날이 갈수록 그녀의 사회 발달 시간을 줄여갔고, 일과시간 외에 그녀를 찾아가도 잠을 자고 있어 점점 대화할 기회가 줄었다.

       

      새벽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잠결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가, 두 번째 노크 소리에 몸을 일으켜 문가로 다가갔다. 살며시 열어본 문밖에는 별희가 있었다. 깨웠다면 미안. 지금밖에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녀는 조금 초조해 보였고, 그 사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매일 잠만 자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 한 건지 동그랗던 뺨이 옴폭 들어가 있었고, 늘 깔끔했던 단발머리는 어느덧 어깨에 닿아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방으로 들여 앉혀두고 따뜻한 물을 한 잔 가져왔다.

       

      “일과가 점점 줄어들더니, 매일 너무 잠이 오는 거야. 종일 한 거라고는 아침 운동과 기본 과제 한두 시간 뿐이었는데. 이상하다 했는데 마지막에 추가된 영양제가 수면 유도 성분이 있는 거였어.”

       

      기억이전수술을 받을 대상자가 아직 수술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별희는 이미 그릇으로서 과발달 상태였고, 선생님은 그녀의 발달 상태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연구원들에게 그녀의 생활을 최소화시키고 대기상태에 두도록 지시했다. 별희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뇌는 빈 그릇에서 멀어질 테고, 수술 성공률도 당연히 하락할 것이다. 그녀를 재워두기로 한 결정은 잔인하도록 당연했다.

       

      “근데 정수야, 난 그릇이 되기 싫어.”

       

      문제는, 별희는 이미 빈 그릇이 아니었다.




      얼마 뒤 몇 번의 기억 삽입 테스트가 있었다. 별희는 주어지는 모든 기억을 완벽하게 구분해냈다. 이미 형성된 자아가 너무 견고하여 받아들인 기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융화시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별희는 폐기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인식할 수 없게 됐고, 곧 영영 잠에 들었다.

       

      그릇들의 상호 교류가 제한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특히, 나의 경우 다른 그릇들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모든 일과가 그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짜였고, 혹여 마주치더라도 대화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릇들에게도 별도의 조치가 있었는지 그들은 나를 보고도 못 본 것처럼 지나쳤고, 나 역시 점점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혔다. 선생님이 걱정스레 몇 번 연락을 주셨지만, 차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일부러 바쁘실 시간에만 대답하며 자연스레 만나기를 피했다. 별희의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나를 탓하실까 두려웠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선생님께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제일 크다는 것이, 별희에게 미안했다.




      -




      오랜만에 선생님의 연락이 와 있었다. 이따 세 시에 연구실로 오거라. 다른 말 없이 이렇게 부르시는 것은 거의 1년 만이었다. 오전 내내 안절부절못하다 간호사 선생님께 청심환을 하나 부탁해 먹어야 할 정도로 긴장했다.

       

      막상 마주한 선생님은 너무도 똑같아서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부대꼈다. 예전에는 선생님의 여전함을 안정감으로 느꼈던 것 같은데. 내가 가장 좋아하던 웃는 얼굴로 반겨주시는데도 어쩐지 나는 편히 웃을 수 없었다. 선생님도 나도 별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안부를 조금 묻다가, 보여줄 게 있다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셨다. 드물게 손까지 꼭 잡고서 앞장서시는 모습에는 기대감에 들뜬 기색이 역력해서, 나도 불편한 마음을 접어두고 따라나섰다.

       

      완성된 그에 대한 첫인상은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선생님은 양수관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셨다. 양수관 아래 작은 팻말에는 그를 가리키는 일련번호가 쓰여 있었다. Ves. 114. 내 숫자에서 두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일련번호다. 그 사이 많은 그릇들이 쓰이거나 깨어졌을 것이다. 이 아이도, 아마.

       

      “내 그릇이란다.”

       

      투명한 유리관을 쓸어내리던 손이 일순 멈추었다. 머리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선생님의 그릇이라니. 그럼...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저를 그릇으로 받아주셨잖아요. 제가 선생님의 그릇이 되는 게 아니었나요. 저는 역시 기준에 못 미치는 건가요. 저는, 저는 부족한가요. 손바닥에 손톱 모양대로 자국이 남도록 꾹 말아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이제 그만 해도 된단다.’

       

      나는 결국 또 그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




      땅거미가 질 때쯤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한밤중에는 폭설이 내렸다. 온 세상이 얼어붙는 동안 방 안은 눈치 없이 따뜻하고 포근해서, 되려 바깥의 한기가 그리웠다. 가디건 하나 대충 걸쳐 입고 추운 복도로 나와 온통 깜깜한 창밖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저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게 되면 이 무가치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중간방의 문이 열리며 그 애가 나왔다. 114번 그릇. 선생님의 유전자.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채 곧 쓰러질 듯이 비틀대기에 다가가 붙잡았더니 힘없이 내게 기대어 왔다. 닿는 곳마다 열기운이 훅 끼쳐왔다. 그 애를 방에 뉘여 놓고 체온을 재어보니 열이 꽤 높았다. 물수건을 가져와 그 애 이마에 올려놓고, 더운 숨을 내뱉는 그 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처음 보았을 적 선생님을 닮아 있었다. 추위에 얼어버린 작은 몸을 코트로 감싸안고 오느라 지독한 독감에 걸렸던 노아 선생님. 선생님의 옆에서도 이렇게 서투른 간호를 했었는데. 작은 손으로 물수건을 꼭 쥐어짜지도 못해 물이 뚝뚝 흐르는 대로 이마에 얹어두어 베개가 다 젖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이건 내 기억이 맞을까. 또 남의 삶을 내 것인 양 착각한 건 아닐까. 피식 웃음이 샜다. 아, 정말. 등신 같애.




      다음 날 그 애가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을 알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열정도. 선생님을 닮았을 테니. 역시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프로젝트 초기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고 대충 둘러댔다. 실제로는 나 같은 게 또 있어선 안 되겠지만. 사람이 그릇이 되겠다고 자진해 들어왔다고 하면 저 크고 맑은 눈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시 나도 궁금해져 사실 나는 사람인데, 하고 얘기해줄까 하다가 별희를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겉모습만 성인일 뿐, 아직 자라는 아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내 말 한 마디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서였다. 나는 여전히 별희를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을 버릴 수 없었다. 내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어도, 그녀는 폐기돼야 할 만큼 견고한 자아를 갖게 됐을까.

       

      “닥터를... 좋아하세요?”

       

      놀랍게도 답은, ‘그렇다’였다. 114번, 이 그릇은 스스로 감정을 인지하고 탐색하고 관찰까지 할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명이구나. 그러니, 성장을 하는구나. 그 간단한 것을 그제야 깨달아서.

       

      “노아는…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과연 나도 그에게 아들 같은 존재일까? 그런 건 모르겠다. 다만 내게 이제까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얼만큼이냐 하면, 나는 감히 선생님을 거스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저 어린 생명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부터 무언가 불쑥불쑥 치밀었다.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존재가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무얼까.

       

      “선생님이랑 면담 때에도 그런 적 있나요?”

       

      절대 들켜서는 안 될,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또 한 번 눈앞에서 스러지기 전에.

       

      “앞으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어차피 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할 테니, 그저 잠시만 들여다보려는 것 뿐이다.

       

      “정수라고 불러.”

       

      그러니 겨우 이런 비밀 정도는 선생님을 거역하는 게 아닐 테다.




      -




      말과 생각은 닿아있다. 입에서 나간 말은 귀를 통해 흘러들어오고, 또 다른 나의 생각이 된다. 생각은 다시 말이 되어 나간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뇌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수없이 많은 생각 덩어리를, 조각을 나누고 퍼뜨리는 작은 신경 하나. 이 커다란 세상의 작은 세포 하나로서 나는 대체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아무도 쓰지 않고 찬장에 박힌 골동품 그릇 신세가 된 내게, 이제 막 빚어진 어여쁜 그릇이 자꾸만 와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럴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또 같은 실수를 한 건 아닐까. 그 애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덜컥 지어 말해버릴까 봐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네가 궁금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해. 그러니 너무 멀리 가지는 마.

       

      깊어지는 그 애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자 카드게임을 가르쳐주었다. 어차피 이 구석진 연구소 건물 안에서 할 일이라곤 재미 없는 신경과제밖에 없으니, 심심함을 달랠 게임 정도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애는 내가 가르쳐주는 게임들을 재미있어했다. 처음 몇 번은 내가 이겼지만, 금세 규칙을 다 익힌 그에게는 내 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더 못 볼 꼴인 걸 알면서도 괜히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내 기분을 풀어주겠다고 앞에서 알짱대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귀엽기도 했다. 괜찮다는 뜻으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제야 물러났다. 이불 속에 푹 파묻혀서는 나만 바라보던 그 애가 갑자기 정수, 하고 불렀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쳐다보아도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빤히 보기에, 왜. 하고 되물으니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살고 싶어.”

       

      그 말에 나는 죽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전처럼 그저 쓸모나 다하고 사라지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달랐다. 살고 싶은 네게, 삶을 주고 싶어서 죽고 싶었다. 보잘것없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미소를 가진 너를 대신해서 그릇이 되고 싶었다는 뜻이다.




      -




      면담이 있는 날이면 끝나자마자 내 방에 꼭 들르곤 했는데, 그날은 잠잠했다. 종일 창밖에 달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문밖에선 웃음소리나 말소리가 간혹 들렸으나 나와는 상관 없는 것들이었다. 이 문을 나가 큰 보폭으로 열 걸음 정도. 고작 그만큼을 넘지 못해 온통 깜깜해지도록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창가에 달빛이 내린 걸 보고 방문을 슬쩍 열었다. 최소한의 조명만 남긴 어둑한 복도를 지나 114번 방문을 작게 두드렸다. 잠시 기다리니 달칵 소리와 함께 잠이 덜 깬 얼굴이 나타났다. 나 왔어. 한 마디에 환히 웃는 그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 이름을 얘기해주셨다고? 선생님이 먼저?”

       

      별희 이후로 그릇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됐다. 이름뿐이 아니라, 의미를 두지 않은 일련번호 외에는 별명조차 함부로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이름을 주셨다는 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의 그릇인데.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선생님의 상태가 더욱 악화된 걸까.

       

      “내가 폐기될까 봐 걱정돼?”

       

      아니, 그 반대였다. 만약 선생님의 병이 더 나빠진 거라면, 그는 예정보다 앞당겨 그릇이 될지도 몰랐다. 굳이 이름까지 붙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릇의 자아 형성을 칼같이 차단해 오던 선생님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우스운 건, 그 생각이 든 순간 내가 걱정한 대상이 선생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근데 있잖아, 정수. 나 듣고 싶은 게 있어.”

       

      기쁨에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너의 순수함과 상기된 뺨, 나를 다정히 부르는,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

       

      너.

       

      “지석아.”

       

      지석아. 나는 네가 걱정돼.

       

      불안이 물밀듯 밀려와 가슴께에 넘실거린다. 속에서 무언가 응어리가 맺히는 느낌, 답답하고, 메슥거린다.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어진다.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진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그 두근거림을 옆의 사람 때문으로 착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울렁임은 너 때문이 아닐 리 없다. 애초에 둘이서 타는 놀이 기구에 옆에 앉은 사이인걸. 원래 있던 작은 떨림이 잠시 요동쳤을 뿐이다. 너를 잃고 싶지 않은 만큼, 내 불안이 떨림이 되어 요동친다.

       

      “좋아해.”

       

      “…”

       

      “좋아한다고... 해줘.”

       

      지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나를 보지 못하고 방황하더니, 이내 시선이 아래로 떨구어졌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이젠 꾹, 죄는 듯이 아파왔다. 얼굴이 터질 듯이 열이 올랐다. 창피해. 그러나 금세 차올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멈출 재간이 없었다. 지석은 놀라 나를 끌어안고 연신 사과하며 달랬다. 그 작은 품이 너무 다정하고 잔인해 한참을 더 울어야 했다.




      -




      다음 날은 퉁퉁 부은 눈으로 지석을 보기 싫어서 찾아가지 않았다. 그다음 날은 얼굴에 뾰루지가 생겨서. 또 그다음 날은 방 청소를 하느라. 그렇게 사흘을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나흘째 새벽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문 앞까지 다가갔다가 손잡이를 잡지도 못하고 뒤를 돌았다. 좋아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마주한 표정이 문 앞에 있을까 두려웠다.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상상한다. 살그머니 열리는 문, 들어오는 지석,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석이 말한다.

       

      ‘다행히 성공해 냈어.’

       

      ‘뭐가?’

       

      ‘날... 못 알아보겠니?’

       

      ‘너 말투가 왜 그래?’

       

      ‘정수야, 나란다. 노아 선생님이야.’

       

      “헉!”

       

      깜짝 놀라 튕기듯 일어났다.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댔으나 지석도, 선생님도 없었다. 늘 그렇듯 혼자뿐인 방이었다. 문 앞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바닥에서 잠든 모양이었다. 식은땀이 났었는지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무슨 그런 꿈을 다 꾼담. 아직도 팔에 소름이 남아있어 양 팔뚝을 쓱쓱 문질렀다. 물론 언젠간 일어날 일이긴 했다. 언젠간... 지석이 사라지고 선생님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선생님이 건강해지시는 건 분명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인데. 이상하게 선생님이 기억이전수술을 받으신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답답하고 가슴이 저렸다. 내가 선택받지 못한 데에 대한 속상함일까. ... 아니,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건 다름 아닌, 지석이 사라지는 것이다.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연구실로 향했다. 이상한 기분이다. 이렇게나 내 걸음에 확신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비상구 계단으로 두 층을 내려가면 선생님의 연구실이 있다. 이윽고 다다른 문 앞에 잠시 멈추어 심호흡을 한다.




      -




      [Be Deferred]

       

      또 다시 보류였다. 벌써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들 새빨간 글씨는 바뀌지 않았다. 결과서를 구겨 방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종이 뭉치는 데구르르 굴러 내 앞으로 돌아왔다. 괜히 짜증이 나 툭 차려다 침대 모서리를 발로 차는 바람에 새끼발가락을 붙잡고 끙끙댔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지석이 보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 애의 이불에서 나는 곽지석만의 체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누군가 이불을 끌어당긴다. 빛이 새어들어 눈살을 찌푸리며 힘주어 붙든다.

       

      “정수. 일어나 봐.”

       

      그 애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려왔다. 마치 정말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

       

      “너, 너 왜 여기 있어?”

       

      “여기 내 방인데.”

       

      “... 나 왜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는지, 지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내가 갔을 땐 문도 안 열어주고.”

       

      그제야 내가 한동안 그를 왜 못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났다.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왔을까. 수술 적합성 테스트에서 보류 처리가 된 게 너무 심란한 나머지 나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이 이 곳에 닿았다. 다시 생각하니 또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너를 대신해야 하는데. 몇 년째 보류 처분을 받고 있는 애물단지 골동품 그릇은 여전했다. 지석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옆에 앉았다. 그 어깨에 기대어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이번에도 보류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턱이 없는 지석은 속 편한 말로 내 속을 긁었다.

       

      “꼭 그릇이어야만 되는 거야? 그냥... 그냥 정수로 살면 안 돼?”

       

      정수로 사는 게 뭘까. 나는 내가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어쩌면 나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내게, 나로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냐니. 부러움이 울컥 치밀었다. 너는 참 편하게 생각할 수 있구나. 쓸데없이 예민해져서는 지석을 쏘아붙였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년 돼가면서.”

       

      “...”

       

      놀라 굳어버린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황급히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나, 줄줄이 변명이 따라붙었다. 너는 그럴 수 있겠지. 나는 안 그래. 내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매일 산산이 조각나고 흩어지는 느낌이란 말이야. 이대로 계속 살라는 건 날 죽이는 것보다 더 끔찍한 짓이야. 마지막으로 내게도 나만의 선택이란 걸 할 수 있게 해줘. 나는 가장 가치 있게 사라지고 싶어. 너를 살리고, 노아 선생님도 살리고, 나는... 나는 그렇게 죽고 싶어.

       

      “우리, 나가자.”

       

      “뭐?”

       

      갑자기 뭐에 꽂힌 건지 지석이 눈을 빛냈다. 밖에 나가자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자 한다. 그는 이미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방금 막 인사를 나눈 사람과 악수를 하고, 제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서 일을 한다. 그리고 환히 웃는다. 완벽히, 완벽하다. 지석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반면에, 나는…

       

      “좋아해.”

       

      네게서 듣고 싶던 말을 이런 타이밍에 돌려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 꼴이 너무 우스워서.

       

      “나는 이제 그만, 다 끝내고 싶어.”




      -




      보류 처분에 대한 이유를 물으려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으나, 며칠 동안 번번이 헛걸음만 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었다. 명백히 일부러 피하시는 거야.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언제까지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방으로 오라는 짧은 통화를 끊자마자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것도 나중에 알았다. 높이가 다른 밑창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면서 달려갔다. 익숙한 철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는 늘 활짝 열려 있던 문이었다. 그게 마치 너는 안 된다고 밀어내는 것만 같아, 더욱 조급해져 노크하는 것도 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뭐가 문제인지를 말씀해 주세요. 계속 보류되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일단 앉아.”

       

      선생님의 분위기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기분이 좋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다정한 미소를 띠고 계셨는데. 어딘가 살벌하기까지 한 공기에 조용히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상담은 잘 받고 있니? 요즘 자꾸 시간에 늦는다고 하던데.”

       

      “잠이 많아져서 그런 것뿐이에요. 상담 시간이 새벽 일찍이라. 선생님, 저는 진짜 안 되나요?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너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저 조금 기다리면 해결될 일이야.”

       

      “그 말씀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어요.”

       

      아직은 어렵겠구나, 조금만 기다려 보렴. 다음번에는 원하는 대로 해주마. 매번 미루고 또 미루던 것이 벌써 5년이 넘었다.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해 준 적 없었다. 삽입한 기억을 지우라는 말씀도 잘 들었고, 상담도 빠진 적 없이 갔다. 내 것이 아닌 기억들은 벌써 반 이상이 사라졌다. 너무 어릴 때 삽입해 파형이 잘 튀지 않는 기억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한 거의 다 지웠다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엔 이 수많은 기억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러니 나를 잃어야 벗어날 수 있었다.

       

      “저 더는 못 버티겠어요...”

       

      “그래서 그것에게 네 이름을 알려줬니? 그걸 못쓰게 되면 너라도 쓸 것 같아서? 정신 차려. 너는 사람이야. 그것들이랑 달라.”

       

      선생님은 한 번도 그릇들을 사람처럼 부르신 적이 없었다. 그것. 지석에게는 이름까지 지어주셨으면서도 여전히 '그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안 되는 걸까. 내가 사람이라서? 하지만 절 사람답지 않도록 만든 것은 선생님이시잖아요. 원망 대신 애원을 택했다.

       

      “제가 돼야 해요. 그 애 말고 제가, 제가 그릇이 되어야 해요.”

       

      그렇게 사라지면 안 되는 아이예요. 그 애를 살려주세요. 그리고 부디, 저를 이만 편안하게 해주세요.

       

      “그건 이미 완성됐다. 조만간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러시지 않는다면, 이제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




      노크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옷을 갈아입던 지석이 놀라 펄쩍 뛰었다. 다리 한 쪽이 옷에 끼인 채 허우적거리는 걸 넘어지기 전에 겨우 잡아 침대에 앉혀두었다.

       

      “당장 나가자.”

       

      시간이 없다. 완성 후에는 의뢰인의 컨디션에 따라 수술 일정을 잡으니, 병으로 한시가 급한 선생님이라면 내일 당장이라도 수술에 들어갈지도 몰랐다. 온 방 안을 휘저으며 더플백에 옷이며 세안 도구 등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었다.

       

      “왜 이래?”

       

      “나가자며, 밖에. 가자. 지금 시간 없어.”

       

      “갑자기 날 왜 내보내려고 안달이야.”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석을 돌아보았다. 그는 표정을 잔뜩 굳힌 채 내가 넣어놓은 옷가지를 도로 꺼내어 꽉 쥐었다.

       

      “나 말고 네가 그릇이 돼야 하니까?”

       

      “네가 살고 싶다며. 여기서 나가서,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일도 하고 싶다며.”

       

      “내 핑계 대지 마... 내 방에서 나가줘.”

       

      더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지석이 나를 잡아끌었다. 몇 발짝 끌려가다 힘을 주어 버텼더니 우뚝 멈춰버렸다. 지석이 내 손목을 꽉 잡았다. 힘이 얼마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너랑 살고 싶었던 거란 말이야.”

       

      “어?”

       

      “정수랑... 밖에 나가고 싶었던 거란 말이야. 그런데 너는 그냥 내가 거슬렸던 것뿐이잖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끅끅대며 목이 메이는 소리가 나더니 지석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거슬리다니. 손바닥으로 급히 그의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눈이 커서 그런지 눈물방울도 커다래서 소매가 금세 다 젖었다.

       

      “닥터한테 그랬잖아. 나 말고 네가 돼야 한다며.”

       

      “너, 너 그걸 어떻게 들었어?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려던 변명이 뚝 끊겼다. 정말로 그런 뜻이 아닌 것이 맞나? 내가 그를 대신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만 사라지고 싶었다. 다만 네가 거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내 말을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가...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은 느낌에 말문이 턱 막혔다. 꼭 나랑 같이 살지 않아도 되니까, 정수 말고 다른 누가 되지 않았음 좋겠어... 지석은 자꾸 들썩이려는 숨을 겨우 붙잡고 말을 끝내고선 아이처럼 소리 내 울었다. 참지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도야. 나도,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그랬어. 그를 따라 눈물이 비죽비죽 새어 나왔다. 부둥켜안은 채 우리는 한참을 울었다.




      “사실 넌 노아 선생님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선생님의 그릇이야.”

       

      “알아.”

       

      “어떻게?”

       

      “... 닮았잖아.”

       

      지석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마저도 언젠가 선생님이 쌀국수에 들어간 고수를 먹었을 때 표정과 비슷해서 쓴웃음을 지었다.

       

      “선생님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당장이라도 준비만 되면 수술에 들어갈 수 있어. 최대한 빨리 여기서 나가야 돼.”

       

      “정수는? 정수도 갈 거지?”

       

      “...나는...”

       

      “같이 가야지. 응?”

       

      선생님은 나한테 아버지나 다름 없었다. 우리 둘 다 없으면 선생님은 곧 돌아가실 텐데.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지석이 불안한 듯이 내 손을 꼭 잡아 왔다. 사람은 원래 언젠가 죽어. 기억만 보존한다고 그걸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냥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거야. 네가 닥터의 기억을 갖는다고 해서 닥터가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 미안. 그래도 나는 여기 있을래.”

       

      “그럼 나도 못 나가.”

       

      “지석아, 떼쓰지 말고,”

       

      “나 다리가 잘 안 움직여.”

       

      “뭐?”

       

      침대에 앉혀두었을 때부터 연신 다리를 주무르더라니.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 살펴보았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알 방도가 없었다. 

       

      “닥터가 마취를 해뒀어. 풀려가는 중이긴 한데, 아직... 다리가 계속 저리고 힘이 잘 안 들어가. 아마 곧 다시 약을 놓으러 올 거야. 다 풀리기 전에.”

       

      “...”

       

      아찔해지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선생님. 어디까지 추락하고 계신 걸까. 언제나 그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병이 악화될수록 선생님은 점점 내가 아는 다정한 모습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




      평소 그릇들의 식사와 운동 스케줄이 어땠길래, 지석은 너무도 가벼웠다. 등에 얌전히 업힌 그는 5년째 이곳에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게 다닌 나조차 모르던 경비의 배치와 비상구 위치를 안내했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았을까. 어차피 CCTV에 전부 찍히고 있겠으나, 선생님 외에 내가 이곳을 드나드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인 관리실 아저씨는 지금 모니터를 보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쯤 내가 시켜놓은 야식을 앞에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평소에 같이 야식 먹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복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 발소리를 죽이고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무리 가볍다 해도 지석을 등에 업은 상태로 몇 층을 계단으로 내려오고 나니 이 추운 날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1층에 다다르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문이 열려있나. 흠뻑 젖어있던 땀이 식으며 오싹한 추위가 느껴졌다. 평소에 밖을 드나들 때 사용하던, 아무도 오지 않는 뒷문으로 향했다. 지석은 그때부터 제가 걷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제 괜찮아. 움직여진다니까. 그럼 다리를 꽉 붙들고 부러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뒷문은 경첩이 낡아 조금 비틀어져 있었다.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문틈으로 바람이 새어드는 소리가 스산했다. 문을 잡아 뜯듯이 열면 발목까지 쌓인 숫눈길과 시멘트 담장이 보였다. 건물을 빙 돌아 나가면 연구단지 밖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가다 보이는 머릿돌에서 좌회전, 다시 나타난 담장을 따라 우회전해서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

       

      바람이 꽤 차가웠다. 얇은 재킷 하나 겨우 걸친 지석을 힐끔 보고 걸음을 재촉했다. 신고 나온 검은색 운동화는 눈길에 금세 젖었다. 발가락이 얼어 통증이 느껴졌다. 곧 지나니 그마저도 감각이 없어, 땅바닥에 내딛고 있는 게 발인지 발목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니?”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걸음을 멈추고 메이는 목을 쥐어짜 대답했다.

       

      “네. 가려고요.”

       

      “내가 죽어도 괜찮다는 소리구나.”

       

      “제가 남으면 되잖아요. 이 애는 보내주세요.”

       

      “정수! 무슨 소리야?!”

       

      “넌 애초부터 그릇으로 쓰일 수도 없어. 날 살리려거든 그걸 이리 내라.”

       

      지석을 그대로 업은 채 하나도 소용 없을 뒷걸음질을 쳤다. 안 돼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거절하니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한 발짝. 선생님이 천천히 다가왔다.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간신히 버티고 섰다. 그 사이 지석이 내려오겠다고 발버둥을 치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놀라 그를 부축하는 사이 선생님은 어느새 눈앞에 서 계셨다. 그리고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은 건조한 눈으로 나와 지석을 내려다보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저도, 선생님도, 지석이도 모두 방법이 있을 거예요…”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 건 없어. 얘야, 정수야. 너는 왜 자꾸 그것들에게 정을 주는 거니.”

       

      “선생님도 그러실 거예요. 좋은 분이시잖아요. 제가 알아요. 그니까…”

       

      탕,

       

      온통 하얀 세상에 핏빛으로 굉음이 터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잠시 이명이 울리며 귀가 안 들리고, 시야가 흐려졌다.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곧 이명이 가시고 난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 내게 내밀어졌던 그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가 가리키는 곳에는…

       

      “지석아!”

       

      왼쪽 어깨에서부터 핏자국이 빠르게 번져갔다. 안 돼, 안 돼. 충격에 정신을 잃은 지석은 눈을 감은 채 쓰러져 미동도 없었다. 숨은, 숨은 쉬고 있다. 심장도 뛰고 있다. 그제야 다급하게 겉옷을 벗어 상처 부위를 지혈했으나, 소용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금세 피로 젖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원망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으나, 선생님은 여전히 서늘한 표정으로 다시 장전하여 이번에는 나를 겨누었다.

       

      “의료진을 불러주마. 데리고 들어가자.”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에 그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 나의 하늘이 더 이상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단단히 딛고 있던 발밑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종양이 당신의 뇌를 전부 파먹어 버리기 전에, 차라리.

       

      정신을 차렸을 땐 내 양손이 선생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나 손을 떼었으나 선생님은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초점 잃은 눈동자도 움직임이 없었다. 아아. 아아아… 그러게 왜, 왜 그러셨어요. 눈바닥을 기어 그에게서 멀어졌다. 손바닥에 닿았던 살의 감촉이, 발작하듯 몸부림치던 움직임이 여전히 징그럽도록 생생하게 남아 피부를 타고 온몸을 기어다녔다. 머리를 부여잡고 태아처럼 웅크린다. 작게 작게 구겨진다. 이대로 점점 작아져 사라지면 나을 텐데. 아무도 모르게. 여기서 있던 모든 일이 모두에게서 없던 것이 될 수 있다면…

       

      …아.

       

      그래선 안 된다. 번뜩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지석이를, 그 애를 살려야 한다.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겨우 가누어 그에게 다가갔다. 이 모든 참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던 일이 되어선 안 되는 유일한 이유. 지석의 어깨를 할 수 있는 한 동여 매어 두고 그를 등에 업었다. 여전히 눈앞을 가리우는 눈보라를 향하여 한 발씩 내딛었다.

       

      선생님, 저를 영영 용서하지 마세요.




      ...

       

      ..




      -




      ◇ ◇ ◆




      Epilogue_“the Joker”




      삐, 삐.

       

      심전도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눈을 뜨기도 전에 어깨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만 싶은 통증이었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차분한 목소리가 나를 잠기운에서 끌어냈다. 가까스로 눈을 뜨니 처음 보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김정수 환자분, 여기 다온병원이에요. 총상 수술하셨고, 지금 상태 괜찮으세요. 움직이지 마시고 숨 천천히 쉬세요.

       

      “총상요...? 헉,”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에 튕기듯 몸을 일으키려다 극심한 고통에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아이고, 움직이지 마시라니까.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의료진은 저들끼리 몇 마디 나누고는 병실을 나갔다. 1인실의 널찍하고 조용한 입원실엔 나만 혼자 덜렁 남았다.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파서, 누운 채로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나를 여기까지 어떻게 데려다 놓은 건지,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당장 일어나 찾아 나서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정수 환자분.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중에 겨우 움직여 확인해 본 바로는 병실 이름표도 김정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정수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이틀만이었다. 닥터 노아가 죽었다는 소식이 한창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익명의 신고로 발견된 그는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 진행 중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전했다. 눈이 계속 쌓여 족적도 사라지고, 시신도 뒤늦게 발견된 데다가 영하의 날씨에 사망 추정 시간도 알기 어렵다는 것 같았다.

       

      정수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 두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환자 김정수의 보호자 이름 란에 곽지석 세글자를 적어두었다고 했다. 빼뚤한 글씨로 이름 석 자 적힌 동의서를 확인하고서 이 사람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뒤 발견된 닥터의 유서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권리를 아들인 김정수에게 남긴다고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여 필적감정을 의뢰했으나 닥터의 필체가 맞다는 분석이 나왔다. 닥터가 정수를 특별히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 가족으로 올려놓았을 줄은 몰랐지만. 정수는 알고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을 알고서도... 내게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었을까.

       

      그와 닮은 것을 넘어 유전자까지 완벽히 일치하고, 이름이 김정수이기까지 한 나는 상속자로 인정받기 충분했다. 내게 있는 돈이라고는 닥터의 상속재산밖에 없었기에 병원비는 그것으로 충당했다. 미안, 정수. 나중에 갚을게. 결국 퇴원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그에게 속으로 사과하며 병원을 나섰다.

       

      그날처럼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백지 같은 풍경에 나는 목적도 잃고 우두커니 섰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게 나오고 싶던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다. 사전지식이라곤 3개 국어와 전자레인지에 달걀을 통째로 돌리면 안 된다는 수준의 상식뿐인 내게 진짜 사람들의 도시는 황야나 다름없었다. 나는 껍데기가 맞았다. 내가 나인 줄 알았던 모든 것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지나쳐갔다. 붙박인 듯이 서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다리가 아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무릎이 아파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해가 기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었다. 가로등 아래로 흩날리는 눈발이 희이 빛났다. 더 있다가는 얼어 죽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려다가, 숨을 멈추었다. 눈앞에 내밀어진 두 장의 트럼프카드 때문에.









      LIST
      FICTION

       

       

      사랑할 리가 없다

      DEAR

       

       

       

       

       

      더 이상 클로토의 수리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곽지석은 그 문구를 자신의 수리점 안내 공지에 올리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백수천의 부품들을 모아두어도, 언젠가는 소모되고 결국 사라지는 것들은 존재한다. 실상 부재만이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곧 단종된다는 부품을 당장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언젠가'라는 명목을 대며 박스째로 사두고는 했지만, 모든 것은 고작 그때뿐이었다. 낡고 닳아 망가지거나, 아름다운 채 잊혀지거나. 어느 쪽이 더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석은 생각했다. 세상에 영원불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십삼세기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 지금, 어떤 인간도 안드로이드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삶의 필수재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지구에서 가장 큰 안드로이드 기업인 A사의 기술력과 선견지명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회사의 세 번째 인간형 기체이자, 첫 번째 가족형 안드로이드인 클로토가 이러한 시대의 첫 디딤돌이 되었다. ‘가족형’ 안드로이드의 등장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AI는 감정이 없으니, 외려 감정을 쉽게 받아줄 수 있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을 현실화시킨 것뿐이다. 로봇의 기능적 쓸모 대신 감정적 쓸모를 최우선으로 제시하며, A사는 공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그 선두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만연한 감정적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라며 긍정적인 평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누구나 첫 애착을 가족으로부터 형성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가족을 만나지는 못한다. 그런데 내가 원할 때 나의 아빠, 엄마, 형, 누나, 동생, 자식 또는 연인이 되어 주는 로봇이라니. 구매 시에 얼굴, 목소리, 성격까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는 옵션까지도 완벽했다. 가격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어차피 가진 놈들은 언제나 배부르고 가난한 놈들은 목소리도 못 내보고 배곯아 죽는 세상이다. 배부르고 남부러울 것 없는, 오직 주는 사랑만 낼름 받고 싶은 사람들이 굳이 누가 서로에게 서로를 맞추려 애쓰겠는가. 덕분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가족, 클로토’ 라는 광고는 좋게든 나쁘게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것이 너무나 인간 같은 탓에 사실은 곧 죽게 생긴 거지들 얼굴만 뜯어고쳐 만들어진 것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 역시 함께 돌았다. 그게 고작 이십 년쯤 되었다.  

       

      이제는 수많은 회사가 서로 다른 차별점을 어필하며 다양한 기종의 가족형 안드로이드 모델들을 생산해 대고 있지만, 클로토를 개발한 A사의 명성을 뛰어넘은 곳은 아직 없다. 클로토가 그만큼 잘 만들어졌으며, 가장 대중화된 첫 안드로이드 모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겠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이미 구시대의 로봇이라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클로토라는 기종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지는 벌써 십 년, 그리고 눈 부분에 들어가던 부품을 만들던 업체가 도산한 것은 오 년 전의 일이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연결 부품 역시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어느새 클로토의 수리는 심히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평범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바꾸듯 새로운 안드로이드로 기종을 갈아치웠다. 그러고 나면 고장 난 구형 클로토들은 빈민계층에 버려지듯 팔렸다. 한편, 클로토가 지향하던 ‘가족형’ 안드로이드라는 점이 의외로 클로토를 세상에 오래 남게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로봇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기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슨 로봇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어 했다는 말이고, 그것을 갈아치울 수 있음에도 일종의 사형선고를 내리고 싶지 않아 했다는 뜻이다. 낼름 사랑을 받아갈 줄만 알았던 이들이 어느새 사랑을 한다니. 계속해서 최신형 안드로이드를 더 많이 팔아댈 궁리를 하고 있던 기업들에게는 나쁜 일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며칠 전, 드디어 A사는 드디어 클로토의 소프트웨어 작동 전면 중단을 선포했다. 분명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기능하는 클로토는 어딘가에 존재했으므로, 누군가에게 그것은 사형선고였을지 모른다. 돌아오는 이월부터는 모든 클로토가 작동을 중지합니다.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안드로이드 가족을 자신에게 선물하세요. 발랄하게 흘러가는 따뜻한 색감의 광고화면 속 여자의 목소리가 무섭도록 잔인했다.

       

       


       

       

       

       

      지석의 수리점에는 꽤 큰 지하 창고가 있다. 일 층에서 철제 문을 열고 기다란 복도식 계단을 타고 내려온 뒤, 다시 경첩이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간이 매트리스와 한 사람이 누우면 꽉 맞을 것 같은 책상이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문과 함께 벽에 붙어 놓여있었다. 책상 위에는 몇 가지 단순한 공구들과 라디오 하나뿐. 그곳에서 지석은 로봇을 분해하고 수리했으니, 일종의 수술대라 불러도 좋겠다. 그 공간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부품이 제멋대로 온갖 공간을 아무렇게나 차지하고 있었다. 꼭 골동품 상점을 연상케 하듯 빼곡히 가득 찬 종이 상자들의 혼돈 속에서 무엇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지석만이 정확하게 알았다. 그에게 지하 창고는 불을 끄고도 눈에 훤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거리며 하루의 절반 이상을 머무는 그 삼십 평쯤 되는 공간을 속속들이 모르는 것이 되레 이상하다. 오늘 지석은 수리점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에게 남은 클로토의 부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신과 간혹 마주했던, 그러나 이제는 수리로도 연명하지 못하게 될 얼굴들을 몇 알고 있었다. 가끔 그 안드로이드와 다정히 손을 잡고 오던 할머니의 얼굴도 이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념에 잠겨 정리하는 일이 미적 해지려던 찰나 지석의 워치가 울렸다. 손님이 있다는 호출이었다. 지석은 튕겨져나가는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쪼그려 앉아 있던 탓에 무릎이 삐걱거렸다. 회끼 도는 물 빠진 노란 머리를 괜히 먼지라도 내려앉은 양 털어내다가 몇 번의 재채기 하고서 그 지하 창고를 나섰다. 어쨌거나 클로토 수리는 더 이상 아무도 문의하지 않겠구나 생각했고, 어딘가 공허한 마음이 스쳤다.

       

      호출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 지하에서 지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솔직히 너무 멀었다. 그 이전의 주인이 지하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지하창고에 보관했는지는 몰라도, 지석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어떤 조치를 취하는 대신 그렇게 내버려둔 것은 외부와 단절된 그 지하가 퍽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으면 햇볕도 바람도 타인도 없이 외로움에 푹푹 찌든 채로도 잘만 살아남을 것 같았다. 반면 수리점 일 층은 지하와 비교하면 아주 작았다. 고작해야 사람 셋 정도가 넉넉히 서 있을 수 있을 만한 정도의 크기. 한 번에 한 명의 손님만 상대하는 지석에게는 딱 알맞은 사이즈 였을 수도 있겠다. 인원은 늘 자신, 손님, 그리고 인간을 같은 기계 하나. 그 이상의 과적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준 미달인 경우는 또 처음이라 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섰다. 거기에는 남자 하나만 물끄러미 서 있다. 착 가라앉은 차분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보다 반 뼘 큰 키, 조금 째진 듯한 눈과 둥근 뺨을 훑어보고 있으면 그가 이렇게 묻는다.

       

      "수리점에 이런 걸 물어서 죄송한데요,"

       

      죄송함을 먼저 말하는, 조곤조곤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차마 말을 끊지 못하고 무슨 일이세요, 하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면 돌아오는 물음은 이렇다. 지석은 맥 빠진 한숨을 쉬었다. 굳이 그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앞에 선 사람의 눈은 어딘가 간절했다.

       

      "혹시 안드로이드 장례를 치러주시나요?"

       

      수리도, 폐기도 아니고 장례라니. 퍽 귀찮은 일이다. 잠시 고민하던 지석이 카운터 위에 놓인 전자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동시에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수리점 안에 누군가를 가만히 세워둔 채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너무 불편한 일이었으므로 지석이 먼저 웅얼거리듯 말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나가서 차라도 한잔하시죠. "

       

      뒤쪽 벽에 걸린 검은색 롱코트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있으면, 앞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수리점 밖으로 나섰다. 문틈 사이로 차가운 겨울 냄새가 스며들었다.

       

       


       

       

      A사의 클로토 소프트웨어 작동 중단 선언에 오히려 안드로이드 업계의 주가가 성장세로 돌아섰습니다. 반면 금전적 이슈로 아직까지 구형 안드로이드인 클로토를 사용하던 노인이나 빈민계층에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정시마다 공중파 뉴스와 매 사건·사고를 요약해 주는 AI 어시던트가 자신의 명확한 발음을 뽐내듯 딱딱하게 브리핑을 이어가는 목소리가 주변 소음과 섞여 들었다. 카페 안의 공기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언제나 시끄럽다. 지석은 메뉴판을 쳐다보지도 않고 익숙하게 가공육 샌드위치를 시켰다. 순순히 지석을 따라온 남자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주문했다. 둘은 조용히 이야기하기 적당한, 해가 들지 않는 구석의 소파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남자는 지석의 설명을 기다리는 듯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샌드위치가 만들어지기까지 분명 짧은 여유가 있었으므로 지석은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전자 패드를 꺼내 펼쳤다. 그 안에 안드로이드 장례에 관한 서류가 들어있었다. 어디 보험 약관에서 보았을 법한 지루한 단어들이 점점이 찍혀 있는 서류화면 켠 지석이 숨을 한번 깊게 내쉬고, 사무적인 투로 말을 뱉었다. 

       

       

      “그래서, 장례를 치를 안드로이드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안드로이드의 마지막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폐기와 장례. 둘 중 어떤 쪽이든 수리공의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듯이, 로봇 역시 자신을 만들었던 인간의 손에 의해 분해된다. 폐기라는 말은 온전히 쓰레기통으로 향한다는 말이다. 그 문자 그대로 세상에 어떤 정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일로, 그저 쓸만한 부품 몇 개를 해체한 뒤 나머지는 고물이 되어 오로지 금속의 무게 가격을 매겨 팔려나간다. 남는 것은 없으나 수고스러움이 덜하므로 가격이 붙지는 않는다. 오로지 그뿐이다. 그러나 장례의 경우는 다르다. 그건 안드로이드의 삶이라고 볼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을 가치 있게 여기겠다는 뜻이다. 내장된 메모리의 동영상을 스캔 및 편집하여 그 기억을 의미 있어 할 주인에게 돌려주고, 안드로이드의 일부는 일종의 장식품으로 만들어져 보관된다. 가치 있는 인간이 죽어 이름을 남긴다면, 의미 있는 로봇은 죽어서도 인간의 주변에 머무는 무언가가 된다. 그러니 작동하는 동안 얼마나 인간에게 사랑받은 로봇인가를 증명하는 셈이다. 이는 번거롭고 손도 많이 가는 일이기에 그에 합당한 보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가격 조정이 무척 까다롭고 안드로이드의 기억을 스캔하는 일도 꽤 힘든 일인지라, 차라리 안드로이드 장례를 받지 않는 수리점도 제법 있었다. 지석이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다가, 남자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는 대답이 곤란한 듯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안드로이드, 본인입니다.”

       

       

      지석은 그 말에 남자의 눈을 한참이나 빤히 들여다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패드를 접어 닫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가공육 샌드위치와 모과차가 점원의 손에 들려 식탁 위에 올려졌다. 맛있게 드세요. 점원의 친절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지석은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확신하는 듯, 한 번 더 못 박으며 이야기했다.

       

       

      “제 이름은 김정수고요, 클로토에요.”

       

       

      김정수. 지석은 그의 이름을 입속에서 곱씹어보았다. 자신이 안드로이드, 그중에서도 정확히 클로토라는 기체를 콕 집어 자신이라고 밝힌 이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지석은 샌드위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문댔다. 매일 같이 기계를 만져대는 거친 손바닥 안에서 얼굴이 구겨지는 느낌은 좋지 못했다. 지석은 생각했다. 초창기의 많은 가족형 안드로이드에게 이름이란 자신으로 대체된 존재를 의미한다. 초기 안드로이드를 구매하는 많은 이들이 원래 있던 사람에 대한 정보를 덮어썼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상처를 지우거나, 회피하기 위해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일은 의사들에게 긍정적 조언을 요구한 A사의 마케팅 전략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로봇의 시스템적 오류였는지, 혹은 다른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열에 하나쯤의 클로토 기체들은 본 적도 없을 그 이름의 주인에게 애착이 있는 듯한 말과 행동을 보였다. 그 말인즉,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이 기계임을 완벽하게 인지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큰 항의나 애로사항 없이 클로토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토가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바라오던 인간을 완벽하게 흉내 내며 로봇의 일을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로봇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과연 로봇의 일인가? 아니다. 아님이 틀림없다고 우리는 정의 내렸다. 자아를 가진 로봇은 즉시 폐기 대상이다. 지석은 괜히 성질을 내듯 포크로 샌드위치의 겉면을 쿡 찍어보며 그에게 물었다.

       

       

      “왜 본인이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해요?”

       

       

      그는 그 질문을 들을 줄 알았다는 듯이, 일말도 고민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그러나 둥근 눈동자는 빛없이 검기만 하다. 꼭 슬픔을 좀먹은 블랙홀처럼.

       

       

      "저는 대체되었으니까요."

       

       

      김정수는 말을 마치고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잔의 온기를 더듬는 듯 보이는 그의 손가락을 흘끔 보았다. 손등은 햇볕을 받지 못한 듯 창백하게 보였으나 손끝은 따뜻한 찻잔의 열기 때문인지 미세하게 붉었다. 지석의 시선이 바로 그 손끝에 머물렀다. 여러 안드로이드를 수없이 분해하고 수리해 왔다. 더구나 클로토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보았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자, 정확한 사실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 역시 어쩌면 수리공의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무엇도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의 안드로이드는 체온 조절 시스템이 완벽합니다. 외부 환경에 의해 체온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인간과는 달리,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죠. 특히 손발 같은 말단 부위에서는 더욱 인간과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요."

       

       

      지석이 뒷말을 굳이 이어가지 않고 그의 손끝에 머문 시선을 일부러 더 오래 두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한 기색 없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분명 매끄러웠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그렇다면 A사의 초창기 클로토는 인간적 위화감 최소화에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도 아시겠죠. 그 시기의 클로토에는 옵션이 아니라도 일부러 생체 반응을 모방하는 기능을 탑재했잖아요. 눈물이나 땀, 체온 변화, 뿐만아니라 먹고 자는 일까지도요. 그리고 저는 이제 곧 작동이 중단될 구형 기체인걸요. 어쩌면 시스템 오류일 수도 있겠죠.”

       

       

      김정수는 양손으로 찻잔에서 그만 손을 떨어뜨리고는 아직도 지석의 눈길이 향해있는 손끝을 감췄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빛없이 검었고 그 속을 알아챌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지석은 빵을 찌르던 포크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식욕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실 그가 인간인지 클로토인지 확인하는 방법이야 아주 간단하다. 안드로이드에게 삽입되어 있을 메인 칩셋을 진단 스캔해 보면 그만일 일이다. 아무리 오래된 안드로이드라도 칩 안의 일련번호 정도는 남아있을 테니까. 그러나 메인 칩셋을 스캔하는 것은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불법이다. 게다가 그가 만약 진짜 자신의 장례를 맡기고 싶은 안드로이드라는 가정하에, 어딘가의 또 다른 수리공에게 보호자 없이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로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보호자의 통제를 벗어나 자아를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석은 그 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다가 느린 어조로 물었다.

       

       

      "제가 왜 본인이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대체되었으니까’라고 답했죠. 그 '대체'라는 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제가 진짜 김정수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면 진짜 김정수 씨는 어떻게 됐나요."

       

       

      잠시 정적 속에서 카페 내부의 시계가 정각을 울렸다. 김정수는 지석을 바라보는 대신 자신의 찻잔을 내려다보았고, 한층 무거워진 듯한 공기는 상관없이 담담한 투였다. 

       

       

      "그게 중요한가요?"

      "저는 당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증명이 필요하니까요."

      "그럼,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올게요."

       

       

      그는 증명 따위야 어렵지 않다는 듯 곧바로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겨야 할 짐은 없었다. 그가 이 날씨에도 얇은 외투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지석이 자신의 외투를 잠시 흘끗 바라보며 고민하는 사이, 그는 카페 문을 열고 사라졌다. 차는 입도 대지 않은 채 남아있었고, 그의 유독 붉었던 손끝이 자꾸만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그가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한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괴로워질 것 같았다.

       

       


       

       

       

      찬바람 탓에 붉어진 코끝을 괜히 문지르며 버스의 배차간격을 확인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는지 몇 분 뒤 도착한다는 안내가 전광판 위에 밝은 글씨로 떠 있었다. 집에서부터 지석의 수리점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가는 것은 소프트웨어 종료가 선포될 만큼 낡아빠진 안드로이드에게는 꽤나 큰 리스크겠으나 클로토의 장례를 치러주는 수리점을 찾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에너지를 쓰는 것은 무리였으니 지석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딱 한 시간뿐. 인간처럼 숨을 끌어올려 크게 내쉬었다. 가끔은 그런 행동이 모방인지 아니면 필요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체내의 배터리 소모가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간 점검이나 수리를 받은 일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풍경이 흐릿해 잠시 눈을 내리감고 햇살이 비치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나마 클로토가 식사뿐 아니라 태양광을 이용해 보조전력을 충전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에너지를 비축해야만 어딘가에서 갑자기 전원이 내려가 풀썩 쓰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햇볕 아래 눈을 감고 있으면 늘 떠오르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이다. 그래, 나는 분명 ‘진짜’ 김정수를 본 일이 있다.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앳되며 희고 둥근 얼굴로 기억되는 그는, 자신보다 애교 넘치고 귀염성 있으며 다정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가족의 형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는 충분히 그 안에 들어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고임이 틀림없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마치 고장 난 구형 모니터처럼 노이즈 필터가 낀 것 같다. 모든 것은 뚝뚝 끊기는 이상한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안에 김정수의 얼굴과 다정한 목소리가 있다. 엄마는 나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백십사 번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

       

      정류장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계음의 안내멘트에 느리게 눈꺼풀을 들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여전히 흐릿하다. 혹시 안구 부분에 문제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려본다. 멀리서 초록색 버스가 다가오는 것이 보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는 곳 앞에서 손목을 가져다 댔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교통 요금이 빠져나갔다. 빈자리에 앉으면 버스가 공중으로 뜨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감으면 동시에, 몸이 뒤로 쏠리는 느낌이 든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출발합니다. 익숙한 안내음을 뒤로하고 나는 김정수에 대해 생각한다. 그 다정하고 희끄무레한 형상에 영원히 눌려있는 것 같다. 차라리 그것을 아주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까.

       

      가장 오래되었으나 아주 선명한 기억이 감은 눈꺼풀 아래에서 재생된다. 모든 것은 불안과 함께 시작한다. 정신과 로비에 앉아 진료를 받으러 들어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볼륨 없이 커다란 화면으로만 보이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 어쩌다 거기에 따라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에 앉은 대부분의 자신의 전자기기를 향해 시선을 집중해 있었고, 나는 배우의 입 모양을 읽어보려 눈을 더 크게 뜨고 있던 중이었다. 카운터에 앉은 직원 둘이 대화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오로지 우연이었다.

       

       

      “… 충격으로 목소리가 안 나오신대요.”

       

       

      다른 한 사람이 탄식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대번에 그것이 엄마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여전히 시선은 화면에 놓여있었지만,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글자 몇 개가 귓가를 간지럽히다 사라졌다. 그들은 더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다가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자신의 손을 잡고는 진료실 앞에 섰다. 왜요? 묻고 싶었으나, 들어가 보라는 듯한 얼굴에 손잡이를 돌려 열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흰 가운을 입은 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의사, 그 앞에 앉아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 아빠 그리고 진료 소파에 앉아 눈물범벅인 엄마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다가가면, 그녀는 입술을 버끔거리다가, 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수 왔니?"

       

       

      그 네 글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잠시 자리에 멈춰 섰으나, 정적만이 흘렀다. 세 명의 어른, 여섯 개의 눈동자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지금 나를, 김정수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순간 이곳에 서 있는 것은 오로지 김정수여야만 할 것 같았다. 착한 아이처럼 억지로 미지근한 미소를 지어내듯 입꼬리를 구겨 올리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김정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그렇게 김정수가 되었다.

       

      자꾸만 재생되는 과거의 영상을 끊어내지 못하고 내릴 곳에서 한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걷기에는 멀었고, 다시 버스를 타기에는 기다림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버스가 자신을 내리고 떠나가는 것을 멍청하게 바라보았으나 마땅한 답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되는대로 걷기를 선택한다. 찬 바람이 껍데기를 스친다. 김정수로서의 삶에 대해 딱히 유감은 없다. 로봇은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그저 인간에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그 삶의 역할을 다했는지 증명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자꾸 속이 공허한 것은 왜일까. 눈앞이 흐리다가, 뺨을 타고 차가운 액체가 흘러내린다. 무표정하게 그것을 닦아냈다. 이제 대체품의 역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김정수라는 이름을 가진 클로토에 대해 좀 알아봐 줘."

       

       

      수리점에 제법 자주 들락거리는 준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다 했다. 배달부터 해킹까지, 능력도 제법 좋아서 그를 알고 지내는 것 자체로 인맥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준만큼 개인 정보에 철저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웬만해서는 얼굴을 다 덮는 검은색 오토바이 헬멧을 벗지 않았고 가끔 감정이 격해지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헬멧 앞 유리를 들어 눈을 빼꼼 내비치는 것이 다였다. 때문에 그를 그렇게 오래 알았음에도 그의 얼굴보다는 그 헬멧과 목소리로 기억했다. 다만, 그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높낮이가 심한 편이라 감정이 쉽게 티가 나는 편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편하기도 했다. 그는 지석이 내뱉는 명령조의 부탁에 허, 하고 한숨을 뱉으며 팔짱을 끼고 카운터에 기대섰다. 

       

       

      "형은 그런 이름이 한 둘인 줄 알아요?"

       

       

      그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며칠 만에 본 얼굴이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요즘 일감이 별로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에게로 시선을 향하지도 않고 컴퓨터로 작업 일정을 정리하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냥 정보만 리스트로 뽑아다 줘도 돼. 비교는 내가 할게."

      "그건 왜 필요한데요?"

       

       

      그의 가벼운 질문에 모니터에서 시선을 들었다. 무표정하게 카운터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앞에 서 있던 김정수의 동그란 얼굴이 잔상처럼 그려졌다. 굳이 변명이나 거짓말로 의심을 살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말할 필요도 없다. 지석은 짧게 답했다.

       

       

      "장례 문의가 들어와서."

       

       

      준은 갸웃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소문이나 정보에 대해 아무리 빠삭하다지만, 모든 것을 캐묻는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대신 보수는 넉넉히 주셔야 해요, 하고 농담 아닌 진담을 말했을 뿐이다. 다시 화면 속 일정표로 눈을 돌리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카운터 위에 부품 박스를 올려둔 채 한참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떠들다 다음 일이 있다며 사라졌다. 그동안 지석은 계속해서 자판을 누르며 고작해야 장단을 맞추는 정도의 추임새를 뱉었을 뿐이었다. 준이 떠나고 나면 곧바로 수리점 앞의 철제 셔터를 내렸다. 네온으로 반짝이는 앞쪽 거리와 달리 지석의 수리점은 꼭 존재하지 않았던 양 불을 껐다.

       

      준이 저를 위해 가지고 온 부품 박스를 품 안에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철제로 된 부품이 든 것 치고 무겁지는 않았다. 아마 얼마 되지 않은 양이어서겠지. 건네받은 것은 다름아닌 클로토의 부품들이다. 곧 작동을 멈출 클로토이기에 수리를 맡길 사람도, 맡을 사람도 없기에 그에 따르는 부품은 고철로 버려지는 것이 마땅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모아달라 부탁한 것은 그 부품이 당시쯤 생산된 다른 안드로이드 기기에도 쓰이곤 하기 때문이었다. 클로토만큼 나이를 먹은 다른 안드로이드가 존재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돈을 벌고 싶다면 신형 안드로이드의 부품을 창고에 쌓는 것이 나은 처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석은 늘 어떤 가능성을 버리지 못했다. 하나의 로봇이라도 더 오래 세상에 남길 수 있다면…, 그런 식으로라도 누군가에게 영원을 기약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지하창고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은 나의 그런 사념들이 기계 부품으로 실체화되어 온갖 상자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차갑고 건조한 겨울 냄새가 났다. 가끔은 그게 ‘없음’을 뜻하는 냄새 같았다. 지하에서 부품을 보관한다는 건 녹이 스는 일을 조심해야 했다. 공기 중의 산소와 습기는 철을 산화시켜 쓸 수 없게 만들었고 그렇기에 그 많은 상자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모든 상자를 매번 열어볼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보관 시 낮은 온도와 낮은 습도를 유지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쓰이게 될지, 과연 쓰일 수는 있을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이나 오로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는. 어지럽게 쌓인 박스 더미들 사이에 들고 온 새로운 박스를 내려놓았다. 그중에도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종이상자를 흘끗 바라보았다가, 작은 문을 열고 더 안의 불 꺼진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그곳만이 꿈 없이 잠들 수 있는 곳이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지구는 같은 속도로 자전하며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아침에는 셔터를 올려야 했고, 지하창고에서 수리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로봇들을 손보았다. 정오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왔다. 김정수는 여전히 얇은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카페로 향해 어제와 같은 자리에 마주 앉았고, 이번엔 샌드위치 대신 각자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었으나 누구도 음료에 손대지 않았다. 지석은 어제의 질문을 되풀이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떤 증거를 가져오셨나요. "

      "지석 씨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 수리공이니 제 말을 그대로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수는 어제처럼 미소 지었지만, 오늘따라 그 입꼬리는 더 얇게 굳어 보였다. 그는 카페 테이블 아래에서 자꾸만 손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움츠렸다.

       

       

      "글쎄요, 제가 의심할 정도로 당신이 인간과 유사하다면, 필요한 쪽이 증명해야죠. 제품 코드 번호라거나, 최소한 인간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야죠. 당장 저한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가던 지석이 순간 표정을 굳혔다. 김정수가 식탁 위로 손을 올려 보였다. 시선 끝에 닿는 어제보다 더 창백한 듯 보이는 그의 손끝, 그것을 뒤집어 내미는 그의 손바닥 위로 붉은색 얇은 실선 같은 금이 선명했다. 지석은 고장 난 사람처럼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그다음 공백을 아무렇지 않게 채운 쪽은 정수였다. 

       

       

      "지석씨도 아시다시피, 저는 곧 폐기 예정인 구형 기체예요. 안구 부품 문제로 자주 액체가 새고, 매일 세 시간을 움직이는 게 어려울 정도로 배터리 소모가 심하죠. 어제 제 일과표를 조정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평이한 어조의 목소리였다. 멍청하게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석에게 김정수는 자신의 말을 일정한 속도로 뱉어냈다. 그건 꼭 학습된 말 같기도 했다.

       

       

      "매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필수 기능 점검을 해요. 특히 통각 센서의 작동 여부 같은 것이요. 저는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인간과는 다르게도요."

       

       

      그러나 지석에게는, 더 볼 것도 없이 확실해졌다. 어떤 로봇에게도 재생 기능 따위는 없다. 얇은 절상 옆으로 앉은 검붉은색 딱지가 그가 너무나 확실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눈동자를 보고 대답했다.

       

       

      "아뇨, 당신은 인간이에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정신과에 가보시는 편이 좋겠어요."

       

       

      김정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항변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그런 표정들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언제나와 같은 미묘한 미소를 얼굴 위로 올려 보였다.

       

       

      "…그럼 다른 수리점을 알아봐야겠네요."

       

       

      정수는 꼭 지석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석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가 다른 수리점을 알아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인간이라면 자신이 가타부타 끼어들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자리를 뜨려던 정수가 문득 뒤를 돌아 지석에게 물었다.

       

       

      "지석씨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아니요."

       

       

      곽지석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럴 수 있길 바라지만 무엇도 무언가를 대체할 수 없다, 는 뒷말은 꾹 눌러 삼켰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등을 돌린 그의 발걸음이 하나씩 멀어졌고, 카페 문을 열고 나서는 것이 자리에서도 보였다. 창밖으로는 눈이 오기 시작했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김정수의 부식이나 장례 따위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여전히 날씨보다 현저히 얇은 그의 옷차림이 생각났다. 식탁 위에는 커피 두 잔만 그대로 남아 차갑게 식어있었다.



       


       

       

       

      밖에는 눈이 내렸다. 조금씩 굵어지는 눈 알갱이에 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하늘은 회색빛이 짙어 해가 보이지 않았다. 지석의 말처럼 붉게 물든 손끝을 손바닥 안으로 말아쥐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내일부터는 다른 수리점을 다시 알아봐야지. 그래도 이월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있으니까, 서둘러 발품을 팔면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내가 그를 허투루 대체해 오지 않았다는 증명을 남겨야 나의 두 번째 이름에 나도 조금은 발붙일 수 있지 않을까. 고작 하루 세 시간짜리 뒤늦은 허우적거림으로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곽지석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으나,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완벽해지고 싶었다. 초록색 버스는 오차 없이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고, 언제나처럼 타는 곳 앞에서 손목을 찍었다. 기계음과 함께 요금이 빠져나갔다. 자리에 앉으면 버스가 덜컹거리며 상승한다.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기 위해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들을 눈에 꼭꼭 담았다. 모두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언젠가는. 내려야 하는 정류장까지, 지나치는 모든 것을 기억하려 애써보지만, 그것들이 그저 더미 메모리가 되고 말 것임을, 나도 안다.

       

      십여 년째 오가는 집 앞의 삼 미터가 될까 한 짧은 건널목에서도 꼭 신호를 지켜 건넜다. 부모님의 엄격한 명령 아래 뛰지 않고 얌전히 걷는 것이 나의 착한 아이로 향하는 과제 중 하나였다. 정수는 착한 아이지? 딱딱하게 굳은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힘주어 끌어당기던 손의 힘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멈춰 세웠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어도 나는 그 압력이 사라져야만 길을 건넜다. 그들이 말하는 김정수가 되어야지. 그들이 원하는 김정수가 되어야지. 나는 김정수고, 김정수는 완벽하게 착한 아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집 현관문을 열 때까지, 언제나 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 이제는 예순을 바라보는 그들이 여전히 나를 김정수라고 부른다. 

       

       

      "정수 왔니."

      "네, 엄마."

       

       

      나는 아주 익숙하게 미지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녀는 대답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건너온 그 짧은 횡단보도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꼭 하염없이 진짜 김정수를 기다리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매일 반복 재생되는 영상 같고, 이월이면 모든 것이 종료될 것이다.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나는 감히 그것을 판단하는 대신 방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는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무시하며 인터넷을 뒤져 장례를 치러줄 만한 곳을 찾으려 애썼다. 꼭 수리점이 아니어도 좋다. 합법적인 사이트들에서는 대부분 보호자 동의서를 상담 문의 바로 아래에 끼워놓았으므로 상담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불법적인 것도 괜찮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웹을 하염없이 살피다 보면 검색에 걸리지 않지만, 장례 후기가 남아있는 불법 수리점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비행기를 타야 할 만큼 멀었고, 하나는 남아있기는 한 건지 위치조차 확인할 수 없었으나, 마지막은 곽지석의 수리점을 찾아갔던 동네와 멀지 않았다. 화면 속 지도를 빤히 바라보며 찍혀있는 주소를 되새겼다. 문득, 카페에서 지석이 ‘당신은 인간이에요.’라고 말하던 단호한 목소리가 떠올랐으나 중요치 않았다. 손도 닿지 않는 날갯죽지 부근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어깨를 쭉 펴고, 다시 컴퓨터 화면 속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다른 수리점을 알아보겠다며 사라진 김정수를 잡지 않고 보낸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사흘 동안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가 잠시 그쳤다가를 반복했다. 폭설 경보가 전 지역에 내려졌다. 그러나 누군가를 향한 걱정 따위의 감정은 여유가 많은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로봇도 아닌 인간을 걱정할 만큼 인생이 한가롭지 못하다. 차라리 진짜 안드로이드였다면 그에게 성심성의를 다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 오늘도 저녁까지가 마감 기한인 수리 작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창고의 수술대 위에 부활을 꿈꾸며 누워있는 생활 기능성 로봇의 복구에만 최선을 다하면 오늘이 끝날 것이다. 지석은 정리되지 않은 미세한 전선들을 클램프로 집어놓고 핵심부품의 결함을 확인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핀셋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워치가 울렸다. 준의 가벼운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넘어왔다. 

       

       

      "형, 저 오늘 눈 때문에 못 갈 것 같아요. "

      "그래."

       

       

      덕분에 기한이 늘었지만, 그렇다고 뒤로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자신을 기다리는 다른 수많은 기계들이 줄을 서 있다. 조명을 더 밝혀 핵심부품 내부를 들여다보며 짤막하게 답했다. 준은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음성 연결을 끊지 않았다. 한 박자 느리게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형이 알아봐 달라던 거 있잖아요. 김정수란 이름의 클로토는 안 남았대요. 하나 빼고는 장례 절차 밟거나 폐기 됐어요."

       

       

      사실 이제는 의미 없는 정보였다.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했으니까. 그래도, 정보를 캐내는 사람이 예외를 두었다는 것은 물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장단 맞춰주듯 되물었다.

       

       

      "하나는?"

      "그, 옛날 사건 기억해요? 클로토가 사람을 구하고 복구불능이 된 사건이요. 안타깝다고 말이 좀 있었는데. 암튼, 사건의 클로토더라고요."

      "그럼 폐기 된 거 아니야?"

      "그게, …폐기를 안 했더라고요."

      "뭐?"

      "정보가 없어요. 메모리 칩이랑 부품들이 완전히 박살 나서 A사에서 폐기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던데, 폐기를 안 했어요. 이상하죠."

       

       

      신나게 이야기하던 준이 말을 멈추니 잠시 침묵이 오갔다. 폐기되었을 것이 당연한데도, 폐기되지 않은 클로토. 그 말은 메인 칩이 어딘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 보호자가 로봇을 끔찍이 아꼈을 가능성을 차마 배제하지 못했다. 지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말이 툭 튀어 나갔다.

       

       

      "일련번호는?"

      "남아있어요."

      "혹시 그거, … 메일로 좀 보내줄래."

      "옙. 바로 보낼게요. 정보요금 입금해 주셔야 해요."

       

       

      연결을 끊는 준의 음성은 어딘가 신난 듯한 투로 들렸다. 진행하던 로봇 수리를 잠시 중단하고 패드로 전송된 메일을 확인했다. 두세 번의 새로고침 끝에 한 건의 새 메일이 떴다. 

       

       

      김정수 : C-000626

       

       

      이름 뒤의 간결한 일련번호를 클릭하면 정보창 이전에 입금 안내 창이 떴다. 이럴 때는 그가 참 약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정보들에 돈을 받는 게 준의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한 번씩 벽에 턱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메일의 링크는 A사 서버의 클로토 정보와 직통으로 연결된 듯 보였다. 해킹은 엄연히 불법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손안에 들어온 궁금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석은 빠르게 지문을 눌러 결제를 마치고 내용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자신이 아는 정수가 아닌, 어리고 앳된 처음 보는 소년의 외형이 뜬다. 칩셋이 스캔 될 때마다 로봇의 상태가 나열된 정보란은 15년 전, 메모리 칩 및 주요 부품이 복구 불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되었다는 내용에서 멈춰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다는 안도감이 뒤늦게 차올랐다. 창을 닫으려던 찰나, 오늘 날짜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불량 클로토, 강제 수거 조치 필요**

       

      지석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덕분에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쾅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면 안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발신된 서버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보아야 할까? 괜히 알지도 못하는 일에 참견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이게 내가 아는 김정수일까? 그는 로봇인가? 그가 로봇이어야만, …내가 그를 걱정할 수 있는가?

       

       




       

       

      눈이 발목까지 쌓여 밟으면 푹푹 꺼졌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들 하루 종일 내리는 눈에는 방법이 없었다. 제설차가 종일 도로를 돌며 눈을 치우고, 공무용 제설 안드로이드가 충전 시간만 제외하고 끊임없이 일했으나 여전히 불편을 감수해야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길을 뚫고 집 밖으로 나섰다. 눈이 그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집 안에 갇혀있는 것도, 덕분에 하루하루 다가오는 날짜를 세는 것도 버겁게만 느껴지던 탓이었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목표를 미뤄둔 채로는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이 날씨에도 버스는 충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정류장에 내리고 나서는 패드가 최단 경로로 표시해주는 길을 따라 걸었다. 신발 앞 코가 더럽게 녹은 물과 눈이 범벅된 탓에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위치에 도착하면 경로 안내가 끝났다는 파란색 안내창이 떴다. 패드에서 눈을 떼고 살피면 오래된 시멘트벽에 아무렇게나 그라피티가 그려진 낡은 창고가 거기에 있다. 창문은 까만 선팅으로 내부는 보이지 않았고 거대한 철문 덕분에 견고하게 느껴졌다. 과연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문을 밀어 열었다. 끼이익 거리는 낡은 경첩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계세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간이 꽤 넓음에도 느껴지는 퀴퀴한 약품 냄새가 났다. 카운터 너머 더 안쪽의 어두운 방 안에서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철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히고,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울렸다.

       

       

      "누구쇼."

      "그, 수리점에 이런 걸 물어서 죄송한데요,"

       

       

      아까보다 목소리를 조금 더 커다랗게 내며 말했다. 한 문장이 끝나고 혹시나 안쪽의 수리공이 밖으로 나올까 싶어 잠시 침묵했으나, 상대는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더 큰 목소리를 내 물었다. 자신의 음성이 창고 안에서 웅웅거리듯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혹시 안드로이드 장례를 치러주시나요?"

       

       

      그제야 남자가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대머리에 나이를 먹었음에도 험상궂게 보이는 인상은 그의 수리점이 불법임을 다시 상기하게 했다. 정수는 가만히 서서 답을 기다렸고, 남자는 정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손님에게 건네기엔 다소 짧게 여겨지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로봇은?"

      "제가, 안드로이드 본인입니다."

      "클로토 기체치고는 너무 인간 같네. "

      "…."

      "하기야, A사가 초창기에 이상한 짓을 많이 했지."

       

       

      남자는 제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이 혼잣말로 이야기하고는 카운터 안쪽 문을 열며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별다른 설명 없는 행동에 잠시 망설였으나, 더 물러설 곳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린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발걸음으로 그 안으로 들어서면, 남자가 그의 손목을 채듯이 잡고 더 안쪽 방으로 걸음 한다. 이끌려 들어선 방 안에는 화학약품 냄새가 지독했다. 벽에 걸린 수많은 연장이 어두운 조명에 음산하게 보이고, 아무렇게나 놓인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에서만 쨍한 백색의 빛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을 가만히 세워두고는 컴퓨터 앞의 의자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돈은 얼마나 있나?"

      "장례를 치르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하하, 소리를 내 웃더니 팔짱을 끼고 돌아보았다. 그는 이내 웃음을 멈추고 싸늘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메모리 추출하고, 가공해서 유족한테 보내고, 그게 다 기술이고 시간인 건 둘째 치더라도 말이야. 일반적인 수리점도 아닌데 여기까지 왔다는 건 너도 켕기는 게 있다는 뜻이지."

      "…"

      "충분한 금액이라는 건 없어, 내가 만족할 금액이어야 할 뿐이지."

       

       

      예상치 못하게 쏟아지는 말들에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흐르는 정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 통장에 남아있던 잔고를 가늠하던 찰나, 빤히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먼저 말을 이었다. 

       

       

      "일단 상태나 볼까. 칩셋이 살아있는지나 봐야 견적이 나오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 가운데에 놓인 철제 탁자 위를 턱짓했다. 올라가라는 뜻인가? 아니면…. 어쩔 줄 모르고 부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 섰다. 남자는 짜증을 내듯 그 위로 올라가 엎드리라 명령했고, 그제서야 엉거주춤하게 지시를 따랐다. 남자는 팔뚝만 한 구형 스캐너를 들고 손으로 그의 등 면을 훑었다.

       

       

      "……포트가 없군. 무선 연동 모델인가?"

       

      남자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스캐너의 출력을 높이고는 그대로 등 부분에 가져다 댔다. 날갯죽지가 저릿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고통은 느끼지 않도록 설계되었지만, 불필요할 정도로 과한 전류가 통하는 것 같은 이 감각은 심히 불쾌했다.

       

      삑- 삐비빅-

       

      순간, 갑작스럽게 스캐너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시릴 정도로 희게 빛나던 모니터 화면이 붉게 점멸하더니 A사의 로고와 함께 경고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끔찍한 꼴을 당하겠다는 본능이었다. 누워있던 탁자에서 몸이 굴러떨어지듯 바닥으로 내려와 출구를 살폈다.

       

       

      [경고: 강제 수거 대상 식별. 일련번호 C-000626]

       

       

      반면 남자의 눈은 크게 뜨였다. 본사에서 직접 내려진 ‘강제 수거’ 명령이 그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남자가 형형한 눈빛을 띠었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거칠게 목덜미를 잡아챘다. 차마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그의 힘을 당해낼 에너지가 없어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발버둥 쳤으나 그가 손아귀에 더 힘을 주며 소리 질렀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히 있어! A사 수거팀이 오면 너도 편하게 가는 거야."

       

       

      강제로 바닥에 엎어지자 윽윽거리는 앓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편하게 간다는 말은 곧 폐기를 의미하는 게 뻔했다. 이런 식으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불량품으로서의 삭제. 그것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벗어나 보려는 발악으로 팔을 휘둘렀으나 맥없이 공중을 가를 뿐이었다. 남자는 그런 발버둥이 아주 짜증 난다는 듯 들고 있던 구형 스캐너를 휘둘렀다.

       

       

      "이 깡통 새끼가!"

       

       

      피하려고 몸을 돌렸으나 남자가 더 빨랐다. 거대한 기계가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에 부딪혔다. 머리가 울리고 시야가 흔들렸다. 부딪혀 찢어진 머리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지는 액체를, 그리고 자신이 휘두른 스캐너 끝에 묻어난 붉은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름이 아니었다. 냉각수도 아니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명백한 피였다.

       

       

      "……사람?"

       

       

      남자의 당황한 틈을 타 그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뜨뜻한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뒤에서 욕설과 함께 무언가 던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코끝에서 피비린내가 지독하게 났다.

       

       




       

       

      눈은 당장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얗게 가려지는 시야와 발이 눈 속으로 파묻히는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찍혀있던 주소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으나 속도를 낼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럼에도 걷는 것은 그것의 정체를 알아야겠다는 일념이었다. 아니, 걱정인가. 그가 로봇이기를 바라는 것인지 인간이기를 바라는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폐기되지 않기를. 사라지지 않기를. 자신도 속으로 기도하며 모르게 신의 존재를 찾고 있었다. 

       

      낡은 창고들이 늘어선 공터에서 흩날리는 바람과 눈 사이로 비틀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얇은 옷 하나만 걸친 채, 걷고 있는 어떤 인영이 보였다. A사의 기록이 거짓일 리는 없다. 그러나 기록이 사실이라면 지금 저 눈보라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남자는 대체 무엇일까. 자신이 미쳐서 보게 된 과거의 망령, 혹은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고철. 그러나 그의 붉은 손끝과 손바닥 위에 앉았던 딱지가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가 로봇이든, 아니던 간에.

       

       

      "김정수!"

       

       

      그의 이름을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러나 세차게 부는 바람 소리가 목소리를 쉽게 지워버렸다. 푹푹 꺼지는 걸음으로도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좁혀 그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잡았다. 정수가 흠칫거리듯 뒤를 돌았다. 하지만 더 놀란 쪽은 나였다. 그의 이마와 뺨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는 피에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바라봤다. 시선이 내리는 눈 속에서 마주친 것인지 흩어진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지석 씨?"

       

       

      정수는 초점 없는 흐릿한 눈을 하고도, 눈앞의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의 속눈썹에 눈송이가 내려앉아 녹아내렸다.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얇은 옷차림이었다. 미뤄두었던 걱정이 둑이 터지듯 밀려 나왔다. 짧은 숨이, 하얗게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한 박자 늦게 목구멍에서 말이 뱉어졌다.

       

       

      "피가 나잖아요. 씨발, 로봇이 피를 흘리는 게 어디 있어."

      "…꿈인가. 저, 로봇이지만 꿈도 꾸거든요."

      "헛소리하지 말고, 정신 차려요. 제발."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정수를 감쌌다. 자신에게는 길게 내려오던 코트가 그에게는 무릎에서 달랑거렸다. 이유도 모른 채 손이 덜덜 떨렸으나 피가 나는 그의 머리를 꾹 눌러 지혈했다. 얼어 죽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피는 따뜻했다. 그 붉은 액체가 손바닥 안을 물들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로봇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명백한 생명이었다. 고장 나도 부품만 있다면 어떻게든 고쳐낼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한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지석씨, 저는… 고장 났어요. 수거팀이 올 거예요. 불량품이라서…."

       

       

      정수는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모를 떨림 속에서 지석에게만 겨우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딱 잘라 대답했다.

       

       

      "아니, 당신은 고장 난 게 아니야. 그냥 다친 거야."

       

       

      정수를 반쯤 지탱하다시피 하며 앞으로 걸었다. 정수는 제게 기댄 채 겨우 걷는 듯 보였다. 자신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이 눈밭 어딘가에 엎어져 눈이 다 그쳐 녹을 때까지 그 자리에 쓰러져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로봇이라고, 그러니 다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 준이 보낸 파일을 열어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의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아니다. 그가 인간이라고 생각됐던 그때…, 그때 더 빨리 손을 잡았어야 했다. 그의 얼굴을 흘끔 바라보면 김정수는 여전히 초점 흐릿한 눈으로 앞을 보고 있다. 자신이 그를 보는 것을 알았는지, 그가 묻는다.

       

       

      "지석씨 저는…, 아무 쓸모도 없는데. 왜 도와주시나요?"

      "…"

      "역시 꿈인가 봐요."

       

       

      답을 하지 못하자, 정수가 미지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체념한 듯한 웃음이 싫었다.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 마냥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을 돌렸다.

       

       

      "내 가게로 가요."

      "수리 문의는…… 안 받으신다면서요."

      "수리하러 가는 거 아닙니다. 그냥, 눈 피하러 가는 거예요."

       

       

      그 말에 정수는 무언가 덧붙이려다,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질문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비효율적인 일인 것을 그도 아는 탓일 것이다. 그저 몸을 가까이 붙인 채 최선을 다해 걸었다.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 두 쌍은 찍히기가 무섭게 새로운 눈으로 덮여 사라졌다. 

       

       


       

       

       

      수리점은 셔터를 굳게 내려놓은 채였다. 가게 출입문 대신 지하로 곧바로 통하는 뒷문을 열어 정수를 지하 창고로 데려갔다. 로봇이 아닌 살아있는 것을 그곳에 들이는 건 처음이었다. 잘 쓰지 않아 불이 나간 어두운 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그 긴 계단을 내려가 지하의 문을 열면 오래된 종이와 건조한 금속 냄새가 나는 공간이 정수를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를 빠르게 매트리스에 눕혔다. 정수는 긴장이 풀린 듯 눈을 감고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냈다.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고 쓴 적 없던 난로를 끌어와 켰다. 오랫동안 켜지 않았던 탓인지 먼지 냄새가 났으나 다른 수가 없었다. 온도를 최대치로 높여놓고는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

       

      수리가 아닌 치료. 고장 난 기계가 아닌 상처 난 사람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서툰 손길로,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약한 것은 언제나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게 참 싫었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영원불멸한 채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기계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그것의 상처를 먼저 마주해서였던 것 같다.

       

      지하의 찬 공기가 느릿하게 데워지기 시작했지만, 침대 위에 웅크린 정수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마부터 턱끝까지 흘러내려 붉게 물든 피를 물 묻은 수건으로 닦아내면 추위에 허옇게 질린 피부가 드러났다. 붉은 피에서는 쇠 냄새가 났다. 그러나 녹슬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거즈를 뭉텅이째로 상처 부위에 세게 눌러냈다. 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작게 새었다. 고통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소리가 생각나 한숨을 쉬었다. 지석은 손가락으로 워치를 가볍게 두 번 터치하고는 질문했다. 상처 부위는 어떻게 봉합하지? 몇 초의 기다림이 지나지 않아 워치에서 기계음이 흘렀다.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사용하거나 의료용 피부 접착제를 사용합니다.

       

      지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로봇 수리를 위해 약품을 모아놓은 박스를 뒤졌다. 인간과 비슷한 피부를 가진 로봇을 위해 쓰였던 피부 접착제가 있었다. 완전히 의료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대로 계속 피를 흘리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적어도 일반적인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지혈이 된 상처 위로 알코올 솜을 문질렀다. 정수의 얼굴이 예민하게 찡그려지는 게 눈에 띄었다. 못내 그 눈가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 문지르면 이내 풀어지는 인상. 잠시 그 얼굴에 시선을 두었다가, 그의 머리 쪽 피부를 알맞게 당겨 맞춘 뒤 피부 접착제를 도포했다. 작업 자체는 매일 같이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릴 적 몰래 로봇을 수리하던 어떤 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지석아, 너는 완벽해야 해.’

       

       

      부모님이 제 어깨를 꽉 붙잡고 말하던 목소리와 기대 어린 눈빛을 선명히 기억한다. 학교에 가자마자 한 아이큐 검사와 그에 뒤따라 붙은 영재라는 타이틀은 그 기대를 부채질하기에 알맞았다. 담임 선생님은 꽤나 들뜬 목소리로 말했던가. 지석이는 정말 뭐든 될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은 분명 나를 위해 뱉은 것이었겠지만, 가난한 부모에게는 어쩌면 자신들을 위한 마지막 희망처럼 들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지석이는 커서 뉴럴 네트워크 아키텍트가 될 거니까. 그렇지?'

       

       

      그때에는 알아들을 수 없던 이름조차 길고 어려운 그것은, 정신 회로 속에서 영원히 사는 신인류의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 예견되는 새로운 직업이었으며, 동시에 지식과 기술만 있다면 개인으로도 기업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놀이, 오늘의 컴퓨터 게임, 선생님에게 받는 칭찬, 혹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구형 클로토. 그냥 그런 것들이 좋은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그런 어린 나를 보며 부모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내가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벌을 받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싼값에 주워 와 집 안의 모든 잡일을 도맡고 있는 구형 클로토였다.

       

      평소보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한 날이면 온몸에 긴장이 바짝 들었다. 혼나는 게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것이 더 싫었다.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로토는 부모가 휘두르는 골프채를 맞아 몸체가 푹푹 찌그러졌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쳐 나는 충돌음은 언제나 공포스러웠다. 부모는 고작 로봇에게 자비를 가지지 않았다. 네가 틀린 문제 수만큼 이 로봇을 때릴 뿐이야. 이건 네 잘못이잖니. 지석아, 네가 제대로 했어야지. 너는 그럴 수 있는 아이잖니. 그들은 그것이 언제나 나의 탓이라고 말했다. 그 앞에선 언제나 무력했다. 부서지는 로봇 앞에서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울었다. 차마 반항하지는 못했다. 자신도 그것처럼, 그러나 고칠 수도 없게 부서져 내릴까 봐 무서웠다. 그러니 무언가를 지키는 방법에는 완벽해지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런 주제에 밤마다 몰래 로봇을 수리한 건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일이었다. 나를 대신하여 깨져버린 로봇의 외피를 펴고, 찌그러진 프레임을 맞추고, 벗겨진 배선을 다시 잇는 일.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도련님, 괜찮습니다. 저는 아프지 않습니다."

       

       

      클로토는 맞을 때는 꼭 인간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었지만, 수리받을 때는 자신을 위로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것조차 프로그래밍의 일부였을까? 아무래도 좋다. 기계는 어느 정도 부서져도 메인 부품만 남아있으면, 그것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희망적인 부분이었다. 아무리 망가져도 자신이 고칠 수만 있다면.

       

       

      "미안해. 내가 다 고쳐줄게. 내가 최고의 수리공이 돼서, 너 평생 안 죽게 해 줄게."

       

       

      어린 마음에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면 그것은 덜 펴진 얼굴을 하고 찡그리듯 웃었다. 저는 도련님을 믿어요. 그 얼굴을 영원히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내가 더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수리공을 꿈꿨다. 죄책감과 참회, 인간에 대한 혐오와 기계에 대한 애착, 사랑과 불신, 영원이라는 지킬 수 없는 약속. 그런 것들을 전부 그때 배웠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딱 한 번만 돌아가 보고 싶은 나의 지난한 어린 날.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의대가 아닌 공대, 그것도 로봇 수리를 선택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날, 부모는 그 약속을 영원히 부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클로토는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믿고 싶지 않아 온 집 안을 뒤졌으나, 오로지 자신이 수리를 위해 숨겨두었던 부품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의 동의라고는 조금도 없는 완전한 폐기 처분이었다. 그야 클로토의 주인은 부모였으니 나의 동의 따위가 필요치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아끼고 사랑한 것은 오로지 나였다. 어째서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느냐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것도. 이 세상에 나의 편은 없었다. 펴지 못해 결국 교체했던 로봇의 찌그러진 외피만이 나에게 남은 것이었다. 

       

      오로지 부재만이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윽."

       

       

      정수의 낮은 신음에 지석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눈을 반쯤 뜬 그와 시선이 마주쳤으나 별다른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상처 부위에 정방형으로 잘린 두꺼운 흰색 거즈를 종이테이프로 눌러 붙였다. 머리에 붕대까지 둘둘 감아대는 건 너무 과한 처사일 것 같아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카락이나 정리해 주었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뱉었다.

       

       

      "웃옷 좀 벗어봐요. 다른 데도 봐야 하니까."

       

       

      안 그래도 그의 베이지색 니트는 그 위에 떨어진 핏방울이 털실에 엉켜 검붉은색으로 말라 굳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입힐만한 옷이 있는지를 잠시 고민하는 동안, 그는 말없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꼭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새였으므로 굳이 옷을 벗으라는 재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수는 무언가 결심한 듯, 느리게 니트를 벗어냈다. 그러나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그의 등이 드러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 그를 가까이 보면 볼수록, 자꾸만 숨이 턱턱 막혔다.

       

      고작해야 몸싸움이나 눈밭을 굴러 생긴 타박상 정도를 생각했다. 약이나 발라주고 더 재울 심산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고작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날개뼈 부근의 깊은 흉터가 척추를 따라 기괴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 지식 없는 사람이 보아도 한 번에 생긴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알 법 했다. 수없이 째고, 꿰매어진 듯 엉겨 붙은 살의 흔적. 그리고 왼쪽 날개뼈의 피부 아래에 네모난 금속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그 위로 손을 대려다가, 손끝을 손바닥 안으로 말아쥐었다. 만지는 것조차 실례일까 봐 겁이 났다. 덜덜 떨리는 제 손끝이 유난히 차가웠다.

       

       

      "…누가 이랬어요?"

       

       

      제 입 밖으로 튀어 나가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층 낮게 들렸다. 정수는 꼭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주 작게 대답했다.

       

       

      "업그레이드… 과정이었어요. 꼭 필요한 일이라고 모두가 그랬어요. 안드로이드가 메인 칩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아빠가 칩을… 깊숙이 넣어주셨어요."

      "…혹시 제가, 만져봐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요청에, 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이며 허공에서 머물던 손이 겨우 정수의 등 뒤, 흉터 위로 조심스럽게 닿았다. 손바닥을 쫙 펴 그의 날개뼈 위에 올려붙였다. 얇은 피부 아래로 딱딱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작게 쿵쿵 뛰는 진동이 전해졌다. 기계의 모터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심장박동이다. 규칙적인 듯하지만, 절대로 규칙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은. 머릿속이 새까맣게 변하는 것 같았다. 제 심장 소리도 따라서 쿵쿵쿵 뛰었다.

       

       

      "이건 업그레이드가 아니에요."

       

       

      겨우 소리내어 말했다. 정수가 움찔하며 몸을 굳혔다. 흉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의 심장 소리를 내가 듣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인간이라고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김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몸을 웅크렸다. 그가 몸을 동그랗게 말면 칩셋의 위치는 더 명확하게 손안에서 느껴졌다.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정수는 부정하듯, 다시 조그만 목소리로 웅얼거렸으나, 정적이 흐르는 지하창고에서 그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아니에요, 저는…… 저는 클로토니까……."

      "당신 말대로 클로토는 아픔을 못 느껴요. 근데 당신, 지금 아프잖아."

       

       

      그가 몸을 더 작게 웅크렸다. 조금만 더 사실을 뱉었다가는 조그만 공벌레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에 대해 물으면 또 안구 부품의 문제나 기계적 오류라는 바보 같은 말을 할 게 뻔했다. 거짓말쟁이. 아니, 타인을 위해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바보같이 착한 사람. 이상하게도 그가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게 느껴졌다. 자신보다 한 뼘은 큰 사람인데도 끌어안으면 품 안에 쏙 들어올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신 그의 어깨 위로 이불을 둘둘 둘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여기 있어요. 이월이 끝날 때까지."

       

       

      그는 대답이 없었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옆자리를 지키는 대신 일어나 불을 끄고,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구형 라디오를 켰다. 지직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느린 재즈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정수를 두고 자신의 작은 방으로 들어서면, 그제야 밖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음악 사이로 새어 나왔다. 지석은 자신의 방문에 기대 어둠 속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귓가에서 심장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문밖의 그에게 온통 신경이 쏠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으나, 눈을 뜬 건 새벽이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결국 잠을 깨웠다.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끙끙거리는, 앓는 소리. 손목의 워치를 확인하면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시 눈을 감고 싶었으나 잠들기에는 너무 말짱한 정신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 문을 열었다. 난로가 돌아가는 창고는 평소처럼 차가운 공기가 아니라 미적지근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근처로 다가가면 앓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작업 테이블 옆에 놓인 주황색 불빛의 간접 등을 켰다. 간이 매트리스에 몸을 구긴 김정수의 실루엣이 창고 벽 위로 비쳤다.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였으나 소리는 어떻게 해도 다 가려지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이불 속에 몸을 돌돌 말고 잔뜩 웅크린 남자의 머리카락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손을 그의 이마와 베개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한 손에 느껴지는 고열이었다. 그렇게 얇은 옷 위에 눈 쌓인 거리를 돌아다닐 때부터 예상해야 했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의 이마에서 손을 떼었다. 얼음주머니라도 만들어 온 뒤 약을 먹일 심산이었다. 그러나, 손목이 옅게 붙잡혔다. 갈라지는 목소리가, 울먹임 같은 것에 섞여 조그맣게 들렸다.

       

       

      "…죄송해요."

      "뭐가요?"

      "아프면 안 되는데… 아니, 저 안 아파요. 문 잠그지 마세요. 기계는, 열이 나면 멈추는데."

       

       

      되물은 말에 횡설수설하는 정신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웅크린 매트리스 곁에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위로하는 법을 배운 적 없으므로, 그의 말을 정정하는 대신 그의 손을 꽉 쥐었다. 정수가 베개에 묻고 있던 얼굴을, 눈만 빼꼼 드러내 보였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동그란 눈동자. 그 뾰족한 눈매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동그랗고 어두운 눈동자에 주황색 조명이 어른거렸다. 이제 그 눈동자는 슬프기보다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는 다시 눈동자를 숨겼다.

       

       

      "…지석씨."

       

       

      그가 낮고 조용하게,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슬픔인 것처럼 먹먹하게 제 이름을 불렀다. 잠시의 침묵 뒤에 대답했다.

       

       

      "네."

      "저, …살고 싶어요."

       

       

      간결한 대답 뒤에, 붙는 말이 무겁다. 그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말한다. 너무너무 살고 싶었어요. 정말 딱 한 번이라도 살아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죽고 싶었어요. 두서없는 말이 툭툭 터져 쏟아진다. 그의 삶을 예측할 수도, 재단할 수도 없다. 이미 지나간 것은 바꿀 수도, 수리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내일은 눈이 그칠 겁니다. 그러면 샌드위치라도 사 올게요. 가공육 말고, 진짜 고기가 들어간 거로." 

       

       

      목소리는 낮고 단단하게 뱉어졌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겹쳐 얽어 쥐었다. 기계라면 결코 내보내지 않았을 비효율적인 열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정수는 그저 베갯잇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아주 느려서, 계속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았다. 정수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 제 손을 뒤늦게 힘주어 쥐었다. 베개 너머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고기… 들어간 거요?"

      "그래요. 야채도 많이 넣고, 소스도 당신이 좋아하는 걸로."

      "저 무슨 소스 좋아하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내일 물어보겠다는 소립니다. 그러려면 잠이나 자요. 열 떨어지게."

       

       

      내일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 점은 꼭 영원이라는 약속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밖에는 아직 눈이 내릴까. 창문이라고는 없는 지하창고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창고 안의 공기는 여전히 미적지근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지구는 같은 속도로 자전하며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울먹임도, 숨소리도 잦아들고 난 후에야 뒤늦게 조용히 중얼거린다.

       

       

      "잘 자요, 정수씨"

       

       

       




       

       

       

      지하로 해가 들지 않아도 어김없이 아침은 온다. 정수의 옆에서 새벽을 뜬 눈으로 보내다 겨우 든 잠을 깨운 것은 준의 음성메시지였다. 열두 시쯤 수리가 끝난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는 연락이었다. 시간을 흘끔 확인하니 세 시간가량의 여유가 있었다. 지석은 텍스트로 회신하는 대신 전화를 걸려다, 잠든 정수를 흘끔 보았다.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무문을 나서 복도에 선 뒤에야 워치를 두 번 터치해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한 번 채 다 울리기도 전에 그의 쾌활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옙, 준입니다."

      "올 때, 샌드위치 좀 사다 줘. 2개."

      언제나처럼 별다른 인사 없이 용건을 던졌다. 준 역시 익숙하게 대답하려다가,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웬일로 샌드위치를 두 개나?"

      "가공육 말고 소고기로."

      "얼씨구. 진짜 이상하네 이 형. 혹시 하나는 제 거예요?"

       

       

      그가 장난기 어린 질문을 던졌다. 그저 평소의 준이었다. 그렇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투는 아니었음에도 대답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괜히 더 딱딱하게 대답했다.

       

       

      " 내가 다 먹을 거야."

      "그래서 용건은 그게 다예요?"

       

       

      그가 알았다는 듯이 묻는데, 어제의 짧은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태 맛있는 것에는 특별히 흥미가 없었고, 밖에서 자는 사람을 깨워 굳이 소스에 대해 묻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 질문을 주저했으나, 목소리가 제멋대로 튀어 나갔다.

       

       

      "… 소스, 인기 있는 걸로 추천해달라고 해줘."

       

       

      잠시의 정적 뒤에 푸하하, 커다란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준이 그렇게 커다랗게 웃는 걸 들은 건 아주 오랜만이어서 귀가 새빨갛게 익어버릴 것 같았다.

       

      "인기 있는 소스라니, 형 입에서 그런 소리가 다 나오네. 알았어요, 알았어. 소고기 듬뿍 넣고, 요즘 잘 나가는 매콤달콤한 소스로 알아서 사 갈게요. 근데 하나는 내 거 맞죠?"

      "내가 다 먹는다고 했다. 끊어."

       

       

      지석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손목 워치의 화면이 꺼졌지만, 귓가에 남은 열기까지는 꺼지지 않았다. '인기 있는 소스'라니. 뱉어놓고도 스스로가 낯간지러웠다. 이상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고 다시 지하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웅크려 누운 김정수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의 고열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고르게 오르내리는 그의 어깨를 보니 가슴 밑바닥이 아주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굳이 깨우지 않았다. 책상 위에 쪽지 한 장을 달랑 남기고는, 그를 두고 일 층으로 향하는 문을 도로 나섰다. 쪽지에는 지석의 필체로 딱딱한 문장이 남아있다. 일하고 있으니 올라오지 마시오.

       

       


       

       

       

      오픈 시간에 맞춰 가게의 셔터를 올리고 준이 가져가야 할 로봇을 정성 들여 포장했다. 에어캡과 박스테이프로 꽁꽁 둘러져 박스 안에 들어간 로봇은 이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로봇의 의무는 인간의 필요로 결정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정말로 로봇을 사랑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해 줄 뿐인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로봇을 만지고, 고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런 상념에 점점 깊이 잠겨가고 있을 때, 지하에서 통하는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흠칫 놀라 돌아보면 지하에서 올라온 정수가 부은 눈과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제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감사해요, 지석씨."

      "제가 남긴 쪽지 못 봤어요?"

      "아,… 못 봤어요."

       

       

      놀란 가슴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으나, 전혀 모르겠다는 맹한 정수의 얼굴에 오히려 작게 한숨과 웃음이 섞였다. 어쨌거나 김정수에게는 강제 수거 조치가 내려져 있으니 조심해야만 했다. 그게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필요했다. 이렇게까지 조심성 없는 사람이라니, 불법 수리점을 찾아가는 걸로 알아봐야 했는데. 준이 들이닥치기 전에 지하로 돌아가 있으라고 이야기하려던 찰나, 출입문이 열리는 가벼운 종소리가 딸랑거렸다. 놀라 급하게 정수를 카운터 아래로 밀어 넣듯 구겼다. 정수는 영문도 모른 채 몸을 구겨 카운터 아래에 숨었다. 그의 덩치 덕분에 목이 살짝 꺾인 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숨을 죽였다. 

       

      다행히 준은 언제나처럼 같은 검은 헬멧을 쓰고 있었고, 덕분에 정수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준은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포장된 샌드위치 두 개를 달랑달랑 흔들어 보이며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준에게 들키면, 어떤 경로로든 김정수는 신고당할 것이 뻔했다. 카운터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기대 정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긴장한 채 준을 맞이했다.

       

       

      "형, 여기요. 소고기 듬뿍에 매콤달콤 소스. 요즘 이게 제일 잘 나간대요."

       

       

      준이 봉지를 건네며 헬멧 앞 유리를 살짝 올렸다. 그의 눈은 장난기 가득한 채, 자신을 놀리고 싶어 하는 듯했다. 분명 두 번째 샌드위치가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을 다시 하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그런 그에게서 최대한 무표정하게 봉지를 받아서 들었다. 봉지 안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으나 그대로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고맙다는 말 대신 준에게 수리가 끝나 잘 포장된 물건을 건넸다. 의외로 준은 예상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대신 포장된 상자 위에 주소지가 적힌 홀로그램 스티커를 능숙하게 붙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형, 그거 봤어요?"

      "뭐?"

       

       

      준이 자신의 패드를 꺼내 지석에게 보였다. 화면에는 ‘클로토를 찾습니다’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적힌 전단이 떠 있었다. 지석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전단지 속의 사진은 지금보다 어린 낯의, 미지근하게 웃고 있는 김정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일련번호는, 너무도 익숙했다. C-000626.

       

       

      "가족들이 찾고 있대요. 보상금도 꽤 되던데."

       

       

      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층 신이 난 듯 들렸다. 보상금 때문일 것이 틀림없었다. 애써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화면을 흘끗 보았다.

       

       

      "그래서?"

      "에이, 형도 관심 좀 가져봐요. 어차피 이월이면 꺼질 클로토를 이렇게 보상금까지 걸면서 찾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이제 몇 주 남지도 않았는데."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그냥 장난만 치는 애 같다가, 가끔은 돈에 환장한 놈 같다가, 이럴 때는 또 반짝거리는 그의 눈이 무섭다. 속을 알 수가 없는 놈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에게 김정수를 들키는 일은 없어야 했다. 불안감에 괜히 마른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뜯었다. 별다른 반응이 없자, 준이 다시 묻는다. 

       

       

      "혹시 형 가게 근처에서 본 적 없어요?"

      "없어."

       

       

      단호하고 딱딱한 대답에 준이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잠시 생각하는 듯 멈추었다가,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형, 근데 그때 그 클로토가 C-000626 아니에요?"

      "몰라 관심 없어."

      "에이, 결제했더만."

      "내가 찾던 게 아니더라고."

       

       

      준이 말없이 지석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진짜인지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혹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의 눈에는 의심이 담겨있었고, 한번 시작한 거짓말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걸 알고 있다. 더 변명하려는 찰나, 순간 꼬르륵 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정적. 그러나 서있던 준이 와르르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크게 소리 내 웃었다. 지석이 자신도 모르게 곁눈질로 카운터 아래를 본다. 자신도 놀라 동그래진 눈을 한 김정수가 거기에 있다. 얼굴이 새빨간 채다. 준이 겨우 웃음을 멈추고 말한다. 

       

       

      "아, 형 진짜 배고팠구나. 얼른 먹어요."

       

       

      지석은 머쓱하게 목덜미를 긁적이며 비닐봉지 안의 샌드위치 두 개를 주섬주섬 꺼냈다. 준은 물건을 다시 확인하고 옆구리에 끼워 들며 가볍게 이야기했다. 

       

       

      "뭐, 어쨌든 형이 잘 알아서 했겠죠. 그럼, 저 가볼게요. 배달이 산더미같이 쌓여서."

       

       

      준이 가게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딸랑이는 종소리가 멎은 후에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수도 엉거주춤 카운터 아래에서 기어 나와 제 눈치를 보았다. 그가 우물거리며 사과의 말을 뱉었다.

       

       

      "…죄송해요, 저도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어요."

       

       

      정수의 얼굴은 아직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준이 나간 출입문을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해결이 되었으니 좋은 일일까. 준이 이렇게 쉽게 의심을 거두는 사람이었던가. 찝찝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거나 식사를 미루어서는 안 됐다. 샌드위치 두 개를 집어 들고는 정수의 등을 살짝 밀었다.

       

       

      "우리 내려가서 점심 먹어요."

       

       

      정수가 앞장서 지하로 내려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지하 창고는 이제 온기가 제법 따듯하게 돌고 있었다. 작은 상을 하나 펴고, 간이 매트리스에 나란히 걸터앉아 샌드위치의 포장지를 찢었다. 이미 빵은 좀 식었지만, 여전히 맛있는 냄새가 났다. 정수의 몫의 샌드위치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는 빤히 바라보았다. 정수는 샌드위치와 나를 어색한 눈동자로 번갈아 바라보다가 꼭 변명하듯이 말했다.

       

       

      "근데, 저, 그냥 영양 캡슐이면 되는데…"

      "아까 배에서 꼬르륵거린 게 누군데요."

       

       

      그 말에 그는 입을 꾹 닫고 눈을 깜박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제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한 입 작게 깨물었다. 부드러운 빵과 아삭한 채소, 잘 익은 소고기, 매콤달콤한 소스가 입안에서 조화롭게 섞였다. 입을 우물거릴 때마다 정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곧, 굳이 시키지 않아도 계속 샌드위치를 우물거리고 삼켰다. 조금씩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동그란 볼을 빤히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진짜로요."

       

       

      그가 입가에 소스를 입에 묻힌 채 중얼거렸다. 그는 어딘가 감격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 얼굴이 귀여웠다. 귀엽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고는 정수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손끝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맛있게 먹어요.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말하고는 곧 제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말 그대로 매콤달콤한 소스였다. 먹는 걸 좋아하느냐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정수의 말처럼 자신도 영양 캡슐이나 하나 삼키는 쪽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왜, 오늘의 샌드위치는 나쁘지 않을까. 음악조차 없이 씹는 소리만 아삭아삭 들리는 조용한 식사가 이어졌다. 둘이 각자 몫의 샌드위치를 금방 해치웠다. 물티슈에 손을 닦고 테이블을 접다가, 정수를 보았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질문했다. 내일도, 모레도 그 모레의 내일에도 그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녁에는 뭐 먹을래요?"

       

       

       

       

       


       

       

       

      지석의 말로 시작된, 지하 창고에서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날들이 이어졌다. 바깥 공기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만 빼고는 나름대로 평범한 날이라고 우겨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고, 때맞춰 밤 인사를 하고 잠들었다. 그는 자기 방에서, 나는 그가 내준 간이 매트리스에서. 오로지 그뿐이었다. 그 날짜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을 매일 속으로 세었다. 이월까지 딱 손가락을 열 개를 한 만큼의 날짜가 남았을 때, 나는 그의 말대로 정말 인간일까? 하는 의문과 동시에 그럼에도 여전히 죽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등에 박힌 칩을 제대로 만질 수는 없었다. 나는 무엇일까. 정말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석이 오랫동안 지상으로 올라가 있을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들이 나를 좀먹었다. 내가 꺼져버린다면 누가 슬퍼할까. 엄마가? 아빠가? 아니면 지석이 나를 위해 울어줄까? 그런 과한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됐다. 나는 설거지를 하거나, 이불을 빠는 일에 의외의 재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하 창고를 청소하기로 결심했다. 방을 더 환하게 밝히면 보이는 먼지들과, 알 수 없이 어지럽게 놓인 박스들이 그 결심을 굳히게 했다. 지석에게는 여태까지 돌봐준 보답을 하고 싶기도 했으므로, 청소를 깜짝선물 삼기로 했다. 일부러 지석이 출장 수리에 걸린 날을 골랐다. 지석은 혼자서라도 꼭 점심을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남겼고, 나는 나의 계획을 생각하며 그냥 웃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지석의 먼지 앉은 상자들. 어느 것을 먼저 열어보아야 할지도 몰라 멈칫대다가, 가장 눈에 띄는 아주 오래된 종이상자를 집어 들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가벼웠고, 그걸 여는 건 아주 쉬웠다. 그 안에는 누가 봐도 오래되고 망가진 부품이 들어있었다. 찌그러지고 녹이 슨 고철 외피. 버려 마땅한 것을 자신도 모르게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왜 이런 쓸모없는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을까. 잠시 말없이 그 망가진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언젠가는 그것도 움직이는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개를 들어 이 공간의 모든 박스를 한번 훑어보았다. 이제야 이곳이, 수많은 로봇의 무덤처럼 느껴졌다. 문득 생각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왔구나. 그러니 정리해야 하는구나. 이 모든 것들을. 

      실상 정리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지석이 아니고, 그렇기에 그것들에 뒤로 따르는 감정이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건 무언가를 정리하는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아예 망가져 쓸 수 없는 것을 한쪽에 모으고, 아직 쓸 수 있는 것들을 그 자리에 남겼다. 쓸 수 있는 부품이 담긴 상자에는 이름을 적었고, 오래되고 빈 상자들은 구겨 접었으며, 망가진 부품들은 한데 모아 비닐봉지 안에 담았다. 쌓인 먼지를 털고 걸레로 선반과 바닥을 박박 닦았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그것들이 새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래된 자리에는 바랜 흔적이 남기도 하고, 은은하게 곰팡이가 슨 벽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떤 것은 털어내고 나아가야 하고, 본능은 그걸 아주 잘 알았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쓸고 닦았다. 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 지석이었다.



       

      "뭐한 거예요?"

       

       

      문이 열리자마자 툭 튀어나온 그의 목소리가 낮고 차가웠다. 차마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지 못하고 쥐고 있는 걸레를 손으로 꾹 쥐었다. 떨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괜히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잘 갔다 왔어요? 제가 청소를, 좀, 했어요."

      "제가 언제 그런 걸 시켰어요?"

       

       

      지석의 발걸음이 쓸 수 없는 부품을 모은 비닐봉지로 향했다. 아무리 그라도, 더 이상 그게 어디의 무슨 조각인지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낮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고철들이 가득 든 비닐봉지 앞에 쪼그려 앉은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석의 손이 망가진 부품들을 조심스레 뒤적거리고 있었으나, 사과도 변명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아니, 언젠가는 그래야 하는 일을 조금 앞으로 당겨온 것일 뿐이었다. 당신이 그것들을 끌어안고 있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내가 그럴 주제가 되나? 뒤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술을 꾹 깨물고 눈동자를 굴렸다.

       

       

      "왜 그랬어요?"

      "…"

      "왜 그랬냐고 묻잖아!"

       

       

      그가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악을 쓰듯 소리 질렀다. 겁이 났다. 제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자신을 돌아보는 그 검은색 눈동자는, 감정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그 감정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낡은 부품들과 작별한다는 게 그렇게 아프고 슬픈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장례도 치르지 못할 고작 고철 조각들조차 버리지 못 했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너무 주제넘은 물음이다. 조용히 대답했다.

       

       

      "…미안해요. 근데, 나는 지석 씨가 무덤 같은 곳에서 사는 게 싫었어요."

       

       

      시선이 애매하게 엇갈렸다. 지석의 무너지는 표정을 처음 보아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는 대답 대신 비닐봉지를 끌어안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쾅, 하고 커다랗게 들렸다. 정적만이 깨끗해진 지하실 안에 가득 찼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석이 돌아오며 사 온 간식거리만 지하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화해하고 싶었으므로 지하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요리를 했다. 그가 하던 것처럼 찬장에서 참치 통조림을 찾아 따고, 진공식 쌀밥을 돌린 뒤, 곁눈질로 보기만 했던 달걀프라이를 두 개 부쳤다. 아니, 사실 다섯 개쯤 부쳐, 태우지 않은 것을 그의 몫으로 골랐다.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먹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과를 받아주리라고, 그리고 그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석은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도 그 문은 꿈쩍도 없이 닫혀있었다. 꼭 셔터를 올리는 일조차 잊은 것처럼 굴었다. 그가 그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목을 죄듯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에게 너무 많이 참견해버린 게 틀림없었다. 내가 모든 것을 그에게 내보였다는 이유로, 그 역시 모든 것을 알려줄 것으로 생각한 죄일 것이다. 결국 그도, 원하는 모습의 내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무도 먹지 않아 식어버린,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달걀프라이를 내려다보며 속이 시린 기분이 들었다. 지석의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아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지석씨 …."

       

       

      늘어지듯 뱉은 말이 문 너머로 과연 닿았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귀를 막고 있거나 아주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등을 문에 붙여 앉은 채 조금 더 목소리를 키웠다. 횡설수설한 말들이 아무렇게나 물밀듯이 쏟아졌다.

       

       

      "미안해요. 감히 제가 너무 많이 참견한 거겠죠. 저는 당신한테 그럴만한 존재가 아닌데, 괜한 짓을 했나 봐요. 근데 저는 있잖아요. 그걸 치우고 정리하면서 계속 지석씨 생각했어요. 지석씨가 여태 모아온 그것들이 지석씨가 사랑한 것들이라면, 그들도 지석씨를 좀 먹고 싶지 않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런 가늠을 하는 게 오만한 짓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지석씨한테 제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샌드위치를 같이 먹는 순간들만큼은 제가 지석씨한테 뭐라도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랬어요. 지석씨가 저를 바꿔주고 싶어 한 만큼, 저도 지석씨를 … "

       

       

      길어지는 말 중간에 방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에 기대앉아 있던 탓에 등이 뒤로 기울어, 바닥에 드러누울 뻔한 꼴이 되었다. 열린 문 사이로 튀어나온 지석의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지석은 여전히 웃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울고 싶었다. 몇 끼를 굶은 채 방에 박혀있던 지석은 평소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그의 눈썹뼈 아래로 깔린 그늘이 짙었다. 어쩌면, 그가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아니면 본사로 가 폐기당할 수도 있겠다. 안드로이드의 쓸모를 다하러 돌아간다는 간단한 사실이 이토록 서러운 말인 적이 없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채 울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석이 조그맣게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너무 많이 참견한 거죠. 여태껏 저한테 그런 사람은 없었거든요."

      "…"

      "근데, 정수씨 말이 맞아요."

       

       

      지석이 그 말을 뱉는 순간, 든 줄도 몰랐던 긴장이 풀렸다. 그가 무슨 말을 이을지도 모르면서 옅은 숨이 코끝으로 새어 나갔다. 고작 그 찰나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가 시선을 피하며 다음 이어갈 말을 우물거리던 찰나였다. 창고의 책상 구석에 놓인 지석의 모니터가 노란색 경고 표시를 반짝였다. 지석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건물 밖의 CCTV가 작동한 모양이었다. 지석이 정수를 지나쳐 화면 앞에서 경고 표시를 클릭했다. 모니터에는 지석의 수리점을 굳게 닫고 있는 철제 셔터를 두드리는 어떤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어떤 남자? 아니, 단순히 ‘어떤’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익숙한 얼굴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아버지다. 아버지가 여기까지 나를 찾으러 왔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것이 틀림없다. 몸이 덜덜 떨렸다. 며칠이나 집을 비우고 엄마를 혼자 두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분명 혼날 것이다. 아니면 칩을 더 깊이 박아 넣을지도 모른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어쩌면 지석이, 문 뒤에서 나를 돌려보내기 위해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 지석이 그제서야 자신에게 다가와 눈을 맞추려는 게 느껴졌다.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석씨, 저…. 집에 안 갈래요. 그냥,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 나 여기서 고장 날래요. 네? 제발요."

       

       

       


       

       

      수리점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간혹 있다. 어떤 일이든 진상이 없는 쪽이 더 드문 것 아닌가. 노란 경고등이 눈이 아프게 점멸하는 CCTV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화면 속에 존재하는 남자는 분명 어떠한 악의를 가지고 철제 셔터를 두드리고 있는 듯 보였다. 만약 악의가 아니라면 기계 수리가 너무 급한 어떤 선량한 시민일 수도 있겠으나,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물론 어느 쪽이든 해결하면 그만일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뒤를 돌았을 때 김정수가 완전히 무너져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안드로이드’라는 가면을 쓴 채 무덤덤하게 굴던 그가 겁에 질린 얼굴로 덜덜 떠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혀 그를 내려보다가, 그의 앞에 꿇어앉아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곧 울 것 같은 얼굴. 자신을 보내지 말라고 비는 그의 목소리. 그런 것들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속이 쓰렸다. 그를 품 안에 꽉 끌어안아도 제 작은 품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김정수는 분명 자신보다 너무 컸는데, 반대로 이상할 정도로 작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제 방문을 열어 정수를 그 안에 눕혔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속삭였다.

       

       

      "제가 나가서 해결하고 금방 올게요. 그때까지 여기 있어요."

       

       

      붙잡는 김정수의 손이 차가웠다. 그의 손을 한 번 꾹 쥐었다가 놓았다. 그의 옆에 언제든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패드를 통해 워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연결해 두었다. 여전히 울먹거리는 그를 괜찮을 거라고 달랬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지상은 여전히 무채색이다. 아직 다 녹지 않은 흰 눈, 혹은 밟히거나 뭉개져 더러운 색이 된 눈이었던 것들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그리고 수리점 앞에는 아까 화면 속에서 얼핏 본 남자가 여전히 셔터를 쾅쾅 소리가 나도록 두드리고 서 있다. 악의적인 행동과는 별개로 그의 차림은 멀쑥하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코트를 차려입었고, 검은색 구두까지 신었다. 지석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물었다. 

       

       

      "지금 남의 가게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날 선 목소리에 남자가 이내 자신을 돌아본다. 그의 낯은 어딘가 익숙하다. 정확히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앞의 남자가 이내 미지근하게 웃어 보여서 그 낯이 김정수와 닮았음을 너무나 쉽게 깨닫고 만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그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투의 부드럽지만, 강압적인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저희 아이가 여기에 있지요? 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례금이 필요하다면 드리겠습니다."

      "아뇨, 가게에는 저밖에 없습니다. 돌아가시죠."

      "거짓말하셔도 다 알고 왔습니다. 다들 정보상을 쓰지 않습니까. 그 메인 칩은 저희에게 소중한 것이어서요."

       

       

      남자의 말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의심이 담겨있던 준의 눈동자가 떠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하고 묘한 정적 속에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옛날얘기 좋아하십니까?"

      "…예?"

       

       

      지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으나,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꼭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도 자신의 물건을 돌려줄 것인 듯한 태도였다.

       

       

      "그냥 옛날얘기입니다. 제 아내는 클로토를 개발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거든요."

       

       

      그 말에도 꿈적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다 듣고 나면 오히려, 그를 더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원래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랜덤한 유전자 조합의 결과물을 사랑이라고 믿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 아닙니까. 제 아내 역시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열망 같은 건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에 아이라는 구속이 생기고 영향받는 게 더 싫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래서 저희는 저희의 취향에 완벽하게 알맞은 클로토 아이를 만들었습니다. 초기 클로토는 인간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 알고 계시죠? 유사할 뿐만 아니라 로봇의 기능까지 아주 성실하고 완벽하게 해냈답니다. 제 아내는 자신이 만든 그 작품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이름 붙였죠, 김정수라고요."

      "…. 하지만 정수씨는 로봇이 아니잖아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가 이내 입을 틀어막았다. 남자가 제 행동을 보고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으나 이내 예의를 차리는 체를 했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요, 수리공 씨. 물론 지금 당신이 데리고 있는 그 애는 완벽한 로봇이 아니죠. 정말 쓸모라고는 하나뿐이죠."

       

       

      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정말이지 하나도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 눈에 그대로 띄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계획하고 완벽하려 해도 우연이 생기더군요. 예기치 못하게 생긴 아이입니다. 아내는 절망했으나 임신을 너무 늦게 알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낳았죠. 그렇다고 아내가 그 아이에게 정을 붙이지는 못했습니다. 진짜 아이는 클로토에 비해 너무 뒤떨어지는 존재잖아요."

      "…."

      "그래요, 일이 터진 건 다 그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클로토와 아이가 함께 외출한 그날,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클로토는 아이를 구하려다 메인 칩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겨우 타박상을 입어 우는 아이 앞에서 아내는 산산조각 난 클로토의 잔해를 끌어안고 떠나갈 듯 울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 되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

      "설마."

      "그래요. 지금, 이 아이에게 클로토의 이름을 주고 클로토로 키우자.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던 겁니다. 게다가 클로토의 메인 칩을 아이에게 심으면 그도 클로토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아내도, 결국 메인 칩에 개인적인 의지를 억제하고 자신을 로봇이라 인식하게 하는 기능을 추가시키더군요. 그 애는 자기가 로봇이고 클로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클로토가 아닐까요?"

      "…."

      "자, 그러니 이제 저희의 클로토를 돌려주시겠어요? 부탁드립니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기나긴 말을 겨우 끝맺은 남자가 여전히 기묘하게 웃는 얼굴로 묻는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뱉었으나 이내 표정을 차갑게 굳히고는 말했다.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돌아가세요. 경고입니다."

       

       

       

       


       

       

       

      패드를 통해 전해지는 음성. 그 음성은 너무나 잘 아는 이의 것인데도, 진실은 너무나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그 모든 언어가 심장에 칼처럼 박혔다. 눈물이 났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데 그게 소화기관 아니라 그것보다 더 깊은 곳,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사랑받고 싶었다. 진짜 로봇도 그렇다고 제대로 된 인간도 아닌 자신이 싫었다. 괴로웠다. 진짜 나, 사랑받을 수 있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석의 방을 기어가듯이 방문 고리를 잡았는데, 문밖으로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문밖의 누가 나를 사랑할까. 몸을 둥글게 만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훌쩍훌쩍 울었다. 

       

      그때 문이 먼저 열렸다. 거기에 지석이 서 있었다.

       

      지석은 말없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자신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차마 몸을 기대지 못하자 그가 먼저 조심히 등을 도닥였다. 다정한 손길에 그제야 울음에 소리가 섞였다. 엉엉 소리 내 우는 게 익숙하지 않아 우는데도 숨이 찼다. 한참을 그 작은 품에 안겨있었다. 그게 이상할 정도로 위안이 되었다. 울음이 그쳐갈 즈음에야 지석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들이 당신을 안드로이드로 키웠다고 해도, 나는 당신이 인간이라고 믿어요. 내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빛이라고는 형광등 조명뿐인 지하방에서도 반짝거린다. 그 말이 너무 결연하게 들려서 꼭 일종의 고백처럼 들린다. 외로움이 목을 죄니 혼자 하는 착각에도 목구멍이 간질거린다. 대답을 바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 당신한테서 사랑받고 싶어요."

       

       

      목소리가 말이 아니라 숨처럼 뱉어진다. 바보 같은 문장이다. 분명 후회할 말이었는데 말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덜컥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할게요."

      "…. 네?"

      "내가, 김정수씨를… 사랑, 해보겠다고요."

       

       

      목소리가 떨려서 단어를 끊어 뱉으면서도 그 말이 꼭 아무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는 양. 곽지석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손으로 눈물범벅인 제 얼굴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아낸다. 어안이 벙벙해져 더 이상 눈물도 새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빤히 보면 어느새 귓가가 붉어져 있다.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시선을 피해 말을 돌리기도 전에, 그가 먼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살아요. 우리 제대로 살아봐요." 

       

       

       


       

       

       

       

      산다는 건 뭘까. 살아있다는 건 뭘까. 아무리 고민해도 그런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지석이는 과거에 사로잡혀 자라지 않았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럼, 그동안 우리의 시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 아쉬운 나날들은 누구의 손에서 사라졌을까. 아무래도 좋다.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는 지나간 일을 아쉬워하느니 이제부터 열심히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 나도 지석이도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월까지 고작 다섯 손가락만큼이 남은 시점이었다.

       

       

      "지석아, 네가 날 인간으로 만들어줘."

       

       

      짐짓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면 그가 벙찐 얼굴이 된다. 너는 이미 인간이잖아?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일을 해줄 수 있는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너뿐이다. 오로지 네가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인간이 되는 데에 필요한 준비물은 의료용 메스와 마취약, 핀셋, 소독약, 거즈, 그리고… 

       

      아무튼 살을 도려내고 다시 봉합하는 데 필요한 도구 전부. 

       

      지석의 지시가 없어도 맨 등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간이 매트리스 위에 엎드려 누웠다. 이제는 먼지도 없고 춥지도 않은 지하 창고는 온전히 집이나 다름없다. 국소 부위에 사용하는 마취제를 등에 주사하려는 지석의 손이 평소와 다르게 덜덜 떨렸다. 그가 완전히 울상인 표정으로 제게 말을 걸었다. 자신보다 그가 더 긴장한 모양새였다.

       

       

      "정수, 이거 아프면 어떡해?"

      "이렇게 사는 것보단 낫잖아."

       

       

      그건 그렇긴 하다는 듯이 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둘 다 어느새 놓아버린 말이 이젠 자연스럽게 튀어 나간다. 기어코 마음을 먹은 지석이 마취 주사를 등에 따끔하게 꽂는다. 곧 메스를 집어 드는 달그락 대는 소리가 들린다. 볼 수 없는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금속 칩의 윤곽이 또렷한 부위, 그 옆의 흉터들 사이로 메스를 가져다 대는 그의 얼굴은 얼마나 긴장되어 있을까. 이미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이 수없이 째고 꿰맸을 자리를 이제는 정말 마지막으로 갈라내는 것이 지석이라는 점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마취제가 들어갔다고 해도 아주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살갗이 아닌 더 깊은 곳을 금속이 갈라내며 닿을 때 하는 수 없이 작게 앓는 소리가 날 뻔했지만, 가능한 한 꾹 삼켰다. 고작 그런 것으로 지석을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얇은 등가죽과 근육층 사이에 존재하는, 여태껏 나를 그 무엇도 아니게 만들었던 작은 칩. 그것이 사라지면 나는 바로 내가 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이 되어서 내가 내 이름을 나로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석이 핀셋을 살 아래로 집어넣어 기어코 칩을 집어 빼낸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것은 이제 피 얼룩이 묻은 고철 조각일 뿐이다. 철제 트레이 위에 그 칩이 소리 내며 떨어진다. 쨍그랑. 둔탁한 소리에 찌푸린 미간으로 그 광경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중얼거린다. 

       

       

      "안녕, 잘 가."

       

       

      내 인사를 듣고 지석도 그 메인 칩을 빤히 본다. 그가 메아리처럼 똑같이 따라 되뇌인다. 안녕, 잘 가. 어쩌면 그도 무언가와 작별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딘가 완전히 비어버린, 그러나 동시에 개운해진 기분이 든다. 지석이 의료용 실로 등 위의 째진 살을 조심히 꿰맨다. 그의 서툰 손길은 이전보다 더 흉을 남길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이제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도 대신하지 않고, 대체되지도 않고 그냥 김정수로. 



      간단한 수술이지만 하루이틀 정도는 샤워를 피하라고 지석은 신신당부하듯이 말했다. 혹시나 봉합 부위가 덧날까 싶은 세심한 배려라는 걸 알아서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에 들어와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몰래 웃옷을 벗었다. 지석이 꿰매준 등을 확인하고 싶었다. 거울에 비춰본 등은 날갯죽지 근처로 여러 번 그어진 흉터 자국이 어지럽다. 그사이에 아직 덜 아문 붉은 금이 하나 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화장실 문을 열고 한 발짝만 나가면 있을 지석이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왜 등에 쉽게 손이 닿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지금처럼 화장실 거울에 아무렇게나 상처 난 등을 비춰보던 언젠가의 어린 날이었다. 물론 등의 모든 곳에 손이 닿는다 해도 꼼꼼히 상처 연고를 발랐을 리는 없다. 그때의 나는 안드로이드였고, 로봇에게 인간의 연고 따위가 의미 없다는 것쯤은 당연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등에 손을 얹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정말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나를 기계라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살고 싶은 이 마음이 정말 기계의 것인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할 때가 아니라면 아무도 내 등에 손을 얹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거다.

       

      그러나 지석은 나에게 고장 난 게 아니라 다친 거라고 말했다. 나의 오래된 흉터들이 나를 위한 게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배고플 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내 등에 손을 얹었다. 정말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나는.

      나를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든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야 왜 등에 손이 쉽게 닿지 않는지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일월은 완전히 끝을 향한다. 이제는 손가락을 하나만 접으면 이월이 오지만, 그게 두렵지 않았다. 죽게 되더라도 후회되지 않았고, 이제는 나로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석은 나의 등에 매일 저녁 상처 연고를 발라주었다. 함께 지하실에서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고, 요리를 만들고, 식사를 하면서 이월이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모든 클로토가 종료된다는 그날이 오면, 클로토의 강제 수거 명령은 자동으로 사라질 테니, 그때에는 함께 거리를 걸어 멀리 여행을 다녀오자는 약속을 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이 멀고 꿈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이 모든 것이 금방 깨어질 것 같다가도 아주 영원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상한 하루하루들이었다. 

       

      일월 삼십일일, 지석이 밖에서 케이크를 사 왔다. 기념일에는 케이크에다 초를 부는 거야. 지석이 그렇게 말했다. 딸기가 잔뜩 들어간 생크림 케이크였다. 이게 무슨 기념일인지를 물으려다가 말았다. 지석과 함께하는 모든 날이 기념일 같았다. 나는 생일을 처음 맞이하는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모르고 웃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시간을 기다려 초시계를 패드 화면에 커다랗게 띄웠다. 케이크 위에 제일 긴 초를 하나 꽂고는 일월의 마지막 날을 카운트다운 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내가 초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어디에선가 들은 말이었다.

       

       

      "초를 불면 소원 빌어야 한다던데"

      "빌고 싶은 소원 있어?"

       

       

      지석은 장난스럽게 물었으나 진심으로 고민했다. 인간이 되고 첫 소원으로 마땅한 것을 빌고 싶었다. 미간이 한참 좁아지다가, 번뜩 생각난 문장을 내뱉었다.

       

       

      "지석이랑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지석과 눈이 마주친다. 마주친 시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 소리 없이 웃는다. 그러다가 웃음이 터진다. 소리 내 깔깔 웃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순간과 영원이라는 정반대의 단어를 함께 쓰고 싶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마음이 영원을 만들어냈고, 그렇기에 우리는 지켜지지 않을지언정 진심을 다해 약속한다. 패드의 시계가 자정까지 삼십 초 남았다는 알람을 띄운다. 지석이 겨우 웃음을 멈추고 성냥을 켜 초에 불을 붙인다. 함께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빈다. 삼. 이. 일. 줄어드는 숫자에 내가 숨을 후 분다. 한 번의 호흡에 초가 맥없이 꺼진다. 어둠이 좀 더 진하게 내려앉고, 패드의 시계 불빛만이 이월이 되었음을 알린다. 지석이 몸을 기울여 나의 어깨에 기대온다. 



      "정수, 내일에 온 걸 축하해."

      "응."

       

       

      어떤 내일은 이토록 어렵게, 그러나 특별하게 온다. 

      나를 사랑할 리 없다고 믿었던, 누군가를 사랑할 리 없다고 믿었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새로운 내일이다.

       

       


       

      물론, 내일이 된다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는다. 내일에는 내일의 할 일이 남아있다. 

       

      C-000626의 정보가 담긴 메인 칩을 직접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칩을 찾아내 위에 묻어 굳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버려버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투명한 밀봉 봉투에 넣고 입구를 닫았다. 겨우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금속 칩을 주머니 속에 소중히 챙겨넣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나섰다. 걱정하며 따라오려는 지석을 괜찮다고 만류했다. 때로는 혼자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도 있다.

       

      지상에서는 물 냄새가 났다. 거리 곳곳에는 덜 녹은 눈이 남아있긴 했으나, 제법 풀린 날씨 덕에 바닥은 축축이 젖어있었다. 얼마 만에 마주하는 햇볕인지 너무 눈이 부셔 제대로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겨우 적응하고 서야 길을 걸었다. 목적지도, 해야 하는 일도 너무나 확실했다. 어딘가 붕붕 뜨는 마음에 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우체국에 들어섰을 땐 숨이 찼다. 눈에 바로 보이는 작지만 튼튼해 보이는 연갈색 봉투 하나를 샀다. 그 안에 가지고 온 물건을 집어넣고 겉봉투에 집 주소를 적었다. 수신자에는 부모님의 이름을 적고, 발신자에 김정수라는 이름 세글자를 적었다. 벌써 과거의 망령처럼 느껴지는 클로토를 완전히 보낼 준비가 드디어 끝났다. 직원에게 봉투를 건네려다가, 그 위에 한 문장을 더 휘갈겨 써 내린다. 직원은 우편의 전산 등록을 마친 뒤 가셔도 좋다는 말을 남긴다. 속이 허하고 시원하다. 직원이 발송함으로 넣는 봉투를 한 번 더 흘끔 바라본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이월, 클로토의 작동은 중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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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피부를 찢은 곳에서

      Dumo

       

       

       두텁게 쌓인 눈길 위에 버스 바퀴 자국이 이어졌다. 흔들거리며 산길을 애써 오르는 버스는 벌써 수십 정거장을 정차하지 않고 지나쳐왔다. 창문 밖은 눈이 쌓인 밭부터 구름이 흩어지고 있는 하늘까지 사방 모든 것이 하얀 세상. 하얀 눈에 부딪혀 부서진 햇빛이 얼굴에 쏟아져 지석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버스 바닥에는 눈이었던 것들이 녹아 더러운 발자국으로 남아있고 한 명 뿐인 승객이 탄 내부에는 차가운 공기가 진동했다. 공허한 공간을 채우려는 듯 울리는 라디오가 더욱 크게 울렸다. 

       

       안드로이드 5.0의 시대, 구세대 처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정부의 지침에 대해 일부 시민 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내리 세 시간 걸려 도착한 성내리의 마을회관은 작고 볼품 없었다. 지붕에 눈이 쌓여 그 색깔조차 알 수 없고 창문 안쪽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주차장 입구부터 건물 입구까지 빗자루로 누군가가 쓸어내 만든 길이 있었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 빗자루로 눈을 치워야 하는 동네. 도시에서는 개인이 안드로이드 인간을 고용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지만 어떤 마을은 전체가 한 대에 의존하기도 한다. 

       

       운동화에 눈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는데 저 멀리 마을회관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연노란색, 검은색, 갈색으로 엉성하게 섞인 목도리가 마치 이 하얀 세상이 가진 유일한 색인 것처럼 펄럭였다. 

       

       다가온 그림자에 햇빛이 가려지고 지석이 반쯤 감았던 눈을 간신히 떴다. 그림자 진 얼굴 안에서 샐쭉한 눈매 안의 까만 콩 같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어서 와."

       

       내민 손에 빨갛게 상기된 손 한쪽을 건네니 양손으로 맞잡아 왔다. 여독을 녹이는 온기가 온몸에 퍼지듯 번졌다.




       마을회관은 황량한 외관과 달리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노인들이 적은 시 몇 편이 뜨개로 만든 물품들과 함께 벽에 붙어있고, 식탁 유리 밑에는 색연필로 그린 연력 달력이 끼워져 있다. 마을에서 성탄절 행사라도 했었는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트리와 리스도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사람이 드물고 낙후된 시설 치고는 깨끗하게 관리가 된 편이었다. 김정수가 홀로 생활하며 운영하는 곳임에도 사람 내음이 나는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책장에는 동화책이 잔뜩 꽂혀있었다. 

       

       김정수를 처음 만난 곳은 서울의 한 도서관이었다. 크게 산 교복 바지가 자꾸 바닥에 끌려서 아침마다 바지를 안으로 접어 옷핀으로 고정해야 하던 때였다. 민성을 따라 들어간 도서부의 특권으로 주말 마다 구립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생겼다. 지석은 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주말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어린이들의 책을 찾아주고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다가 친구들과 점심을 때웠다. 시간이 남을 때는 아이스크림을 빨며 주차장을 빙글빙글 맴돌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일은 누군가를 관찰하는 일이었다.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사서였다.

       

       2층의 열람실에서 근무하는 김정수는 남들 다 밥 먹으러 가는 점심시간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근무했다. 가방에 달린 키링이 자주 바뀌었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책들 사이의 먼지를 털고 다녔다. 눈썹이 짙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능숙한 업무 처리로 인해 나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예민한 무표정이 날카로운 인상이라고 생각했으나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누군가 말을 걸면 부러 그러는 듯 무해하게 웃었다. 그 친절함이 눈에 보여서일까 지석은 그가 사서 일을 하는 것이 퍽 어울린다 생각했다.

       

       "너 그때 진짜 귀여웠는데, 작은 애가 떡볶이 코트까지 입고."

       

      졸업식 날 도서관 앞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는데 인기척도 없이 다가와 사진을 건들였다. 사진 속의 사서는 이제 시골 마을 회관 소속이 되어 홀로 겨울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귀여웠던 건 형이지, 맨날 쓸고 닦고 털고 부지런한 참새처럼. 정수가 건넨 머그잔을 받으며 사진에 미세하게 생긴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살짝 묻어 나온 티끌이 민망했는지 김정수가 머쓱하게 웃으며 핑계를 붙였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가. 자주 청소하는데도 자꾸 먼지가 쌓여, 여기는.

       

       머그잔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지석이 코를 대고 향을 맡자 달큰한 향이 번졌다. 여름에 담근 매실청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마을 회관에 와서 처음으로 어른들한테 배운 게 청 담그는 거였잖아. 그 이후로 너한테 주려고 계속 재워 놓고 있었어.

       

       서울에서 평생을 보낸 김정수에게 강원도 한 구석으로의 이사는 모든 것이 새로운 변화였다. 배움의 출처도 책이나 인터넷이 아닌 대부분 사람이라고 했다. 눈을 쓸어둔 것도 마을 이장님에게 배워 새벽부터 쓸어둔 것이었다. 

       

       "눈 많이 내렸던데 그냥 나 오면 같이 하지."

       "너도 손님이니까."

       

       손님, 김정수의 입에서 나온 낯선 단어를 따라 읊조렸다. 거리감이 느껴져 퍽 유쾌하지 않았다. 형과 초대하는 사이가 아닌, 서로의 일상이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는 각자 손에 대걸레를 쥐고 열람실 바닥에 생긴 방문자들의 발자국을 경쟁하듯 지우곤 했었다.

       

       지난주, 마지막 통화에서 김정수는 곽지석을 성내리로 초대했다. 최대한 빨리 오면 좋겠다며 답지 않게 재촉하기에 급하게 달려왔으나 겨우 자신의 생일 전날인 오늘에야 간신히 올 수 있었다. 반년 만에 만난 김정수는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져서일까, 첫 만남부터 모든 것에 능해 보이던 도서관에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마을회관의 그는 어쩐지 학교에서 마주친 예비 입학생들 마냥 어눌한 분위기를 풍겼다. 

       

       얇게 입던 서울에서와 달리 이곳에서는 옷도 여러 벌을 겹겹이 두툼하게 입는 듯했다. 지석이 손가락으로 어깨를 찌르자 두께감 있는 옷이 포옥 눌렸다. 둔해 보이면서도 푹신하게 온몸을 무장한 것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 털이 잔뜩 찐 산동물 같아 보였다. 이렇게 되기까지 김정수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함께 겪지 못하고 밀린 숙제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럼 이제 안드로이드 연구하는 거야?"

       "응, 교수님도 좋은 분이셔. 전공 살리면 돈도 잘 번대."

       "난 네가 우주공학을 할 줄 알았는데."

       "요즘 시대에 빨리 벌어먹고 살려면 이쪽이 좀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우주공학은 시간이 걸리고 곽지석은 빠르게 돈을 벌고 싶었다. 과외로 벌 수 있는 정도 말고, 자신과 누군가의 일상을 오롯이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우주공학과가 아닌 기계공학과를 지원했을 때, 김정수는 상의 없이 전공을 지원한 것에 크게 섭섭해했다. 마치 곽지석이 우주인이라도 될 줄 알았던 듯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지석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곽지석도 어쩌면 평행 세계의 자신이 정말로 그런 우주인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은 도서관에서 김정수를 만난 이상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나저나 내일 내 생일인데."

       

       식탁 옆 벽 붙은 달력을 만지작거렸다. 농협에서 받아와 걸려있는 아날로그 형식의 벽걸이 달력의 마지막 장은 1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년도에 뜯어진 12장의 흔적이 적나라하였다. 2월은 존재하지 않았다.

       

       "형이랑 나, 이제 드디어 친구네."

       

       만으로 24살 되는 해 생일에 김정수는 곽지석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왜 하필 24살인가 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김정수가 만 24세 설정으로 제작된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곽지석이 본 것으로만 세어도 김정수의 아홉 번째 24살이었다.




       

       

       

      "도서관 정수 선생님, 안드로이드 인간이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둘째 날이었다. 우리 누나가 그러는데 그 사서 선생님 도서관에서 벌써 몇 년째 일하고 있는데 처음 왔을 때랑 똑같이 생겼대. 민성이 흥미로운 비밀을 알아낸 듯 말했다. 점심시간 근무를 도맡아 하는 것도 밥을 안 먹어도 돼서라던데. 흐흠, 그래.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지석이 컵라면을 들어서 국물을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날은 여름치고 유난히 빠르게 하늘이 침침했다. 비가 오려나, 중얼거린 것이 기우제처럼 작용했는지 열람실에 엎드려 까무룩 잠에 들 때 즈음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이미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들지 않았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서 일찍 귀가를 하였는지 열람실에는 남은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았다. 민성과 친구들도 떠난 지 오래였다. 의리 없는 새끼들... 좀 깨우고 가지. 창문을 바라보니 완연해진 어둠 속에서 빗줄기가 세게 퍼붓고 있었다.

       

       이 정도 비를 맞으면 분명 가방 속 책까지 모두 젖을 텐데. 비가 조금만 덜 내리면 출발해야지를 세 번 정도 반복했을 때, 지석을 재촉하듯 도서관 일 층 조명이 꺼졌다. 비는 여전히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뛰는 수밖에 없겠지, 셋 세고 출발해야겠다. 가방을 앞으로 안아 들고 비장하게 섰다. 하나, 둘, ㅅ.... 

       

       "우산 없어요?"

       

       누군가 마지막 숫자와 함께 빗속으로 뛰어들려던 지석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런 날씨에 비 맞으면 감기 걸려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낮에 본의 아니게 정체를 알게 된 사서였다. 우산을 펼치는 걸 보며 거절이 목 끝까지 올랐지만 귀를 때리는 빗소리에 차마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가방을 고쳐 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우산은 딱 성인 남성 한 명이 쓸 정도의 크기였으므로 지석은 애매하게 불편한 기울기로 그에게 몸을 붙여야 했다. 

       

       우산 안은 고요했다. 누군가와 우산을 나눠 쓴 것이 얼마 만이더라. 이 분은 안드로이드랬지, 그래서 숨소리가 안 들리나. 안드로이드와 그리 가까이 해본 것이 처음이었다. 청각에 온 신경을 쏟았으나 들리는 것은 본인의 숨소리 뿐이었다. 둘이 쓴 우산 아래 세상을 자신의 호흡만이 빗소리 사이 적막을 채우는 듯하니 괜히 민망해졌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방금 지나친 세 번째 나무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으니 자신만이 아는 비밀도 알려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발밑에 빗물에 망가진 꽃잎이 밟히고 있었다.

       

       "저 나무, 왜 혼자 꽃 펴있는지 아세요?"

       "......와, 진짜 저 나무만 꽃이 활짝 피어있네요?"

       "네. 사실 저거만 종이 다르거든요."

       "벚꽃 나무가 아니에요?"

       "저건 매화나무예요, 딱 저거 한 그루만. 매화는 벚꽃보다 먼저 피거든요."

       

       허얼. 옆에서 발걸음을 덜컥 멈춘 바람에 우산을 따라 걷던 곽지석도 함께 멈췄다. 사서가 눈빛을 빛내며 지석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대답을 재촉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당황한 지석이 설명을 이어 붙였다. 제가 다른 나무들이랑 꽃송이도 비교해 봤어요. 좀만 기다리면 매실도 달릴 걸요? 그 말에 상대의 표정이 단숨에 환해졌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원래 두 개가 그렇게 구별도 안 되게 비슷해요? 사서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안드로이드라고 뭐든 다 아는 건 아닌가 보네. 안드로이드는 아무래도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 본인 업무에만 특화되고 이런 건 모르는 걸까. 

       

       자세히 보면 구별할 수 있어요. 매화나무가 어쩌다 벚나무들 사이에 껴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쩐지 저 나무를 보면 좀 장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법 잘 어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낯 간지러워 친구들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술술 내뱉었다. 

       

      제법 오래 전부터 줄 지어 선 가로수 사이로 혼자 꽃을 만개한 나무를 보고 어쩌면 그 나무만 혼자 다른 종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주 볼 수록 지석은 어쩐지 그 한 그루에 애착을 갖게 됐다. 바삐 지나다가도 그 하얀 꽃나무 아래에서는 괜히 한 번씩 멈춰 서서 꽃봉오리를 올려다보았다.

       

       도서관의 비밀을 알려준 민성에게 티는 안 냈지만 곽지석은 김정수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한결 같은 머리 길이를 유지하는 김정수는 그 어떤 책을 물어보아도 도서 검색대를 쓰지 않았다. 마치 이 도서관에 등록된 책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어쩌면 그저 유능한 사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2층 사서는 도서관을 소중한 집처럼 관리했다. 방문자들을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대했다. 언제나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작은 한기에도 기온을 높였고 공기가 탁해질 즈음이면 공기청정기를 돌렸다. 기온이라든가 공기의 청정도는 안드로이드에게 인간에게만큼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김정수는 사람보다 더 사람처럼 도서관과 사람을 대했다. 그래서 지석은 한 번씩 더 쳐다보았다. 가로수 사이의 비밀과 같은 그를. 작은 비밀을 공유해주었다고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그를.

       

       그날 이후로 곽지석은 사서를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한 걸음 뒤에서 일방적으로 하던 관찰을 멈추니 대신 그와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다. 비밀을 공유한 것이 생각보다 커다란 교류를 한 것인지 사서는 곽지석을 볼 때마다 인디언 주름을 만들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도서관의 친절한 사서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단 둘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의 웃음이었다. 그때마다 곽지석은 사서 선생님이 안드로이드라던 민성의 말이 헛소리이기를 바랐다.

       


       

       

       

       "지석아, 과학 토론 대회 나가볼래?"

       

       방학식 날 교무실로 불려 가서 들은 제안은 조금 의외였다. 제가요? 저보다 성적 좋은 애들 많은데... 곽지석은 공부 깨나 하는 축에 속하지만 따지자면 학교 대표로 토론 대회에 내보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런 건 두루두루 관리 잘하는 애들한테 시키는 거 아닌가. 나쁘지 않은 기회였지만 그렇다고 꼭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자료를 조사하고 논쟁을 준비하기보다는 친구들과 부대끼며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배로 나았다. 어쩌다 순서가 밀려서 왔겠거니 은근한 압박과 부탁이 들어간 담임의 설명을 흘려듣던 차였다. 사서 선생님이 도서부 선생님한테 지석이를 추천했대,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네가 유난히 과학 책을 많이 읽는다 하셨다더라고."

       

       어떤 사서 선생님이요? 질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것까진 모르겠네, 지석이랑 자주 보는 선생님이 아닐까? 담임은 지석의 질문을 어느 정도 긍정의 신호로 알아 들었는지 신청서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안드로이드의 자율권

       

       과학이라고 해도 우주나 생물에나 관심을 갖던 지석에겐 친근하지 않은 주제였다. 어때, 관심 있어? 담임의 채근에 고민하던 순간, 그날 비 내리는 우산 밑에서 살갑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할게요"

       

       홀린 듯 신청서에 이름을 적고 교무실을 나오니 복도에는 창문을 뚫는 매미 소리로 가득했다. 예상에 없던 방학 중 일정에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자주 보는 선생님이면 아무래도... 그 선생님이겠지. 그나저나 내가 무슨 책을 읽었길래 내가 과학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 거지. 지난주에 빌렸던 우주공학 기본서? 지난 달에 읽었던 평행우주에 관한 소설? 아니면 학기가 시작할 때 빌렸던 코스모스부터? 곽지석은 자신도 누군가의 관찰 대상이었음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책을 옮기고 의자를 정리하다 한 번씩 시선이 부딪치던 것이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구역에서 이유 없이 알짱거리던 날들이 떠올라 명치 안쪽이 간질거렸다.

       

       방학 첫날부터 안드로이드 관련 서재를 통으로 털다시피 책을 모아 열람실 구석 한자리에 앉았다. 안드로이드가 개발되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법제화 되었다. 개인 소유는 우려의 말이 많았으나 순리처럼 진행되었고, 처음에는 무리 없이 상용화 되는 듯하던 것들은 어느 시점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사건사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안드로이드와 밀접하게 교류하는 사람들이 시민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고, 소유주로부터 학대받는 안드로이드를 구출하는 일이 몇 차례 일어나면서 소유권과 이에 대립하는 자율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지금이라도 안 하겠다고 할까... 안드로이드에 관한 뉴스와 책을 수두룩하게 쌓아놓고 끝없는 질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였다.

       

       "방학인가 봐요."

       

       검은 그림자에 고개를 드니 자신을 토론 대회로 떠밀어 넣은 장본인이 서 있었다. 사복인 것을 알아본 듯했다. 

       

       "아, 네. 저 토론 대회에 나가게 돼서..."

       "제가 지석 학생 추천했어요."

       

       사서는 흐뭇해 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듯 보여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니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별로 딱히 나가고 싶던 건 아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자신보다 대여섯은 많아 보이는데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한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지석의 옆에 쌓인 책들의 제목을 훑던 그는 주제가 안드로이드인 걸 알아차렸는지 공공 안드로이드에 관한 책을 톡톡 건드렸다.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뜬금 없는 부탁을 할 타이밍.

       

       "혹시 인터뷰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인터뷰요? 저를요?"

       

       사실 지석이 토론 대회에 나가기로 한 이유는 여기 있었다. 

       

       "선생님 이야기를 해주세요."

       

       김정수가 궁금해서였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둘의 주변엔 사람이 없었으므로 누군가 듣지는 않았겠지만 한 번도 저가 안드로이드임을 밝힌 적이 없는 사서는 할 말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지석이 읽던 책 위에 손이 얹어졌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도와줄게요, 이따 옥상으로 와요. 온 신경의 피가 모두 귀에 쏟아진 것 같았다. 숨결도 느껴지지 않은 귓속말에 귓불이 뜨거워졌다.

       

       "지석 학생은 눈썰미도 좋은데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제가 늙는 것도 아닌데 그다지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고. 무어라 질문을 하기도 전에 김정수는 자신에 대해 줄줄이 설명했다. 도서관 한 구석에서 처음 세상에 눈을 뜬 그는 공공 안드로이드 사업의 도서관 분야 시범 운영으로 제작되었다고 했다. 실행 초기에는 서툰 부분도 있었지만 머신 러닝이 업무 능력에 특화되어 있기에 바로 적응하여 안정기에 들었다. 안드로이드 인간이 모여 사는 안드로이드용 공유 사택이 있어 그곳에서 출퇴근을 하지만, 교류 상대도 모두 도서관에 있고 도서관 외의 공간에 방문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고 했다. 퇴근 후에는 두 평 남짓의 사택에서 충전밖에 하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제가 집으로 생각하는 곳은 오히려 여기예요. 제가 태어난 곳, 그중에도 아무도 없는 시간의 옥상. 도서관은 워낙 조용해서 옥상에 오면 오히려 소리가 잘 들리거든요. 이런 감각적 차이가 느껴질 때면 사람들이 살아있다고 느낀다는 게 이런 걸까 싶어요."

       

       저도 궁금하네요, 제가 자율권을 원하는지. 도서관을 집으로 생각하는 제가 도서관 일에 매몰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서일지.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데 어쩐지 매 문장이 적적하게 다가왔다. 옆을 바라보니 하늘을 보는 실루엣이 있었다. 어쩐지 그가 귀 기울이는 공기 소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숨을 죽이게 됐다.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요."

       

       불이라곤 하나도 켜지지 않은 캄캄한 옥상, 또렷한 시선이 저에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도서관이랑 본인이 하는 일을,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은 게 얼마 만이더라. 낯선 단어가 입에서 나온 것이 자신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낀다 또는 즐긴다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을 사서는 가지고 있었다. 업무의 프로그래밍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법이 먼저 프로그래밍 된 것 같은 안드로이드. 마치 정말 자신이 선택해서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같은 안드로이드처럼.

       

       무심코 할 말을 다 하니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다. 따지자면 본인보다 어른인데 상대가 안드로이드라고 거들먹거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조금 재수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던 이는 제법 만족하였는지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안드로이드가 입을 열었다.

       

       "제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네?"

       "학생도 저한테 매화나무를 알려줬으니까 저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줄게요."

       "...뭔데요?"

       "저, 주기적으로 삭제해야 하는 캐시 테이터를 삭제하지 않고 있어요."

       

       아? 뜻밖의 고백에 벙찐 얼굴로 김정수를 바라봤다. 손을 들어 자신의 북슬한 머리를 꾹꾹 누르며 김정수는 이 안에 보고 겪은 전부가 빠짐없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김정수는 수 많은 책을 알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취향으로 본인 세상을 채우잖아요. 좋아하는 영화라든가, 책이라든가. 근데 저는 그런 게 없거든요. 저한테 그런 것들은 그저 정보값을 기록하는 데이터에 불과해서.

       

       아주 많은 책을 읽고 취향을 찾기 위해 갖가지 것들을 시도했다고 했다. 도서관의 잡다한 체험 프로그램을 모두 도맡아 하는 이유도 그 연장선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애초에 자신은 취향을 만들 수 없다는 유형의 안드로이드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제가 내린 결론이 뭐냐면, 기억이 제 존재를 설명한다는 거예요."

       

       김정수가 말했다. 그는 도서관에 진열된 동화책 순서를 모두 외울 수 있다. 오후 세 시 마다 선생님들과 과자를 먹는다. 주차장에 사는 고양이가 지난주에 새끼들을 낳은 것을 보았고, 매년 늦봄 마다 도서관 입구에서 역까지 향하는 길목의 가로수에 꽃들이 잔뜩 피는 광경을 본다.

       

       "올해는 어떤 학생 덕분에 벚나무 사이에 매화나무가 있는 비밀도 알게 됐구...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억 데이터로 제 세상을 채웠어요."

       

       도서관의 사서인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좋지만 그 스스로가 정의한 자신은 도서관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김정수였다. 그 말이 그 순간을 전부 사랑하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못 지우고 있어요. 제 의사와 관계 없이 어떤 기억이 지워질지 몰라서. 근데 뭐...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까 언젠가 지워지겠죠, 제 자의든 타의든. 매화나무나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한 것도..."

       "저, 선생님."

       "네?"

       "제가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형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타인에게 자신은 김정수, 또는 김정수 선생님 둘 중 하나였다고 했다. 누구도 자신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원이 켜진 이후로 여태껏 계속 그러했다. 그럼 저라도 부르게 해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 나이가 같아지는 때가 오면, 그때부터는 우리 친구 해요."

       

       사서 선생님이랑 학생 말고, 형이랑 동생도 말고. 그때까지 이 대화를 안 지우는지, 저랑 한 약속 지킬 수 있는지 제가 옆에서 확인할게요.

       

       친구, 작게 따라 말한 김정수가 이내 곧 좋다고 했다. 조명 하나 없이 어둡고 조용한 옥상에 풀내음만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그해 지석의 학생부에 과학 토론 대회 우승, 같은 건 적히지 않았다. 논리적이긴 하지만 근거로 제시하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해석이 다소 주관적인 부분이 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담임은 지석이처럼 주관을 갖고 논리를 펼칠 줄 아는 사람이 안드로이드 윤리가 중요해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더 필요하다고 위로했지만 당사자는 심사에 쉽게 수긍했다. 지석에게 필요한 것은 토론 대회 우승이 아니었다. 담임 말처럼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지석이 지키고 싶은 건 심사위원의 말대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었다.




       

       

      [구세대 공공 안드로이드 점검 협조 요청]

       

      「공공 안드로이드 관리 및 안전 운영 지침」 제14조에 따라, 구세대 공공 안드로이드의 안정적 운영 현황을 확인하기 위한 점검을 실시하고자 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 점검은 해당 안드로이드의 기본 작동 상태/시스템 안정성/내부 데이터 관리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점검 결과에 따라 향후 관리 방향에 대한 내부 검토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세부 사항은 점검 이후 별도로 통보될 예정입니다.




       책상에서 공문을 발견한 것은 창문에 바람 소리가 부딪히는 새벽이었다. 공문 내용은 언뜻 보면 인간으로 따지면 건강검진 받을 시기가 되었으니 병원에 가라는 듯한 사무적인 내용이었지만 목적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김정수가 아직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수의 동료 선생님들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지석을 붙들었다. 요즘 따라 새로 들어오는 책들 위치를 기억을 못해, 용량이 다 됐나 봐... 관리자한테 연락하겠다는 것을 간신히 막은 그때부터 지석은 공공 안드로이드에 관한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보았다.

       

       공공 안드로이드 보호 단체에서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국가에서 공공 안드로이드를 처분하는 절차는 대개 이러했다. 세대교체에 따른 용도 변경과 이어지는 점검 절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교체와 리셋... 교체와 리셋의 끝은 아이러니 하게도 필멸의 인간보다 더 짧은 수명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새로운 세대가 발생할 때마다 이뤄지는 일이었다. 누가 안드로이드가 불멸이라 했던가.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김정수 역시 전원이 켜진 이래 쭉 근무하던 도서관에서 자리를 잃었다.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붙일 수 있다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김정수 역시 인간이든 안드로이드든 누군가의 자리를 뺏으며 사서가 되었을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그가 도서관을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정수 입장에서도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은 있어도 떠나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도서관에서의 마지막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사서로 제작된 안드로이드는 강원도의 마을회관에 상주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오늘은 어르신들한테 긴급 구조 어플을 깔아드렸어. 오늘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뵈러 다니느라 삼만 보를 걸었어. 지석아, 여기는 이제 단풍이 지고 있는데 매화나무는 여전해? 

      작은 산골 마을의 유일한 직원으로 지내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음을 분명 아는데도 영상 통화로 마주하는 김정수는 때로 지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을 차곡차곡 모으는 듯 새로운 이야기들이 그의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어서 형을 만나고 싶었다. 미처 통화로 듣지 못한 밀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반복 경험이 아닌 낯선 경험을 부딪히며 쌓는 일상이 궁금했다. 그리고 알려주고 싶었다. 형의 늘어난 발화량이, 경험 데이터가 없어 당황하는 순간들이, 그 기억 데이터들이 주는 것이 설렘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이 마을 회관으로 왔다.

       

       공문의 날짜를 확인했다. 종이에 적힌 대로라면 마을회관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에 도착한 것이었다. 김정수는 곽지석에게 모든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 했지만 공문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공문을 눈으로 확인하니 피가 차게 식어왔다. 김정수처럼 특정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안드로이드일수록 점검 결과는 정해져 있다. 점검을 받으면 곧 현재 업무에 적합한 부품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교체하라는 공문이 새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김정수가 가진 모든 기억 데이터가 사라질 것이다. 

       

       "도서관에서 떠나올 때 잔여 용량을 확인 했었거든."

       

       어느 새 방에서 나온 김정수가 공문을 가져갔다. 원래는 10% 미만만 돼도 업무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바로 리셋한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도서관 선생님들까지 눈치챌 정도로 업무에 지장이 생겼으면 이미 시스템에 과부하가 진행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석아, 나 수명이 거의 다 된 것 같아."

       

       김정수가 곽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엄연히 따지면 기억 저장장치의 용량이 '수명'은 아니니까, 리셋을 하면 자신이 사라진다는 듯한 김정수의 말은 안드로이드 인간이 하는 말이라기엔 어폐가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치만 리셋 되기는 싫어."

       "......"

       "그냥 내가 지금의 나로 모두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기억이 너에게 생기지 않게 도와줘."

       

       김정수는 안드로이드면서 마치 자신이 시한부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런 김정수를 곽지석은 이해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날 옥상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상 자신만큼은 그래야 했다. 남들은 매일 아침 삭제해 버릴 사소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 자신을 정체화 하는 김정수. 그 속에서 분량을 키우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지만 형의 기억 저장장치에서 많은 데이터를 차지한다면 특별해질 수 있으니까. 

       

       지석은 자신의 시간이 유한하기에 김정수의 시간은 무한하다고 착각했다. 김정수의 데이터 용량이 먼저 끝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김정수는 자신의 기억 데이터와 함께 영영 폐기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나도 안드로이드라서 그날의 대화를 전부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망설임 없이 형을 리셋하고 평생을 함께 할 텐데.

       

       대답 없이 김정수의 뒷목으로 손을 뻗었다. 미세하게 숨겨진 커넥터 홈이 손끝에 걸렸다. 반대편 손까지 올려 목을 그러쥐었다. 당장 홈을 들어내서 김정수의 저장 장치에 저장된, 자신이 없는 순간의 데이터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 생각을 억지로 눌러 담고 목에서 내려온 손이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고개를 파묻자 시야가 흐릿해졌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왜 형이 소원을 비냐..."

       

       창문 밖으로 새벽의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지석이 그리고 기다리던 아침이었다. 친구가 되어달라는 약속을 간신히 지킨 김정수는 영영 떠나려 하고 있었다.

       


       

       

       

      서리 내린 창문 밖으로 앙상한 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후드득 떨어졌다. 양말부터 모자, 장갑까지 완전 무장한 두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지석이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꽉 차게 담고는 있는 힘껏 뚜껑을 닫았다. 정수는 건물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다니며 창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하였다. 나 아무래도 옷이 많이 큰 것 같아. 지석이 팔을 벌리고 몸을 잔뜩 부풀리고 다가갔다. 푸욱. 정수가 팔로 지석의 몸통에 찬 공기를 눌러 없앴다. 다 공기네, 근데 원래 겨울옷은 좀 넉넉해야 더 따뜻하대. 비장하게 말하는 정수를 보다가 지석이 키득거렸다. 뭐냐, 왜 그렇게 웃냐아. 아니, 이런 거에 관해서는 내가 정수보다 더 똑똑할 것 같은데. 이건 여기 평생 살았던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거거든, 내 지식이 아니라 그분 지식이라구. 그래그래. 근데 너 만 24살 됐다고 바로 형 호칭 뗀 거야? 티격태격하며 나란히 배낭을 맨 두 사람이 현관을 나섰다.

       

       발길이 닿는 대로 떠나기로 했다. 거창하게 첫 여행이라고 타이틀도 붙였다. 그렇다고 해봤자 가고 싶은 곳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길게 떠날 것도 아니었다. 나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곳 있어? 아침 먹는 내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김정수의 세계는 가고 싶은 곳 마저도 마을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이면 모두 움직일 수 있는 곳들 뿐이었다. 제일 가고 싶은 곳은 여기. 작은 지도에서 정수가 확대한 화면에는 고작 걸어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산기슭이 맵 어플에 표시되어 있었다. 

       

       "그럼 여기부터 갈까?"

       "아니. 근데 여기는 밤에 갈 거야."

       

       해가 지고 산 한가운데에 가려면 위험하지 않을까? 지석이 나침판 주변을 이리저리 확대하며 물었지만 김정수의 의지는 확고했다. 지석은 김정수의 선택에 두 번 토를 달지 않았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이모'의 집이었다.

       

       "근데 어쩌다 이모라고 부르게 된 거야?"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이모라고 부르라 하시던데. 매실청 담그는 법도 그분이 알려주셨어."

       

       이모, 종종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김정수가 가족이 연상되는 호칭으로 부르는 유일무이한 상대였다. 일찍이 장갑을 벗어둔 손바닥에 마른 땀이 생겨 패딩에 벅벅 문질렀다. 마치 김정수가 뒤늦게 찾은 가족을 소개 받으러 가는 듯했다. 

       

       도착한 곳은 키가 크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마당에 자리 잡은 집이었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모라는 분은 친구와 십 여 년을 둘이서 그 집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리자 털모자를 곱게 쓴 중년 여성이 등장했다.

       

       어머나, 여기가 정수가 말하던 친구? 친구가 잘생겼네, 추운데 빨리 들어와요. 집안에 들어서자 지석은 마을회관을 채운 뜨개 물건들의 출처를 알게 됐다. 털모자부터 온갖 생활용품, 장식품까지 모두 뜨개로 떠져 있었다. 하지만 이모라 불리는 여성의 작품은 아니었다. 거실 창문 근처의 흔들의자에 앉은 여성이 가볍게 고개인사를 하고 다시 뜨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친구끼리 같이 산다고 들었으나 지석의 눈에는 다소 나이 차이가 있어 보였다. 창가에서 뜨개질에 집중하는 여성은 기껏해야 지석과 정수보다 대여섯 살밖에 안 들어 보였다. 

       

      정수와 지석의 앞에 찻잔이 하나씩 놓였다. 연갈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우엉차예요, 이것도 우리 정수가 도와줘서 같이 만든 거였지.

       

       "정수야, 뭐라고 했지? 우엉차는..."

       "혈액순환에 좋고 면역력에도 좋다구요."

       "그래, 안 까먹었네."

       

       두 사람은 퍽 가까워 보였다. 그녀는 체구가 큰 것은 아니지만 생명력 있는 사람이었다. 이모라고 불리지만 마치 아들과 아들 친구를 맞아주듯 따뜻하게 둘을 대했다. 김정수에게 만약 생물학적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도서관 옥상을 자신의 집으로 정했던 김정수는 이 외딴 마을에서 다정한 사람들로부터 아낌 받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길에서부터 느꼈던 어색함과 불편함이 무엇인지 살가운 둘의 대화를 보니 깨달았다. 곽지석은 섭섭했다. 김정수에게 저가 모르는 집이 생긴 것이 다행이면서도 아쉬웠다.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김정수의 세상을 채워주는 고마운 사람인데. 스스로 못나게 느껴졌다.

       

       "정수가 여기에 자주 오나 봐요."

       "주말 마다 뜨개 배우러 와요. 나 말고 저기, 저 앉은 제나한테."

       

       창가에 앉은 여성을 턱으로 가리켰다. 몰랐다. 김정수에게 제나라는 이름의 뜨개질 선생님이 있는지도, 주말마다 방문하며 배우는지도. 가을 즈음에 뜨개질을 배운다고 이야기하긴 했었으나 그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김정수는 시시콜콜 이야기하면서도 공백이 많았다. 지석은 그것이 부족해진 용량 탓인지 계속 불안했고 차마 묻지 못했다. 문득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강원도에서 김정수가 보냈을 나날들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찻잔을 비운 정수가 창가로 자리를 옮기자 두 사람은 말 없이 둘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앉아 바늘코에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크레파스로 그린 동화 삽화처럼 보였다.

       

       아, 선생님이 정수한테 매실청 담그는 법을 알려주셨다고... 이것저것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호자인 양 인사를 하자 오히려 정수가 마을회관의 복덩이라며 인사가 돌아왔다.

       

       "나는 저 애가 제나를 많이 닮아서 마음이 갔어요." 

       

       겉보기엔 너무 안 닮았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죠? 지석은 대답하기 전에 창가의 둘을 다시 샅샅이 훑어보았다. 언뜻 분위기가 비슷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닮았다고 하기엔 너무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석은 그녀가 닮았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정수 친구라 저는 알 것 같은데요, 지석의 대답에 이모가 크게 웃었다. 맞네, 정수 친구였지 참.

       

       제나는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안드로이드였다. 어제 제작되었다 해도 믿길 정도로 최신형 같았다. 그렇다고 안드로이드라서 닮았다는 건 아니고, 둘 다 이게 있는 것 같아 꼭. 이모가 자신의 왼쪽 가슴께를 쿡쿡 찔렀다. 

       

       "그럼... 선생님이 소유주이신 건가요?"

       "아니, 나는 보통 파트너라고 소개해요."

       

       최근에 안드로이드를 파트너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흔치 않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드로이드를 배우자로 법제화 해달라는 시위도 본 적 있었다. 하지만 이 시골에서 만나게 된 것은 의외였다. 남들이 보기엔 아주 친한 이모와 조카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나 얘기해줄까요?"

       "..."

       "실은 내가 학대 받는 제나를 훔쳤어요."

       

       세상 기준에서 제나는 유실된 안드로이드죠. 제나는 기억 못할 거예요, 원치 않았는데 내가 리셋했거든요.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모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홀로 기억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의 저 애한테는 이유도 없이 제가 파트너로 정해진 거니까."

       

       초면에 내가 너무 무거운 얘기를 꺼냈나? 다정하게 묻는 말에 지석이 뜸을 들였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죄책감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뭐라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두 안드로이드의 대화만 작게 공기를 채웠다.

       

       저는 선생님이 정수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요, 계속해서 우엉차의 효능을 알려주시길래. 고민 끝에 겨우 내뱉은 말에 이모가 깔깔 대며 웃었다. 그건 그저 아줌마들의 특징이라 하며.

       

       "정수가 지석 군 얘기를 그렇게 했었는데 만나 보니 생각만큼 재밌네. 정수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수가 제 얘기를 해요?"

       "쟤가 누구 얘길 하겠어, 둘이 하나 뿐인 친구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같이 한번 들리라고 했어요."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나처럼 사는 방법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작은 손이 지석의 어깨를 토닥였다. 앞뒤를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손길이었다. 살다 보면 생각을 버릴 때도 필요해. 생각이 너무 많이 들면 그냥 가장 후회하지 않을 선택지를 골라버려요. 


       

       

       

       

       "야아, 혼자 그렇게 다 먹으면 안 돼..."

       

       목장의 양들은 생각보다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김정수는 양들에게 골고루 먹이를 나눠줄 생각이었던 것 같았으나 현실은 득달 같이 달려온 한 마리가 번개 같이 비우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떠나버렸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통을 손에 쥔 김정수가 허망하게 떠난 양의 뒤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지석의 앞에 온 양은 온순하기 짝이 없었다. 얌전히 양에게 먹이던 먹이 통을 빼내 다른 양에게 주려 허리를 세우자 잔뜩 부러워하는 얼굴이 눈앞을 차지했다. 왜 너꺼는 천천히 먹지? 글쎄, 양도 성격이 다른 거 아닐까... 입이 삐죽 나온 상태로 손에 쥔 먹이통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보니 지석으로서는 차마 양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거 정수가 마저 줄래?"

       "진짜...? 아냐, 네 거잖아."

       "내가 주는 것보다 형이 주는 편이 더 만족감이 클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줘도 돼?"

       

       김정수는 고작 양에게 줄 먹이 반 통을 준다는 말에 눈가에 인디언 주름까지 만들며 웃는다. 곽지석은 그 얼굴이 좋았다. 그 웃음을 볼 때면 처음 만난 열일곱 살 비밀을 공유했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좋다는 건지. 그 사이 김정수는 이내 곧 생각을 바꾸었는지 그럼 남은 반 통은 양에게 같이 주자고 제안을 했다. 먹이 통을 쥔 지석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잡더니 울타리 안으로 먹이통을 넣었다. 안드로이드의 손은 이렇게 다 말랑할까. 온 신경이 손에 쏠린 사이 근처에 있던 양 한 마리가 다가와 또 순식간에 먹이를 해치우고 사라졌다. 또 다시 허망해진 얼굴을 보고 정수한테 오는 양들은 다 저러네, 한 마디 던졌다. 목장 앞 카페에서 이른 저녁 먹으며 내내 양 이야기를 하니 어느새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도착지인 산기슭에는 작은 트리 하우스 한 채가 있었다. 종아리의 반절까지 쌓인 눈길을 올라오느라 수차례 미끄러질 뻔한 것을 서로를 붙들며 간신히 도착했다. 문 앞에서 수차례 발을 구르고 서로의 모자에 묻은 눈을 번갈아 털어주었다. 마을 이장님 소유지라는 이곳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아 냉기가 느껴졌지만 어쩐지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있었는데, 김정수가 자신이 얼마 전에 방문해 미리 쓸고 닦아두었다고 말했다. 

       

       "이거 생일 선물."

       

       가방을 풀던 김정수가 스웨터를 내밀었다. 김정수의 목도리와 같은 삼색깔이 섞인 실로 만들어져 포근한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체취가 없는 안드로이드의 손에서 만들어진 스웨터에서는 마을 회관에서 풍기던 따뜻한 보일러 냄새가 배어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에 올라가자 지붕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구석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걸쇠를 열어 문을 열자 어느 새 캄캄해진 밤하늘이 누런 조명의 다락방을 침범했다. 문을 통과해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문을 닫아 불빛을 차단하자 완전한 어둠이 눈앞에 널따랗게 펼쳐졌다. 하루 종일 그토록 눈부시게 빛나던 눈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이었다. 조심스럽게 지붕에 머리를 대고 눕자 눈이 쌓인 나무들의 그림자까지 사라졌다. 어둠에 눈이 익자 하나둘 박혀있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우주를 가린 검은 하늘을 찢은 듯 은하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새근거리는 지석의 숨소리가 바람 소리와 섞였다. 코끝이 얼얼해지는 것도 모르게 별 하나하나를 눈에 새겼다. 

       

       "형."

       “응?"

       "북두칠성 찾아줄까."

       "어떤 건데?"

       "저기 일렬로 하나둘 셋 넷 다섯 개 이어진 거 보여? 국자 모양."

       "어! 저건가?"

       

       정수와 고개를 붙이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영 다른 곳을 가리키는 것 같아 계속 실실 웃음이 났다. 왜 웃냐고 묻는 모습이 더 바보 같아 한 번 더 웃었다.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 꼭 도서관 옥상에 있는 것 같다."

       "거긴 이렇게 별이 보이진 않았잖아."

       "그래도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은 게 비슷하지 않아?"

       

       하긴 그런 거 같다. 한결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틀자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입꼬리가 보였다. 

       

       "생일 축하해, 곽지석. 오길 잘했지?"

       

       그 말에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차올랐다. 야속했다. 새벽에는 자신을 죽여달라더니 밤에는 또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말한다. 생각해 보면 김정수는 늘 그랬다.

       

       "야... 너 울어?"

       "......"

       "왜 울고 그러냐..."

       

       김정수가 소매를 끌어올려 얼룩진 지석의 얼굴을 훔쳐 닦았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정수 나 있잖아, 아까 이모님 집에서 그 둘을 보고 나도 형이랑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형을 훔쳐서 같이 살고 싶어. 한번 물꼬를 튼 생각은 멈출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수 많은 하고 싶은 말 중에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지 하나를 고르라면,

       

       "형이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꼬박 하루를 계속 참아온 말이었다.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욕심을 밝힌 건 별들로 가득 찬 하늘 때문이었다. 김정수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여느 때처럼 손을 잡아 올 뿐이었다.

       

       그날 밤 곽지석은 김정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석아, 나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정말 좋거든. 이모랑 제나도 좋고, 뜨개질 배워서 너한테 선물 줄 수 있는 것도 좋고. 이장님이 알려주신 이곳은 평생 내가 가본 곳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야. 내 의지로 온 건 아니지만 의지를 갖는다는 거, 뭔가를 사랑한다는 거, 이제 알 것 같아. 근데 있잖아... 

       

       눈을 떴을 때, 침대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건물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발견한 김정수는 비슷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김정수였다. 김정수이지만 김정수가 아닌 그가 건넨 쪽지에는 어제의 김정수가 오늘의 곽지석에게 보내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너에 관한 기억들이 내 주요 장치에 저장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겨울이 지나면 벚꽃 보러 가자.

       

       


       

       

       

       

       한동안 내린 눈이 조금씩 녹고 얼고를 반복해 녹음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계절, 키가 크지 않은 나무가 있는 집의 철문이 열리고 키가 작은 여성이 나와 우편함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서울에서 온 청년이 마을회관의 공공 안드로이드를 훔친 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난 뒤였다. 한동안 마을은 소란스러웠지만 이내 곧 새로 온 안드로이드와 함께 소동은 소문이 되어 눈과 함께 녹아내렸다.

       

       거실로 들어온 여성은 창가에 앉아 편지를 뜯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보내주신 매실청은 잘 먹고 있습니다. 정수는 그 매실청이 본인이 만든 건지도 모르지만 매실차를 타 마시는 걸 좋아해서 매일 아침 같이 마시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지난주에는 정수가 전에 일했던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정수한테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생 때 저희가 그곳에서 만났거든요. 역시나 사서로서 일하던 시절의 데이터는 대부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놀랐던 건 저희에겐 제법 중요한 나무가 하나 있는데요. 기다란 가로수에서 그 나무 앞에서 멈춰 올려다보더라고요. 그 나무만 꽃이 펴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괜히 기대를 하게 되네요.

       

       결국 저는 선생님을 닮은 선택을 해버렸네요. 이미 스스로 캐시 데이터를 지운 상태에서 점검을 받아 리셋까지 해버리면 정말 정수가 기억하는 세상이 남김 없이 사라질까 봐 한 선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을 할 때는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상에는 저희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훔칠 수밖에 없는 사정의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그래도 알려주신 단체에서 도움을 주시기로 하셔서 재판 건도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공공 안드로이드의 자율권에 관한 선례가 늘고 있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은 봄바람이 따듯해지고 있는데 강원도는 괜찮으신가요? 얼음이 녹을 때까지 건강하시고, 여유가 생기는 대로 정수랑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편지 봉투에서 떨어진 사진을 옆에 앉아 있던 안드로이드가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벚꽃 나무 아래 삼색털의 목도리와 스웨터를 한 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LIST
      FICTION

       

      1000

      KOTT

       

       

       

      01.

       

      사라져 가는 생명들과 검게 물든 대지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로 기억 되기 충분했다. 파괴된 식생과 밀려오는 재해에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신중히 결정을 내렸다. 지구를 복구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지. 

       

      이들은 후자를 택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인 푸른 지구를 버리고 거의 개척되지 않은 드넓은 우주를 새 고향으로 택한 것이다. 지구와 달 사이에는 중력과 원심력이 상쇄되어 물체가 거의 정지한 것처럼 머무를 수 있는 다섯 개의 라그랑주 포인트가 있다. 인류는 그중 가장 안정적인 지점인 L5에 소도시를 세웠다. 연구 기지가 아닌, 규칙과 문화가 형성된 실제 생활 공간. 넓은 광야 같은 우주 한가운데, 인류는 의도적으로 씨앗을 심어 흔적을 남겼다.

       

      나는 선조들이 만들어낸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매일 같이 손을 대는 사람이다. 공식 직함은 스페이스 엔지니어. 거창한 이름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건물 외곽을 수리하고, 인공 중력기의 수치가 기준치를 벗어나지 않았는지, 이 도시가 여전히 도시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LED 조명이 지구의 아침 빛을 흉내 내자 서서히 조도가 높아졌다. 조명은 창밖의 얼어붙은 칠흑과 못 박힌 듯 정지된 별들을 강제로 지워내려는 듯, 유난히 공격적인 광량을 쏟아낸다. 이 눈부신 광명 덕분에 나는 내가 지금 수만 킬로미터의 공허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저 투명한 강화 유리 너머에는 숨 쉴 공기조차 없는 죽음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벽을 짚으며 일어났다. 늘 그렇듯 차갑고 매끈한 금속의 감촉이 손에 남았다. 뒤이어 간헐적이지만 규칙적인 인공 중력기가 낮게 울리고, 공기 정화 장치가 웅웅거렸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새하얀 거울 앞에 섰다. 형광등 아래 노출된 내 얼굴은 생기 없이 창백했다. 기계적인 손길로 양치와 세수를 끝내고, 작업복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방을 나서기 전,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벽면 한구석에 붙은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정수가 떠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02.

       

      정수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이 기지의 모든 것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지던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텅 빈 2인용 기숙사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없는 상태가 내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이곳에서 내 곁을 거쳐 간 이들은 하나같이 불협화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경악할 새도 없이 새로운 얼굴이 그 자리를 채웠고, 나는 매번 바뀌는 타인의 습관에 억지로 나를 맞춰야 했다. 그러나 그 노력조차 무색하게 그들은 친해질 틈도 주지 않은 채 다른 구역으로 재배치되거나, 규정 위반으로 소리 소문 없이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그런 허망한 교체가 몇 번이고 반복되자, 나는 어느덧 타인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곧 다가올 결핍을 예약하는 일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제이든이라는 이름의 금발 엔지니어가 금지된 약물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새벽녘 보안팀에 의해 급히 끌려 나갔다.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정적을 깼고, 텅 빈 방에 남겨진 것은 주인을 잃고 흐트러진 침대 시트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지독하게 익숙한 감각뿐이었다. 한바탕 휩쓸고 간 소동 탓에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나는 다시는 감기지 않을 것 같은 눈을 깜빡이며, 기지의 낮은 웅웅거림 속에 섞여 흐릿하게 죽어가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은 평소보다 유난히 무거웠다. 나는 짓눌린 피로를 이끌고 뻣뻣한 작업복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무작위로 날아오는 우주 쓰레기들을 피해 건물 외곽을 수리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궤도를 이탈한 금속 파편과 오래된 위성 조각들이 예고 없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헬멧 속에서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고막을 찔렀다. 그럴 때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춘 채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거나, 생명줄과 다름없는 고정 장치를 강박적으로 점검해야 했다. 가까이서 마주한 외벽의 균열은 언제나 예상보다 깊고 처참했다. 방호 패널은 미세한 충돌 흔적으로 짓이겨져 있었고, 하나를 메우면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쪽에서 새로운 상처가 터져 나왔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수선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이 거대한 인공 도시의 수명과 그 안에 위태롭게 매달린 인류의 존속에 대한 염려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곤 했다. 

       

      내부 시스템을 점검하는 일은 그나마 육체적인 위협은 덜했지만, 신경을 갉아먹는 건 마찬가지였다. 복잡하게 얽힌 에너지 흐름을 추적하고, 낡은 코드 사이에 박힌 오류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는 동안 통신망에는 기분 나쁜 잡음이 섞여 들렸다. 겉보기엔 매끄럽게 돌아가는 자동화 장치들도 그 이면에는 수만 개의 작은 어긋남을 품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 위로 쏟아지는 수치들을 확인하며 수동 조정값을 입력했고, 냉각 시스템이 정상 온도를 회복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도구를 챙길 수 있었다.

       

      작업이 모두 끝났을 때, 태양은 이미 도시의 반대편으로 기울어 있었다. 헬멧을 벗자 뒤늦게 피로가 밀려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녹초가 된 몸을 간신히 움직이며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험난하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지쳐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와 수없이 늘어선 방들을 지나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생각하면 과장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땅에 코를 박을 듯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만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1004호의 문 앞이었다. 주섬주섬 카드키를 꺼내 문에 갖다 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시야 한쪽에 낯선 형체가 불쑥 들어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적뿐이어야 할 문 앞에 소리도 없이 서 있던 그림자와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요동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귓가에는 몸이 내뱉는 날것의 심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흐릿했던 시야가 한 박자 늦게 초점을 맞추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그제야 멎었던 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나와 똑같은 짙은 회색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팍에 달린 작은 명찰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놀란 기색을 수습하려 헛기침을 내뱉으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 죄송합니다.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해서….”

       

      내 군색한 사과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지만, 키는 나보다 족히 십 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정지된 별들만 가득한 이 무채색의 복도에서 그의 존재감은 이질적일 만큼 거대했다.

       

      “곽지석 씨 맞죠?”

       

      그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카드키를 쥔 손을 내려다봤다. 왜 내 이름을 묻는지 의문이 들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내 방어적인 태도에 그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더니, 습관적으로 가슴의 명찰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오늘 낮에 본부에서 보낸 연락 못 받으셨나요?”

       

      그제야 우주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느라 무시했던 단말기의 알림들이 뇌리를 스쳤다. 아, 탄식과도 같은 짧은 깨달음이 터져 나왔다.

       

      “아…. 죄송합니다. 외부 작업 중이라 확인을 못 했습니다.”

       

      말끝을 흐리며 미안함을 표하자, 남자의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한색의 조명 아래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괜찮아요. 저도 자주 그러는 걸요.”

      “새로 오게 된 룸메이트에요. 오늘 새벽에 나간 엔지니어 빈자리에 제가 배정됐어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빨리 충원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본 적이 없는 얼굴 같아서요. 원래 이 구역이셨나요?”

       

      “저는 B동에 있었어요. 이번 분기가 끝나면 A동으로 넘어올 예정이었는데, 아시다시피 갑자기 결원이 생기는 바람에 일정이 조금 앞당겨졌네요.”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뒤늦게 내 쪽으로 커다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었네요. 김정수라고 합니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낯선 온기에 주춤거리다, 나는 마지못해 그 손을 맞잡았다.

       

      “…곽지석입니다.”

       

      정수는 이전의 룸메이트들과는 명확히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그가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던 그 짧은 찰나부터 나는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채색의 조명 아래서도 환하게 빛나던 미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소중히 말하며 내미는 크고 온기 어린 손, 그리고 능숙한 엔지니어답지 않게 살짝 상기된 채 내 표정을 살피던 그 선한 눈망울까지. 정수가 가진 모든 기질은 이 딱딱한 기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순수했다.

       

      그 생경한 온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평소보다 수월하게 새로운 동거인을 방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수가 다르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나는 그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않았다. 정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선 이들처럼 개인적인 문제로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비관적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수는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단 하나의 불협화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제이든처럼 금지된 약물로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았고, 드미트리처럼 거친 폭력으로 울분을 토해내지도 않았다. 밤마다 벽을 울리던 블라디미르의 코골이나, 타인의 사소한 권리를 침해하던 하루토의 비겁함도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정수에게는 쫓겨날 이유도, 도태될 결격 사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지가 요구하는 규칙들을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성실히 수행했다.

       

      모든 것이 뒤틀린 이곳에서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상식이 위법이 되고 광기가 일상이 되는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정수의 바른 태도는 경이로운 이질감에 가까웠다. 기상천외한 룸메이트들의 만행에 지쳐 있던 나에게 그런 정수의 존재는 구원과도 같았다.

       

      정수의 배려는 소리 없이 내 일상의 틈새를 메워왔다. 고된 작업 탓에 식사를 거른 날이면 내 책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이 놓여 있었고, 건조한 공기에 내가 헛기침이라도 하는 밤이면 어느샌가 가습기가 기분 좋은 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자주 찾는 물건들은 늘 제자리를 지켰고, 방전된 채 방치되던 나의 기기들은 정수의 손길을 거쳐 늘 완전한 충전 상태를 유지했다. 그는 자신의 선의를 생색내지 않았다. 그 모든 세심한 행위들이 마치 행성이 자전하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듯 행동했다. 타인의 불편함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소리 없이 보살피는 그 체질적인 다정함 앞에, 나는 결국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향한 호감은 중력처럼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후로 몇 주간, 나는 정수라는 궤도를 도는 관찰자가 되었다. 딱히 의도를 가진 행위는 아니었다. 그저 폐쇄된 적막 속에 던져진 이 기묘하고 다정한 생명체에 대해, 본능적인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다. 나의 시선은 정수의 사소한 움직임을 좇아 은밀하게 움직였다. 누군가를 훔쳐본다는 사실에 가끔은 마음이 쿡쿡 찔리기도 했지만, 그 관찰의 시간은 나에게 유일한 유희가 되어주었다.

       

      사실 정수의 일상은 관찰 대상으로서 그리 흥미로운 편은 아니었다. 정수의 하루는 톱니바퀴처럼 정해진 패턴을 따라 흘렀고, 감정의 높낮이도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았던 것은, 내가 관찰에 소질이 있어서라기보다 그가 내비치는 이면의 무언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가 나보다 몇 살이 더 많은 지, 웃을 때 눈을 몇 번 깜빡이는지와 같은 표면적인 데이터 너머의 것들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가는지, 무엇에 마음의 닻을 내리는지, 그리고 무미건조한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어느 순간 가장 뜨겁게 일렁이는지 등등, 그런 것들을 살폈다.

       

      내가 발견한 정수의 가장 깊은 심연에는 지구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미지의 성운이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에 매혹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정수는 단순히 본적도 없는 자연과 환경을 그리워하는 수준을 넘어, 지구라는 별 자체를 사랑했다. 그는 인류의 발자국이 끊겨버린 선조들의 땅과 바다를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단 한 번도 직접 밟아보지 못한 그 축축하고 생명력 넘치는 대지를, 그는 마음의 지도를 그려가며 매일같이 탐험하고 있었다. 그 열망의 상징처럼 그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낡은 지구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륙의 경계마다 색이 바랜 땅덩어리와 그 사이를 메운 푸른 바다를 머금은 기울어진 구체. 우주 시대의 생존자들에게 그것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골동품에 불과했지만, 정수의 손 위에서 그 의미만은 퇴색되지 않은 채 영롱하게 빛났다. 정수가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닦고 기름을 친 덕분인지, 먼지 하나 앉지 않은 지구본은 손가락 끝만 닿아도 빙글빙글 매끄럽게 회전하며 잊힌 나라들의 이름을 내보였다.

       

      내가 정수를 형이라 부르는 것에 제법 익숙해질 무렵, 그는 어느 날 나를 자신의 비밀스러운 정원으로 이끌었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간이 배양실이었지만, 그곳은 기지의 메마른 금속 벽면 사이에서 유일하게 숨을 쉬는 장소였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네모난 화분들 속에는 정수가 온 마음을 다해 길러낸 생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민들레, 은방울꽃, 제비꽃…. 지구라는 머나먼 기억에서 길어 올린 조그만 유산들. 손바닥 위에 올리면 비명도 없이 사라질 듯 연약한 존재들을 바라볼 때면, 정수의 눈동자에는 묘한 설렘과 경외감이 일렁였다. 정수는 꽃들이 대지를 뒤덮었을 지구의 옛 들판을 자주 상상한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세밀화를 그리듯 그 아름다움을 확신하며 되뇌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말을 잃었다. 바람에 허리가 꺾이는 민들레와, 은빛 광채를 머금은 은방울꽃, 그리고 낮은 군락을 이룬 보랏빛 제비꽃…. 정수의 목소리를 타고 내 머릿속에도 낯선 계절의 풍경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은 그 연약한 꽃들과는 대조적이게 거친 작업의 연속이었다. 교대 사이렌이 기지의 정적을 가르면 우리는 중력 보정 장치를 점검하러 외벽으로 나갔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우주 쓰레기들의 위협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명줄을 의지한 채 파손된 패널을 교체해 나갔다. 외벽 작업이 끝나면 다시 숨 가쁜 내부 점검이 이어졌다. 정수는 배선을 살폈고, 나는 중앙 제어 시스템의 오류 로그를 지워 나갔다. 기계들이 안정을 되찾고 가느다란 숨을 내뱉을 때쯤에야, 우리는 비로소 짧은 휴식을 허락받았다.

       

      휴식 시간에 창가에 나란히 서서 바라보는 우주는 언제나 똑같은 얼굴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과 박제된 별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채 희미하게 명멸하는 푸른 점 하나. 지구였다. 정수는 그 작은 점을 유독 오래도록, 마치 놓치면 사라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바라보곤 했다.

       

      “형은 왜 지구가 좋아?”

       

      내 질문에 정수는 즉답 대신 창밖의 어둠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글쎄…. 아마, 돌아갈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이곳의 공기를 마시며 자랐잖아. 지구는 우리에게 전설이나 이야기 속 장소에 가깝지.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끌리는 걸지도 몰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기에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조차 가질 수 없는 결핍의 근원 같은 곳이라서.”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대화는 광막한 우주의 허공과 정수의 작은 화분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나는 주로 아무런 빛도 감지되지 않는 칠흑의 좌표에 망원경을 고정하고,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얻어낸 심우주 사진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빈 공간을 집요하게 응시한 끝에 간신히 건져 올린 희미한 빛의 타래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 채 각자의 시공간에서 태어나고 스러졌을 별들이, 우연히 나의 프레임 안에 나란히 갇혀 있는 모습은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소용돌이치는 나선형의 팔, 찢긴 듯 흩어진 성운의 파편들, 그리고 이미 사멸한 별들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잔광들. 그 찬란한 유령들을 무심히 관통해 온 수십억 년의 시간이 나를 압도했다. 정작 나를 전율케 한 것은 그 거대한 규모가 아니라, 사진 속의 별들 중 그 어느 것도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의 긴 꼬리일 뿐이라는 자각이 뇌리에 박혔다.

       

      정수는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깊은 침묵 속에 잠기곤 했다. 마치 별들 사이의 아득한 시간적 간극을 제 몸으로 직접 감당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다 그는 문득,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것 중 진짜 지금인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망원경 너머의 우주는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 과거의 소식이었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조차 마음속에서 수천 번 되뇌어진 뒤에야 뒤늦게 터져 나오는 메아리에 불과했으니까. 정수는 침묵으로 돌아온 대답에 대해 응하는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지구의 찰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단단한 흙의 질감, 공기 속을 유영하는 계절의 냄새, 그리고 매해 같은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철새들의 날갯짓에 대해. 우주의 영겁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순간들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 짧음이 존재를 선명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내가 찍은 죽은 별의 사진과 정수가 갈망하는 지구가 실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둘 다 사라짐을 전제로 해서야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의미를 얻는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지독히도 닮아 있었다.



       

       

      03.

       

      그날은 유난히도 공기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인류는 또다시 탐욕스러운 확장을 꿈꾸고 있었다. L5의 안정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그에 필적하는 중력 평형점인 L4에 제2의 인공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정수와 나는 그 거대한 건설 현장에 투입될 정밀 물자와 기술을 조달하기 위해 L4 지점으로 향하는 임무를 맡았다. 두 포인트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가로지르기 위해, 우리는 익숙했던 기지를 등지고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격납고의 육중한 문이 닫히자 발끝에서부터 낮은 진동이 전해졌다. 수없이 반복해 온 출항이었으나, 그날만큼은 폐부로 스며드는 산소의 농도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정수는 조종석에 앉아 수십 번의 계산 끝에 도출된 최적의 궤적을 여러 번 확인했고, 나는 창 너머로 점차 작아지는 L5의 모습을 응시했다.

       

      “출력은 안정적이야.”

       

      정수의 짧은 보고와 함께 우주선은 매끄럽게 가속하기 시작했다. 자동 항법 시스템이 정해진 항로를 따라 순항하는 동안, 우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교대로 짧은 휴식을 취했다. 항해 이틀째가 되자 창밖의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었다. 지구와 달이 만들어내는 중력의 균형점 위로, 건설 중인 L4의 뼈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개척지의 황량함과 인류의 오만한 의지가 뒤섞인 그 거대한 금속의 골격은, 차가운 심연 속에 던져진 불완전한 온기처럼 보였다.

       

      “거의 다 왔어. 이 속도라면 이틀 뒤엔 저기 발을 딛겠는데.”

       

      정수가 계기판을 톡톡 두드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을 풀고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댔다. 기계는 완벽했고, 항로상에는 어떤 장애물도 포착되지 않았다. 자동 항법 장치의 낮은 기계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우주는 지나치게 고요했고, 그 비현실적인 정적은 마치 우리가 이 광활한 공허의 주인이라도 된 것 같은 위험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언제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였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날아온, 레이더망조차 비웃듯 비껴간 아주 작은 파편 하나가 선체를 스치듯 지나간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안온함은 산산조각 났다.

       

      사건은 예고 없이 일어났다.

       

      콰광!!

       

      둔탁한 충격이 귓구멍을 강타했다. 뒤이어 비명에 가까운 충돌음이 선체를 흔들었다. 우주선 전체가 옆으로 떠밀리듯 요동치고, 패널 위에 놓여 있던 도구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정수!"

       

      나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경고음이 난폭하게 울려 퍼졌다. 붉은 경고등들이 연쇄적으로 점등되며 조종석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계기판의 수치들이 빠른 속도로 튀어 오르다 급격히 떨어졌다.

       

      “형! 선체 외벽 손상됐어!”

       

      나는 소리치며 조종석 쪽으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우주선이 중심을 잃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던 L4의 실루엣이 화면을 가로질러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별들이 원이 되어 흐트러졌다. 정수는 이미 조종간을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엔진 2번 라인이 터졌어! 연료가 새고 있어!"

       

      정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제어 분사기를 작동시키려 연속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짧은 분사음이 몇 번 들렸지만, 우주선의 회전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선체 어딘가에서 그저 진동만이 전해질 뿐이었다. 뒤이어 귀 안쪽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내부 압력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파편은 그저 외벽만 긁고 지나간 게 아니었다. 메인 전력 계통과 보조 산소 탱크가 동시에 손상된 것이었다.

       

      “비상 격벽 내려!”

       

      정수의 비명에 나는 벽을 짚고 수동 레버로 달려갔다. 하지만 뒤틀린 프레임에 걸린 레버는 요지부동이었다. 젖 먹던 힘을 쥐어짜 힘을 주었으나, 레버는 쇳소리를 내며 겨우 몇 센티미터 움직였다. 그 틈새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우리를 위협했다.

       

      “제발… 제발 좀!”

       

      정수가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자 연료 경고등이 마지막 단명을 예고하듯 깜빡였다. 몇 초 뒤, 모든 화면이 일시에 암전되었다. 조종실을 채우던 기계들이 하나둘씩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삐이이—

       

      가늘게 이어지던 경고음마저 힘없이 늘어지다 툭, 하고 끊겼다. 지독한 정적이 찾아왔다.

       

      엔진의 포효도, 냉각 팬의 웅웅거림도 사라진 공간에는 오직 비상등의 희미한 잔광과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이 떠돌았다. 우주선은 이제 인류의 어떤 의지도 담지 못한 채, 차가운 진공의 관성에 몸을 맡기고 심연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정수… 연료가 문제가 아니야.”

       

      내 떨리는 목소리에 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종간을 부서져라 붙들고 있던 그의 손이 서서히 힘을 잃고 풀려났다. 그는 넋을 잃은 채, 전면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무심한 어둠을 응시했다.

       

      “……알아.”

       

      낮고 짧은 대답 속에 모든 절망이 응축되어 있었다. 산소 공급기는 내부에서 갈리는 듯한 쇳소리를 내다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수리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넘어섰다. 기계는 죽었고, 우리는 산 채로 관 속에 갇힌 꼴이었다.

       

      우주선은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빛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정수가 열망하던 지구가, 내가 매일 기록하던 별들이 아득한 어둠 속으로 침잠해 갔다. 정수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주복의 잔여 산소량은 길어야 서너 시간. 광활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그것은 찰나보다 짧은 찰나였다. 구조 신호를 보낼 전력도, 항로를 틀 연료도, 고장 난 선체를 고칠 도구도 이제는 무의미한 쇳덩이에 불과했다. 이제 그저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내의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서로의 곁에 붙어 앉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빛들을 말없이 응시했다. 우주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와는 상관없이, 소름 끼칠 정도로 평온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정지해 있는 그 광활한 허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 심연의 밑바닥에서부터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정말로, 이렇게?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형태를 바꿔가며 회전했다. 아직 내 폐는 산소를 갈구하고 있고, 몸의 감각은 이토록 생생한데, 세상의 모든 물리적 가능성은 이미 마침표를 찍어버린 듯했다. 끝이라는 게 성립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죽는다는 개념이 이렇게 무감각하게 다가올 수 있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숨이 막힐 만큼 선명했다. 두려웠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존재가 우주의 거대한 무심함에 쓸려 나가 한 줌의 우주먼지로 돌아가는 그 당연한 섭리가, 지금 이 순간에는 견딜 수 없는 폭력처럼 다가왔다.

       

      언젠가 이 여정의 끝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이 이토록 무례하고도 성급하게 찾아와 내 앞길을 가로막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아직 이 차가운 진공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 똑바로 서서 그 눈을 마주하기엔, 내 안의 살아있는 마음은 여전히 너무도 뜨겁고 미련했다.

       

      얼어붙은 공기 사이로 지독한 정적이 흘렀다. 내 거친 숨소리만이 헬멧 내부를 울리며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을 때, 옆좌석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지석아.”

       

      정수였다. 그는 여전히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떨림조차 거세된 그의 목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차분해서, 오히려 내 안의 두려움을 건드렸다.

       

      “저기 봐.”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희미한 푸른 점, 지구가 있었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명멸하는 그 빛을 보며, 정수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전에 했던 말 기억나? 내가 지구에 관해 해줬던 말. 생각을 해봤는데, 네 별의 사진도, 내가 사랑한 지구도, 사라지는 것이니까 가치가 있는 것 같아.”

       

      “형, 제발…. 지금 그런 소리가 무슨 소용이야. 우린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준비해 온 사람 같은 깊은 체념과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

       

      “아니, 지석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빛들도 사실은 수만 년 전에 이미 사라진 것들이잖아. 하지만 그 빛이 지금 우리 눈에 닿아서 우리를 비추고 있어. 존재했던 시간은 찰나였을지 몰라도,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이렇게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도착한 거야.”

       

      그는 내 손을 가만히 맞잡았다. 두꺼운 우주복 장갑 너머로 그의 체온이 전해질 리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손길이 닿은 곳부터 딱딱하게 굳어 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도 그럴 거야. 우리의 지금은 여기서 멈추겠지만,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 네가 찍은 사진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저 별빛처럼 누군가에게 계속 흘러갈 거야.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 우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는 과정일 뿐이니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마주 쥐었다. 정수의 손은 따뜻했으며, 그의 눈동자 속에 담긴 푸른 지구만큼은 마지막까지 타오르듯 선명했다. 

       

      정수의 말은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허 앞에 선 인간이 낼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정수가 왜 그토록 사라진 지구의 사소한 것들에 집착했는지를. 그는 상실을 슬퍼하기보다, 상실된 뒤에도 남겨질 무언가를 믿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평온함이 전염된 것일까. 요란하게 요동치던 내 심박수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런 나의 모습을 파악했는지 정수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지석아.”

       

      “응.”

       

      “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정수는 조종석 옆 보관함을 열었다. 그가 꺼내 놓은 것은 은색 팩에 담긴 인공 합성 술 두 개였다. 기지에서 아주 특별한 날에나 배급되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헬멧을 벗어 던졌다. 선실 내의 산소가 희박해지고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숨을 나누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자, 건배하자.”

       

      팩이 맞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입안으로 흘러든 합성 액체는 지독하게 달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뜨거운 열기를 남겼다.

       

      우리는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방어적인 태도로 형을 대했는지, 정수가 몰래 키우던 제비꽃이 처음 싹을 틔웠을 때 우리가 얼마나 바보처럼 좋아했는지. 죽음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처럼, 어쩌면 오히려 그 사실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서로의 추억을 나누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희박해진 산소 때문에 의식이 조금씩 몽롱해졌지만, 정수의 나직한 웃음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선명하게 고막을 울렸다. 우리는 오지도 않을 미래를 마치 내일의 일상처럼 떠들며 웃었다. 팩 안의 술이 줄어들수록, 창밖의 어둠은 더 이상 두려운 심연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채워 넣은 이야기들이 부유하는 바다처럼 보였다.

       

      정수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의 체온을 느끼며, 우리가 찍은 별의 사진처럼 이 순간 또한 수천 년을 돌아 누군가에게 도착할 빛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어둠 속의 지구를 바라보았다. 희박해진 산소 때문인지, 아니면 달콤한 술기운 때문인지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이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있던 정수의 몸에 미세한 힘이 들어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정수의 눈동자에는 좀전의 장난기 어린 웃음 대신, 서늘할 정도로 맑고 투명한 이성이 돌아와 있었다.

       

      “지석아.”

       

      정수의 부드러운 부름에 나는 멍하니 그를 마주 보았다. 그는 내 흐트러진 작업복을 매만져 주며, 마치 아주 사소한 비밀을 털어놓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뭐?”

       

      “이 우주선에 비상탈출정이 있다는 거.”

       

      순간, 달콤했던 술기운이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차갑게 식어 내렸다. 나는 굳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얘긴 왜 해?”

       

      “지석아.”

       

      “…형.”

       

      “잘 들어.”

       

      정수의 목소리가 낮았다.

       

      “탈출정에 타면 빨간 버튼이 하나 있을 거야.”

       

      “정수.”

       

      “망설이지 말고 바로 눌러.”

       

      “형, 무슨 소리야.”

       

      나는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설마 내가 탈출정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그거 하나밖에 없잖아.”

       

      정수가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알고 있구나.”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도 바뀌는 건 없어.”

       

      “뭐가 안 바뀌어? 난 안 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 있을 거야.”

       

      “안 돼.”

       

      정수의 말은 단호했다.

       

      “넌 돌아가야 해.”

       

      “나 혼자 어딜 가.”

       

      내 목소리가 떨렸다.

       

      “왜 내가 형을 두고 가야 해!”

       

      목소리가 선내의 공기를 날카롭게 긁었다. 화기애애했던 술기운은 순식간에 휘발되었고, 그 자리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다시금 내려앉았다. 정수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아까보다 훨씬 깊고 단단해져 있었다.

       

      “지석아, 너는 살아야 해. 네 망원경 속에만 가둬두기엔 그 별들이 너무 아깝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형 없이 나만 가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정수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두꺼운 작업복 너머로 그의 가슴팍이 거칠게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내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석아, 제발 내 말 들어.”

       

      “싫어! 그딴 합리적인 척하는 소리 듣기 싫다고!”

       

      나는 정수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분노가 슬픔을 앞질러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선실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형이 뭔데 내 삶을 결정해? 나를 살려 보내고 혼자 영웅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정수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다시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어도 그는 인형처럼 흔들릴 뿐 저항하지 않았다. 그 무력한 순응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정수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며 악을 썼다.

       

      "죽으려면 같이 죽어! 혼자 잘난 척하지 마! 나를 이런 식으로 버리는 게 어딨어?"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었다. 제발, 제발 같이 가자고, 아니면 그냥 여기서 끝내자고.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손은 그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놓지 못했다. 감각이 다 사라질 정도로 세게 움켜쥐었다. 이렇게라도 붙잡지 않으면 정수가 정말로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쏟아부었을까. 내 주먹에 힘이 빠지고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한 공기를 메울 때쯤, 정수가 천천히 손을 들어, 내 떨리는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는 내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정수는 내게 부서질 듯 연약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마지막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다정했다.

       

      “지석아 너는 내 증거야.”

       

      “…뭐?”

       

      “내가 이 우주에 존재했다는 증거. 내가 사랑했던 지구의 꽃들과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가짜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 줄 유일한 사람이야.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내가 가꾸던 정원도, 우리가 찍은 별들도 진짜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정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품고 있었다.

       

      “싫어…. 나 싫어, 형. 난 안 가. 제발 같이 있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정수는 미소 지으며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역시 무섭지 않을 리 없었다. 단지 나를 살려야 한다는 그 오만한 다정함이 그의 공포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지석아, 내가 여기 남는 게, 네가 살아가는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해줘.”

       

      말을 마치자마자 정수는 나를 강제로 일으켜 탈출정 입구로 밀어 넣었다. 나는 고함을 질러대며 저항하려 했지만, 술기운에 풀려버린 다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탈출정의 프레임을 손톱이 뒤집어질 정도로 긁어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 대신 팔에 온 힘을 집중해 정수의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정수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내 가슴팍을 사정없이 밀쳐내며 해치 안으로 나를 처박았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시야가 번지는 사이, 해치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정수! 제발! 안 돼!”

       

      해치가 완전히 닫히기 직전, 그 좁은 틈 사이로 정수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비명과 소음으로 가득했던 내 세상이 순식간에 정적에 잠기는 듯한 목소리였다.

       

      “지석아. 그동안 즐거웠어.”

       

      “우린 또 만날 거야.”

       

      쿵, 하는 소음과 함께 육중한 해치가 닫혔다. 유리창 너머로 멀어지는 정수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그 어떤 별보다도 선명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주선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멀어져 갔고, 나는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그 마지막 별빛을 차마 눈도 감지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4.

       

      탈출정이 L4 포인트의 도킹 데크에 격하게 충돌하듯 멈춰 섰다. 해치가 열리자마자 나는 밖으로 튕겨 나가듯 몸을 던졌다.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나는 위장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낼 듯 구역질을 해댔다.

       

      주변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오다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시선은 구토하는 나를 지나, 내 뒤에 덩그러니 놓인 1인용 비상 탈출정에 머물렀다. 함께 왔어야 할 본선은 보이지 않고, 오직 탈출정 하나만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현장의 공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그 손길을 거칠게 뿌리치고선 주먹을 바닥에 내려쳤다. 손등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쳤다. 입술 사이로 꺽꺽거리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나는 정수를 그 칠흑 같은 심연에 버렸다. 정말로 유기하고 왔다. 나 혼자 살겠다고. 나 혼자 숨을 좀 쉬어보겠다고.

       

      가슴이 너무 뜨겁다. 이 숨 쉬는 공기 속에 던져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찢길 것 같다. 지금도 살겠다고 산소를 빨아들이는 내 폐가 끔찍하다. 정말이지 증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차가운 바닥 위에서 짐승처럼 웅크렸다. 그리고 내가 버리고 온 별의 이름을 소리 없이 되뇌었다. 정수. 정수야. 멈추지 않는 숨결마다 그 이름이 걸려 나왔다.



       

       

      05.

       

      기지로 돌아온 후, 내가 마주한 것은 정수가 남긴 지독한 흔적들이었다. 방 안은 여전히 정수가 자주 쓰는 탈취제 향기가 남아 있었다. 책상 위 낡은 지구본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무심하게 멈춰 있었다.

       

      나는 정수가 남긴 그 지구본을 부서질 때까지 거칠게 내팽개치고 싶다가도, 차마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형이 뭔데.”

       

      어둠 속에서 나는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허공에 대고 따져 물었다.

       

      “형이 뭔데 날 살려. 김정수 네가 뭔데 그걸 결정해?”

       

      그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은 원망으로 변해 나를 찔러댔다. 눈을 감으면 끝까지 미소 짓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때 그 좁은 선실에서 함께 차갑게 식어갔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산소를 마실 때마다 죄책감에 폐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낄 일은 없었을 텐데. 가끔은 기지 복도를 걷다 큰 키의 작업복 차림만 보아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헛것인 줄 알면서도 형을 부르려던 목소리가 목구멍 안쪽에서 굳어버릴 때면, 나는 벽을 짚고 한참이나 서 있어야 했다. 

       

      시간은 멈춘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흘렀다. 어느새 정수의 손때가 묻은 낡은 지구본을 닦는 것은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정수가 가꾸던 작은 간이 배양실은 내 방에 뒀다. 기지 관리팀은 규정 위반이라며 폐기를 명령했지만, 나는 내 배급 식량의 절반을 포기하고 산소 발생 장치의 일부를 전용하는 조건으로 이 연약한 생명들을 지켜냈다. 유리 벽 너머, 인공광을 머금은 노란 민들레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척박한 금속 행성에서 기적처럼 피어난 그 꽃은, 정수가 내게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정수는 지독히도 다정하고 오만한 사람이다. 타인에게 마음을 닫았던 나의 세계에 억지로 꽃을 피워놓고는, 그 꽃을 지키라는 숙제를 남기고 홀로 별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죽지 않고 살기로 했다. 그가 오만하게 내팽개치고 간 그 숙제가 아직 내 손등 위에 낙인처럼 남아 있었기에. 죽지 말고 살아서, 내가 보여준 세상을 끝까지 지켜보라던 그 무책임한 유언이 매일 아침 나를 강제로 눈뜨게 했다.

       

      내가 스스로 숨을 끊는 순간, 정수가 나를 밀어 넣으며 포기했던 그 가치 있는 생명 또한 영원히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붙들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살았다. 맛도 모르는 배급 식량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형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날에는 오히려 더 열심히 기지의 기계들을 정비했다. 형이 나를 대신해 버린 그 시간들을 내가 대신 살아내야 했다. 일분일초를 낭비하는 것조차 그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기에, 나의 생존은 구원이 아니라 처절한 수행에 가까웠다.

       

      나는 이제 정수를 떠올려도 비명을 지르거나 바닥을 내리치지 않는다. 그저 그가 남긴 생명들에 물을 주고, 기계의 나사를 조이며,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내일들을 차곡차곡 쌓아갈 뿐이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떠난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가 했던 말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그렇게 하루를 더 버티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지구의 아침 빛을 흉내 내는 LED 조명 아래서 눈을 뜬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몸에 익은 작업복을 입는다. 그리고 습관처럼 달력 앞에 멈춰 선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000일. 내가 지켜낸 그의 내일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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